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384

영혼 없는 작가

내 눈길을 강하게 끈 것은 유럽 사람들의 몸은 항상 어떤 시선을 찾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얼굴뿐만 아니라 손가락과 심지어는 등짝까지도 항상 어떤 시선을 찾고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모두 다른 사람의 몸에 항상 시선을 다시 되돌려 줄 의무가 있었다. 그 것뿐만이 아니다. 눈도 이에 대하여 반응을 보여 줄 의무가 있다. 부정적으로 반응을 나타내는 것은 용서가 되지만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는 것은 용서가 되지 않았다. 이 과제가 너무 과하다고 생각되면 나는 전차나 버스에서 눈을 감아야만 했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아무런 시선을 던지지 않아 길거리에서 공격적인 말을 듣게 되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었다. 나는 모든 사람을 눈으로만 인지하고 싶지는 않다. 더군다나 모든 형태에 대해 의견을 표명하고 싶은 마음은 ..

Review 2012.02.08

우천염천

그리하여 우리는 예상 외로 나흘째 되는 밤을 캅소카리비아의 스키테에서 보내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이곳은 우리가 경험한 것 중에서 가장 살벌하고 까다로운 수도원이었다. 이처럼 여행을 하다 보면 모든 일이 예정대로 순조롭게 풀리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는 고향을 떠나 타향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닌 장소 ― 그것이 바로 타향이다. 그러기에 모든 일은 우리가 마음먹은 대로 전개되지 않는다. 거꾸로 말하자면 모든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는 것이 바로 여행이다. 제대로 풀리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여러가지 재미있는 것, 이상한 것, 기막힌 것들을 만날 수 있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여행을 하는 것이다. - 하루키 여행에세이, '거센 비 내리고 뜨거운 해 뜨고' 중에서 이 이..

Review 2012.02.02

다와다 요코, 목욕탕

나는 하얀 모래로 세수를 했다. 사막이 되어 버린 내 피부는 이것으로 세수를 해야 다시 매끈매끈하게 만들 수 있었다. 사람들은 이 모래가 공룡의 뼈로 만든 것이라고 했고 바다의 물결이 오랫동안 씻어 내고 햇볕이 말린 뼈라고 말했다. 나는 이 뼈를 손바닥 위에 펴 바른 후 손바닥을 얼굴에 대었다. 손바닥은 살을 뚫고 내 뼈와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나는 손 안에서 내 두개골의 형태를 정확하게 느낄 수 있었다. 빛으로 된 이 피부와 물로 이루어진 살 이외에 또 하나의 몸이 있었다. 그러나 내가 살아 있는 동안은 아무도 이 몸을 안아 볼 수는 없을 것이다. 나는 개수대에 물을 흐르게 하고 내 머리를 그 안에 집어넣고 흔들었다. 시든 잎사귀, 나비의 날개, 죽은 개미들 그리고 말린 다람쥐의 꼬리들이 떨어져 나왔다..

Review 2011.12.23

데이비드 호크니 : 네 개의 판화 포트폴리오

David Hockney: Four Print Portfolios 1961-1977 데이비드 호크니: 네 개의 판화 포트폴리오 그동안 서울대학교미술관(MoA)은 유난히 흥미로운 이름을 내건 전시로 주목을 끌어왔다. 이라는 제목이 붙었던 오마르 갈리아니 전이나 이란 제목으로 개최되었던 인터랙티브 미디어 아트전 등이 그랬다. 미스터리한 제목의 전시들은 그 내용에 대한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이번 전은 데이비드 호크니라는 이름을 전면에 내걸고, 작가에게 기대와 이목을 집중시킨다. 이는 데이비드 호크니가 영국 팝 아트의 대가로서 지닌 위상을 반영하며 앞으로 그 이름의 가치가 더욱 높아질 것이라는 미술계의 기대를 보여준다. 이번 전시에서는 그가 1959년 런던 왕립 미술학교에 입학한 후에 발표해왔던 초기 ..

Review 2011.12.10

초상화의 비밀

2011년 국립중앙박물관 기획특별전 초상화의 비밀 천 원짜리 지폐 속 이황과 만 원짜리 지폐 속의 세종대왕. 하루에도 수십 번씩 꺼내보는 초상화들이다. 그런데 이 지폐 속 도상들을 둘러싸고 논란이 빚어진 적이 있다. 이들의 초상화가 역사적 고증 없이 상상으로, 게다가 초상화를 그린 화가를 닮은 모습으로 그려졌음이 밝혀진 것이다. 우리가 매일 화폐 속에서 초상화를 마주하면서 아무런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그림이 인물의 혼을 담고 있지 않은 거짓된 초상화이기 때문인지 모른다. 그림 속 인물과 생생하게 소통할 수 있는 진정한 초상화를 만나고 싶다면 9월 27일부터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진행되는 ‘초상화의 비밀’전을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국보급 초상화들을 대거 선보이는 특별기획전이다...

Review 2011.10.31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해설서 중에서

니체에게 망각은 하나를 지우는 일이 아니라 수만 개를 만드는 일이다. 그것은 마치 자기 안에 카오스를 만드는 것과 같다. 카오스란 길의 사라짐이 아니라 길의 과잉이다. 그것은 한 개의 시각이 갖는 특권을 제거하는 대신 수만 개의 시각이 가능함을 보이는 것이다. 니체는 자신이 질병과 치유를 반복함으로써 무엇보다도 '하나의 시각[퍼스펙티브]만을 갖는 맹목성에서 벗어나고자 했다'고 말했다. 또한 니체는 이 과정을 '수많은 대립적 사유 방법에 길을 내주는 것'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이 과정이 진행되면 그 동안 자연스러움을 판단했던 지배적 정서는 다른 정서들의 공격을 받기 시작한다. 니체는 독특한 방식으로 자연스러움이나 올바름의 기준들을 공격해서 지배적 정서의 특권을 사라지게 만든다. 특권이 사라지면 수많은 정..

Review 2011.10.20

오늘의 프랑스 미술

추석 연휴동안 전시관을 무료로 개방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국립현대미술관에 다녀왔다. 초국가적이고 초이념적이며 전통과 관습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작품들에게 '현대적'이라는 수식이 붙는 것을 생각해보면, '오늘의 프랑스 예술' 혹은 '이것이 미국 미술이다' 같은 전시장에서 아주 이국적이고 생경한 자극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래도, 단지 몇 분간 지하철을 타고 가는 것으로 현대의 프랑스라는 공간을 서너 개의 전시실에서라도 생생하게 보고 느낄 수 있을 거라는, 설렘을 덜어낼 수는 없었다. (오늘의 프랑스 현대미술전 작가 인터뷰영상) 국립현대미술관은 7월 26일부터 10월 16일까지 과천본관에서 전을 개최한다. 본 전시는 세계 미술의 동향을 알리는 기획 전시 시리즈의 일환으로, 국립현대미술관은 20..

Review 2011.09.16

그을린 사랑

오늘 아침에도 학교에 오는 동안 라디오를 들었다. 월드뉴스를 소개하는 코너에서 리비아의 상황이 생생하게 담긴 오디오를 틀어주었다. 총소리가 들리고, 급하게 뛰어가는 사람들의 발소리나 고함 소리들이 들렸다. 학교에 도착해서 커피를 마시고 노트북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는 느긋한 아침에 지구 어느 곳에서는 피가 튀기고 고성이 오가는 끔찍한 상황들이 전개되고 있다는 걸 아침 저녁으로 짤막하게 접하는 몇 분의 뉴스만으로 실감하기란 어렵다. 하지만 오늘 라디오로 전해들은 총소리는 평소와는 달리 유난히 오랫동안 온 몸에 소름이 돋게 만들었다. 아마도, 어제 본 영화의 여운이 마음에 남아있던 탓이다. 어제 저녁 광화문 씨네큐브에서 이 영화를 보았다. 개봉한지는 좀 되었지만 관객 반응이 좋아서 오래 상영하고 있는 듯했다...

Review 2011.08.25

만화 캐릭터, 미술과 만나다

가끔 일상에 소소한 변화가 필요할 때면 쇼핑을 가거나 영화를 보러갈 수도 있겠지만 서울 곳곳의 무료 전시나 무료 공연을 보면서 감성을 충전하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다. 지난주 친구랑 서울시립미술관 남서울분관에 다녀왔다. 9월 18일까지 이어지는 '만화 캐릭터, 미술과 만나다'전에서는 낯익은 혹은 낯설지만 귀여운 캐릭터들이 그려져 있는 다양한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전시를 보러 다니는 취미가 없는 친구랑 가기에도 부담 없고 재미있는 전시였다. 대중소비사회에서 널리 알려진 만화적 캐릭터를 작품의 소재로 차용하는데 그치지 않고 자신의 감성을 담은 변용과정을 통해 그 의미를 재맥락화한 젊은 작가 11명의 작품 54점이 선보인다. Ⅰ. 세상을 되돌아보다 만화적 캐릭터의 재창조 과정을 통해, 원전이 가졌던 의미에 ..

Review 2011.08.13

해리포터 죽음의 성물2

초등학교 사학년 땐가 처음 해리포터를 읽던 날 책이 너무 재밌던 나머지 학습지 선생님이 수업하러 왔는데 집에 아무도 없는 척하고는 처음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단숨에 읽어버렸었다. 빗자루를 타고 하늘을 날아다니고 주문 한 마디면 지팡이 끝에서 빛나는 마법이 일어나는 해리포터 속의 세상이 얼마나 황홀하고 부러웠는지. 하지만 해리포터가 사춘기에 접어들어 점점 변하고 성장해가면서 나도 어느덧 십대에서 벗어났고 언제부턴가 해리포터 시리즈는 관심사에서 멀어졌다. 그러다 어제 남자친구랑 해리포터 시리즈의 마지막 편을 보러 가게 됐다. 호그와트 입학생으로부터 이제 완전히 어른이 되어버린 해리포터 그리고 졸업을 앞둔 대학생이 된 나. 같은 시대에 십대라는 시기를 함께 가로지른 우리가 스크린을 통해 다 커버린 서로를 마주..

Review 2011.08.04

오마르 갈리아니

8월 말까지 서울대미술관 MOA에서는 서울의 혼이라는 전시로 오마르 갈리아니의 작품들을 소개하고 있다. '이성주의'라는 설명에서 짐작되었던 대로 전시된 그림들은 모두 흑백이었고 간혹 붉은 색으로 캔버스를 칠하거나 가느다란 선을 그려넣고 있었다. 흑백으로 그림 속에 그려져있는 것은 인체의 뼈, 치아나 우주 이미지 등 영원함과 불변함, 무정(無情)함과 같은 속성을 지니는 것들이다. 그 불가해성 및 숭고성은 연필이나 목탄, 흑연 등의 소재로 표현되어 웅장하고 장엄하면서도 또한 부드러운 느낌을 준다. 이들과 캔버스 속에 함께 그려지는 것은 뜻밖에도 소녀나 장미의 이미지이다. 보통 아름다우면서도 갸날프고 순간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이러한 소재들은, 그러나 익숙하게 이해되는 '상처받기 쉬움'이나 '연약함' 등의 의미..

Review 2011.08.04

이미지의 수사학

전은 다변화되어가는 현대미술의 흐름 속에서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는 이미지의 존재 방식에 대해 체계적으로 고찰해봄으로써 한국 미술의 발전적 방향을 제시해보고자 하는 취지로 마련되었다. 이번 전시에서는 현재 우리미술계에서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하며 한국 미술을 선도하고 있는 중진 작가 14인의 작품에 집중하여, 이들이 작품을 통해 대중과 소통하며 사회적 의미를 생산하도록 하는 시각적 수사학을 심도 있게 조명해 보고자 한다. 전시 구성에 있어서는 보는 즉시 즉각적으로 인지 가능한 구상적 이미지로 구현된 작품으로 범위를 한정하여 14인의 작가들이 작품을 통해 표현하고 소통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또한 이러한 소통을 위하여 취하고 있는 표현 방식은 무엇인지 등을 집중적으로 논의해 보고자 한다. 특히 이번 전시는 ..

Review 2011.07.30

레오노라 캐링턴

2002년 프랑스 퐁피두 미술관에서 있었던 ‘초현실주의 혁명 La Revollution Surrealiste’전은 미술관 전관에 걸쳐 60여명 작가들의 작품 600여점을 망라한 초대형 회고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중 여성작가들의 작품은 10여점에 불과했다. 당대에 함께 활동했던 대략 21명의 여성작가들 중 레오노라 피니, 자클린 람바, 메레 오펜하임, 도라 마르, 레메디오스 바로 등 몇몇 작가의 작품 한두점씩이 전부였다. 위대한 여성 작가들은 다만 뮤즈로, 혹은 연인으로 비공식적인 스냅사진에나 존재할 뿐이었다. Leonora Carrington, The inn of the dawn horse (self-portrait), 1937 역사 뒤에 가려진 수많은 '그녀'들 중에 레오노라 캐링턴Leonor..

Review 2011.07.29

한스 홀바인, <대사들> 속의 두개골에 대하여

한스 홀바인, , 1533 우리의 망막에 다가온 빛의 경험은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세계에 대한 '사회적으로 합의된' 서술들에 따라 인지된다. 즉 내가 볼 때, 내가 보는 것은 단순히 빛이 아니라 이해할 수 있는 형태이다. 인간의 시각은 사회화되어 있다. 주체와 세계 사이에는, 문화적 구성물인 시각성을 위한 담론들의 총합으로서의 스크린이 서있다. 말하자면 망막과 세계 사이에는 기호들의 스크린, 즉 사회적인 활동의 장을 이루는 시각에 대한 다양한 담론들로 구성된 스크린이 삽입되어 있다. 내가 사회적으로 보는 것을 배울 때, 즉 내가 나의 사회적 환경으로부터 내게 주어진 인식 코드들을 가지고 나의 망막의 경험을 규명할 때, 나는 (내가 보기 이전에 세계를 보았고 내가 더 이상 보지 않는 이후에도 여전히 보..

Review 2011.04.27

샤갈展

샤갈 (Chagall; Magician of Color) 사랑을 노래한 20세기 색채회화의 대가 2010년 12월부터 2011년 3월까지, 한국일보사는 서울시립미술관과 공동으로 20 세기 색채회화의 독보적인 화가인 샤갈의 전시를 개최했다. 러시아(현 벨라루스) 유대인 태생의 프랑스 화가 마르크 샤갈(1887-1985)은 전 세계의 대중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는 화가이자 미술사에서 독특한 위치를 지닌 작가이다. 98세의 오랜 삶을 통해 동심으로부터 무용과 꿈, 사랑, 성경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테마를 그리며 현란한 색채와 형상으로 독특한 회화세계를 구축하였다. 그는 그 무엇보다 “변형”의 화가였다. 야수주의의 강렬한 색채와 입체주의의 공간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받아들였고, 여기에 고향 러시아의 비테프스크의 ..

Review 2011.03.30

메이드 인 팝랜드

확실히 가벼운 마음으로 친구나 연인, 가족들과 미술관에 가고 싶을 때는 팝아트전시전을 찾는 것이 좋다. 눈을 사로잡는 선명한 색감, 뚜렷한 윤곽의 팝아트 작품들을 보다 보면 탄산음료를 마시는 것처럼 기분이 상쾌해지기 때문이다. 또 작품의 내용들은 대개 머리 아프게 고민할 필요 없이 쉽게 소화되고, 작품 속에 녹아든 작가의 유머러스함을 이해한 관람객들로 하여금 가볍게 때로는 씁쓸하게 웃음짓게 한다. 미디어가 점점 더 자극적이 될 것을 요구받는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이렇게 우리에게 이미 친근해진 여러가지 시각적 장치들을 여전히 생각 없이 보고 웃고 떠들며 지나치면서, 관람객인 우리는 다시 한번 작가(혹은 사회)의 조롱이 된다. 이번 과천국립현대미술관에서 전시되었던 전시 작품들은 전통적인 팝아트 개념으로 묶..

Review 2011.02.25

Media Landscape, Zone East

2010 Liverpool Biennial - Screening at LOOP · 전시기간: 2011년 2월 10일(목) ~ 2011년 2월 27일(일), 연중 무휴 · 전시시간: 11AM – 8PM · 장소: 대안공간 루프 · 참여작가 명단: [중국] - Hu Xiaoyuan, Ma Qiusha, Zhao Yao [일본] - Sakakibara Sumito, Taguchi Yukihiro, Taro Izumi [동남아] - Fong Silas(홍콩), Ho Tzu Nyen(싱가포르), JOMPET(인도네시아), Wu Chi-tsung(타이완) [한국] - 구정아, 김기라, 김영은, 뮌, 박준범, 신기운, 오경민, 이현철, 정유미, 천경우 · 전시소개글: 글/ 서진석 이번 2011년 2월 10일부터 18..

Review 2011.02.19

게으름과 수동적 여가에 탐닉하는 이유

게으름은 사람의 천성이 아니다. 목표가 없고 교감을 나눌 수 있는 타인이 없을 때 사람들은 차츰 의욕과 집중력을 잃기 시작한다. 마음은 자꾸만 흔들리고, 불안감만 조성하는 해결 불능의 문제에 집착하기 시작한다. 마음이 붕괴되는 이런 최악의 무질서 상태를 피하기 위하여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불안의 샘을 의식에서 지워주는 자극에 의존하게 된다. 그것은 드라마 시청일 수도 있고 연애 소설이나 추리 소설같은 판에 박힌 이야기를 읽는 것일 수도 있으며 도박이나 섹스에 빠지는 것일 수도 있고 술이나 마약에 탐닉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이것들은 의식에서 벌어지는 혼돈을 짧은 시간 안에 줄여주지만, 그 순간이 지나고 나면 남는 것은 허무감과 불쾌감이다.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몰입의 즐거움' 중에서 어쩌면 '마음의 무..

Review 2011.02.18

몰입의 즐거움

주옥같은 문장과 표현들 속에 담겨있는 작가의 '사람(의 심리)'에 대한 깊은 통찰. 여타의 자기개발서를 읽는 것보다 더 나를 반성하게 하고 생활의 의지를 주는 책이다. · 일상의 구조 세월의 흐름 속에서 삶의 질을 결정하는 것은 경험의 내용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시간을 어떻게 할당하고 투자할 것인가를 지혜롭게 결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가 시간을 묘사할 때 쓰는 예산·투자·할당·지출 같은 용어는 재무 분야에서 빌려온 것이다. 혹자는 그래서 시간에 대한 우리의 태도에는 편협한 자본주의의 색채가 짙게 배어있다고 주장한다. "시간은 돈"이라고 즐겨 말한 사람이 자본주의의 위대한 변호가였던 벤저민 프랭클린이긴 하지만, 돈과 시간을 같게 보는 관점을 그보다 훨씬 오래되었다. 그것은 자본주의 문화만이 아니라 인류..

Review 2011.02.18

SeMA, 이미지의 틈

'SeMA 2010_이미지의 틈'전은 젊은 작가들의 창작을 활성화하고 동시대 미술의 담론을 생산해 온 그간의 성과를 토대로 2000년대 동시대 미술의 지형을 더듬어봄과 동시에,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고 소통하는 기회로 삼기위해 기획되었다. 또한 본 전시는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지원한 역대 작가들(SeMA 2004~2008전, 난지창작스튜디오 1기~4기, 2008~2010 SeMA 신진작가 전시지원 프로그램 참여작가)의 작업에서 비교적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현상인 ‘이미지의 문제, 즉 시각성’을 주제로 설정하여 이를 다루는 작가들을 선별하여 소개하는 전시이다. 이미지가 지배하는 오늘날의 사회에서 이미지를 현실 그 자체로 받아들이도록 시각적 트릭을 사용하여 유희적인 측면에 집중하는 경향을 Part1. 이상한 거울_..

Review 2011.02.17

알랭 드 보통, KISS&TELL

1 이러한 상대성에서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의 원리를 떠올릴 수 있다. 이것은 관찰자가 관찰을 시작함과 동시에 그 관찰 대상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 상황을 설명하는 이론이다. 하이젠베르크가 말한 것처럼 원자를 관찰하기 위해 현미경 렌즈를 조절하기 시작하면 관찰대상은 자기의식적으로 되고, 그에 따라 관찰대상은 관찰되지 않았을 때와는 다른 어떤 움직임을 시작할 것이다. 이것은, 누군가 망원경으로 몰래 훔쳐볼 때 거실 바닥에서 뒹굴고 싶었던 이들의 생각을 바꿀 수도 있다는 말이다. 음, 그렇다면 내가 집에서는 책 한페이지 안읽으면서 카페에서는 그렇게도 열심히 공부하는게 바로 불확정성의 원리로 비유될 수도 있겠군요 단순히 커피 덕분인줄 알았더니, 제3자의 시선이 필요했던 것이었구만 2 주변에서 하도 알랭 드 보통..

Review 2011.02.09

이층의 악당

스릴러도 아닌것이 코메디라기도 좀 그런것이 어쨌든 빵터지는 재미나 눈물콧물 짜내는 감동코드는 없어도 참신한 소재와 오밀조밀한 재미를 담은 대사들로 보는 맛이 있었던 영화 이층의 악당 무엇보다 김혜수느님이 너무너무 매력적이어서 그저 넋을 놓고 봤다 히스테릭 우울증의 괴팍한 30대 중반 아줌마가 섹시해 보였던건, 오직 그녀가 김혜수였기 때문이다 ㅋㅋㅋㅋ

Review 2011.02.02

Memento Vita, 삶을 기억하라

사진 기록을 통해서 서울을 들여다보고, 서울에 대해 성찰해 보고 궁극적으로 서울에 서울을 되돌려주자는 (심히 거창한) 의의로 기획된 서울사진축제 전시기간: 2010년 12월 20일 (월) ~ 2011년 1월 31일 (월) 전시장소: 서울시립미술관 경희궁 분관 및 남서울 분관 사당역 근처 시립미술관 분관에서 사진전을 보고 왔다 분관의 전시 주제는 '삶을 기억하라' 사진을 통해 기록되고 기념된 개개인의 순간들, 그것이 곧 역사의 단면들임을 말한다. 여러 주제의 전시들 중에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두 가지 전시작; 먼저 지난 번에 moa에서도 전시되었던 장보윤의 다른 주제의, 다른 맥락의 공간 속에서 마주한 사진들은 지난 번보다 훨씬 더 묵직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전시 기획이라는 게, 큐레이터의 역할이라는 게 ..

Review 2011.01.26

부당거래

영화의 완성도나 퀄리티를 따지는 걸 떠나서 스토리 자체에 담겨져있는 논픽션의 메시지는 (새삼스럽지만서도) 충분히 의미심장하다. 부당함에 익숙해져서는 안된다는 것, 나에게 특히 그 의미는 더 무게감 있게 다가왔다. 건조한 현실 속에서 스스로를 어떻게 정립시켜야 할 것인가 나는 어떤 위치에 정립될 수 있을 것인가 어쨌든, 일단은 '정신차리고' 살아야겠다 세상 산다는 거 쉽지 않은 거니까 (이왕 제대로 살거라면) 가볍게 생각하지 말고 가벼이 하루하루 보내지 말고 이 젊은 날을 더 진정성 있게 살자구 좀.

Review 2011.01.22

끝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길들이 있는 정원: Game + Interactive Media Art

게임과 미디어 아트, 이들은 공통적으로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을 주체로 하고 자신을 객체로 뚜렷하게 위치시키는 일반적인 예술품들이나 상품과는 달리 이를 마주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시각 외의 다중 감각을 동원하도록 하면서 보다 액티브한 상호 작용을 요구한다. 그러나 게임과 미디어 아트에 있어서 가장 확실한 차이점은, 게임은 참여자의 순간 순간의 즉각적인 반응 그리고 게임 속 세계에의 몰입을 필요로 하는 반면에 미디어 아트는 작품과 마주하는 사건을 일으킨 후에 반성적 사고를 하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서로 너무 닮아 있는 이 두 영역을, 상업성과 예술고립주의로 완전히 분리시켜 버리는 것이, 과연 적절한 조치일까,하는 물음을 던지는 데에서 시작되는 전 /주말에 모아미술관에 다녀왔다. '끝없이 두 갈래로 갈..

Review 2011.01.11

언더그라운드2 - 약속된 장소에서

그녀와 얘기를 나누다보면, 이 사람에게 옴진리교가 이상적인 '그릇'이었다는 것을 납득하게 된다. 분명 '현세'에서 살아가는 것보다는 교단에 들어가서 수행하는 편이 이 사람으로서는 훨씬 행복했을 것이다. 현세의 그 무엇에서도 전혀 가치를 발견할 수 없었고, 자기 안의 정신세계를 추구하는 것 외에는 거의 흥미가 없었다. 따라서 현실에서 벗어나 외곬으로 정신수행에만 매진할 수 있는 옴진리교 교단은 하나의 낙원 같은 것이었다. 물로 열여섯 살에 교단에 들어가 순수 배양되었다고, '유괴'나 '세뇌' 같은 형태로 볼 수도 있겠지만, 내 마음은 그보다는 오히려 '세상에 이런 사람 하나쯤 있어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 쪽으로 기울어버렸다. 너나 할 것 없이 모든 사람이 굳이 '현세'에서 부대끼며 절박하게 살아갈 필..

Review 2011.0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