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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단장 죽이기

- 전화를 끊고 세면대로 가서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내 얼굴이 비치고 있었다. 나 자신의 얼굴을 정면에서 똑바로 쳐다보는 건 오랜만이었다. 거울에 비친 나는 그저 물리적인 반사일 뿐이라고 그녀는 말했다. 하지만 그곳에 비친 내 얼굴은 어디선가 둘로 갈라져 떨어져나간 내 가상의 분신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거기 있는 것은 내가 선택하지 않은 나였다. 물리적인 반사조차 아니었다. - 이튿날 다섯시 반에 절로 눈이 떠졌다. 일요일 아침이다. 주위는 아직 캄캄했다. 부엌에서 간단히 아침을 먹은 뒤 옷을 갈아입고 작업실로 갔다. 동쪽 하늘이 희붐하게 밝아와 불을 끄고 창문을 활짝 열어 차갑고 신선한 아침공기를 맞아들였다. 그리고 새 캔버스를 꺼내 이젤에 얹었다. 창밖에서 새소리가 들렸다. 밤사이 내린 비로 주위 ..

Review 2017.12.31

경복궁역 코피티암

미술관에서 마음에 드는 전시를 보고, 명동에 가서 여러 벌의 옷과 목도리를 샀다. 광화문으로 돌아가서 하루키의 책을 사고 서촌 카페까지 이십여분을 걸었다. 어제 천둥 번개가 치고 비가 많이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오늘은 하루 종일 날씨가 춥지 않다. 몇 년만에 먹어보는 카야토스트. 블루베리 홍차. 마음이 차분해지는 어두운 실내. 비 그친 일요일 저녁의 카페.

Photos 2017.11.26

결핍을 섬기는 자세로

- 나의 세계를 지배하는 정서는 우울함이다. 내 안에는 언제나 결핍과 공허함이 자리잡고 있다. 내가 비참하고 불행해지는 순간은 내가 불행하고 결핍되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려 들지 않을 때 발생한다. - 나는 충족감과 행복을 느낄 때 그 그림자 속에 결핍과 좌절감이 가리워져 있음을 인지할 것이다. 기분 좋은 것과 통제할 수 있는 것과 성공의 순간들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불쾌한 것과 통제할 수 없는 것과 실패의 연속으로 둘러싸인 나날들 속에서 기분 좋은 것과 통제 가능한 것과 성공의 섬광을 가끔씩 느끼는 순간들로부터 응원을 받으면서 살아갈 것이다.

Diary 2017.11.20

불안에 대하여

- 영화를 보면 선한 사람이 악행을 저지르거나 곤경에 빠지는 대부분의 이유는 지켜야할 무언가가 있기 때문이다. 그럼 차라리 지킬 것이 없는 삶을 사는 것이 행복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종종 했었다. - 소중하고 중요한 무언가를 얻으면 동시에 잃게 될까봐 늘 불안한 마음을 품게 된다. 불안의 크기는 위기상황 혹은 위기를 상기시키는 상황과 맞닥뜨리면서 가끔씩 커졌다가 작아졌다가 한다. 중요한 건 무리해서는 안 된다는 것. 완벽한 사람인척 연기하거나 눈 앞의 작은 균열을 감추기 위해 거짓말을 하는 건 빈대 잡으려고 초가삼간 태우는 꼴이다. 내 판단과 의사결정에 따라 실행한 모든 행동에는 책임이 따른다. 책임지지 못할 상황일랑 애초에 초래하지 말 것이고 의지가 부족하여 경솔한 판단을 해버렸다면 반성하고 교훈으로 ..

Diary 2017.10.02

171002

나에게 있어 좋은 카페의 기준으로 커피 맛은 사실 부차적인 것이다. 우선순위는 그 곳이 자연스럽게 시선을 둘 수 있는 곳인가, 특히 카페 안 사람들의 시선이 부담스럽지 않게 교차되는 장소인가 하는 점이다. 그런 부분에서 스타벅스 신사역점은 별로이고 확실히 가로수길점이 낫다. 테이블이 빽빽한 카페는 시끄럽기도 하거니와 어디를 보든 다른 사람이 시선에 부짖히기 때문에 구속감을 느끼게 된다. 크랜베리치킨 샌드위치와 디카페인 아메리카노는 맛있었지만 속이 턱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Diary 2017.10.02

170930

담배 술 도박 야식 잘못된 습관 같은 것들, 특히 즉각적으로 감각적인 쾌락 보상을 주는 행동들이 한번 뇌 신경 회로에 패턴화된 경로로 자리잡으면, 즉 습관으로 몸에 배어버리면 뇌를 해부하여 신경회로를 뜯어 고치지 않는 이상(개발된 기술도 없거니와) 완치는 불가능하다. 그냥 참아야 할 뿐이다. 트리거를 파악하고 인지하고 있다가 나쁜 습관이 촉발될만한 상황에 마주하게되면 굳은 의지를 발휘하여 대체 행동을 수행하는 것이 최선이다. 1. 트리거 2. 습관화된 패턴 3. 대체행동(유사한 보상효과를 주는)

Diary 2017.10.01

골목바이골목, 김종관

-내가 산책하는 조용한 골목 어딘가에서 누군가는 성장을 하고, 살고, 늙는다. 골목을 벗어나 큰길로 접어들며 세상을 넓히는 시절로 떠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다시 그 골목으로 돌아와 늙어가는 이들도 있다. 노인들은 어릴 때 처럼 자신의 세상을 골목 안으로 축소시킨다. 볕이 드는 자리에 의자를 두고 조용히 앉아 지나가는 산책자를 지켜본다. 노인과 골목을 뒤로 하고 산책자인 나는 이 작은 여행에서 더 넓은 항로를 꿈꾼다. 누군가가 성장을 하고, 살고, 늙는 타국 혹은 도시에서 아이와 노인을 만나고 그들을 기억한 채로 나의 골목으로 돌아오는 것을. 가까운 곳에서 낯섦을 찾고 먼 곳에서 익숙함을 찾는 여행을 끝내고 언젠가 내 자리로 돌아온다면 볕이 드는 자리에 책상을 두고 여행에서 가져온 좋은 문장들로 이야기..

Review 2017.09.15

170914

내일 오후 예약해 둔 병원에서 문자가 왔다. 편안한 오후 되세요, 라는 마지막 문장이 왠지 마음에 따뜻하게 가라앉는다. 그렇지. 죄책감 없는 편안한 일상으로 복귀해야지. 이번 주 월요일 수요일 붉게 달아오른 피곤한 얼굴을 드러내기 부끄러워 점심시간 도망치듯 회사를 빠져나왔다. 몇 정거장 떨어진 카페에 들어와 그나마 속을 다스려줄 수 있을만한 음식을 골랐다. 지금의 나는 GS25의 검은색 비닐봉지, 생크림과 단팥이 무겁게 들어간 빵의 냄새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속이 메스껍다. 이 부끄럽고 패배적인 기분을 도대체 언제까지 경험할 작정인걸까.

Diary 2017.09.14

2017 트렌드노트

-어떻게 들여다볼 것인가? 결론적으로 말하면 '있는 그대로' 보아야 한다. 시각의 변화, 관점의 변화라고도 할 수 있겠다.우선 용어부터 바꿔보자. '소비자', '고객', '국민'이 아니라 그냥 '사람들'이다. 사람들은 소비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 물건을 사는 고객과 경쟁사 물건을 사는 비고객으로 나뉘지 않는다. 시민이기 이전에 개인이며, 때에 따라 어떤 집단에 소속된 사람들이다. 어느 월요일 아침 9시에 편의점에 들러 별사이다를 사 마신 김씨를 이해하기 위해 '왜 달사이다를 사지 않고 별사이다를 샀는가?'를 붇는 것은 현명하지 않다. 마찬가지로 '왜 우유가 아닌 사이다를 샀는가?', '광고에 영향을 받았는가?', '다른 사람에게 별사이다를 추천할 의향이 있는가?'는 적절한 질문이 아니다. ..

Review 2017.08.12

170812

아침부터 몸도 마음도 천근만근이었던 토요일. 그래도 해야할 일이 있고 만나야할 사람이 있다. 아무렇지 않은 듯이 연기해보지만 뿜어져 나오는 악취를 감출 수는 없었을 것이다. 지배적이고 독단적인 성향 탓인지 나는 모든 상황이 예상과 통제 하에 돌아갈 수 있으리라는 삶의 태도를 버리지 못한다. 그동안 충분한 실패와 고통을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렇다. 한동안은 모든 일이 순조롭게 흘러가고, 군데군데 생겨나는 얼룩들은 위협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점차 겸손을 잃고 자만한다. 그러다 어느 날 예상치 못한 외부적 충격이 발생하면 내구성이 약한 나의 일상은 금세 휘청거린다. 중심을 잡아보려 애쓰지만 파동은 걷잡을 수 없다. 결국 내가 쌓아온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린다. 그리고 다시 잘못된 기대, 헛된 노력, ..

Diary 2017.08.12

170625

1. 일찍 잠드는 것은 건강한 몸과 정신과 행복한 삶을 위해 생각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심지어 저녁 이후 내 모든 선택과 행동은 일찍 잠들기를 실현하기 위한 전제 요소들임을 염두에 두고 행할 필요가 있다. 지난주 금,토,일 그리고 이번주 토요일은 그런 포인트에서 반성할 것 2. 서로에 대한 마음의 무게가 맞지 않는 사람과 계속해서 만나는 것은 나에게도 그 사람에게도 시간적, 감정적 낭비다. 빠르고 깨끗하게 정리할 것

Diary 2017.06.20

박선아, 20킬로그램의 삶

am 09:15 마음 한구석에는 창고 같은 방이 있는 것 같다. 외로움, 상처, 우울, 걱정, 실수, 미움, 아픔 같은 것을 쌓아 올리는 곳. 무거운 것들을 채우다 보면 더는 아무것도 넣을 수 없는 때가 온다. 뜬금없이 눈물이 나거나, 잠이 오지 않아 뒤척인다면 비워낼 시간이 왔다는 신호다. 위로받고 싶지만, 그럴 땐 아무도 없다. 그 시간이 찾아오면 나는 나를 위로하기 위해 공항에 간다. 집으로 돌아가다가 걸음을 옮겨 공항철도를 타거나, 새벽에 무작정 나와 공항버스를 타기도 한다. 공항에 간다고 하면 "여행가?", "누가 떠나?", "아, 누군가 돌아오는구나!"라는 얘기를 들을 것이 빤하므로 말을 아낀다. 말없이 노트와 펜 그리고 묵직한 마음을 들어 가방에 넣는다. pm 12:10공항에 도착하면 주로 ..

Review 2017.06.18

170605

AOA 민아가 160/43 이라는데.. 물론 이 아이는 연예인치고도 마른 케이스인 것 같지만 어쨌든 말랐다 싶은 연옌이면 보통 저 정도 몸무게이겠구나 싶다. 포인트는 내가 160에 46 찍으면 너무 빈티나보일까 걱정했던 게 정말 의미없는 걱정이었다는 것 ㅋㅋㅋㅋ 45 밑으로는 내려가줘야 연예인 느낌이 나는가보다. 아무튼 46 찍고 쌍꺼풀도 찝고 피부 관리도 부지런히 하여 나를 우연히 본 ㅈㄴㅊ과 ㄱㅆㄴ이 지들이 한 짓을 후회하도록 만들어줄 것이야 그런 의미에서 정신 똑띠 차리고 내일부터 다이어트 모드로 재돌입하겠읍니다

Diary 2017.06.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