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384

요가 매트만큼의 세계

문득 난 요가를 진심으로 즐기지 못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누가 시켜서 한 일도 아닌데 잘해야 한다는 강박을 끌어안고 있었다. 시험 보는 수험생처럼 기초를 탄탄히 하고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으며 매사에 진지하고 치열해지는 것이다. 물론 그것은 그것대로 좋다. (열심히 하면 좋잖아요.) 하지만 무리한 목표 탓에 현재 누릴 수 있는 즐거움마저 놓치고 있었던 건 아닌지 의문이다. 요가가 주는 정신적 고양, 고요하고 단순한 세계, 자유로움, 가벼움, 넉넉함을 제대로 누리지 못했다. 그건 정말이지 손해 보는 짓이다. 즐기지 못하면 손해다.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무인양품의 디자인 철학은 “이것으로도 충분하다.”라고 한다. ‘이것이 좋다’를 내세우는 게 아니라 ‘이것으로 충분하다’고 말할 수 있는 자신감에 ..

Review 2019.12.14

나는 왜 무기력을 되풀이하는가

1. 라이너 풍크의 [서문] 中 현실에 대한 이런 시각과 인식은 포스트모던에 와서 현실은 생산, 창조, 제작된다는 생각으로 대체되었다. 창조된 현실을 기존 현실에 견주어 평가하라는 요구는 점점 외면당하고, 일부는 명백히 부인당하거나 의도적으로 무시당하기도 한다. 의도적 무시 현상은 모든 분야에서 관찰된다. 오락 산업이 만들어낸 인위적인 세계는 자연 체험보다 더 흥미롭고 스릴 넘친다. 전달받은 뉴스는 직접 탐구한 소식보다 더 신빙성이 있고, 오스트레일리아나 캐나다에 사는 어떤 사람과 인터넷을 통해 맺어진 관계가 이웃과의 관계보다 더 매력적이다. 어찌 보면 우리는 인간이 창조한 가상의 세계에서 더 편안함을 느낀다. 마약, 암시요법, 환각 물질에 끌리는 마음은 자신이 창조한 현실을 더 우대하는 사실로 설명이 ..

Review 2019.11.13

숨결이 바람될 때

229p 결국 이 시기에 내게 활기를 되찾아준 건 문학이었다. 너무나 불확실한 미래가 나를 무력하게 만들고 있었다. 돌아보는 곳마다 죽음의 그늘이 너무 짙어서 모든 행동이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나를 짓누르던 근심이 사라지고, 도저히 지나갈 수 없을 것 같던 불안감의 바다가 갈라지던 순간을 기억한다. 여느 때처럼 나는 통증을 느끼며 깨어났고, 아침을 먹은 다음엔 할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계속 나아갈 수 없어.’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에 대한 응답이 떠올랐다. 그건 내가 오래전 학부 시절 배웠던 사뮈엘 베케트의 구절이기도 했다. “그래도 계속 나아갈 거야.” 나는 침대에서 나와 한 걸음 앞으로 내딛고는 그 구절을 몇 번이고 반복했다. “나는 계속 나아갈 수 없어, 그래도 계속 나아갈 거야(I..

Review 2019.11.11

이 삶을 사랑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아침이 되자 존은 크루아상과 자신이 제일 즐겨 읽던 신문을 사러 나갔고, 나는 핸드폰을 쥐고 커다란 유리창 옆에 놓인 의자에 앉아 무릎을 감싸 안았다. 이 아름다운 나라에서 눈을 떠 바쁜 걸음으로 출근하는 행운을 누리는 파리지엔의 모습을 지켜보며 오래 된 음성 메시지를 재생했다. "그냥 걸었어." 엄마가 말했다. "네 목소리가 듣고 싶어서." - 니나 리그스, 중에서

Review 2019.11.10

시인 황인찬이 말하는 이유

GQ KOREA │ CULTURE 시인 황인찬이 말하는 이유 김종삼은 한국 시 문학사에서 가장 탁월하게 침묵과 여백을 다루는 시인이었다. 나는 시가 침묵해야 한가는 것을 그의 시를 통해 배웠다. 시가 침묵을 통해 보다 진실한 것을, 더욱 많은 것을 말할 수 있다는 것 역시 그의 시를 통해 배웠다. 이를테면 이런 시. 내용 없는 아름다움처럼// 가난한 아희에게 온/ 서양 나라에서 온/ 아름다운 크리스마스처럼// 어린 양들의 등성이에 반짝이는/ 진눈깨비처럼 - '북치는 소년' 이 시는 거의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다. 서술어는 커녕 주어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부사로만 성립하는 시. 다른 시인들의 시 가운데 이보다 말수 적은 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보다 침묵과 여백을 잘 다루는 시는 나로서는 선뜻 떠오르지 ..

Review 2019.10.17

사랑보다도 더 사랑한다는 말이 있다면

간단합니다. 당신 자신을 사랑하세요. 스스로에게 헌신하세요. 당신이 좋아하는 음식을 먹고 당신이 좋아하는 화가의 그림 앞에 오래 서 있으세요. 당신이 입고 싶은 옷을 사고 당신이 원하는 것으로 여행을 떠나세요. 그러니까 당신의 삶을 온전히 사는 거죠. 사랑을 위해 당신을 포기하지 마세요. 저도 그럴게요. 왜냐하면 우리는 절대로 예전의 자신으로 되돌아갈 수 없으니까요. 스스로의 삶을 살다 보면 우리는 훨씬 더 새롭고 멋진 사람이 될 거에요. 우리의 이마는 긍정으로 빛나고 눈은 다정함으로 넘칠 거에요. 스스로를 사랑할수록 우리는 점점 더 서로에게 빠져들 거에요. 그럴 거에요. 그러니까 당신 자신을 더 사랑하세요. /최갑수, '사랑보다도 더 사랑한다는 말이 있다면' 중에서

Review 2019.10.15

너는 나에게 상처를 줄 수 없다

- 마음의 상처에서 벗어나려면 '두번째 단계'에 오래 붙들려 있지 말아야 한다. 상처 입은 상황을 곱씹으며 이랬다면 어땠을까, 저랬다면 어땠을까 고민하고, 분한 마음을 어쩌지 못해 아무 데나 분풀이를 하는 것은 영원히 깨어날 수 없는 악몽 속에 자신을 가두는 것이나 다름없다. 고통스런 기억을 되감기해서 후련하고 당당한 기억으로 덮어버리고 싶겠지만, 당신도 익히 알고 있듯이 현실의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우리는 그저 고통스런 기억만 반복 재생할 수 있을 뿐이다. - 지금 이 순간을 어떤 마음으로 사느냐에 따라 인생은 고달픈 하루가 되기도 하고 꽤 괜찮은 하루가 되기도 한다. 우리는 오직 지금 이 순간의 삶에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는 인생을 어떻게 보낼지 결정을..

Review 2019.10.15

트위터 글

- "불행"이 인생의 기본값입니다. 그 누구도 완전히 행복할 수 없습니다. 웃고 있는 얼굴 뒤로 다들 기구한 사연들이 있다는거 아시죠? 어느 순간 나를 웃게 해주는 누군가가 있다면 다행입니다. - 거울에 비친 나 조차도 내 마음에 쏙 들지 않고 내 마음도 내 행동도 내 건강도 내 맘 같기 어렵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다른 사람에게 "말을 굳이 해야 되나?" "알아서 도와주지" 라고 생각하는 건, 거의 기적을 바라는 겁니다. - 우리를 밑바닥까지 내려가게 하는 사람 중 으뜸은 가족입니다. 보통 가족은 옆에 있으면 그립고 가족과 함께 있으면 혼자 있고 싶을 때가 더 많지요. 가족과 함께 있으면 대체로 짜증이 납니다. 그리고 당신은 누군가에게 그런 가족입니다. [출처] 도토리(@Time_with_mind) 님..

Review 2019.10.15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살고 있지만 사실은 삶이 버거운 너에게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살고 있지만 사실은 삶이 버겁고, 겉으로는 웃고 있지만 속으로는 늘 울고 있는, 옛 과거의 나쁜 기억에서 발목을 잡혀 매일매일 괴로워 신음하고 있는, 하루에도 몇 번씩 죽고 싶다고 생각하는 너에게. 그렇게 특별하다 믿었던 자신이 평범은 커녕 아예 무능력하다고 느끼는 순간이 있고,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설레이던 이성으로부터 지루함을 느끼는 순간이 있고, 분신인 듯 잘 맞던 친구로부터 정이 뚝 떨어지는 순간이 있고, 소름돋던 노래가 지겨워지는 순간이 있고, 자기가 사랑하는 모든 것이 그저 짝사랑에 불과하다고 느끼는 순간도 있다. 삶에 대한 욕망이나 야망 따위가 시들어 버리는 순간이 있는가 하면, 삶이 치명적일 정도로 무의미하게 다가오는 순간 또한 있다. 우리는 여지껏 느꼈던 평생 간직하고..

Review 2019.10.14

왜 우리는 ‘불닭볶음면’과 ‘디진다 돈까스’에 열광할까?

GQ KOREA │ Culture 게재 기사 글 / 강보라(칼럼니스트) 매운맛이 꼭 '빨간 맛'인 건 아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매운맛은 보통 너덧 가지 성분으로 나뉜다. 덴 듯 뜨거운 캡사이신(고추), 찌르르 알싸한 알리신(마늘), 코끝이 간질간질한 피페린(후추), 찡하고 상쾌한 시니그린(고추냉이), 전류가 흐른 것처럼 얼얼한 산쇼올(화자오) 등이 '매운맛'으로 통칭되는 서로 다른 자극을 책임진다. 한식의 매운 맛은 대부분 캡사이신에서 나온다. 캡사이신이 뇌신경을 자극하면 천연 진통제인 엔도르핀이 분비된다. 엔도르핀은 다시 중추 신경을 자극해 아드레날린 분비를 촉진한다. 통증을 상쇄하기 위해 몸이 그렇게 반응한다. 마라톤 선수가 '러너스 하이'에 의지해 고비를 넘기는 것과 비슷한 현상이다. 그리고 지구상..

Review 2019.10.07

나는 습관을 조금 바꾸기로 했다

사사키 후미오 지음 시작하며: 중요한 것은 재능이 아니라 지속이다 일러두기: 이 책을 읽는 방법 1. 의지력은 태어나면서부터 정해져 있는가? 퇴사 후, 게으른 생활을 즐기다 | 전혀 즐겁지 않은 자유시간 | 미니멀라이프 다음은 ‘습관’이다 | 왜 새해 다짐은 항상 실패할까? | 모든 것은 ‘보상’과 ‘벌칙’ | 오늘은 사과 1개, 내일은 사과 2개 | 일단 눈앞의 보상이 중요하다 | 나중에 받을 보상을 기다리지 못하는 이유 | 마시멜로를 먹을까? 말까? | 마시멜로 실험으로 미래를 예측할 수 있을까? | 의지력은 사용하면 줄어드나? | 왜 마지막 아이스크림을 참지 못했을까? | 의지력을 갉아먹는 건 ‘불안’이라는 감정 | 즐거운 기분이라면 더 오래 기다릴 수 있다 |..

Review 2019.10.04

지금 가장 멋진 사람들 - 유노윤호 편

GQ 코리아 '지금 가장 멋진 사람들' 글/ 조경아( 편집장) “유노윤호는 멈추지 않으며, 뭐든 끝까지, 최선을 다한다는 좌우명에 온 시간을 쏟았다.” 유노윤호가 다르게 보이는 요즘이다. ‘자다 일어나 춤을 춘다’는 이 웃긴 문장이 눈앞에서 펼쳐지는데 웃기기만 하지는 않고, 세상에서 가장 진지한 눈빛으로 인간에게 가장 해로운 벌레는 ‘대충’이라는 말을 하는데 손가락이 저절로 오그라들거나 실없는 조소가 새어나오지도 않는다. 그들이 다섯일 때, 동방신기는 대단했다. 멋있고 세련되었으며 힘 있고 무려 섹시했다. 그들의 해산은 떠들썩했다. 탈퇴, 재조합 등. 어떤 단어가 맞을지 모르나 그들의 분리는 이른바 해체였다. 흘러나오는 잡음들은 흉흉했고 나간 셋과 남은 둘의 차이는 들이댈 수 있는 모든 잣대에 고루 극명..

Review 2019.10.02

‘시발 비용’, ‘탕진잼’ 밀레니얼 세대의 소비 형태

GQ 코리아 게재 글 / 권민지(프리랜스 에디터) 내일이 없는 것처럼 돈을 펑펑 쓰는 밀레니얼 세대의 소비 행태를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무조건 혀를 찰 일도 아니다. 역설적이게도 미래에 대한 가장 현실적인 대안일 수 있다. 얼마 전 한 외국 트위터 계정에서 ‘시발 비용’이라고 큼지막하게 적힌 일러스트 하나를 봤다. 미국의 외교 전문지 의 기사로 꽤 강렬한 이미지 밑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왜 젊은 한국인들은 돈을 펑펑 쓰는 것을 좋아하는가(Why Young Koreans Love To Splurge).” 그러니까,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다면 발생하지 않았을 비용을 뜻하는 ‘시발 비용’, 낭비하는 재미를 일컫는 ‘탕진잼’ 등의 신조어를 소개하면서 한국 밀레니얼 세대들의 소비 습관을 취재한 기사였..

Review 2019.10.02

‘괜찮아’의 늪에 빠진 요즘 시대

GQ 코리아 게재 글 / 이다혜(작가, 기자) 혹독한 자기계발의 시대를 지나 이젠 뭐든 다 괜찮다는 위로가 서점가를 점령했다. 곰돌이 푸나 라이언의 얼굴을 한, 귀엽고 공허한 위로가 이 시대를 떠돌고 있다. 위로받는 데도 지쳤다. 괜찮아, 안 괜찮아, 괜찮아, 안 괜찮아. , , , , , …. ‘괜찮아’ 라는 말은 2018년 이후 갑자기 책 제목으로 큰 인기를 끄는 중이다. ‘어린이를 위한 용기의 심리학’이라는 부제의 라는 책도 있다. 를 위시해 , 등 위로는 영원히 이어질 듯 보인다. 당신은 책을 왜 읽는가. 이 ‘왜’가 한때는 자기계발이었다. 2017년에 25주년 에디션이 나온 스티븐 코비의 은 지금까지 꾸준히 팔리는 자기계발서다. 이 책은 제목으로도 유행을 불러왔는데, ‘습관’으로 검색하면 숱한 ..

Review 2019.10.02

북쪽 거실

고개를 들고 있으면 세계는 익숙하고, 사방의 사물과 얼굴들은 형체를 그토록 급격하게 변화시키는 일 없이 지루하게 지속되는 듯하나, 그러나 시간의 바닥으로 시선을 돌리면, 우리는 이처럼 어지러운 빠른 굉음과 시커먼 기름덩이, 육중한 쇠철굿공이들이 만들어내는 기계의 거친 물살 속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고, 우리는 죽음으로 돌진하는 미친 열차를 타고 있는 것인데, 단지 그 위압적인 속도를 느끼지 못하고 있을 뿐, 그래서 구름이 저처럼 천천히 흘러가고 돌은 여전히 그 자리에 놓여있으며 하늘은 움직이지 않고 하루는 다른 하루와 마찬가지라고 생각할 뿐. 그러한 어느 몽상의 순간, 아무런 예고도 없이 우리의 기차가 우리의 몸 위로 지나가리라. 휙, 하는 순간의 속도로. 그때 우리는 자신의 얼굴을 선로 바닥에서 보게 되..

Review 2019.10.02

‘뉴트로’로 다시 태어난 복고 열풍

GQ 코리아 게재 글 / 김희연(경향신문 오피니언 에디터) 뉴트로는 단순히 수년째 이어지는 복고 열풍을 뜻하는 말이 아니다. 1970~1980년대를 겪지 못한 세기말, 혹은 새로운 세기에 태어난 세대가 과거를 하나의 새로운 양식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뜻이다. 왜 미래는 과거가 될까? 느지막한 토요일 오후, 을지로 한 다방의 문을 열고 들어선다. 목욕탕처럼 자잘한 타일로 마감된 바닥에선 세월의 때가 묻어난다. 여러 군데 흠집이 난 투박한 나무 탁자에 앉아 와인 한 잔을 마신다. 고개를 들어 천장을 보면 1970년대 부유한 가정집 거실에 있었을 법한 호박색 조명등이 있다. 이곳은 60여 년 전 다방의 모습을 간직한 서울 을지로의 한 와인 바로, 최근 젊은 세대가 즐겨 찾는 장소 중 하나다. 밀레니얼 세대는 ..

Review 2019.10.02

네 인생의 이야기

- 네 인생의 이 단계에서 네게는 과거도 미래도 없어. 내가 너에게 젖을 먹이기 전까지 네 안에는 과거의 만족감에 관한 기억도, 미래의 충족에 대한 기대감도 존재하지 않아. 그러다 젖을 빨기 시작하면 모든 것이 역전되겠지. 너는 세상에 대해 아무런 불만도 느끼지 않게 돼. 네가 지각하는 유일한 순간은 오로지 지금뿐이야. 너는 현재 시제 속에서만 살아. 여러 의미에서 실로 부러운 상태라고 할 수 있지. - 미래를 안다는 것과 자유의지는 양립할 수 없었다. 나로 하여금 선택의 자유를 행사할 수 있게 한 것은 내가 미래를 아는 것 또한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이와는 반대로 미래를 아는 지금, 내가 알고 있는 것을 다른사람들에게 털어놓는 행위를 포함해서, 나는 결코 그 미래에 반하는 행동을 하지 않을 것이다. 미..

Review 2019.09.08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한수희 저/서평화 그림 - 나는 원래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좋아한다. 소설을 읽다가도 시시콜콜한 이야기가 나오면 신이 난다. 청소를 하고 옷을 다리고 냉장고를 정리하고 요리를 하는 이야기들. 그런 이야기를 읽고 있으면 이상하게 안심이 된다. 어릴 때 읽은 동화책에서도 찬장 위에 놓인 살구절임을 먹을까 말까 계속해서 고민하는 여자애의 이야기가 유독 기억에 남는다. 만화영화 속 빨강머리 앤과 다이애나가 집에서 몰래 훔쳐온 찻잔에 귀한 사탕이니 초콜릿 같은 걸 두고 소꿉놀이를 하던 장면은 아마 할머니가 되어도 잊지 못할 것이다. 톰 소여가 마시던 유리병에 든 흰 우유도, 하이디가 먹던 검은 빵과 흰 빵도. 잠들기 전에 기도를 하던 초원의 집 소녀들이 머리에 쓴 귀여운 모자도 잊지 않고 있다. 그런 이야기를 읽거..

Review 2019.08.03

거울 앞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냈다

러네이 엥겔른 - 신체 혐오의 위기에 빠진 여성이 원대한 계획을 세우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첫 번째 반응은 '난 다이어트할 거야. 탄수화물을 줄여야겠어. 매일 운동해야지. 이제 디저트는 안 먹어.' 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반응에는 두 가지 문제점이 있다. 우선, 장기적인 관점에서 건강한 변화를 이끌어낼 수 없다. 두 번째로, 섭식 장애로 이어지는 위험한 행동을 이끌ㅇ낼 수 있다. 왜냐하면 표준 몸매에 미치지 못한다고 느낄 때 가장 흔한 반응은 깡마른 이상형에 가까워질 수 있다면 무슨 일이든 기꺼지 하겠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정서적인 고통을 겪을 경우 기분 전환을 위해 무언가를 한다. 설사 그 행동이 잠깐의 기분 전환을 위한 것이더라도 말이다. 이런 기분 전환은 커다란 아이스크림 한 ..

Review 2019.08.03

빵 고르듯 살고 싶다

임진아 저, 중에서 - 손을 깨끗히 하려고 쓰는 비누부터 먼저 씻는 마음. 내 손을 깨끗하게 해주느라 더러운 거품이 묻은 비누를 닦아주는 마음. 이 마음이 필요할때가 분명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그것이 언제일지 떠올려보았다. 하나, 늘 말을 잘 들어주는 이에게 습관처럼 내 마음을 늘어놓았던 날. 혹여 내 마음 때문에 친구 마음에 구정물 거품이 묻어 버렸던 건 아닐까? 둘, 스트레스 받은 마음을 스스로 정리하지 못하고 가까운 사람에게 괜히 투정부리며 이상한 방식으로 화를 풀던 날, 나로 인한 더러움은 스스로 닦아낸 후 사람을 대해야 했는데 그게 마음처럼 되질 않았다. 가까운 사람이니까 이 거품도 이해해주겠지... 하던 이기적인 착각. 비누를 닦아내듯 나를 뱅글뱅글 돌리는 방법을 배우자고 다짐하며 긴 손 ..

Review 2019.06.23

나도 아직 나를 모른다

허지원 지음 - 어떤 사람이라도 매일매일 위아래로 끊임없이 요동치는 자존감을 끌어안고 살아갑니다. 아무리 자존감이 높아보이는 사람이라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어떤 날은 자존감이 바닥 끝까지 가라앉는 경험을 하면서도 그저 버티며, 꾸준히, 살아갑니다. - '깨어 있으면서도 아무 일 없이 쉬고 있음'을 뇌의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라고 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프로이트가 말한 성숙하고 이성적인 에고Ego를 뇌 과학적 관점에서 바라볼 때, 그것이 바로 휴지기의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와 유사하다 것입니다. 주위 환경을 돌아보고 상황을 예측하도록 뇌를 준비시키되, 쾌락이나 흥분과 관련된 피질 하부의 네트워킹은 조용히 억제하는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는, 정말로 에고가 하는 일과 유사하다는 느낌..

Review 2019.06.13

[김하나의 측면돌파] 어쩌라고, 되면 좋고 아님 말고!

팟캐스트 [김하나의 측면돌파] 허지원 임상심리학자 저 인터뷰 방송 - 당신에게 불안감을 가져오는 사건들은 많은 경우 당신의 노력이나 기대와는 상관없이 운과 상황에 의해 좌우됩니다. 노력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당신은 한다고 했습니다. 수백번 무너져내리는 마음을 일으켜가며 어떻게든 끝까지 해보려 했습니다. 당신은 모두 알고 있습니다. 운이 나빴을 뿐입니다. 주인공이 당신이었으면 좋았겠지만, 내가 아니면 안되는 일 따위는 없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 억지로 만들어 낸 가치가 아니어도 당신과 나는 이대로 충분합니다. 기대하세요. 내일의 날씨. 이따가의 점심 메뉴. 오랜만의 시내 외출. 개봉할 영화와 새로운 드라마. 또 실망할 수도 있겠지만 실패해도 다시 일어나는 힘은 지치지 않는..

Review 2019.05.31

아프다면 만성염증 때문입니다

이케타니 도시로 지음 만성염증을 억제해야 무병장수한다 최근 당뇨병과 치주염이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게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치주 병균이나 치주 병균에 반응해 치아 주변에서 생기는 염증을 일으키는 물질인 메디에이터(mediator. 매개체)가 혈류를 타고 전신을 돌아다니며 혈당치를 낮추는 호르몬인 인슐린의 작용을 방해하기 때문입니다. 면역 시스템의 오작동 '메디에이터(mediator)'는 원래 '중재자'라는 의미지만 의학 용어로는 세포에서 세포로 정보를 전달하는 '전달 물질'을 뜻합니다. 간단히 세포가 이래라 저래라 하고 내리는 명령이라 생각하면 됩니다. 염증은 원래 몸에 필요한 반응이므로 염증을 일으키는 메디에이터도 필요합니다. 동시에 없애는 메디에이터도..

Review 2019.05.25

배움에 관하여

한 인간으로서의 '나'를 소개한다는 것은 단순한 듯하지만 사실상 참으로 복잡한 일이다. 그런데 한 사람이 씨름하고 있는 물음들, 타자에게 건네는 질문들을 통해서 나는 그 사람이 지니고 있는 한 인간으로서의 내면세계의 내음을 느끼게 된다. 자신이 씨름하고 있는 물음들, 자신이나 이 세계에 던지는 질문들이 그 사람이 '누구인가'라는 '정체성의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것이다. - 강남순, '배움에 관하여' 중에서

Review 2018.11.26

세상의 모든 ㅂ들을 위하여

세상의 모든 죽음은, 삶의 종결은 슬프고 아프다. 제대로 인사조차 할 수 없었던 갑작스런 이별은 더욱 그럴 것이다. 내가 내 삶의 마지막 모습을 감히 단언할 수는 없겠지만 가끔 그려본다. 아주 짧아도 좋으니 안녕이라고, 만나서 정말 좋았다고 웃으며 말을 건넬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역시 한치 앞도 알 수 없는 생의 속성을 보건대 이는 세상에서 가장 큰 욕심 같기도 하다. 요즘 부쩍 그런 생각을 많이 한다. 새삼 어떤 이에게는 허락되고, 어떤 이에게는 허락되지 않은 이 작별의 인사가 참 아프고 슬프다. 그러니 삶의 모든 순간에서 먼저 손을 내밀고 마주잡으며 안녕이라고 마음을 담아 인사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늘 다짐은 앞서고 행동은 느려 후회가 먼저 오지만. 그럼에도. - 엄태주, '세상의 모든 ㅂ..

Review 2018.1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