전체 글 1132

240619

1. 3호선 지하철을 타고 퇴근 하는 길. 동호대교를 건너던 중 열차 내로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오늘 하루 수고 많으셨고, 걱정과 피로는 동호대교를 건너는 동안 흘려보내시기를 바란다는. 그 방송에서 사려깊은 다정함과 함께 열차 운행원으로서 사람들의 행복에 기여할 수 있다는 자부심이 전해졌다. 2. 요새 재미있게 보고 있는 넷플릭스 시리즈 : 세상의 종말에 대처하는 캐롤의 자세. 종말이 몇 개월 남지 않은 세상 속에서 캐롤이 안식을 위해 지키는 건 그저 출근하고 하루 종일 일하고 퇴근하는 일상이라는 게 내게도 묘한 안식이 된다.

Diary 2024.06.19

책 / 9번의 일

- 지팡이를 비스듬히 껴안은 채 휠체어에 기대어 앉은 장인은 말이 없었다. 언뜻 보면 잠이 든 것처럼 보였고 그 순간 그는 장인에게 쓸 만한 영정 사진이 있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런 후엔 불길한 생각을 떨쳐내듯 스스로를 꾸짖으며 역사를 빠져나와 주차장까지 갔다. 그는 장인을 들어 올리다시피 해서 뒷좌석에 태우고 휠체어를 접어 트렁크에 넣었다. 불편해 보이는 장인의 자세를 여러 번 고쳐주고, 장모가 옆자리에 타는 것까지 확인하고 나자 이마와 등줄기에서 땀이 흘렀다. 그는 시동을 걸기 전 운전대를 잡은 채로 크게 숨을 내쉬었다. 그러니까 그런 사소한 행동이 장인 내외를 불편하게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나중에 들었다. 차들로 몹시 붐비는 구간을 간신히 빠져나왔을 때 장모가 말했다. 우리 때문에 자네가 고생..

Review 2024.06.19

책 / 40일 간의 남미 일주

- 가능하면 긍정적인 면만 볼 것. 머릿속에 떠오르는 부정적인 염려와 두려움을 지울 것. 그리고 친절하게 웃을 것. 삼십 분 전에 주문한 전통 샌드위치가 이제 나왔다. 삼십 분을 조리한 것 치곤, 대체 어디에 공을 들였나 싶을 만큼 식빵 안에 햄과 치즈 한 장이 있을 뿐이다. 시간이 생명인 서울역의 던킨도너츠에서는 1분 만에 나오는 것이지만, 나는 다시 이 현상의 긍정적인 면을 보기로 했다. 덕분에 기다리는 삼십 분 동안, 나는 이 글을 다 쓸 수 있었다. 멕시코는 나를 진정 작가로 거듭나게 하는 곳이고, 이곳에서 나는 긍정적인 인간으로 거듭나게 될지도 모른다. - 내 가방 속에 있는 유산균 가루가 마약으로만 의심받지 않는다면, 그래서 멕시코시티 국제공항에서 억류된 채 ‘한국의 소설가, 카르텔의 마약 운..

Review 2024.05.27

책 / 좋아하는 걸 좋아하는 게 취미

여행자의 눈에, 집 안팎을 공들여 가꾸는 코르도바 사람들의 손길은 그저 감탄스러웠다. 그들은 마치 꽃에게 그러하듯 매일의 일상을 정성껏 돌볼 것 같았다. 오늘 하루를 시들게 두지 않으려는 사람들. 물을 주고 마른 잎을 떼어내며 오늘을 돌보는 사람들. 집 안에 하늘을 들이고 꽃밭을 가꾸는 마음이라면, 내가 모르는 삶에 대한 어떤 대답을 알고 있을 것도 같았다. 그 답을 들으려, 그 시절 나는 발 아프도록 골목골목을 돌아다녔는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안다. 사실은 ‘꽃의 거리’까지 가지 않아도 있다는 걸. 매일 물을 주고 잡초를 뽑으며 일상을 가꾸는 사람들이. 옛날 주택 대문 위의 좁다란 화단에 삐죽삐죽 자라는 대파를 심어둔 아주머니, 스티로폼 박스에서 키워낸 방울토마토 세 그루가 자랑인 아저씨, 고무 대야 ..

Review 2024.05.17

책 / 좋은 곳에서 만나요

희재와 엄마 가운데로 고개를 내밀었다. 넘실거리며 끝없이 흐르는 넓은 강 위로 초여름의 부드러운 햇살이 부서지고 있었다. 테두리를 둘러 띄워놓은 부표마다 갈매기들이 하나씩 앉아 몸을 부풀렸다. 이제 막 푸르러지기 시작한 강변의 나무들과 강 건너에 선 크고 작은 건물들, 멀리 다리 위를 지나는 차들까지 이미 수백수천 번을 본 풍경이지만 특별하게 새롭고 아름다웠다. 저기 좀 봐, 멋있지. 나는 희재와 엄마를 번갈아 바라보며 나직이 말했다. 말하고 나니 그제야 예전부터 이 말을 하고 싶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전에는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말이었다. - 이유리, 중에서

Review 2024.05.17

240517

1 좋은 가족이란 서로에게 '맞는 말'을 쏟아내면서 상대를 교화하려 드는 게 아니고 / 서로에게 든든한 지원군과 동반자가 되어 주는 것이다. 이번 주 여둘톡을 들으면서 든 생각. 2 내가 팩트 폭력을 했던 장면을 돌이켜보면 높은 확률로 무례했던 적이 많다. 하고 싶은 말을 쏟아내기 전에 조금 더 시간을 두고 마음을 가다듬고 시선을 환기시킨 후에 반응하자. 그게 진짜 필요한 말인지,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방식이 장기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 이게 최선인지, 제 3자의 눈으로 바라봤을 때에도 현명한 방식이 맞을지 생각해보고 말하자.

Diary 2024.05.17

240516

일상기술연구소의 팟캐스트를 들으면서 든 생각은 '삶을 잘 살아가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나를 잘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의 행복에 있어 필수 요소가 무언인지 찾아내는 것. 내가 가장 행복하고 건강했던, 정신적으로 충만했던 시절에 그 행복을 지탱했던 기반은 아래의 것들 같다. ㆍ 늦은 시간까지 잠을 충분히 잤다 (8시에 기상) ㆍ 매일 충분히 운동을 했다 (8-9시) 아무래도 직장 생활에서 요구하는 시간적인 규격 때문에 위의 패턴을 지키기는 어렵게 되었다. 거기서 오는 피로감과 박탈감이 나를 육체적 정신적으로 힘들 게 하는 부분이 있는 듯 하다. 그렇다면 아래와 같이 조율해 볼 수 있지 않을까: ㆍ9시간 수면을 확보한다 (10시-7시) ㆍ매일 저녁 1시간 운동하는 습관을 들인다 매일 저녁 운동을 하기 ..

Diary 2024.05.16

7박9일 동유럽 (1)

참좋은여행사의 [여행의 맛] 동유럽 3개국 9일 체오헝 상품으로 4월 27일부터 5월 5일까지 동유럽 여행을 다녀왔다. 곧 환갑이 되는 엄마를 위해 계획한 모녀 여행이었다. 여행사 상품페이지 후기 외에 블로그나 유투브에서 해당 상품에 대한 특정한 후기를 찾을 수 없어 가기 전까지 어떤 옵션이 좋은지, 어떤 점을 고민해야 하는지, 믿을 만한 상품인지 자신이 없었기에 패키지 여행을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간단히 여행 후기를 공유해 본다. 우선 4월말 5월초 동유럽 날씨는 (내 경험상으로는) 늦봄에서 초여름이 연상될 정도로 꽤나 따뜻한 날씨였다. 비가 내린 이후 잠시 온도가 내려간 날, 긴팔 폴라티에 겨울 스카프를 둘렀을 때 살짝 쌀쌀한 정도였다. 다만 여행을 가서 날씨가 언제 어떻게 변할지 완벽하..

Travel 2024.05.11

240511

만날 때마다 기분 한 군데가 찜찜해지는 친구가 있다.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식사를 피해서 차 마시는 자리에만 함께한다거나 (다이어트 때문으로 추정) 내 이야기에 귀기울이며 진심으로 응원하고 걱정하고 격려하기보다는 분위기를 맞출 수 있는 피상적인 리액션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 친구다. 아무래도 마음이 덜 가다 보니 나 또한 어느 정도 예의를 지키는 선에서 그 친구에게 이야기를 하고, 적정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선에서 선물을 한다. 그에 대해 크게 고민하거나 마음을 다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모든 친구와 다 똑같이 친할 수 없고, 다 같은 밀도의 우정을 쌓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얕은 관계라는 것도 있다, 라고 인정하고 크게 마음 쓰지 않으면 그만이다.

Diary 2024.05.11

책 / 한 장면을 완성하기 위해

종종 나는 사람들에게 60대의 자신의 모습을 딱 한 장면으로 묘사해보라고 말한다. 시선을 멀리, 더 멀리 두고 상상해보는 것이다. 당신이 가장 도착하고 싶은 60대의 한 순간을. 이 상상은 구체적이어야 한다. 내가 있는 장소, 그곳의 분위기, 같이 있는 사람, 눈앞에 펼쳐진 풍경, 그때 내가 하고 있는 행동까지 최대한 자세하게 상상해보자. 멀리 떠 있는 풍선 같은 꿈이 아니라, 내 손에 쏙 들어오는 조약돌 같은 단단한 꿈으로 바꾸기 위해서다. 당신도 이 질문에 답해보길 바란다.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잠깐 이 책을 떠나도 좋다.나부터 내가 꿈꾸는 60대를 한번 설명해볼까? 커다란 방 한가운데에 커다란 테이블이 있다. 이 테이블은 20대부터 내가 계속 쓰고 있는 바로 그 원목 테이블이다. 20대부터 평생..

Review 2024.04.18

240310 허기 관찰 기록

오후 시간 카페에서 책을 읽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살짝 출출해져서 바나나를 먹고 무가당 두유에 더치커피와 알룰로스 시럽을 타 먹었다. 바나나를 먹을 때까진 괜찮았는데 달달한 두유라떼를 먹으니 더 먹고 싶은 식욕이 솟구쳤다.알룰로스 시럽에는 당이 거의 없을텐데 단 것을 먹는 것만으로 더 먹고 싶은 욕구가 촉발되는걸까? 차가운 두유를 먹으니까 몸이 차가워져서 열량을 더 요구하는 것 같기도 하다. 결국 무가당 두유를 따듯하게 데워서 무가당 핫초코를 먹었다. 한결 허기가 가라앉는 것 같다.

Diary 2024.03.10

책 / 느리게 나이 드는 습관

효율적으로 먹기 : 내가 먹는 것이 나를 만든다 [ 3차원 절식 1단계 ] 빠르고 해로운 탄수화물을 걷어내라 노화 속도 제어를 위한 3차원 절식의 첫 번째는 단순당(설탕, 꿀, 사탕, 초콜릿, 과일주스 등 당이 들어간 가공 식품)과 정제 곡물(흰 쌀이나 흰 밀가루로 만든 식품)의 최소화이다. 이들이 만들어내는 인슐린의 요동은 복부 비만과 당뇨병을 만드는 일을 넘어 노화의 가속페달 그 자체다. ☞ 어쩔 수 없이 먹어야 한다면 양을 절반으로 줄이기 : 흰쌀밥을 어쩔 수 없이 먹어야 한다면 양을 절반 정도로 줄여본다. 오히려 혈당이 덜 오르면서 식후의 허기가 덜 느껴질 것이다. 먹는 순서 바꾸기 : 채소를 포함한 식이섬유 → 고기, 생선 등 단백질 → 탄수화물의 순서로 먹는 것이 혈당을 느리게 올린다. 선순환..

Review 2024.03.09

책 / 나를 지키는 관계가 먼저입니다

누구에게도 휘둘리지 않는 '나'를 위해 우리에겐 예상 문제 풀이나 일회성 힐링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삶의 기술이 필요하다. 어떤 관계든 크고 작은 갈등의 순간은 찾아오는데, 문제는 갈등 자체가 아니라 갈등에 반응하는 방식이다. 여기서 우리는 상처를 받기도 하고 상처를 주기도 한다. 내 마음도 모르면서 타인의 마음을 알아내려 하고, 누구를 먼저 ‘손절’해야 할지 고민하기도 한다. 하지만 건강한 소통은 타인의 마음을 읽고 움직이는 것보다 자신의 무게 중심을 잡고 내 마음과 먼저 소통하는 지점에서 시작된다. 이젠 나 자신에게 무게의 중심을 가져올 때이다. 소통은 이기고 지는 싸움이 아니다 건강한 소통은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고 요구를 솔직하고 분명하게 전달하면서 동시에 서로의 권리를 존중하는 소통’으로..

Review 2024.03.03

책 / 잊기 좋은 이름

나도 안다. 부사는 단점이 많다는 걸. 나 역시 ‘당신을 정말 사랑합니다’라는 문장보다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말을 더 좋아한다. 그러나 그중 어느 것이 더 진짜에 가까운 마음이라곤 말할 수 없으리라. 우리는 늘 우리의 진심이 전해지길 바라지만 동시에 그것이 노련하게 전달되길 원한다. 그러니 ‘당신을 정말 사랑한다’라고 말하는 이는 촌스럽거나 순진하거나 다급한 사랑을 하고 있는 사람이리라. 실로 부사 안에는 ‘저것! 저것!’ 하고 무언가 가리키는 다급한 헛손가락질의 흔적이 담겨 있다. 부사는 그게 무엇인지 설명하지 못하고 그냥 ‘저것! 저것!’ 한다. 그것은 설명보다 충동에 가깝고 힘이 세지만 섬세하지 못하다. 부사는 동사처럼 활기차지도 명사처럼 명료하지도 않다. 그것은 실천력은 하나도 없으면서 만날 ..

Review 2024.02.09

책 / 당신도 느리게 나이들 수 있습니다

- 정제곡물과 단순당, 초가공식품은 체내에서 혈당을 올리는 능력인 당부하(glycemic load)가 높고 보상회로에서 도파민과 엔도르핀을 잘 분비시킨다. 혈당이 근육이 흡수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면, 모든 잉여 에너지는 뱃살(그리고 지방간과 근내지방)로 간다. 인간 푸아그라가 되는 것이다. 여기에 운동을 하지 않고 근육을 쓰지 않으면 당처리 체계의 성능이 떨어져 똑같은 음식을 먹어도 혈당은 더 높아진다(인슐린저항성). 더 많은 에너지가 뱃살로 간다. 혈당이 높아지면 췌장을 쥐어짜 인슐린이 쏟아져나온다. 잠도 쏟아진다. 이렇게 졸다 깨면 갑자기 당이 당긴다. 인슐린이 급히 혈당을 떨어뜨린 탓이다. 갑자기 떨어진 혈당은 스트레스호르몬의 양대 산맥인 노르에피네프린과 코르티솔을 분비시킨다. 음식이 당겨 어쩔..

Review 2024.01.24

책 / 때론 대충 살고 가끔은 완벽하게 살아

- 하지만 어차피 모든 과거는 후회스럽고 모든 미래는 불안하다. 그래서 나는 어느 순간의 선택도 돌아보지 않기로 했다. - 회사를 다니며 일과 관련한 루틴은 많았다. 출근하자마자 마시는 커피, 퇴근 전 꼭 한번 다시 체크하는 이메일, 잠들기 전 내일 해야 할 일을 메모하는 것 등. 돌이켜보니 나를 위한 루틴은 없었다. 야근이 없는 날이면 꼭 누군가와 약속을 정하고 꼭 뭐라도 하고 집에 가던 그 시절과는 달리 지금의 나는 나를 위한 루틴이 많아졌다. 아침에 일어나 마시는 차 한 잔, 집을 나서기 전 고르는 책 한 권, 책방에 오자마자 오늘의 음악을 고르는 일, 매주 가장 맛있는 제철과일과 신선한 우유를 사 두는 일 등. 루틴은 안정적인 하루를 만든다. 나의 튼튼한 하루가 쌓여 나의 튼튼한 삶이 된다. 나를..

Review 2024.01.21

책 / 나의 누수 일지

- 맨 처음 나를 사로잡았던 분노는 어느새 억울함으로 바뀌었다. 억울하다는 감정은 사람을 앞으로 나아갈 수 없게 만든다. 그 자리에 주저앉아 ‘나 좀 알아달라!’며 투덜대게 한다. 방방곡곡 이 억울함을 호소하는 것이 유일한 임무라는 듯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기보다 하지 못하는 일을 하려는 사람일수록 ‘통제’ 욕구가 강하다. 모든 것을 통제하겠다는 마음은 아이러니하게도 내 맘대로 되지 않는 것들에 더 집착하게 한다. 불행한 가족 이슈에서 해결사를 자처하며 희생양이 되거나, 잘 안 풀리는 연애나 인간관계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거나, 실현 가능성 없는 일들에 사로잡혀 행동하지 않은 채 공상을 이어간다. 이들에게 현실은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이 아니라, 내가 바뀌거나 남이 바뀌어야 달성되는 신기루 같은 것...

Review 2024.01.12

12월 스페인 여행 : 바르셀로나, 몬세라트, 시체스

23/12/29 여행 6일차 : 가우디 투어 바르셀로나의 첫 일정은 가우디 투어로 시작했다. 꼭두새벽부터 까사바트요 오픈런을 하는 체력적으로 버거운 일정이었지만 (게다가 그 전날 세비야에서 기차를 타고 이동했기에) 결론적으로 대만족이었다. 빽빽하게 코스를 짤 필요 없이 투어를 통해 편하게 다닐 수 있어 좋았고, 특히 좋았던 건 맛집과 필수 쇼핑 리스트 등 현지 가이드 꿀팁을 가득 얻을 수 있었다는 점이다. 점심으로는 가우디 식당 근처의 포르투갈 음식점에서 문어구이와 해산물 스튜를 먹었다. 개인적으로 이 문어구이가 이번 스페인 여행에서 가장 맛있게 먹은 음식이다. 해외여행을 와서는 구글 현지인 리뷰보다 익숙한 입맛에 딱 맞는 한국인 추천 밥집을 고르는 게 성공률을 높일 수 있는 비법이라는 걸 깨달았다. 점..

Travel 2024.01.02

12월 스페인 여행 : 세비야

23/12/24 여행 1일차 : 스페인에 도착하다 뮌헨행 비행기를 탑승하고 이코노미석 좌석에 갇혀 기나긴 사육이 이어졌다. 그나마 의자 간격이 좀 더 넉넉한 프리미엄 이코노미 좌석으로 업그레이드를 한 덕분에 일반 이코노미석보다 조금 더 편하게 13시간을 견딜 수 있었다. 기내식은 가는 날에는 닭고기스튜와 파스타가 나왔는데 나쁘지 않았다. (참고로 돌아오는 날에 나온 카레, 와플가 더 맛있긴 했다). 뮌헨에서 긴박하고도 무사히 환승을 하고 두어시간을 더 비행한 끝에 마침내 바르셀로나에 도착했다. 버스와 택시를 거쳐서 산츠역 근처의 액타시티 호텔로 이동했다. 객실은 작았지만 1박용이라 생각하니 크게 거슬리지 않았다. 객실에 도착하자마자 샤워를 하고 머리를 말리던 중 헤어드라이기가 망가졌다. 약간 스트레스를 ..

Travel 2024.01.02

책 / 상실의 기쁨

- 삶이 시다 못해 쓰디쓴 레몬을 내민대도 당신은 그것으로 레모네이드를 만들 수 있다. 이것은 내가 얻은 큰 배움이었다. - 나는 우리가 삶에서 만나는 사람들에 관해 아는 것이 너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는 그들을 그저 피상적으로만 보고, 서로에게 불편하지 않은 의례적인 질문만을 한다. 그들을 여러 조각으로 편집해 그중 가장 덜 복잡하고 가장 즉각적인 즐거움을 주는 부분만을 취하기 때문이다. 그들에게는 우리가 충분히 알아보지 못한 마음의 상처가, 우리가 충분히 추앙하지 않은 승리가 있다. - 유머.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일에서 빠져나오려면 공포를 실소로 바꾸는 풍자와 독설이 필요하다. 도리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나의 경험에서 얻은 교훈이기도 했다. 나는 이것이 마법을 발휘하는 순간들을 경험했다. 그것은..

Review 2023.12.13

231205

출근하는 길 지하철 개찰구에서 서둘러 카드를 찍고 들어가려는 중이었다. 맞은 편에 선 피곤한 얼굴을 한 할머니가 당연하다는 듯 동시에 카드를 찍고 내 쪽으로 넘어 왔다. 양보를 고민하기 위한 찰나의 주저함이라고는 없는 행동이었기에 기분이 나빴다. 그와 동시에, 맞은 편에 상대방이 보이면 양보할지 고민한다는 생각을 할 수 없을 만큼 할머니의 삶이 팍팍하고 여유롭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사실 그런 류의 사람이기 때문이다. 가난하고 조급하게 살아와서, 내 몫을 챙기기 급급해서 남에게 양보하고 아량을 베푼 경험을 거의 해 본 적 없는. 어제 회사 식당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거의 동시에 배식 줄을 선 사람이 있었다. 나는 당연하다는 듯이 내 뒤에 설 것을 요구했다. 뒤늦게 양보해줘서 고맙다고 할..

Diary 2023.12.05

책 / 아주 환한 날들

- 딸의 짤막한 답을 듣자 갑자기 섭섭함이 밀려왔고, 그녀는 콱 죽고 싶어졌다. 지난 주말에 딸이 같이 오지 않고 사위만 보낸 것도 틀림없이 엄마가 꼴도 보기 싫어 그런 거였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딸은 그녀에게 뭔가 부탁해야 할 때는 언제나 사위를 시켰다. 딸이 그녀에게 존댓말을 쓰기 시작한 게 열세 살 때부터였는지 열다섯 살 때부터였는지 그 시점이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그들의 사이가 틀어진 것은 그즈음부터였을지도 몰랐다. 언젠가부터 딸과 통화를 하고 나면 그녀는 몸 쓰는 일을 찾아야 했다. 오이를 10킬로그램씩 사다가 오이지를 담그거나 베란다 화분들을 싹 다 분갈이했고, 그러지 않으면 찬장의 냄비들을 모조리 꺼내어 베이킹소다로 박박 닦는 식이었다. 마음이 심란해지면 몸을 쓰는 건 장사할 때부터..

Review 2023.12.02

책 / 무지개떡처럼

엄마는 후회를 정말 많이 한다. 틈만 나면 후회를 한다. 젊은 시절의 잘못된 선택과 결혼, 그 이후의 달라진 삶과 노년으로 접어든 지금의 삶을 모두 다 후회한다. 어찌나 후회가 깊고 자세한지 엄마의 말을 듣다보면 엄마를 환생시켜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다시 태어나서 엄마가 원하는 인생을 후회 없이 살아봐야 할 것 같다. 그러면서 마음 한편으론 나는 절대로 엄마처럼 후회화며 살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어떤 선택을 하든 열심히 그것을 하고, 후회는 절대로 하지 않는 것으로 말이다. 그러나 살아보면 안다. 후회가 자꾸만 고개를 쳐드는 순간이 있다는 것을. 그때마다 나는 상황을 완벽히 통제해보려는 어리석은 노력을 하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그렇게 하지 마. 그러면 잘못되잖아. 이렇게..

Review 2023.12.02

책 / 있잖아요 비밀이에요

- 서한지는 김월희가 다시 일을 시작하기 쉽지 않을 거라는 걸 알았다. 일을 하려면 김월희는 자신이 왜 아픈지를 깨달아야 할 것이다. 결국 자신에게 벌주려는 마음을 버려야 한다는 걸 말이다. 서한지는 마음속으로 말했다. 엄마, 대단한 인생을 살 필요는 없어. 엄마가 좋아하는 알밤, 그걸 떠올려봐. 벌레 먹은 밤을 집어 들면 에잇 속았다, 그런 표정으로 웃잖아. 인생도 그런 마음으로 살면 돼. 자꾸 벌레 먹은 밤만 집어들어서 속상해도 웃어넘기고 마는 거처럼, 그냥 그런 마음으로 살면 돼. 대단해지려고 하지 마. 남들하고 비교하느라 엄마가 그렇게 속이 아픈 거야. 엄마는 엄마의 길을 묵묵히 가면 돼. 그것이 지극히 초라한 길이어도. 서한지는 그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결국 입을 열었을 때 튀어나온 말은 이러했다..

Review 2023.12.02

책 / 엄마를 절에 버리러

- 끝없이 이어지는 빚을 갚다가 모든 걸 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나의 가족을 내다 버리고 싶었다. 그날 나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엉뚱한 역에 내렸고, 난생 처음 동작대교를 걸으며 나에게 가족을 버릴 만한 결단력이 있는지 고심했다. 우리가 가족으로 맺어져 있는게 슬프고 한스러웠다. 그러나 다시 태어나더라도 부모와 전혀 모르는 사이가 되고 싶진 않았다. 서로를 아예 모르는 채로 살아가는 삶은 상상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다시 가족으로 만나, 이번엔 돈이 아주 많은 가족으로 만나 서로에게 든든하고 편안한 안식처가 되어주고 싶었다. 돈이 많으면 그런 가족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리 가족은 한 번도 그래 본 적이 없으니까. 돈 떄문에 서로를 불신하고 불편하게 했으니까. 그런 생각을 하다가 ..

Review 2023.12.02

책 / 홈 파티

다만 이연은 웃고 떠드는 와중에도 그들에게서 알 수 없는 힘을 느꼈다. 상대에게 직접 가하는 힘이라기보다 스스로를 향한 통제력이라 할까, 오랜 시간 ‘판단’과 ‘선택’이 몸에 밴 이들이 뿜어내는 단단하고 날렵한 기운이었다. 얼핏 사람 좋아 보이는 박도 마찬가지였다. 이연은 자신이 대상을 편견 없이 대하는 태도에 작은 만족을 느꼈다. 타고난 성정이라기보다 수양의 결과였다. ‘어렸을 땐 정말 타인을 시시콜콜 판정했는데……’ 지난 세월, 시간의 물살에 깎이고 깨지며 둥글어진 마음이 있었다. 실제로 이십여 년간 이연이 여러 인물에게 자신의 몸을 빌려주며 깨달은 사실은 단순했다. 그건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자리에 서보는 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라는 거였다. 그리고 그로부터 오해와 갈등이, 드라마가 생겼다...

Review 2023.1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