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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초여행

- 속초에 가서 포켓몬 게임을 하고 온 건 사실이다. 무려 80마리의 포켓몬을 잡았으니, 그다지 열심히 게임하러 갔다온 건 아니라고 말하기에 스스로도 뭔가 모순이 느껴진다. 하지만 속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누가 뭐래도 바다이다. 파아란 동해바다의 색감, 공기가 머금고 있는 바다의 짠내, 신선한 전복 뚝배기와 새콤달콤한 물회에 막걸리 한 사발. 속초는 그런 걸 만나기 위해 가는 곳이다. 포켓몬에 정신 팔리고 찜통 더위에 지쳐 바다를 더 많이 경험하고 오지 못한 게 아쉬운 한 여름의 속초 여행. 속초에서 먹은 것 영양이 듬뿍 들어간 전복뚝배기, 식어도 맛있었던 만석닭강정, 아바이마을에서 먹은 아바이순대와 오징어순대, 호텔 근처 편의점 장보기로 해결한 간단한 야식과 가벼운 조식. 돌아오는 날 파미에스테이션에..

Travel 2016.08.08

꽤 괜찮은 토요일!

어젯밤 캔맥주를 마신 탓인지 깊이 잠들지 못하고 새벽에 눈을 떴다. 몸을 일으켜 스탠드를 켰다. 토요일 아침인데 굳이 억지로 자려고 노력할 필요가 있나 싶어서. 깎아두었던 아오리사과를 먹으며 이번주에 챙겨보지 못한 드라마를 보았다. 배를 채우고 드라마 한 편을 보고 나니 잠들 수 있을 것 같아서 다시 누웠다. 한두시간 짤막하게 잠이 들었다가 일어나니 여덟시였다. 여덟시는 토요일 아침 기상시간으로 아주 적합한 시간이다. 삶은 계란을 하나 까먹고 포도를 한 송이 씻어먹었다. 늑장부리다가는 나가기가 더 귀찮아질 것 같아 대충 위가 짧은 루즈핏 티셔츠와 디스트로이드진을 입고 집을 나왔다. 집 근처 치과에 걸어가서 스케일링을 받고, 버스를 타고 동대문 쇼핑몰로 향했다. 쿠폰으로 공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옷..

Diary 2016.08.06

제이슨본

역시 믿고 보는 본시리즈! 1,2,3편에 비하면 스토리도 액션신도 별로라는 혹평도 많지만 어쨌든 큰 기대없이 보러가서인지(회사에서 공짜로 보여줌) 만족스럽게 관람했다 또한 근래 본 액션영화중에 가장 매력있는 여성캐릭터들의 등장! 특히 헤더 리, 이 언니가 아주 매력 넘친다 *3* 뛰어난 업무 실력과 능수능란한 커뮤니케이션 스킬! 상사의 상사를 적절히 이용하여 원하는 프로젝트를 겟팅! 꼰대에다 뒤까지 구린 직속 상사의 뒤통수를 아주 통렬하게 가격하는!!! 이 언니랑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고 싶다...

Review 2016.07.28

오사카, 아라시야마, 교토

혼자라서 더 좋았던 첫 일본여행 [1일차, 오사카] 딱 일본의 명동도톤보리, 신사이바시, 난바에서 느낀 건첫 여행날의 설렘 딱 그정도 외의 감흥은 없었다 [2일차, 아라시야마] 이번 일본여행에서 가장 좋았던 곳애니메이션을 통해 봐왔던 익숙한 일본 동네 느낌!청량하고 고즈넉하면서, 아름답고 조용한 마을 [2일차 밤, 교토] 하모강을 따라 늘어선 카페와 레스토랑들대학가와 종로의 중간쯤 되는 느낌, 밝고 왁자지껄한 분위기 [3일차, 교토] 니조성, 은각사, 청수사, 기온거리, 교토 번화가 구경한국에서 사간 큰 밀짚보자를 깊숙이 눌러쓰고내리쬐는 더위에 맞서 선스프레이 2통을 다 써가면서 열심히 돌아다녔다 p.s.혼자 떠난 여행의 좋은 점! ① 내마음대로 언제든지 여행경로와 스케줄을 바꿀 수 있다.돌아다니다 힘들..

Travel 2016.07.16

환상의 빛

1_ 네가 무슨 일을 겪었던 간에 그건 너의 잘못이 아니다. 남겨진 자의 윤리는 최선을 다해 흔들리지 않고 살아내는 것. 2_ 원작소설을 읽으면서 머리 속에 그렸던 장면들과 영화 속 장면들 간에 다소 분위기가 다른 부분들이 있었다. 개인적으로 환상의 빛은 소설>영화인데, 아무래도 소설은 여성 화자의 입장에 조금 더 감정을 이입하여 이야기를 읽어나갈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요하게 이어지는 사진적인 풍경들과, 에스미 마키코의 리즈 시절을 감상하는 것 만으로도 영화관에서 감상할 가치가 충분한 영화. 3_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공기인형'의 이후로 이어지는 고레에다히로카즈 감독의 밝고 희망적인 최근작들이 훨씬 좋다!

Review 2016.07.10

160521 토요일

그 오빠가 나를 자꾸 좋아해 그래서 내가 너무 힘들다 라고 이야기하는 여자애의 목소리를 듣고 있었다. 5월의 마지막주 일요일 아침이었다. 7시도 채 되지 않은 이른 시간이었고 남자애는 무료해 죽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질투인지 무관심인지 그건 분명하지 않지만 한가지 분명하게 캐치할 수 있었던 건 무료함의 표정이었다. 나는 그 애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더 슬퍼졌다. 오늘은 새 소리를 들으면서 일어났다. 일찍 일어날 필요가 없었는데도 창문을 열어놓은 바람에 일찍 일어나 버렸다. 여러가지 안 좋은 사건들이 조각조각 이어져서 나를 힘들고 우울한 기분에 휩싸이게 했다. 토요일인데 일요일인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로 나는 우울하다. 여자애의 이야기가 나를 슬프게 한 건 내가 돌이킬 수 없는 순간들을, 시대를, 추..

Diary 2016.05.21

황인찬, 실존하는 기쁨

그는 자꾸 내 연인처럼 군다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래서 그와 팔짱을 끼고 머리를 맞대고 가만히 오래도록 앉아 있었다 아는 사람을 보았지만 못 본 체했다 그래야 할 것 같았지만 확신은 없다 아파트 단지의 밤 가정의 빛들이 켜지고 그것이 물가에 비치고 있다 나무의 그림자가 검게 타들어 가는데 이제 시간이 늦었다고 그가 말한다 그는 자꾸 내 연인 같다 다음에 꼭 보자고 한다 나는 말없이 그냥 앉아 있었고 어두운 물은 출렁이는 금속 같다 손을 담그면 다시는 꺼낼 수 없을 것 같다

Review 2016.05.15

황인찬, 종로사가

앞으로는 우리 자주 걸을까요 너는 다정하게 말했지 하지만 나는 네 마음을 안다 걷다가 걷다가 걷고 떠 갇다가 우리가 걷고 지쳐 버리면, 지쳐서 주저앉으면, 주저앉은 채 담배에 불을 붙이면, 우리는 서로의 눈에 담긴 것을 보고, 보았다고 믿어 버리고, 믿는 김에 신앙을 갖게 되고, 우리의 신앙이 깊어질수록 우리는 깊은 곳에서 빠져나올 수 없게 되겟지 우리는 이 거리를 끝없이 헤매게 될 거야 저것을 빛이라고 불러도 좋다고 너는 말할 거다 저것을 사람이라고 불러도 좋다고 너는 말할 거고 그러면 나는 그것을 빛이라 부르고 사람이라 믿으며 그것들을 하염없이 부르고 이 거리에 오직 두 사람만 있다는 것, 영원한 행인인 두 사람이 오래된 거리를 걷는다는 것, 오래된 소설 같고 흔한 영화 같은, 우리는 그러한 낡은 것..

Review 2016.05.14

5월 14일

어쩔 수 없는 순간들이 있다. 머리 속에 그려두었던 일이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고 제 멋대로 흐트러지고 뭉뚱그려질 때. 내가 나보다 빛나는 타인과 비교되어 초라하고 볼품 없게 느껴질 때. 그런 순간들이 내 자신을 온전히 삼켜버리지 않도록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깊은 호수 같은 마음으로 파동이 표면 위에서 고요하게 멎을 수 있도록. 내가 기억하고 기록하는 나 자신의 인생에 있어서만큼은, 내가 가장 빛나는 주인공이 될 수 있도록.

Diary 2016.05.14

제발 조용히 좀 해요

"우린 나갈 때...... 우린 벽장에서 코트도 꺼내지 않았어요. 몇 분이면 돌아올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우리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아니 내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어요. 왜 갔는지도 모르겠고. 충동이었어요. 그 말밖엔 할 수가 없어요. 그릇된 충동이었지요." 그녀가 잠시 말을 멈췄다. "그날 밤 일은 내 잘못이었어요. 미안해요, 그런 일을 해서는 안 되는데. 나도 알고 있어요." "맙소사." 그 말이 그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그렇지만 당신은 언제나 그런 식이었어, 매리언!" 그리고 그 즉시 그는 자기가 새롭고도 의미심장한 진실 하나를 입 밖에 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레이먼드 카버, '제발 조용히 좀 해요' 중에서

Review 2016.05.03

오늘 일기

마음이 싱숭생숭할 때는 일기를 써야 한다. 마음 속에 엉켜있는 생각과 감정들을 하나씩 풀어서 가지런히 정돈해 두고 하나 하나 그 정체를 살펴보아야 한다. 마음을 정리하지 않은 채로 살다보면 마음 속의 혼돈이 한 구석에 웅크린채 자리잡고 있다가 슬금슬금 커져서 내 마음과 내 정체성을 온통 잡아먹고 말지 모른다. 내가 혐오하는 몇몇 사람들(특히 30대 이상의 어른들)은 어쩌면 마음 정리를 하는 법을 몰랐기 때문에 그렇게 악독하게 변해버린 것일지 모른다. 그들 마음 속의 혼돈이 그들 자신을 통째로 잡아먹는 것을 막지 못해서 온통 그을리고 새까만 마음으로 뭐가 문제인지도 모르는 채 살아가는 사람이 되고 만 것이다.

Diary 2016.04.29

반죽의 형상

늦은 밤 택시를 타고 귀가하던 어느 날 N은 집 뒤편 길에서 내리는 바람에 한 시간 동안이나 집을 찾지 못해 헤매다녔다고 했다. 그 집에 십년 째 살고있었지만 뒤편 길로는 다니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 얘기를 들었을 때 나는 정말 걱정이 되었다. 만약 어느날 잘못해서 자기 존재의 뒤편에서 내리게 된다면 N은 자신을 되찾는 데 무척 오래 걸릴 것이다. 그러디 부디 잘 지내 N. 문득 나도 언젠가 똑같은 말을 한 적이 있는 듯한 혼란이 왔다. 내가 휴가를 끝내고 N을 딘시 만나는 일은 없을 것이다. N의 편에서는 건망증 때문에, 내 편에서는...... 내 편에서는 우연히라도 N을 만나길 원하지 않는다. 다르 사람이 N의 소식을 묻거나 전해줄 수도 있겠지만 그것마저 없었으면 하는 것이 나의 바람이다. ..

Review 2016.04.23

가을이 오면

일어나보려고 애썼지만 그녀는 일어나지 못했다. 남자가 그녀를 업고 가까운 정형외과로 데려다주었다. 부은 발목에 침을 맞으면서 그녀는 날카로운 비명을 질렀다. 비명을 지르고 나서야 그녀는 오래전부터 몹시 비명이 지르고 싶었다는 것을 알았다. 좀더 일찍, 함정에 빠지듯 시장통 한가운데 푸욱 무너졌을 때 질렀으면 좋았을 비명이었다. 그녀가 치료를 끝내고 나왔을 때 남자는 가고 없었다. 접수대에서 계산을 하려다 그녀는 지갑을 잃어버렸다는 것을, 한 달 반여의 수고비가 한순간에 사라져버렸다는 것을 알았다. 앎이나 깨달음은 늘 그렇게, 한발짝 늦게 그녀를 찾아왔다. 똑같은 거리가 등하교 때마다 오분 가량 차이나듯, 그녀긴 아무리 아등바등 따라잡으려 해도 삶과 그녀의 박자도 그렇게 어긋났다. 권여선, 가을이 오면 중에서

Review 2016.04.23

미야모토 테루, 박쥐

란도는 그렇게 말하고 여자애와 제방 쪽으로 걸어가 철사 다리를 올라 건너편으로 사라졌다. 제방 위에 섰을 때 여자애의 스커트가 바람에 걷어 올려졌다. 내 눈을 의식하며 서둘러 양손으로 누르던 여자애의 동작이 언제까지고 마음에 남았다. 나는 전봇대에 기대어 두 사람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어느새 날이 기울고 집들의 그림자로 골목이 어두워지기 시작해도 여자애와 란도는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내 가방을 땅바닥에 놓고 그 위에 앉아 무릎을 껴안았다. 란도의 가방을 열었더니 안쪽에서, 가늘고 긴 철판을 그라인더로 깎고 며칠이나 숫돌에 갈아서 손수 만든 단도가 들어있었다. 손잡이 부분에는 하얀 테이프가 몇 겹으로 감겨있었다. 칼집은 없고 칼만 있었다. 직접 만든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 가라..

Review 2016.04.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