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의 눈에, 집 안팎을 공들여 가꾸는 코르도바 사람들의 손길은 그저 감탄스러웠다. 그들은 마치 꽃에게 그러하듯 매일의 일상을 정성껏 돌볼 것 같았다. 오늘 하루를 시들게 두지 않으려는 사람들. 물을 주고 마른 잎을 떼어내며 오늘을 돌보는 사람들. 집 안에 하늘을 들이고 꽃밭을 가꾸는 마음이라면, 내가 모르는 삶에 대한 어떤 대답을 알고 있을 것도 같았다. 그 답을 들으려, 그 시절 나는 발 아프도록 골목골목을 돌아다녔는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안다. 사실은 ‘꽃의 거리’까지 가지 않아도 있다는 걸. 매일 물을 주고 잡초를 뽑으며 일상을 가꾸는 사람들이. 옛날 주택 대문 위의 좁다란 화단에 삐죽삐죽 자라는 대파를 심어둔 아주머니, 스티로폼 박스에서 키워낸 방울토마토 세 그루가 자랑인 아저씨, 고무 대야 속에 흙을 퍼 담고 알뿌리 토실한 난을 심어둔 할머니들……. 꽃이든 대파든 저토록 싱싱하게 키우는 이들이 내겐 진짜 생활의 달인 같다.
자신의 인생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오늘을 돌볼 것이다.
하루가 모여 결국 평생이 되므로.
화초를 키워보면 안다. 화분에 꼬박꼬박 물을 주면서도, 막상 그 식물이 잘 크고 있는지 아닌지 관심 없기란 얼마나 쉬운지. 뜨거운 햇볕에 이파리가 검게 타들어가는데도, 과습으로 줄기 아랫부분이 무르고 있는데도 때에 맞춰 물만 주는 것을 ‘화분을 돌본다’고 말할 순 없다. 그럴 때 식물은 쉬이 죽고, 그제야 내가 시들게 한 게 무엇인지 알게 된다.
그러니 식물을 가꾸는 게 일상을 가꾸는 것과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 밥 먹고 일하고 자는 생활을 영위한다 해서 잘 살고 있다 말할 수는 없다. 그건 때로 내 상태가 어떤지 살피지도 않으면서 꾸역꾸역 물을 주는 것과 다름없을 때가 있으므로.
서른을 지나면서 나는 진짜 ‘잘’ 사는 것에 관심이 생겼다. 내게는 그것이 무엇을 뜻할까, 자주 생각한다. 그래서 틈틈이 내 마음의 안색을 살피고, 화초를 돌보듯 일상을 들여다본다. 시든 데 없나 먼지 쌓인 생활 구석구석을 닦아내고, 밖에서 사 먹는 대신 시골집에서 부쳐준 재료들로 직접 지은 밥을 먹고, 계절에 한 번씩은 답답해하는 나를 데리고서 마음을 환기할 수 있는 곳에 간다. 그리고 다시 돌아와, 베란다에서 나의 부재를 기다려준 화초들을 돌본다. 나에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관심을 두게 되면, 고단한 삶에도 살아 있는 뭔가를 보살피며 살아갈 여유를 가지면, 일상은 쉬이 시들지 않는다. 그것을 식물들에게서 배웠다.
지내냐고, 괜찮으냐고,
오늘도 생활의 안부를 묻는 것은 곁에 있는 말 없는 화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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