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309 - 20120701
백남준아트센터 기획전시
<x_sound : 존 케이지와 백남준 이후>
우리가 백남준을 특히 위대하게 평가하고 존경하는 이유는
아무래도 그가 한국인의 이름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는 데 있을 것이다.
그러나 높이 쌓아올린 텔레비전 탑, 피아노를 부수는 난폭한 퍼포먼스가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이해하지 못한 채로, 그의 이름만을 기억해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가 백남준을 기려야하는 이유는 그가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렸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가 전달한 메시지와, 비판적이고도 창조적이었던 예술 정신을 이어갈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이 말이 구태의연한 설교처럼 느껴진다면
백남준의 작품들과 그의 정신을 이어가는 동시대 작가의 작품들을
직접, 몸으로 마주해 볼 것을 권한다.
그런 점에서 <x_sound: 존 케이지와 백남준 이후>전은
백남준을 보다 쉽게 이해하고, 그의 사상이 어떤 모습으로 동시대 예술에 이어지고 있는지
확인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2012년 7월 1일까지 백남준 아트센터에서 열리는
<x_sound: 존 케이지와 백남준 이후>는
두 명의 천재, 백남준과 존 케이지를 동시에 만날 수 있는 전시이다.
그들은 음악에 대한 전통적인 정의를 거부하고, 끊임없이 낯선 표현 방식을 선보였으며
예술과 세상에 대해 새로운 의문거리를 던졌다.
그들의 퍼포먼스는 전통과 권위에 길들여진 관객들의 정신에 새로운 자극을 주었다.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여전히 다소 낯설고 충격적인, 동시에 신선하고 자유롭고 유쾌한
케이지와 백남준 두 예술가의 사상이 어떻게 통하고 있는지 또 어떤 차이를 보이고 있는지
<x_sound>전에서 비교해 볼 수 있었다.
(좌) 백남준, 바보가치, 1992
(우) 백남준, 새장 속의 케이지, 1970
존 케이지의 서거 소식을 듣고, 백남준은 다양한 오마주와 케이지를 기리는 여러 가지 작품을 제작했다.
첫 번째 전시실에서는 백남준이 케이지에 대한 경의와 존경을 표한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었다.
특히 <새장 속의 케이지>는 ‘케이지’가 새장을 의미하는 단어임을 이용한 언어유희적인 작품이다.
새장 안의 작은 TV 속에는 케이지의 작품이 방영되며, 새장 밑에는 나무 조각들이 쌓여 있다.
이 나무조각들은 케이지가 배설한 ‘피아노 조각’이다.
즉 케이지가 기존의 전통적 예술을 잘라내고 부수어서 배설하면서, 이를 대신하는
새로운 의미와 새로운 정신의 예술을 선보였음을 표현한 작품이다.
이 외에도 <존 케이지에게 바침>, <존 케이지에 대한 경의> 등 다양한 영상과 오브제 작품들을 관람할 수 있다.
백남준, TV정원, 1974(2002)
존 케이지와 백남준의 작품들을 비교해 놓은 두 번째 전시실로 들어가는 동안
관람객은 백남준의 유명한 작품 <TV정원>을 지나게 된다.
컴컴한 전시실은 장치된 TV들로부터 새어나오는 빛을 통해서 신비롭게 밝혀지고 있었다.
정원의 흙바닥 위에, 우거진 나무와 식물들 사이사이에 놓여 있는 TV들 속에서
경쾌한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무용영상 <글로벌 그루브>가 흘러나온다.
음악의 리듬감이 공간을 채우고, 생동감 있는 퍼포먼스 장면이 방영되는 TV와
이들을 에워싼 나무들의 풍경은 이질적이고 비현실적인 동시에 묘하게 잘 어우러진다.
기술과 인간과 자연이 같은 리듬 속에서 함께 숨 쉬고 생동하는 진풍경이 <TV정원>에서 연출되는 것이다.
신비로운 분위기의 정원 속에서
비디오 아트는 더 이상 어렵고 낯선 것이라기보다는
관객들과 보다 긴밀하게 소통하면서 풍부한 감성적 반응을 이끌어내는 장르임을
관객은 몸으로 이해할 수 있다.
<TV정원>을 지나면 존 케이지와 백남준 간의 본격적인 연계성을 살펴볼 수 있는
두 번째 테마 전시실로 들어간다.
여기서는 백남준과 케이지가 서로에 대해 언급한 내용과, 서로에게 미친 영향력을 엿볼 수 있다.
특히 <4분 33초>를 위한 오마주로 만들어진,
백남준의 <아무 것도 나오지 않는 장면>에 대한 케이지의 언급이 흥미롭다.
<4분 33초>는 존 케이지가 피아노 앞에 앉아 아무 건반도 건드리지 않은 ‘연주곡’이다.
이 음악을 4분 33초간 채우는 것은 주변의 소음, 불확정적이고 우연적이고 즉석적인 소리들이다.
멜로디와 리듬과 구체적 형식을 갖춘 것이 음악이라는 전통적인 정의를 깨뜨렸던 것이다.
한편 백남준의 비디오 작품 <아무 것도 나오지 않는 장면>에서 화면을 채우는 것은
공간 그 자체 혹은 부유하는 먼지, 즉각적인 이미지 등이다.
이는 케이지의 작품에 대한 오마주이자,
불특정하고 우연적인 요소들을 청각 뿐 아니라 시각적으로 끌어들인 동시에
회화보다 동적인 방식으로 활용한 것이다.
존 케이지의 '장치된 피아노' 재현
백남준, 총체피아노, 만프레드 몬테베 사진, 1963
피아노와 같은 연주 매체를 이용하는 방식에 대해 케이지와 백남준을 비교하고 있는 전시 또한 흥미로웠다.
존 케이지가 제작한 ‘장치된 피아노’는
볼트, 대나무, 플라스틱 조각 등을 피아노 현 사이사이에 끼워 넣은 것이다.
이 때문에 건반을 치는 도중에 우연적인 마찰음이 섞여든다.
피아노라는 건반악기의 연주 속에 타악기적인 소리가 결합되는 것이다.
한편 백남준이 제작한 ‘총체 피아노’는 전시실 내 영상과 사진을 통해 만나볼 수 있었다.
이는 피아노에 대한 고정관념에 관해 케이지보다 더 파격적으로 나아간다.
건반을 누르면 라디오에서 소리가 나고 전구에 불이 들어오는 식으로
음악의 멜로디와 일상의 소음 간 경계를 보다 불분명하게 만든 것이다.
백남준의 설치작품 ‘TV 피아노’는 대형 모니터 13개를 피아노 중간에 삽입시켜,
미디어를 활용해 음악을 사운드로 확장시키려 한 또 다른 시도였다.
건반에 라디오를 연결하여 건반을 누를 때마다 각각 다른 주파수에서 소리가 나오게 함으로써
연주하는 장소, 국가마다 다른 연주가 들릴 수 있게 한 케이지의 <상상풍경 4번>은
추계예대 학생들의 공연 영상을 통해 만나볼 수 있다.
(좌) 김기철, 소리보기-비, 2012
(우) 하룬 미르자, 백페이드 5[춤의 여왕], 2012
2층에서는 백남준의 x_sound, 그 이후를 보여주는 전시가 이어진다.
백남준의 실험적이고 진보적인 예술 정신이
오늘날의 예술들에서 어떤 맥락으로 이어지는가를 엿볼 수 있다.
특히 각각의 작품들이 ‘소리’를 서로 다른 방식으로 다양하게 다루고 있음이 흥미로웠다.
김기철의 <소리 보기-비>의 경우
비오는 모습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한 설치 작품 사이로 종묘에서 비오는 날 채집된 소리를 들려준다.
<소리 보기-바람>은 각 스피커 앞을 걸을 때마다
서로 다른 장소에서 녹음된 바람 소리를 들을 수 있게 한 작품이다.
이를 통해 관람객은 어긋난 시공간을 청각적으로 체험할 수 있게 된다.
한편 하룬 미르자의 <백페이드 5 (춤의 여왕)>은
스피커에서 나오는 비프음, LED 전자파에서 만들어지는 소음, 스피커 위 동전의 진동음 등
다양한 소리가 시각적으로 경험되게끔 한 작품이다.
지문의 <302개의 장치된 모터>는 빈 종이상자를 작은 모터가 쉴 새 없이 두드리는 모습을
관객이 직접 듣고 보면서 공감각적으로 느낄 수 있도록 한 작품이다.
오토모 요시히데의 설치작품인 <위드아웃 레코드>는
버려진 턴테이블과 골판지, 철로 된 소품들의 마찰음들이 들려주는
무인(無人)적인 오케스트라의 광경을 연출한다.
이 외에도 여러 흥미로운 작품들이 소개된다.
오토모 요시히데 + 야수토모 아오야마, 워드아웃 레코드, 사운드 설치, 2008
지문, 230개의 장치된 모니터, 사운드 설치, 2012
우리가 익숙하게 듣고 지나치는 소리들, 일상의 소음,
멜로디라고 이름 붙인 소리 묶음들.
음악과 소리, 예술과 비예술의 전통적인 경계를 지워버리려 한 예술작품들을
존 케이지부터 백남준을 거쳐 동시대 예술가들의 작업에 이르기까지
전시장에서 다양하게 만나볼 수 있었다.
전시관을 나오면서 새삼
계단을 내려오는 발걸음, 메모지를 접는 바스락거리는 소리,
연필과 종이가 만나 사각거리는 소리 같은 것에 집중하게 되었다.
그런 소음들이 어떤 목소리로 내게 속삭이는지,
어떤 울림을 내 마음에 던져주고 있는지도.
인턴기자로 취재차 작성했던 기사글에서
http://www.mu-um.com/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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