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눈길을 강하게 끈 것은 유럽 사람들의 몸은 항상 어떤 시선을 찾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얼굴뿐만 아니라 손가락과 심지어는 등짝까지도 항상 어떤 시선을 찾고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모두 다른 사람의 몸에 항상 시선을 다시 되돌려 줄 의무가 있었다. 그 것뿐만이 아니다. 눈도 이에 대하여 반응을 보여 줄 의무가 있다. 부정적으로 반응을 나타내는 것은 용서가 되지만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는 것은 용서가 되지 않았다. 이 과제가 너무 과하다고 생각되면 나는 전차나 버스에서 눈을 감아야만 했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아무런 시선을 던지지 않아 길거리에서 공격적인 말을 듣게 되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었다. 나는 모든 사람을 눈으로만 인지하고 싶지는 않다. 더군다나 모든 형태에 대해 의견을 표명하고 싶은 마음은 더 없다. 그러면 반대의 과정이 일어나게 되기 때문이다. 즉 그러면 내 몸은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통해서 항상 새롭게 다시 만들어져야만 하기 때문이다.
보이고 싶어 하고 보여야 하는 몸은 유럽의 몸이다. 그 때 나르시스까지 등장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이러한 욕구의 밑바탕에는 보이지 않는 것은 언제든지 사라질 수도 있다는 걱정이 깔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유럽'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내게는 두 연극 인물이 떠오른다. 한 명은 여성이고 다른 한 명은 남성이다. 유럽이 남성일 때에는 무엇보다도 관객들의 관찰을 원한다. 사람들은 그를 비난해서는 안 되고 이 인물이 존재하지 않는다고도 절대로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 이 인물을 비판하기란 쉽지 않다. 자기 스스로 늘 비판을 하고 있고 사실상 너무나 재빠르게 그리고 너무나 잘해서 다른 사람 그 누구도 더 잘 비판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고는 다른 문화가 자기 영향을 너무 많이 받으면 심지어 다른 문화도 비판한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왜 너는 너 자신이 아니냐? 왜 너는 나를 따라하느냐? 사실 나도 별 볼일 없는데."
- 다와다 요코, '영혼 없는 작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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