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396

메켈 정비공의 부탁

너는 누비아 탑에서부터 해안가의 염전 지대를 따라 천천히 걸음을 옮겨. 해안 쪽으로 눈을 돌리면 둔덕처럼 쌓인 흰색의 소금 결정과 붉은 지붕의 풍차들이 보이지. 바람에 함유된 소금기가 네 몸 이곳저곳에 달라붙어. 너는 멈춰 서서 소금 결정이 쌓인 바다를 오래도록 바라봐. 이따금 코끝으로 스며드는 비린내로 인해 구역질이 난다는 것 이외에, 너는 아무런 감상도 느끼지 않아. 눈앞에 보이는 풍경이 감탄스럽지 않다기보다,네가 느끼는 감정은 네가 하는 일에서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야. 중요한 것은 네가 무엇을 보는지니까. 오래도록 바라보는 것, 귀를 기울이고 냄새를 맡는 것, 음식을 씹고 음미하는 것. 그렇게 감각을 통해 기억을 만들어내는 것. 그런 것들은 너의 10년을 구성하고 있는 중요한 요소야. 세부적인 사항..

Review 2020.04.29

계시, 꽃

그들 사이에서 자기가 해야 할 일을 하느라 요한은 울기도 웃기도 하고 싸우기도 했지만 원망하지는 않았다. 잘못은 사람이 아닌 시간에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날의 '그 순간'과 매 순간 이별함으로써 요한은 자기의 시간을 뉘우쳤고 뉘우침으로써 시간의 근본적인 슬픔을 깨닫고 있었다. 깨달으며 살고 있었다. 시간의 근본적인 슬픔 속에서, '사람'은 비로소 요한의 목적이 된다. 사람을 '그 순간'의 일부로 여기지 않는다면, 사람은 요한의 경험을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사람을 목적으로 여기는 것은 도덕이고 '그 순간'을 향하는 것은 예술이다. 시간의 근본적인 슬픔 속에서만, 즉 '그 순간'과의 관계 속에서만 도덕을 아름다움과 동일한 것으로서 획득할 수가 있음을, 사람들 사이에서, 요한은 절감하고 있었다. - ..

Review 2020.04.29

내가 원하는 것을 나도 모를 때

알랭 드 보통의 『불안』은 오늘날 많은 사람이 겪는 불안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우리가 현재의 모습이 아닌 다른 모습일 수도 있다는 느낌, 우리가 동등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우리보다 나은 모습을 보일 때 받는 그 느낌, 이것이야말로 불안의 원천이다. 과거에 비해 상당히 풍족한 삶을 살고 있는데도 불안이 점점 커지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지금 가진 것과 현재의 나에 만족하지 말라고, 미래를 생각하고 더 나은 사람이 되라고, 사회 곳곳에서 끊임없이 채찍질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마 여러분도 다른 사람의 SNS를 보며 부러움을 느끼거나 홀로 뒤처진 것 같은 우울한 기분을 느껴보셨을 거예요. 굳이 비교할 필요가 없고 걱정할 이유가 없는데도 계속 타인을 의식하고 비교하면서 끊임없이 불안을 키우는 거지요. 사실 불..

Review 2020.04.21

아치디에서

그녀는 말했다. 무거운 짐을 짊어질수록 박수 소리가 커진다는 것을 알아서, 무리를 해서, 열심히 해서, 착하게 굴어서, 그렇게 조그마한 칭찬이라도 받아서 사랑받는다는 느낌을 경험하고 싶었다고. 타인이 자신에게 무언가를 해줄 거라는 기대는 하나씩 버렸다고. 다른 사람에게 기대지 말자, 어린 시절부터 그렇게 다짐하며 살아왔다고. 그녀에게 삶이란 오로지 자기 스스로 감당해야 하는 것이었다. - 최은영, 중에서

Review 2020.04.21

모래로 지은 집

-내 말에 모래는 고개를 돌렸다. 그 말이 모래를 어떻게 아프게 할지 나는 알았다. 나는 고의로 그 말을 했다. 너처럼 부족함 없이 자란 애가 우리들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느냐고, 네가 아무리 사려 깊은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 있다고 말하고 싶었다. 네가 뭘 알아, 네가 뭘. 그건 마음이 구겨져 있는 사람 특유의 과시였다. -그날 공무와 나는 둘이 만났다. 명동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밖으로 나오니 좋은 날씨가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서 계속 걸었다. 종로3가에 줄을 지어 있던 가위바위보 게임기에서 돈을 잃기도 하고, 인사동을 지나면서 과일주스를 사 먹기도 했다. “이제 어디로 갈까?” 공무의 물음에 나는 경복궁을 지나 부암동 쪽으로 가보자고 말했다. 그렇게 걸으면서도 하나도 피곤..

Review 2020.04.18

삼체

“길고 긴 과학 발전사에서 물리학자들이 가속기로 양성자를 몇 개나 충돌시켰겠습니까? 그리고 중성자와 전자는 또 얼마나 충돌시켰겠습니까? 1억 번은 넘을 것입니다. 한 번 충돌할 때마다 그 미시 우주 속의 지능이나 문명은 멸망했을 것입니다. 사실 대자연 속에서도 미시 우주의 멸망은 시시각각 일어납니다. 예를 들어 양성자와 중성자의 붕괴 그리고 대기층에 들어오는 고에너지 우주선(宇宙線)은 1000만 개 이상의 미시 우주를 멸망시킬 것입니다……. 이것 때문에 감상적이 된 것은 아니시죠?” - 류츠신, 중에서

Review 2020.04.18

터널을 지날 때

영화평론가 이동진 블로그 글 中 그리스 신화에서 저승까지 찾아가 아내 에우뤼디케를 구해내는데 성공한 오르페우스에겐 반드시 지켜야 할 금기가 주어집니다. 그건 저승을 다 빠져나갈 때까지 절대로 뒤를 돌아봐서는 안된다는 조건이지요. 그러나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 속 설명에 따르면 "그녀를 보고 싶은 마음에, 그녀가 포기했을까 두려움에 사로잡혀" 그는 그만 뒤를 돌아보고 맙니다. 이로 인해 아내를 데려오는 인을 결국 마지막 순간에 수포로 돌아가고 말지요. 구약 성서에서 롯의 아내도 그랬습니다. 죄악의 도시 소돔과 고모라가 불로 심판 받을 때 이를 간신히 피해 떠나가다가 신의 명령을 어기고 뒤를 돌아보는 바람에 소금 기둥이 되었으니까요. 금기를 깨고 뒤돌아보았다가 돌이나 소금기둥이 되는 이야기는 전세계 도..

Review 2020.04.14

0 이하의 날들

또 한편, 내가 소설을 읽고 쓰기 시작한 근원에 하루키가 있다는 것은 내가 그 이전의 문학의 풍경이 어땠는지를 모른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건 내가 문학이 살아 있던 시기를 목격한 적이 없다는 뜻이 된다. 나에게 문학이란 언제 철거될지 모르는 낡은 동상 혹은 시체 안치소 한구석 아무도 찾아가지 않는 신원미상의 시체였다. 그런데 일본의 평론가 카라타니 코오진에 따르면 과거 문학은 세계 전체에 대한 문제의식을 떠밭음으로써 한갓 소설나부랭이에서 그 이상의 것으로 도약을 이루었다고 한다. 그때 사람들은 문학을 통해 현실에 직접적인 변화를 이루어낼 수 있다고 믿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시대는 지나갔다. 어쩌면 그래서 나를 포함한 사람들이 소설을 잘 읽지 않는 것이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요즘 쓰이는 소설들에서 느..

Review 2020.04.10

책을 읽는 습관을 가지고 싶다면 먼저 책상부터 마련하라

책을 읽는 습관을 가지고 싶다면 먼저 책상부터 마련하라 아침에 기상 후 잠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바로 세면대로 가는 사람 A가 있는가 하면, 침대를 차마 벗어나지 못하고 뭉그적대다 그러고도 일어서지 못하고 침대에 엉덩이를 걸친 채 멍을 때리다 겨우 세면대로 가는 사람 B도 있다. 옳고 그름의 문제는 아니고 다른 스타일이라는 시각에서 이야기하고 싶다. 이런 두 유형의 사람을 가정해 보면 이들의 행동 양식에 따라 (개인의 취향과 별개로) 두 사람의 방을 채우는 사물이 달라질 수 있다. A는 침대 옆 러그의 필요성은 생각할 필요조차 없다. B는 늘 그렇듯 침대에 걸터앉아 멍 때리던 어느 겨울 아침에 생각할 것이다. '아, 발 시려.' 그러고는 아마 출근길에 '침대 러그'를 검색할 수도 있을 테다. 아주 단순화한..

Review 2020.03.24

구병모, 파과

그녀는 이 손톱을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을 것이다. 딱히 보여줄 사람이 없기도 하고. 혹시 모를 일이다. 시니어패스를 단말기에 대다가, 편의점에서 껌 한 통을 사기 위해 지갑을 뒤지고 지폐를 내밀다가, 그런 일상의 사소한 순간들 속에서 누군가들은 스쳐 지나가듯이 이 손톱을 보게 될 것이다. 그들은 손톱을 보고 바로 이어서 손톱 주인의 얼굴을 올려다보자마자 눈을 휘둥그레 뜰지도 모르지. 도저히 당신과 같은 나이의 사람에게 어울리는 장식이 아니라는 편견을 차마 입 밖으로 내지 못하고 다만 침묵하거나 헛기침하며 흘끔거리겠지. 그러나 이 순간 그녀는 깨지고 상하고 뒤틀린 자신의 손톱 위에 얹어놓은 이 작품이 마음에 든다. 무엇보다 그것은 진짜가 아니며 짧은 시간 빛나다 사라질 것이기에 더욱 그렇다. 사라진다. ..

Review 2020.02.29

요가 매트만큼의 세계

문득 난 요가를 진심으로 즐기지 못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누가 시켜서 한 일도 아닌데 잘해야 한다는 강박을 끌어안고 있었다. 시험 보는 수험생처럼 기초를 탄탄히 하고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으며 매사에 진지하고 치열해지는 것이다. 물론 그것은 그것대로 좋다. (열심히 하면 좋잖아요.) 하지만 무리한 목표 탓에 현재 누릴 수 있는 즐거움마저 놓치고 있었던 건 아닌지 의문이다. 요가가 주는 정신적 고양, 고요하고 단순한 세계, 자유로움, 가벼움, 넉넉함을 제대로 누리지 못했다. 그건 정말이지 손해 보는 짓이다. 즐기지 못하면 손해다.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무인양품의 디자인 철학은 “이것으로도 충분하다.”라고 한다. ‘이것이 좋다’를 내세우는 게 아니라 ‘이것으로 충분하다’고 말할 수 있는 자신감에 ..

Review 2019.12.14

나는 왜 무기력을 되풀이하는가

1. 라이너 풍크의 [서문] 中 현실에 대한 이런 시각과 인식은 포스트모던에 와서 현실은 생산, 창조, 제작된다는 생각으로 대체되었다. 창조된 현실을 기존 현실에 견주어 평가하라는 요구는 점점 외면당하고, 일부는 명백히 부인당하거나 의도적으로 무시당하기도 한다. 의도적 무시 현상은 모든 분야에서 관찰된다. 오락 산업이 만들어낸 인위적인 세계는 자연 체험보다 더 흥미롭고 스릴 넘친다. 전달받은 뉴스는 직접 탐구한 소식보다 더 신빙성이 있고, 오스트레일리아나 캐나다에 사는 어떤 사람과 인터넷을 통해 맺어진 관계가 이웃과의 관계보다 더 매력적이다. 어찌 보면 우리는 인간이 창조한 가상의 세계에서 더 편안함을 느낀다. 마약, 암시요법, 환각 물질에 끌리는 마음은 자신이 창조한 현실을 더 우대하는 사실로 설명이 ..

Review 2019.11.13

숨결이 바람될 때

229p 결국 이 시기에 내게 활기를 되찾아준 건 문학이었다. 너무나 불확실한 미래가 나를 무력하게 만들고 있었다. 돌아보는 곳마다 죽음의 그늘이 너무 짙어서 모든 행동이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나를 짓누르던 근심이 사라지고, 도저히 지나갈 수 없을 것 같던 불안감의 바다가 갈라지던 순간을 기억한다. 여느 때처럼 나는 통증을 느끼며 깨어났고, 아침을 먹은 다음엔 할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계속 나아갈 수 없어.’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에 대한 응답이 떠올랐다. 그건 내가 오래전 학부 시절 배웠던 사뮈엘 베케트의 구절이기도 했다. “그래도 계속 나아갈 거야.” 나는 침대에서 나와 한 걸음 앞으로 내딛고는 그 구절을 몇 번이고 반복했다. “나는 계속 나아갈 수 없어, 그래도 계속 나아갈 거야(I..

Review 2019.11.11

이 삶을 사랑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아침이 되자 존은 크루아상과 자신이 제일 즐겨 읽던 신문을 사러 나갔고, 나는 핸드폰을 쥐고 커다란 유리창 옆에 놓인 의자에 앉아 무릎을 감싸 안았다. 이 아름다운 나라에서 눈을 떠 바쁜 걸음으로 출근하는 행운을 누리는 파리지엔의 모습을 지켜보며 오래 된 음성 메시지를 재생했다. "그냥 걸었어." 엄마가 말했다. "네 목소리가 듣고 싶어서." - 니나 리그스, 중에서

Review 2019.11.10

시인 황인찬이 말하는 이유

GQ KOREA │ CULTURE 시인 황인찬이 말하는 이유 김종삼은 한국 시 문학사에서 가장 탁월하게 침묵과 여백을 다루는 시인이었다. 나는 시가 침묵해야 한가는 것을 그의 시를 통해 배웠다. 시가 침묵을 통해 보다 진실한 것을, 더욱 많은 것을 말할 수 있다는 것 역시 그의 시를 통해 배웠다. 이를테면 이런 시. 내용 없는 아름다움처럼// 가난한 아희에게 온/ 서양 나라에서 온/ 아름다운 크리스마스처럼// 어린 양들의 등성이에 반짝이는/ 진눈깨비처럼 - '북치는 소년' 이 시는 거의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다. 서술어는 커녕 주어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부사로만 성립하는 시. 다른 시인들의 시 가운데 이보다 말수 적은 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보다 침묵과 여백을 잘 다루는 시는 나로서는 선뜻 떠오르지 ..

Review 2019.10.17

사랑보다도 더 사랑한다는 말이 있다면

간단합니다. 당신 자신을 사랑하세요. 스스로에게 헌신하세요. 당신이 좋아하는 음식을 먹고 당신이 좋아하는 화가의 그림 앞에 오래 서 있으세요. 당신이 입고 싶은 옷을 사고 당신이 원하는 것으로 여행을 떠나세요. 그러니까 당신의 삶을 온전히 사는 거죠. 사랑을 위해 당신을 포기하지 마세요. 저도 그럴게요. 왜냐하면 우리는 절대로 예전의 자신으로 되돌아갈 수 없으니까요. 스스로의 삶을 살다 보면 우리는 훨씬 더 새롭고 멋진 사람이 될 거에요. 우리의 이마는 긍정으로 빛나고 눈은 다정함으로 넘칠 거에요. 스스로를 사랑할수록 우리는 점점 더 서로에게 빠져들 거에요. 그럴 거에요. 그러니까 당신 자신을 더 사랑하세요. /최갑수, '사랑보다도 더 사랑한다는 말이 있다면' 중에서

Review 2019.10.15

너는 나에게 상처를 줄 수 없다

- 마음의 상처에서 벗어나려면 '두번째 단계'에 오래 붙들려 있지 말아야 한다. 상처 입은 상황을 곱씹으며 이랬다면 어땠을까, 저랬다면 어땠을까 고민하고, 분한 마음을 어쩌지 못해 아무 데나 분풀이를 하는 것은 영원히 깨어날 수 없는 악몽 속에 자신을 가두는 것이나 다름없다. 고통스런 기억을 되감기해서 후련하고 당당한 기억으로 덮어버리고 싶겠지만, 당신도 익히 알고 있듯이 현실의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우리는 그저 고통스런 기억만 반복 재생할 수 있을 뿐이다. - 지금 이 순간을 어떤 마음으로 사느냐에 따라 인생은 고달픈 하루가 되기도 하고 꽤 괜찮은 하루가 되기도 한다. 우리는 오직 지금 이 순간의 삶에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는 인생을 어떻게 보낼지 결정을..

Review 2019.10.15

트위터 글

- "불행"이 인생의 기본값입니다. 그 누구도 완전히 행복할 수 없습니다. 웃고 있는 얼굴 뒤로 다들 기구한 사연들이 있다는거 아시죠? 어느 순간 나를 웃게 해주는 누군가가 있다면 다행입니다. - 거울에 비친 나 조차도 내 마음에 쏙 들지 않고 내 마음도 내 행동도 내 건강도 내 맘 같기 어렵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다른 사람에게 "말을 굳이 해야 되나?" "알아서 도와주지" 라고 생각하는 건, 거의 기적을 바라는 겁니다. - 우리를 밑바닥까지 내려가게 하는 사람 중 으뜸은 가족입니다. 보통 가족은 옆에 있으면 그립고 가족과 함께 있으면 혼자 있고 싶을 때가 더 많지요. 가족과 함께 있으면 대체로 짜증이 납니다. 그리고 당신은 누군가에게 그런 가족입니다. [출처] 도토리(@Time_with_mind) 님..

Review 2019.10.15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살고 있지만 사실은 삶이 버거운 너에게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살고 있지만 사실은 삶이 버겁고, 겉으로는 웃고 있지만 속으로는 늘 울고 있는, 옛 과거의 나쁜 기억에서 발목을 잡혀 매일매일 괴로워 신음하고 있는, 하루에도 몇 번씩 죽고 싶다고 생각하는 너에게. 그렇게 특별하다 믿었던 자신이 평범은 커녕 아예 무능력하다고 느끼는 순간이 있고,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설레이던 이성으로부터 지루함을 느끼는 순간이 있고, 분신인 듯 잘 맞던 친구로부터 정이 뚝 떨어지는 순간이 있고, 소름돋던 노래가 지겨워지는 순간이 있고, 자기가 사랑하는 모든 것이 그저 짝사랑에 불과하다고 느끼는 순간도 있다. 삶에 대한 욕망이나 야망 따위가 시들어 버리는 순간이 있는가 하면, 삶이 치명적일 정도로 무의미하게 다가오는 순간 또한 있다. 우리는 여지껏 느꼈던 평생 간직하고..

Review 2019.10.14

왜 우리는 ‘불닭볶음면’과 ‘디진다 돈까스’에 열광할까?

GQ KOREA │ Culture 게재 기사 글 / 강보라(칼럼니스트) 매운맛이 꼭 '빨간 맛'인 건 아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매운맛은 보통 너덧 가지 성분으로 나뉜다. 덴 듯 뜨거운 캡사이신(고추), 찌르르 알싸한 알리신(마늘), 코끝이 간질간질한 피페린(후추), 찡하고 상쾌한 시니그린(고추냉이), 전류가 흐른 것처럼 얼얼한 산쇼올(화자오) 등이 '매운맛'으로 통칭되는 서로 다른 자극을 책임진다. 한식의 매운 맛은 대부분 캡사이신에서 나온다. 캡사이신이 뇌신경을 자극하면 천연 진통제인 엔도르핀이 분비된다. 엔도르핀은 다시 중추 신경을 자극해 아드레날린 분비를 촉진한다. 통증을 상쇄하기 위해 몸이 그렇게 반응한다. 마라톤 선수가 '러너스 하이'에 의지해 고비를 넘기는 것과 비슷한 현상이다. 그리고 지구상..

Review 2019.10.07

나는 습관을 조금 바꾸기로 했다

사사키 후미오 지음 시작하며: 중요한 것은 재능이 아니라 지속이다 일러두기: 이 책을 읽는 방법 1. 의지력은 태어나면서부터 정해져 있는가? 퇴사 후, 게으른 생활을 즐기다 | 전혀 즐겁지 않은 자유시간 | 미니멀라이프 다음은 ‘습관’이다 | 왜 새해 다짐은 항상 실패할까? | 모든 것은 ‘보상’과 ‘벌칙’ | 오늘은 사과 1개, 내일은 사과 2개 | 일단 눈앞의 보상이 중요하다 | 나중에 받을 보상을 기다리지 못하는 이유 | 마시멜로를 먹을까? 말까? | 마시멜로 실험으로 미래를 예측할 수 있을까? | 의지력은 사용하면 줄어드나? | 왜 마지막 아이스크림을 참지 못했을까? | 의지력을 갉아먹는 건 ‘불안’이라는 감정 | 즐거운 기분이라면 더 오래 기다릴 수 있다 |..

Review 2019.10.04

지금 가장 멋진 사람들 - 유노윤호 편

GQ 코리아 '지금 가장 멋진 사람들' 글/ 조경아( 편집장) “유노윤호는 멈추지 않으며, 뭐든 끝까지, 최선을 다한다는 좌우명에 온 시간을 쏟았다.” 유노윤호가 다르게 보이는 요즘이다. ‘자다 일어나 춤을 춘다’는 이 웃긴 문장이 눈앞에서 펼쳐지는데 웃기기만 하지는 않고, 세상에서 가장 진지한 눈빛으로 인간에게 가장 해로운 벌레는 ‘대충’이라는 말을 하는데 손가락이 저절로 오그라들거나 실없는 조소가 새어나오지도 않는다. 그들이 다섯일 때, 동방신기는 대단했다. 멋있고 세련되었으며 힘 있고 무려 섹시했다. 그들의 해산은 떠들썩했다. 탈퇴, 재조합 등. 어떤 단어가 맞을지 모르나 그들의 분리는 이른바 해체였다. 흘러나오는 잡음들은 흉흉했고 나간 셋과 남은 둘의 차이는 들이댈 수 있는 모든 잣대에 고루 극명..

Review 2019.10.02

‘시발 비용’, ‘탕진잼’ 밀레니얼 세대의 소비 형태

GQ 코리아 게재 글 / 권민지(프리랜스 에디터) 내일이 없는 것처럼 돈을 펑펑 쓰는 밀레니얼 세대의 소비 행태를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무조건 혀를 찰 일도 아니다. 역설적이게도 미래에 대한 가장 현실적인 대안일 수 있다. 얼마 전 한 외국 트위터 계정에서 ‘시발 비용’이라고 큼지막하게 적힌 일러스트 하나를 봤다. 미국의 외교 전문지 의 기사로 꽤 강렬한 이미지 밑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왜 젊은 한국인들은 돈을 펑펑 쓰는 것을 좋아하는가(Why Young Koreans Love To Splurge).” 그러니까,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다면 발생하지 않았을 비용을 뜻하는 ‘시발 비용’, 낭비하는 재미를 일컫는 ‘탕진잼’ 등의 신조어를 소개하면서 한국 밀레니얼 세대들의 소비 습관을 취재한 기사였..

Review 2019.10.02

‘괜찮아’의 늪에 빠진 요즘 시대

GQ 코리아 게재 글 / 이다혜(작가, 기자) 혹독한 자기계발의 시대를 지나 이젠 뭐든 다 괜찮다는 위로가 서점가를 점령했다. 곰돌이 푸나 라이언의 얼굴을 한, 귀엽고 공허한 위로가 이 시대를 떠돌고 있다. 위로받는 데도 지쳤다. 괜찮아, 안 괜찮아, 괜찮아, 안 괜찮아. , , , , , …. ‘괜찮아’ 라는 말은 2018년 이후 갑자기 책 제목으로 큰 인기를 끄는 중이다. ‘어린이를 위한 용기의 심리학’이라는 부제의 라는 책도 있다. 를 위시해 , 등 위로는 영원히 이어질 듯 보인다. 당신은 책을 왜 읽는가. 이 ‘왜’가 한때는 자기계발이었다. 2017년에 25주년 에디션이 나온 스티븐 코비의 은 지금까지 꾸준히 팔리는 자기계발서다. 이 책은 제목으로도 유행을 불러왔는데, ‘습관’으로 검색하면 숱한 ..

Review 2019.10.02

북쪽 거실

고개를 들고 있으면 세계는 익숙하고, 사방의 사물과 얼굴들은 형체를 그토록 급격하게 변화시키는 일 없이 지루하게 지속되는 듯하나, 그러나 시간의 바닥으로 시선을 돌리면, 우리는 이처럼 어지러운 빠른 굉음과 시커먼 기름덩이, 육중한 쇠철굿공이들이 만들어내는 기계의 거친 물살 속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고, 우리는 죽음으로 돌진하는 미친 열차를 타고 있는 것인데, 단지 그 위압적인 속도를 느끼지 못하고 있을 뿐, 그래서 구름이 저처럼 천천히 흘러가고 돌은 여전히 그 자리에 놓여있으며 하늘은 움직이지 않고 하루는 다른 하루와 마찬가지라고 생각할 뿐. 그러한 어느 몽상의 순간, 아무런 예고도 없이 우리의 기차가 우리의 몸 위로 지나가리라. 휙, 하는 순간의 속도로. 그때 우리는 자신의 얼굴을 선로 바닥에서 보게 되..

Review 2019.10.02

‘뉴트로’로 다시 태어난 복고 열풍

GQ 코리아 게재 글 / 김희연(경향신문 오피니언 에디터) 뉴트로는 단순히 수년째 이어지는 복고 열풍을 뜻하는 말이 아니다. 1970~1980년대를 겪지 못한 세기말, 혹은 새로운 세기에 태어난 세대가 과거를 하나의 새로운 양식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뜻이다. 왜 미래는 과거가 될까? 느지막한 토요일 오후, 을지로 한 다방의 문을 열고 들어선다. 목욕탕처럼 자잘한 타일로 마감된 바닥에선 세월의 때가 묻어난다. 여러 군데 흠집이 난 투박한 나무 탁자에 앉아 와인 한 잔을 마신다. 고개를 들어 천장을 보면 1970년대 부유한 가정집 거실에 있었을 법한 호박색 조명등이 있다. 이곳은 60여 년 전 다방의 모습을 간직한 서울 을지로의 한 와인 바로, 최근 젊은 세대가 즐겨 찾는 장소 중 하나다. 밀레니얼 세대는 ..

Review 2019.1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