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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장

내 방에는 십년 정도 된 옷장이 있다. 얼핏 보면 심플하고 예쁜 흰색 옷장인데 가까이서 보면 코팅지 가장자리가 거의 다 떨어져서 문을 여닫을 때마다 너덜거린다. 이 옷장을 보면 가끔 마음이 아프다. 몇년 전 옷장을 닫다가 문이 떨어져서 아빠한테 고쳐달라고 말씀드렸다. 조심성이 없다고 혼나자 욱해서 "이런 싸구려를 사오니까 고생이지" 라고 되려 성질을 냈다. 내 말에 아빠는 조용히 낯빛이 어두워졌다. 이 옷장에는 풀죽은 무거운 표정의 아빠가 새겨져 있고 그 날의 풍경이 생각날 때마다 죄스럽고 마음이 쓰라리다. 내 방은 침대 하나 놓을 공간이 없을 정도로 좁지만 아빠 방은 내 것보다 더 작고 쓸쓸하다.

Diary 2018.10.15

소란

앓고 난 뒤 수척해진 얼굴로 맞이하는 새벽, 땀과 소변과 열로 독소를 몽땅 비워내 가벼워진 몸을 느끼는 것은 나쁘지 않다. 새로 살 기운을 담기 위해 빈 항아리처럼 몸을 내놓고 앉아있는 일. 헛헛해진 속을 비집고 솟아오르는 허기와 건강을 돌보겠다는 다짐, 자신에게 고정되어 있던 시선을 창 밖으로 돌릴 수 있을만큼 넓어진 마음. 아무것도 가진 게 없어 평화로운 얼굴. 이 모든 것이 '새것'을 데려다준다. 실컷 아프고 난 당신이 파리해진 새 얼굴과 막 태어난 '작은 의욕'을 가지고 창밖을 내다볼 때 산다는 것은 '의지를 갖고' 산다는 것임을 깨닫는다. 아프다는 것은 이겨내야 할 것이 아니라 지혜롭게 겪다, 보내야 하는 것이다. 그다음 새로워지는 것은 선물 같은 일. 그러나 누구도, 너무 많이는 아프지 않았으..

Review 2018.10.15

181015

감정 배설하는 습관 들이기! 오늘의 토막 일기 -퇴근하고 집에 와서 키위를 동그랗게 깎아 먹었다.닭가슴살 스테이크를 렌지에 돌려서 해동시키고슬라이스 치즈를 올려서 20초 더 돌렸다.바질가루 톡톡 쳐서 먹으니까 역시 맛있다!혈관에 진한 기름이 침투하는 느낌이다.이렇게 먹으니 배부르고 칼로리도 높지 않아서 좋다. 가끔 치즈가 먹고 싶어지는 날리코타치즈, 스트링치즈를 사다가 하룻밤에 폭식해버리거나치즈타르트, 치즈번 같은 고열량 밀가루 음식에 손을 대는데슬라이스치즈는 그런 위험이 적은 것 같다.그냥 먹으면 썩 맛있지도 않고기름기 있는 음식과 함께 데워야 잘 녹기 때문에과식할 위험이 덜한 것 같다. 떨어지지 않게 충분히 사다 놓아도 될 것 같다.

Diary 2018.10.15

헌등사

"아 이제 돌아가야 해."마리카는 일어나서 구겨진 상의를 무리하게 입고, 춥지도 않은데 버튼을 아래부터 목까지 하나도 잊지 않고 채우고, 짧은 시간에 완전히 원래대로 딱딱해진 구두를 신고서는"그럼 또 봐. 또 오고 싶은데, 만약 가능하다면, 정말로 금방, 또, 오고 싶은데, 그렇지만 무리를 해서라도, 조만간."이라고 입에 낸 말, 내지 모한 말, 많은 말들에 부대끼면서, 몸을 메모용지처럼 그 자리에서 뽑아내 마구 주물러버리듯이 걷기 시작한다. 눈물로 젖은 얼굴은 엉망진창이었고, 목소리는 나오기 전부터 잠겼다. - 다와다 요코, 중에서

Review 2018.08.11

180406 제주도 3일차

게스트하우스에서 싸준 따뜻한 주먹밥 하나를 조식으로 챙겨 나왔다 날씨가 궂은 탓에 가파도행 배는 모두 결항이 되었다 서쪽 해안가를 버스 타고 쭉 돌아보기로 결정 바람이 매섭게 불고 이가 덜덜 떨리는 날씨였지만 사진 속 바다는 참 평화로운 색깔 어딘가 제주스러움이 부족해서 아쉬운 살롱드라방 알록달록 귀여운 더럭초등학교 들러보기를 잘했다 택시타고 버스타고 어렵게 찾아간 이호테우해변 노을 즈음의 애월 바다 너무 심심해서 젓갈 접시를 다 비워버린 전복죽

Travel 2018.04.07

180405 제주도 2일차

2일차 아침 조식 생전 처음 해본 계란후라이 + 토스트에는 딸기잼도 땅콩버터도 아닌 버터가 제맛 비가 오는 바람에 절경을 마음껏 느끼지 못해 아쉬웠던 외돌개 무척 깨끗하고 깔끔했던 예쁜 게스트하우스 게스트하우스 앞 청보리밭을 지나 해안도로 따라서 쭉 걷기 걷다가 출출해서 케일 샐러드 예쁜 사진 많이 건진 송악산 둘레길 용머리해안 유채꽃밭 썩은다리오름에 올라서 보는 풍경 물색이 가장 예뻤던 색달해수욕장 가성비 갑 편의점카페라떼 1인분 생선구이정식깨끗이 다 먹고 나서 고등어 칼로리 찾아보고 우울해졌다

Travel 2018.04.07

180404 제주도 1일차

제주도는 길가에 여기저기 막 감귤 열려 있고 그런 거 너무 좋다 😶 유동커피에서 시그니처 메뉴라고 추천받아서 시켜버린 성산동 커피 역시나 난 달달한 커피는 안 맞는 걸로 (중간에 버스 3번이나 탄) 올레길6코스 걷기 이게 올레길 초보자코스라는데 여행 첫날부터 무릎이 너덜너덜해지는 기분 남은 인생 어떡하지 ㅎㅎ 천혜향 나무 실제로 보니 몹시 귀엽다! 키는 작은 주제에 큼직한 천혜향 주렁주렁 매달고있기는 초록초록한 나무 정원이 다한 테라로사 서귀포점 검은 모래의 쇠소깍해변을 지나 오묘한 물색의 쇠소깍까지 낮은 돌담의 귀여운 제주 집들 수요미식회에 나온 서귀포 전복뚝배기집 게하 근처 귀여운 로타리과자점 1일차 숙소였던 미도호스텔 도착숙소 자체는 나쁘지 않았으나 방이 화장실 바로 옆이라 밤에 시끄러웠던 것이 단..

Travel 2018.04.04

리틀포레스트

도시 밖에 돌아갈 곳이 있는 사람의 여유, 그걸 부러워해야 한다는 노골적인 권유. 지쳐있던 나에게는 위로가 아닌 상대적 박탈감을 준다. 킨포크 페이지를 넘기면서 느끼곤 하는 헛헛함. 지나치게 욕심 부린 듯한 그림같이 예쁜 장면들. 혜원의 여유는 내게 가장 비현실적인 모습이었다. 정성껏 꾸며진 카페, 소박하거나 화려한 골목길들, 평일 연차를 쓰고 누려보는 여유, 한강 밤 산책. 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란 나로서는 이런 것들이 안식처이다. 그런 위로에 기대어 살아가는 것도 충분히 괜찮다. 괜찮아야만 하고.

Review 2018.03.13

[노블레스 피쳐기사] 2018 알쓸신잡

[Outlook2018] 2018 알쓸신잡 2018년은 거대한 변화의 물결을 맞이하는 시기다. 인류가 원자 단위로 흩어지고 1인 가구는 현상을 넘어 보편적 형태로 자리 잡을 것이다. 시장과 문화도 그에 따라 재편될 가능성이 크다. 세계가 모처럼 황금시대에 진입할 것이란 예측도 있다. 첨단 기술과 IT, 인공지능과 가상현실이 호황을 주도할 것이다. 여기에 요동치는 유럽과 남미의 정세도 눈여겨봐야 할 요소다. 은 이 밖에 사회 각 분야 전문가들의 예측도 들어봤다. 지난해보다 올해 더욱 기대되는 인물들도 만났다. 이러한 예측과 관심은 지평선에서 다가오는 흐름에 흐릿하게나마 돋보기를 들이대는 것이다. 올해 벌어질, 당신이 놓치지 말아야 할 이슈에 대해 말한다. 2018년 한국 경제 순항할까? 2018년 새해에 ..

Diary 2018.03.01

180223

최근 이어지는 미투 선언들을 보면 사람은 성악설이나 성선설이라기보다 역시 그냥 본능적인 존재로서 타고난다는 생각이 든다. 본능을 제어할 수 있도록 교육을 받고 사고의 틀을 바꾸고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사회적 장치와 제도에 억제될 뿐. 그래서 장치가 해이해지는 구조(규율을 따르지 않아도 될 권력이 주어지는 교수나 업계의 절대적 원로)적 자유 속에서 다른 사람을 해치고 상처입혀도 자신의 쾌락을 채울 수 있는 이기적 본능을 자유로이 수행하게 되는 것이다. 나에게도 내 몸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유. 최대의 쾌락을 좇을 수 있는 자유. 마음껏 먹을 수 있는 자유. 마음껏 다른 사람에게 화내고 상처줄 수 있는 자유를 억제하는 장치가 반드시 필요하다. 자율적인 자기 규제에 대해 본능은 거의 매순간 승리하게 되어있는..

Diary 2018.02.24

기사단장 죽이기

- 전화를 끊고 세면대로 가서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내 얼굴이 비치고 있었다. 나 자신의 얼굴을 정면에서 똑바로 쳐다보는 건 오랜만이었다. 거울에 비친 나는 그저 물리적인 반사일 뿐이라고 그녀는 말했다. 하지만 그곳에 비친 내 얼굴은 어디선가 둘로 갈라져 떨어져나간 내 가상의 분신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거기 있는 것은 내가 선택하지 않은 나였다. 물리적인 반사조차 아니었다. - 이튿날 다섯시 반에 절로 눈이 떠졌다. 일요일 아침이다. 주위는 아직 캄캄했다. 부엌에서 간단히 아침을 먹은 뒤 옷을 갈아입고 작업실로 갔다. 동쪽 하늘이 희붐하게 밝아와 불을 끄고 창문을 활짝 열어 차갑고 신선한 아침공기를 맞아들였다. 그리고 새 캔버스를 꺼내 이젤에 얹었다. 창밖에서 새소리가 들렸다. 밤사이 내린 비로 주위 ..

Review 2017.12.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