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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아무튼, 피트니스

-‘운동해도 소용없대. 굶어야 빠진대.’주변에서 늘 속삭이는 말이다. 인터넷에 넘실거리는 뉴스에 주변 경험담을 얹어서는 자기는 해보진 않았어도 진리처럼 여기는 확신에서들 그런 충고를 한다. 해보니까, 최선을 다해 잘 먹는 것이 다이어트다. 쫓기는 시간, 아쉬운 주머니는 늘 대충 끼니를 때우라고 강요한다. 잘 먹기 위해 챙기는 시간을 아까워한다. 대신 화끈한 특식으로 보상하며 스스로 합리화한다. 먹는 것은 취향이고 습관이고 역량이다. 잘 챙겨서 좋은 것을 먹어야 한다. 나는 ‘먹지 말아야 한다’가 아니라 ‘잘 먹자’를 전략으로 택했다.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아틀라스처럼 일로 힘을 쓰는 것만이 아니라, 헤라클레스처럼 쓰는 힘도 필요하다. 일이 아닌 데다 에너지를 들이는 것, 사람들은 그런 것을 가리켜 흔..

Review 2024.07.28

책 / 벤자민 그레이엄의 현명한 투자자

투자에 성공하려면 먼저 성장성이 높은 산업을 선택한 다음 그 산업에서 가장 유망한 종목을 선정하라고 흔히 말한다. 예를 들면 먼저 컴퓨터 산업을 선택하고 그중에서 IBM을 선정하는 식이다. 그러나 1949년 1판 서문에서 예로 들었듯이, 항공운송 업종의 전망은 매우 밝았지만 개별 종목들의 실적은 매우 부진했다. 그리고 컴퓨터 산업에서 IBM은 실적이 매우 좋았지만 다른 종목들은 실적이 부진했다. 여기서 다음과 같은 교훈을 얻을 수 있다.1.성장 전망이 밝다고 해서 투자수익이 보장되지 않는다.2.전문가들도 유망 산업에서 유망 기업을 찾아내기는 어렵다.또 투자자를 곤경에 빠뜨리는 가장 무서운 적은 자기 자신이다. 이성을 잃고 시장에 휩쓸리기 쉽기 때문이다. 투자할 때는 항상 건전한 사고방식을 유지해야 한다...

Review 2024.07.27

202208 하동

2년 전에 다녀온 하동 가족 여행. 사진을 근거로 더듬더듬 기억을 떠올려본다.최근 순서대로 사진을 블로그에 올리다보니, 여행 마지막 코스였던 '쌍계명차' 소개부터 하게 되었다. 큰 기대 없이 버스정류장 근처에 있는 찻집을 들른 것이었는데, 차도 맛있고 메뉴도 다양하거니와 인테리어도 예뻤다. 그리고 이렇게 찻집 뒤에 근사한 차밭이 펼쳐져 있어 이렇게나 아름다운 하동 사진을 남길 수 있었다.쌍화차와 마들렌, 녹차를 주문했다. 특히 녹차가 정말 맛있었다. 평소에 편의점이나 카페에서 감흥 없이 마시는 떫은 녹차 맛과는 전혀 달랐다. 깔끔하고 깊은 맛과 향을 느낄 수 있었다.  하동에서 묵은 펜션은 시설이 깔끔하지는 않았지만 계곡 근처에 있어서 아침 저녁으로 계곡 물에 발을 담글 수 있었다. 계곡 위쪽으로 갈수록..

Travel 2024.07.21

202304 오사카,교토

오사카 도톤보리의 밤과 낮 처음 한 두 입이 제일 맛있는 쿠시카츠 (튀김꼬치) 비오는 날의 헵파이브 관람차도 운치가 있었다 레트로한 일본 전철 우메다 공중정원 그리고 교토 오사카와 교토는 항상 묶어서 여행을 하게 되는데, 또 매번 느끼는 건 '역시 나는 오사카보다는 교토' 라는 것이다. 또 교토에는 어쩐지 항상 여름 즈음에 방문하게 된다. 그래서인지 오랜 정취와 역사가 활기를 띠는 매력적인 장소로 내게 자리매김하고 있다.

Travel 2024.07.21

202308 강릉

강릉은 이미 너무 많이 가보았고, 유명한 곳은 한번씩 경험해 보았고, 흔하고 익숙해서 더 이상 새로운 경험은 없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오산이었다. 가보지 않은 식당과 카페로 코스를 짠 강릉 여행은 새롭고 신선하고 즐거웠다. 익숙할 거라 생각하고 큰 기대를 하지 않았던 경포 해변과 호수는 아름답고 찬란했다. 그야말로 여름이었다.  카페 기와아름답게 꾸며진 정원을 구경하며 여유를 만끽할 수 있는 곳. 커피도 맛있었다.    경포 해변파란 하늘, 맑고 푸른 바다, 깨끗한 모래사장. 드넓고 평평하고 여유롭게 펼쳐져 있는 눈부신 풍광.    카페 르봉마젤임당동은 다양한 소품샵과 카페들이 많아 구경하는 재미가 있어 강릉 여행에서 꼭 빼먹지 않고 들러야 할 곳이다. 르봉마젤은 프렌치 감성의 다양한 소품들을 ..

Travel 2024.07.21

202310 경주

복잡다난한 일상을 떠나는 것이 여행을 떠나는 이유일텐데, 그래서 핫플레이스로 떠오른 곳은 왠만해서는 잘 가고 싶지가 않다. 관광객들로 언제나 바글바글한 경주로 여행을 가는 것이 선뜻 내키지 않는 이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왠만한 곳은 이미 다 가보았다면, 뚜벅이로서는 가족 여행지로 경주 외에 다른 옵션이 없었다.황리단길은 예상했듯이 인파로 가득했고 대릉원이나 동궁과 월지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예상했듯이, 그럼에도 좋았다.   동궁과 월지   불국사   대릉원 조금 더 어렸던 시절에는 어쩐지 남의 무덤을 관광하는 것이 불경스럽고 맞지 않게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경주 여행을 하면서  '적어도 나에게만큼은 경주의 상징은 대릉원이다' 라고 생각했다. 둥글둥글한 곡선으로 하늘과 맞닿는 귀여운 조형은 여유..

Travel 2024.07.21

202307 평창

여행을 다녀온 뒤 시간이 얼마쯤 지난 뒤 앨범을 보면, 여름에 떠난 여행 사진에는 언제나 선명하고 푸르고 청량한 느낌이 든다. 온통 초록색과 파란색으로 가득하기 때문이겠지. 비록 습기와 더위 때문에 여행하기 쉽지 않은 계절이지만 동시에  여름만큼 사진이 잘 남는 계절이 없기도 하다.반면에 평창은 여름에 떠나기에 가장 좋은 여행지이다. 7월에 다녀온 평창은 내내 선선한 날씨였고 밤이나 아침에는 심지어 약간 쌀쌀할 정도였다.이번 평창 여행의 숙소는 알펜시아리조트였고, 여행한 곳은 (사진 순서대로) 발왕산 케이블카와 주목숲길, 대관령 하늘목장, 오대산월정사전나무숲길이었다. 세 곳 모두 너무 완벽하게 좋은 곳이었기 때문에 평창 여행에서 꼭 가보기를 강력하게 권한다.  -발왕산 케이블카 + 발왕산 주목숲길  -대..

Travel 2024.07.21

녹나무의 파수꾼을 읽고

김민철 작가의 에세이를 읽고 '80세의 나'를 상상하고 구체화하고 그 방향으로 닻을 잡고 항해하는 삶이란 얼마나 멋지겠는가 생각한 적이 있다. 하지만 막상 '80세의 나'를 구체화하기란 쉽지 않았다. 왠만하면 어느 정도 재산을 비축해 뒀으면 좋겠고, 내가 좋아하는 곳에 걸어가 좋아하는 음식을 먹을 수 있을 체력과 위장 건강이 뒷받침되어 있으면 좋겠고... 그런데 이런 놀고 먹는 것 외에 80세의 내가 어떤 '일'을 하며 살아가기를 원하는가에 대해서는 상상을 이어나가기가 어렵다. 80세의 나는 아마 회사를 다니기는 무리일 거다. 그럼 프리랜서로서 나의 장기를 활용할 수 있는 일, 혹은 나의 자아 실현과 즐거움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 있을까? 그 때의 나는 어떤 일을 해야 행복할까? 그런 생각을 하..

Review 2024.07.21

240717

1. 곰돌이 푸 정신 병리 테스트 결과 : 주의력 결핍 > 강박 > 불안 > 과잉행동 순으로 높게 나왔다. 아마 예전의 나에 비해 불안도는 훨씬 나아진거겠지만 여전히 높은 수치인 것처럼 보인다 🤪 2. 중국 경제 성장률은 높고 금리는 낮은데 주식도 불황, 부동산도 불황이라고 한다. 넘쳐나는 돈은 '금' 같은 안전 자산으로 쏠리고 있다고 한다. 경제 성장률은 주로 IT, 테크 같은 일부의 분야에서 크게 견인한 결과라고 한다. 이번 주말 연금 투자 포트폴리오를 수정하면서 차이나 테크 ETF에 주목해봐야겠다. 3. 허준이 교수의 서울대 축사를 읽으며 드는 생각은 확실히 수학자답다는 것이다. 오류를 허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또렷하게 담을 수 있는 단어와 수식을 어쩌면 강박적으로 보이기까지 할만큼 섬세하게 골라..

Diary 2024.07.17

책 / 내가 본 것을 당신도 본 것처럼

엄마는 느렸다. 굉장히 느렸다. 평범한 사람의 걸음보다 적어도 다섯 배는 느렸다.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대로 느리게 걸어도 엄마보다 한참 앞서갔다. 거기다 태국의 보도는 성인 두 사람이 나란히 걷기엔 턱없이 좁았고, 보도블록이 깨진 곳도 심심찮게 있었다. 엄마는 조금이라도 울퉁불퉁한 길을 만나면 중심을 잃고 휘청이기 일쑤였다. 지갑이며 마스크며 핸드폰 같은 걸 두고 와서 기껏 왔던 길을 되돌아가야 하는 일도 잦았다. 나는 위험한 것을 발견할 때마다 뒤를 돌아 길을 조심하라고 알려주었다. 앞서서 길을 찾으며 그 어려운 걸음으로 가는 길이 헛걸음이 되지 않도록 확인했다. 그렇게 나는 엄마보다 앞서 걸었고 때로는 한참 멀어진 지점에 서서 엄마가 오기를 기다렸다. 정말 답답한 일이었지만, 묵묵히 그녀가 오기를..

Review 2024.07.17

책 / 만화로 보는 '21세기 자본'

주요 내용 ‘자본 수익률 (r) ’ > ‘경제 성장률 (g) ’이라는 논리는 이론이 아니라 역사가 보여 주는 사실이다. 과거에 축적된 부는 노동으로 얻은 부보다 성장이 빠르다는 의미이다. 피케티가 자본주의의 제 1 기본법칙으로 제시한 것은「α = r×β」라고 하는 수식이다. ‘α’는 ‘자본소득 분배율’이고, 총 소득에서 자본소득이 차지하는 비율을 나타낸 것이다. ‘총 소득 = 자본소득 + 노동소득’이기 때문에 자본소득의 비율이 높아지면 그만큼 노동소득의 비율은 감소한다. ‘β’는 ‘자본/소득 비율’이다. 자본이 몇 년치 소득에 해당하는 규모인지를 의미하는 지표로 축적된 ‘경제의 규모감’을 파악할 수 있는 역할을 한다. ‘β’가 600%라면 그 자본은 소득의 6년분이 축적되어 있는 셈이다. 「α = r×..

Review 2024.07.15

책 / 혼란스러운 가부장

-“우리 집사람은 있잖아. 내가 설거지만 하면 잔소리야.”    “왜?”   “그렇게 하는 게 아니래. 자꾸 더 깨끗하게 하래잖아.”    “제수씨가 깐깐하네.”    “깐깐한 게 아니라 화풀이 같애. 나만 갖고 난리야. 집안일을 도와줘도 뭐라 그런다니까. 내가 어떻게 도와줄 맛이 나겠어.”    상명이의 짜증을 잠자코 듣던 웅이가 살짝 끼어든다.    “너 약간 그런 스타일이냐? 설거지 다 해놨는데 그릇에 고춧가루 묻어 있는 타입?”    상명이가 어물쩍 넘어간다.    “꼭 그런 건 아니고…… 암튼 집사람이랑은 뭔 일을 같이 못 하겠어.”    웅이는 덧붙이고 싶다. 설거지는 아주 뽀드득뽀드득 소리 나게 해야 한다는 것을. 양념이나 기름기 같은 게 남아 있지 않도록 말이다. 그 부분은 웅이에게 사소한..

Review 2024.07.14

책 / 남의 찌찌에 상관 마

생방송 시작까지 삼십 분이 남았다. 리허설이 시작된다고 한다. 세트장을 향해 걷는다. 남자 MC가 진행자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다. 네 사람이 인사를 나누고 각자의 자리에 앉는다. 슬아의 자리는 소설가와 영화감독 사이다. 세트장 소파 중앙에 앉아 핀마이크를 건네받는다. 슬아의 마이크 착용을 돕던 여자 스태프가 멈칫한다.“왜 그러시죠?”슬아가 묻자 스태프는 당황한 기색으로 “잠시만요” 하고 사라진다.소설가와 영화감독은 문제없이 마이크 착용을 마친 듯하다. 슬아는 마이크가 오기를 기다린다. 사라진 스태프는 세트장 구석에서 몇몇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다. 표정이 굳은 걸 보니 심각한 사안으로 보인다.    대기실에서 만났던 섭외 담당 작가가 다시 나타난다. 그는 여자다. 여자로서 은밀히 조언하듯이 슬아에게..

Review 2024.07.14

책 / 어떤 시국 선언

돼지는 나를 비건 지향인으로 만든 결정적인 동물이다. 구제역과 아프리카돼지열병으로 어마어마하게 살처분된 종이기도 하다. 용기를 내어 살처분 현장 영상을 찾아보았을 때 한 명의 돼지와 눈이 마주쳤다. 그 얼굴에 서린 불안과 공포와 고통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같은 자리에 있었다면 나 역시 똑같은 표정을 지었을 것이다. 얼굴을 마주한 순간 돼지와 나 사이의 무수한 공통점을 즉시 알아차렸다. 그러자 더 이상 돼지를 먹을 수 없었다. 돼지를 고기라고 부를 때마다 목에 뭔가가 턱턱 걸리는 것 같았다.내가 돼지에 대해 쓸 수 있는 말들은 거의 동사뿐이었다. 그의 마음의 풍경에 관해서는 도저히 쓸 수 없었다. 무슨 말을 가져다 붙여도 모자랄 것 같았다. 공장식 축산 현장에서 돼지가 통과하는 이동 동선에 대해서만 ..

Review 2024.07.12

책 / 우리 사랑을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하지 않으리

장덕준 씨는 쿠팡 칠곡 물류센터에서 물류 작업을 하는 이십대 노동자였다. 그는 퇴근길에 편의점에 들러 여동생에게 줄 간식을 사곤 했다. 마지막 퇴근길에는 웨하스를 샀다. 웨하스를 들고 엘리베이터에 탄 그의 모습이 담긴 CCTV 영상을 훗날 그의 가족들은 몇 번이고 돌려보게 된다.        그는 쿠팡에서 일한 지 1년 4개월 만에 과로사했다. 과로사의 대표적인 유형인 급성심근경색으로 인한 죽음이었다. 그의 근무시간은 주당 평균 62시간 10분이었다. 그는 하루 평균 5킬로그램씩 100개, 30킬로그램씩 40개의 택배 상자를 날랐다. 일터에서의 걸음 수는 하루 평균 5만 보였다. 1년 사이 체중이 15킬로그램가량 빠졌다. 그는 2020년 10월 12일 새벽 6시, 야간 근무를 마치고 귀가한 직후에 죽었다..

Review 2024.07.12

240707

어제는 하루 종일 4권의 소설책을 읽었다. 워낙 속독하는 경향이 있기도 하지만 4권 모두 재미있어서 전자도서관에서 대여하는 족족 쉬지 않고 끝까지 읽어버렸다. 백수린의 , 권여선의 , 장류진의 , 은희경의 순으로 읽었는데 저마다 다른 매력이 있었다. 특히 가장 마지막으로 읽은 는 가장 어두운 소설이기도 하고 내게 가장 깊은 여운을 남겼기 때문에 그에 대해 좀 더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소설은 70년대 어느 여대 기숙사를 배경으로 한 '나'와 이후 40년이 흐른 뒤의 '나'가 교차하며 등장하는 방식으로 서술된다. 70년대 여대 기숙사의 풍경은 무척이나 부산스럽고 생생하고 활기가 넘친다. 매일 밤 통금 시간에 걸리지 않기 위해 기숙사 대문 앞 오르막길을 헉헉거리며 뛰어들어오고, 기숙사 방 안에서 네 명의 룸메..

Diary 2024.07.07

책 / 일상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

-여행은 일상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꿈꾸는 그곳은 이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지금, 만족스럽지 못하다면, 그곳에서도, 그때, 불만족스러울 것이다. 매일 먹는 바게트가 지겨울 테고, 대화할 상대가 없는 일상의 외로움에 몸서리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다. 그땐 그것이 또, 일상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나의 의무는, 지금, 이곳이다. 내 일상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것, 그것을 내 것으로 만드는 것, 그리하여 이 일상을 무화(無化)시켜버리지 않는 것, 그것이 나의 의무이다.-그러니 중요한 것은 이것이었다. 일상에 매몰되지 않는 것, 의식의 끈을 놓지 않는 것, 항상 깨어 있는 것, 내가 나의 주인이 되는 것, 부단한 성실성으로 순간순간에 임하는 것, 내일을 기대하지 않는 것, 오직 지금만을 살아가는 것..

Review 2024.07.02

책 / 비극이 알려준 긍정의 태도

모든 자책과 원망의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차츰 이성의 끈을 붙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문득 어떤 책의 한 구절이 생각났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나를 구하기 위해 그 구절이 나에게 온 것이다. 나의 어처구니없는 기억력에도 불구하고 기어이 그 구절이 나에게 도착한 것이다.   일어날 객관적 사태는 이미 정해져 있습니다. 아직 정해지지 않은 것은 단지 그 운명을 받아들이는 나의 주관적 태도일 뿐입니다. 나는 다만 내가 어쩔 수 없는 운명 앞에서 나 자신의 주관적 태도를 고상하게 만들 수 있을 뿐인 것입니다.**김상봉, 《그리스 비극에 대한 편지》, 한길사, 2003그렇다. 사건은 이미 종결되었다. 아무리 원망을 하고 있어봤자 바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이것이 나의 바꿀 수 없는 운명이었다. 오직 바꿀 수 있..

Review 2024.07.01

영화 / 인사이드아웃2

1사춘기에 들어선 라일리에게 새로 생기는 감정들: Anxiety, Envy, Boredom, Embarrassment. 일꾼들이 우르르 몰려와 감정 통제 본부를 때려 부수고 리모델링하는 부분은 사춘기의 감정 소용돌이를 아주 섬세하고 놀랍게 표현했다. 물론 이 영화 속의 다른 장면들에도 하나 하나 곱씹어 볼 수 있는 여지들이 풍부하게 존재한다. 예컨대 영화 마지막에 불안이가 예측 불가한 미래를 상상하며 불안해하자 시험 공부 같은 자신의 노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에 불안이를 집중하게 만드는 것도 탁월한 장면이었다.2나는 항상 내 모든 성취에 있어서 최고의 동력은 불안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 부분을 영화가 (우려하거나 지양하는 대신) 사랑스럽게 표현해 주어서 고마웠다. 불안도 결국 내 행복을 위해 존재하는 ..

Review 2024.06.29

240626

가끔 그 입들을 마주한다. 고집스럽게 꾹 힘을 주어 닫아 양 옆이 처지고 주름진 입술. 주로 만원 지하철을 탔을 때 사람들에 치이지 않으려고 힘주어 서있는 아저씨들의 입술이 그러하고, 엘레베이터에 사람들이 올라타려는데 열림 버튼을 누르지 않고 서있는 사람들의 입술 모양이 그렇다. 고집스러운 / 당황하지 않은 척하는 / 혹은 거리낌이 없는 척하는 / 마음을 숨기고 긴장하는 / 입 모양. 나도 입 주변에 그 모양으로 근육이 잡히는 게 느껴지면 어김 없이 그런 마음 상태일 때가 많아 스스로 경계하고 반성한다.

Diary 2024.06.26

'내가 되고 싶은 할머니'가 되기 위한 시스템

'내가 되고 싶은 할머니' 상상하기 일은 해도 되고, 하지 않아도 괜찮다. 내가 원하는 곳에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가고 (걸어가거나 또는 운전을 해서) 원하는 카페를 찾아갈 수 있는 돈과 체력을 가지고 있으면 괜찮겠다. 세상사와 때로는 자연을 관조하며 책을 읽고 영화도 볼 수 있는 여유가 있으면 좋겠다. 써놓고 보니 내가 소망하는 건 단지 지금 느끼는 일상의 행복을 늙어서도 여전히 느낄 수 있게 유지하는 것...! 체력적인 조건맛있는 음식과 커피를 즐길 수 있는 튼튼한 치아와 위장책을 읽고 영화를 보는 데 어려움이 없는 시력일상 속의 소소한 여행을 즐기기 위해 혼자 힘으로 충분히 이동할 수 있는 체력 물질적인 조건도서관, 영화관, 미술관 등의 문화 생활을 누릴 수 있는 인프라와 가까운 위치의 거주지고정 ..

Diary 2024.06.22

240619

1. 3호선 지하철을 타고 퇴근 하는 길. 동호대교를 건너던 중 열차 내로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오늘 하루 수고 많으셨고, 걱정과 피로는 동호대교를 건너는 동안 흘려보내시기를 바란다는. 그 방송에서 사려깊은 다정함과 함께 열차 운행원으로서 사람들의 행복에 기여할 수 있다는 자부심이 전해졌다. 2. 요새 재미있게 보고 있는 넷플릭스 시리즈 : 세상의 종말에 대처하는 캐롤의 자세. 종말이 몇 개월 남지 않은 세상 속에서 캐롤이 안식을 위해 지키는 건 그저 출근하고 하루 종일 일하고 퇴근하는 일상이라는 게 내게도 묘한 안식이 된다.

Diary 2024.06.19

책 / 9번의 일

- 지팡이를 비스듬히 껴안은 채 휠체어에 기대어 앉은 장인은 말이 없었다. 언뜻 보면 잠이 든 것처럼 보였고 그 순간 그는 장인에게 쓸 만한 영정 사진이 있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런 후엔 불길한 생각을 떨쳐내듯 스스로를 꾸짖으며 역사를 빠져나와 주차장까지 갔다. 그는 장인을 들어 올리다시피 해서 뒷좌석에 태우고 휠체어를 접어 트렁크에 넣었다. 불편해 보이는 장인의 자세를 여러 번 고쳐주고, 장모가 옆자리에 타는 것까지 확인하고 나자 이마와 등줄기에서 땀이 흘렀다. 그는 시동을 걸기 전 운전대를 잡은 채로 크게 숨을 내쉬었다. 그러니까 그런 사소한 행동이 장인 내외를 불편하게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나중에 들었다. 차들로 몹시 붐비는 구간을 간신히 빠져나왔을 때 장모가 말했다. 우리 때문에 자네가 고생..

Review 2024.06.19

책 / 40일 간의 남미 일주

- 가능하면 긍정적인 면만 볼 것. 머릿속에 떠오르는 부정적인 염려와 두려움을 지울 것. 그리고 친절하게 웃을 것. 삼십 분 전에 주문한 전통 샌드위치가 이제 나왔다. 삼십 분을 조리한 것 치곤, 대체 어디에 공을 들였나 싶을 만큼 식빵 안에 햄과 치즈 한 장이 있을 뿐이다. 시간이 생명인 서울역의 던킨도너츠에서는 1분 만에 나오는 것이지만, 나는 다시 이 현상의 긍정적인 면을 보기로 했다. 덕분에 기다리는 삼십 분 동안, 나는 이 글을 다 쓸 수 있었다. 멕시코는 나를 진정 작가로 거듭나게 하는 곳이고, 이곳에서 나는 긍정적인 인간으로 거듭나게 될지도 모른다. - 내 가방 속에 있는 유산균 가루가 마약으로만 의심받지 않는다면, 그래서 멕시코시티 국제공항에서 억류된 채 ‘한국의 소설가, 카르텔의 마약 운..

Review 2024.05.27

책 / 좋아하는 걸 좋아하는 게 취미

여행자의 눈에, 집 안팎을 공들여 가꾸는 코르도바 사람들의 손길은 그저 감탄스러웠다. 그들은 마치 꽃에게 그러하듯 매일의 일상을 정성껏 돌볼 것 같았다. 오늘 하루를 시들게 두지 않으려는 사람들. 물을 주고 마른 잎을 떼어내며 오늘을 돌보는 사람들. 집 안에 하늘을 들이고 꽃밭을 가꾸는 마음이라면, 내가 모르는 삶에 대한 어떤 대답을 알고 있을 것도 같았다. 그 답을 들으려, 그 시절 나는 발 아프도록 골목골목을 돌아다녔는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안다. 사실은 ‘꽃의 거리’까지 가지 않아도 있다는 걸. 매일 물을 주고 잡초를 뽑으며 일상을 가꾸는 사람들이. 옛날 주택 대문 위의 좁다란 화단에 삐죽삐죽 자라는 대파를 심어둔 아주머니, 스티로폼 박스에서 키워낸 방울토마토 세 그루가 자랑인 아저씨, 고무 대야 ..

Review 2024.05.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