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는 창경궁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아주 축축하고 차가운 이불에 덮인 것처럼 마음이 서늘해졌다. 내가 10대 시절을 보낸 곳이 창덕궁 담장을 따라 형서된 서울의 동네, 원서동이기 때문이다. 빗방울이 떨어져내리면 더 깊고 선명해지던 검은 기와들의 윤기가 생각났다. 2. 나는 추웠고 그건 몸을 덥히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나를 안정적으로 눌러줄 얼마간의 무게가 필요한 것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나 같은 건 누군가 놓친 유원지 풍선처럼 날아거버려도 그만일 테니까. 3. 장과장은 일부러 갈등 상황을 만들어 자기 통제력을 확인해야 하는 사람 같았다. 살얼음처렁 냉랭하게 구는 태도도 자신을 위한 포즈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공문의 문단 위치나 띄어쓰기, 공사당 안전모자 같은 규칙과 명령들이 만들어주는 영향력만큼 허망한 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