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에게 망각은 하나를 지우는 일이 아니라 수만 개를 만드는 일이다. 그것은 마치 자기 안에 카오스를 만드는 것과 같다. 카오스란 길의 사라짐이 아니라 길의 과잉이다. 그것은 한 개의 시각이 갖는 특권을 제거하는 대신 수만 개의 시각이 가능함을 보이는 것이다. 니체는 자신이 질병과 치유를 반복함으로써 무엇보다도 '하나의 시각[퍼스펙티브]만을 갖는 맹목성에서 벗어나고자 했다'고 말했다. 또한 니체는 이 과정을 '수많은 대립적 사유 방법에 길을 내주는 것'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이 과정이 진행되면 그 동안 자연스러움을 판단했던 지배적 정서는 다른 정서들의 공격을 받기 시작한다. 니체는 독특한 방식으로 자연스러움이나 올바름의 기준들을 공격해서 지배적 정서의 특권을 사라지게 만든다. 특권이 사라지면 수많은 정서들의 전쟁이 벌어진다. 그 동안 억눌려 있던 모든 충동들이 경쟁적으로 신체의 장에 등장하는 것이다. 니체는 이것을 '힘들의 과잉 상태'라고 불렀다. 이 '힘들의 과잉 상태'는 다양한 자아의 출현을 가능케 하는 조건이다.
인간 속에는 바다 속 동물처럼 많은 정신들이 거주하고 있다.
이 정신들은 '자아'라는 정신을 얻으려고 싸운다.
그들은 자아를 사랑하며, 자아가 자신들의 등 위에 앉기를 원한다.『권력의지』
모든 행동들이 한 자아로 묶일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단순해진다면 하나의 자아, 하나의 주체성은 그대로 현실이 되고 만다. 이러한 현실은 대중들을 노예화해서 쉽게 통치하려는 전제 권력[부정의 권력의지]에게는 최고의 선물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전제 권력은 결코 사회적 힘들의 배치가 바뀌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것은 동일한 배치가 반복되길 원한다. 그것은 잠재적으로 배치를 뒤흔들 위험이 있는 힘들의 과잉 상태(개인이 다양한 자아를 갖는 사회)보다는 과소상태(한 가지 자아만이 선택되는 사회)를 선호한다. 그러나 힘들의 과소 상태는 전제 권력을 강화시킬 수는 있어도 사회를 강화시키지는 못한다.
개인 안에서도 마찬가지다. 한 정서의 특권적 지배는 그 신체의 변신 능력을 떨어뜨린다. 불행히도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많은 제도나 장치들이 힘들의 동일한 배치를 습속화하도록 만들고 있으며, 힘들을 점차 과소 상태로 만들고 있다. 니체가 관습이나 제도, 법 등에 적대적 태도를 보인 것도 그것들이 우리에게 동일한 행동을 반복하게 하고 우리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양식을 제한하기 때문이다. 정치 행위는 투표 행위로 축소되고 다양성은 나열된 항을 선택하는 문제로 제한됨으로써 민주주의는 "미래를 낳는 능력을 상실한다".
- 고병권 저, "니체의 위험한 책,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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