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메켈 정비공의 부탁

유연하고단단하게 2020. 4. 29. 17:05

 

너는 누비아 탑에서부터 해안가의 염전 지대를 따라 천천히 걸음을 옮겨. 해안 쪽으로 눈을 돌리면 둔덕처럼 쌓인 흰색의 소금 결정과 붉은 지붕의 풍차들이 보이지. 바람에 함유된 소금기가 네 몸 이곳저곳에 달라붙어. 너는 멈춰 서서 소금 결정이 쌓인 바다를 오래도록 바라봐. 이따금 코끝으로 스며드는 비린내로 인해 구역질이 난다는 것 이외에, 너는 아무런 감상도 느끼지 않아. 눈앞에 보이는 풍경이 감탄스럽지 않다기보다,네가 느끼는 감정은 네가 하는 일에서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야. 중요한 것은 네가 무엇을 보는지니까. 오래도록 바라보는 것, 귀를 기울이고 냄새를 맡는 것, 음식을 씹고 음미하는 것. 그렇게 감각을 통해 기억을 만들어내는 것. 그런 것들은 너의 10년을 구성하고 있는 중요한 요소야. 세부적인 사항들이 기억에서 잊힐 때쯤 뇌에 남는 부분이란 그런 식으로 감각에 기댄 정보들이거든. 그렇게 남은 정보들만이 십 년이 지나고 이십 년이 지나도록 사람의 머릿속에 박혀 있는 거지.

 

- 나푸름, <메켈 정비공의 부탁>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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