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그을린 사랑

유연하고단단하게 2011. 8. 25. 00:43




오늘 아침에도 학교에 오는 동안 라디오를 들었다.
월드뉴스를 소개하는 코너에서 리비아의 상황이 생생하게 담긴 오디오를 틀어주었다.
총소리가 들리고, 급하게 뛰어가는 사람들의 발소리나 고함 소리들이 들렸다.

학교에 도착해서 커피를 마시고 노트북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는 느긋한 아침에
지구 어느 곳에서는 피가 튀기고 고성이 오가는 끔찍한 상황들이 전개되고 있다는 걸 
아침 저녁으로 짤막하게 접하는 몇 분의 뉴스만으로 실감하기란 어렵다.

하지만 오늘 라디오로 전해들은 총소리는 평소와는 달리
유난히 오랫동안 온 몸에 소름이 돋게 만들었다.
아마도, 어제 본 영화의 여운이 마음에 남아있던 탓이다.





어제 저녁 광화문 씨네큐브에서 이 영화를 보았다.
개봉한지는 좀 되었지만 관객 반응이 좋아서 오래 상영하고 있는 듯했다.
 

 

이야기는 한 여자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녀는 유일한 자식이었던 쌍둥이에게 유언장을 남기는데
그 내용은 사실 너희들에게는 숨겨진 아빠와 오빠가 있었으며
그들을 찾아 편지를 전하기 전에는
자신의 무덤에 비석도 새기지 말고 나체 상태로 장례를 치뤄달라는 것이었다.

 
쌍둥이는 유언을 지키기 위해 어머니의 고향 레바논으로 향하게 되고
그 곳에서 어머니가 혼자 간직하고 살아왔던 비밀과 끔찍한 진실을 마주하게 된다.





'그을린 사랑' 속의 반전은
그게 도저히 예측될 수 없는 놀라운 이야기인 때문이라기보단

가공된 이야기일지언정
그것이 너무나 끔찍하고 무겁고 어두운 진실이라는 점 때문에
보는 사람의 마음을 송두리째 마비시켜버린다.
화면이 꺼지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동안 먹먹함이 조금씩 걷히면서 
나도 모르게 고여있던 눈물이 툭툭 떨어졌다. 



끔찍한 또 하나의 사실은
영화 속의 모든 상황들,
종교적인 대량 학살과 수많은 사람들의 무고한 죽음과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감옥의 시설과 고문 등 그 모든 장면들이 
'실제'의 역사에 바탕하고 있다는 것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상상을 뛰어넘는듯한 잔인하고 끔찍한 일들은
모두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것들이고

지금 이 순간에도, 그 하드코어함을 잃지 않은 채 여전히 
끔찍한 이야기들이 역사서의 페이지들에 쓰이고 있다.

비록 지금 우리 귀엔 아무것도 들리지 않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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