앓고 난 뒤 수척해진 얼굴로 맞이하는 새벽, 땀과 소변과 열로 독소를 몽땅 비워내 가벼워진 몸을 느끼는 것은 나쁘지 않다. 새로 살 기운을 담기 위해 빈 항아리처럼 몸을 내놓고 앉아있는 일. 헛헛해진 속을 비집고 솟아오르는 허기와 건강을 돌보겠다는 다짐, 자신에게 고정되어 있던 시선을 창 밖으로 돌릴 수 있을만큼 넓어진 마음. 아무것도 가진 게 없어 평화로운 얼굴. 이 모든 것이 '새것'을 데려다준다.
실컷 아프고 난 당신이 파리해진 새 얼굴과 막 태어난 '작은 의욕'을 가지고 창밖을 내다볼 때 산다는 것은 '의지를 갖고' 산다는 것임을 깨닫는다. 아프다는 것은 이겨내야 할 것이 아니라 지혜롭게 겪다, 보내야 하는 것이다. 그다음 새로워지는 것은 선물 같은 일.
그러나 누구도, 너무 많이는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 박연준 산문집, <소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