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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당신도 느리게 나이들 수 있습니다

유연하고단단하게 2024. 1. 24.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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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제곡물과 단순당, 초가공식품은 체내에서 혈당을 올리는 능력인 당부하(glycemic load)가 높고 보상회로에서 도파민과 엔도르핀을 잘 분비시킨다. 혈당이 근육이 흡수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면, 모든 잉여 에너지는 뱃살(그리고 지방간과 근내지방)로 간다. 인간 푸아그라가 되는 것이다. 여기에 운동을 하지 않고 근육을 쓰지 않으면 당처리 체계의 성능이 떨어져 똑같은 음식을 먹어도 혈당은 더 높아진다(인슐린저항성). 더 많은 에너지가 뱃살로 간다. 혈당이 높아지면 췌장을 쥐어짜 인슐린이 쏟아져나온다. 잠도 쏟아진다. 이렇게 졸다 깨면 갑자기 당이 당긴다. 인슐린이 급히 혈당을 떨어뜨린 탓이다. 갑자기 떨어진 혈당은 스트레스호르몬의 양대 산맥인 노르에피네프린과 코르티솔을 분비시킨다. 음식이 당겨 어쩔 줄 모른다. 온몸에 힘이 빠지면서 짜증이 난다. 그래서 달달한 간식을 찾는다.  
이렇게 만들어진 뱃살과 지방간, 근내지방에 있는 지방세포는 여러 가지 나쁜 호르몬을 만들며 염증물질을 쏟아낸다. 특히 스트레스호르몬과 염증물질은 혈관을 손상시켜 혈압을 올리고 멀쩡한 근육단백질을 녹여 혈당을 높일 뿐만 아니라 뇌로 가서 인지기능을 떨어뜨린다. 인지기능이 떨어지면 판단과 자제를 담당하는 전두엽의 또 다른 기능도 떨어진다. 자제력이 떨어지니 더 자극적인 것을 찾고 더 먹는다. 본능에 더 충실해진다. 운동 생각이 날 수가 없다. 운동을 하지 않으니 근육은 더 빠르게 녹고 배는 볼록해진다. 호르몬 이상도 더 과격해지고 염증물질 또한 더 늘며 판단력과 집중력은 더 떨어진다. 실제로 우리가 먹는 것이 전두엽의 기능들에 영향을 준다는 과학적 증거가 최근 여러 분야에서 확인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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섭취한 음식이 혈당을 높여서 몸이 버텨낼 수 있는 점선을 넘기는 방식으로 비만과 대사질환을 만들어내는 과정을 설명한 이론이 있다. 바로 탄수화물-인슐린 모델(carbohydrate-insulinmodel)이다. 건강을 위해서는 전체적인 칼로리 섭취를 조절해야 하며, 특히 단위부피당 칼로리가 높은 지방 섭취를 줄여야 한다는 에너지-균형 모델(energy-balancemodel)이 놓친 점을, 에너지대사에 관해 새롭게 알려진 과학지식을 통해 보완한 것이다. 탄수화물-인슐린 모델에 따르면, 에너지가 과잉으로 형성될 경우 체내에 쌓이기는 하지만 어떻게 몸을 만들고 음식을 먹는지에 따라 혈당 곡선의 형태가 달라진다. 그에 따라서 허기가 지속될 뿐 아니라 더 달고 맛있는 음식을 계속 찾는(당이 당기는) 몸을 만들 수도 있고, 반대로 늘 배부른 상태로 지내면서도 웬만해서는 살이 찌지 않고 식탐도 없는 몸을 만들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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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엽에는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안 하게 만드는 자제력이 있다. 그런데 강화(reinforcement)로 인해 중독의 고리가 형성되면 전두엽의 자제력은 약해진다. 중독의 원인 자극을 갈망 하는 상태, 다시 말해 전두엽의 자제력이 취약해진 상태에서 자극원을 떠올리는 신호(예를 들어 알코올의존자가 목이 마른 상태에서 맥주 광고를 보는 상황)를 경험하면 중뇌변연계 경로는 바로 도파민을 모락모락 피워내기 시작한다. 이러한 상태는 사람이 이겨낼 재간이 없다. 그래서 중독을 어떤 자극원에 대한 의존성이 점차 강해지면서 일상생활과 건강에 해를 끼치는 상태로 정의한다.    
보통 ‘중독’이라고 하면 술, 담배, 마약을 떠올리지만, 보상을 만들어내는 모든 자극은 어떻게 사용되느냐에 따라 중독회로를 형성할 수 있다. 특히 앞 장에서 살펴본 초가공식품은 이 중독회로를 잘 형성한다. 실험을 해보면 사람과 설치류 모두 당부하가 높은 식품에 쉽게 중독이 된다. 사람은 특히 당부하가 높으면서 지방까지 함유된 식품을 좋아한다는 것이 몇몇 임상연구를 통해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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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내 도파민 신호는 자극에 적응한다. 이런 관계는 여러 약물과 알코올 등의 중독성에 대한 연구를 통해 밝혀졌다. 강한 보상과 만족감을 주던 자극도 반복적으로 경험을 하면 처음의 만족감을 느끼지 못한다. 이런 적응 현상이 진행되면 같은 효과를 얻기 위해서는 점점 더 많은 자극이 필요하다(의존). 세포막 표면의 신경전달물질수용체와 이에 따르는 신호의 특성 때문에, 일반적으로는 자극원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야 한다. 예를 들면 지난주에 처음으로 느꼈던 마약의 효과를 이번 주에도 느끼려면 처음에 투약한 양의 두 배가, 다음 주에는 처음 투약한 양의 네 배가 필요한 식이다. 약물의 신체적인 해악 효과는 누적 용량에 비례해서 증가하므로 이런 회로에 빠져든 사람은 큰 피해를 입는다.    
그러므로 상업적으로 쏟아지는 도파민 자극원들을 끊임없이 찾아 헤매는 것은, 더 많은 자극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것은 점점 빨라지는 트레드밀에서 계속 앞으로 가려고 노력하는 것과 같다. 끊임없이 스마트폰 화면을 스크롤하고, 물건을 더 많이 사고, 해롭고 자극적인 음식을 더 먹고, 불필요한 여행도 더 하게 된다. 그러나 불쾌와 공허는 사라지지 않는다. 크고 작은 도파민 자극이 마구 섞여서 들어오고 또 빠져나가면서 금단증상이 나타나, 정신이 안정되지 못하고 항상 스트레스호르몬 수치가 높은 상태를 유지한다. 적응 현상 때문에 이런 행동은 더욱 심해지고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만큼 해악이 커진다. 다음 장에서 설명할 디폴트모드네트워크(default mode network)가 무척 혼탁해지고, ADHD와 우울증, 불안장애가 섞여 있는 것과 유사한 정신상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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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교수 정희원 저, <당신도 느리게 나이들 수 있습니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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