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396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

- 우리가 지금 괴로운 이유는 우리의 믿음, 즉 ‘노력’이 우리를 자주 배신하기 때문이다. 나는 죽어라 열심히 노력하는데 고작 이 정도고, 누구는 아무런 노력을 안 하고도 많은 걸 가져서다. 분명 노력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고 배웠는데, 또 노력하면 다 이룰 수 있다고 배웠는데 이상하다. 뭔가 속은 것 같다. 잘못 살아온 것만 같다. 그렇다고 노력을 멈출 수도 없다. 노력하지 않으면 그나마 지금 정도도 유지하지 못할 것 같다. 어떻게 사는 게 맞는지 알 수 없어서 괴롭다. 왜 노력이 우리를 배신하는지, 그럼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물어도 난 답을 알지 못한다. 다만 괴로움을 줄이는 법은 안다. 분하지만 ‘인정’해버리는 것이다. ‘노력해도 안 되는 것이 있고, 노력한 만큼 보상이 없을 수도,..

Review 2020.09.23

보통의 언어들

- 인간의 언어는 파동이 아닌 글자로 존재하기에, 같은 말을 하더라도 다른 감정이 전달되기도 하고 곡해되기도 한다. 이는 타인만이 아닌 스스로에게도 적용된다. 내가 어떤 말을 습관적으로 하는지, 어떤 표현을 어떤 상황에 반복적으로 사용하는지는 내 삶의 질과 삶을 대하는 태도에 큰 영향을 끼친다. 감정이 언어라는 액자 안에서만 보관되고 전달된다면, 나는 이 액자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어떤 ‘내용’을 이야기하는 것보다 액자를 공유하는 것이 진짜 스스로를 들여다보고 서로를 바라볼 수 있는 길이라 생각하기에. - 나는, 아니 우리는 모두, 사회성이란 것을 갖추게 되었고 그것은 아주 가깝지 않은 누군가에게 ‘달’처럼 존재할 줄 아는 능력을 포함한다. 상대가 불편하지 않을 만큼의 단면을 보여줄 줄 안다는..

Review 2020.09.18

붉은 선

이제 나는 포르노를 봐도 흥분되지 않는다. 나를 흥분시키는 건 삶의 부피, 투명한 눈빛, 나비의 날갯짓 같은 상상이다. 섹스는 함께 즐기는 상쾌한 스포츠가 될 수도 있고, 깊고 고요한 명상이 될 수도 있다. 성기가 섹스의 중심이 아니어도 좋았다. 상대의 발이나 무릎에 키스를 하거나 내 손가락 사이사이와 발등을 만져줄 때 짜릿함을 느꼈다. 어디든지, 언제든지 예민한 촉수로 변할 수 있는 감각 덩어리. 야동보다 더 야한 것들이 내 몸과 세계에 이렇게나 많다! 섹스만큼 이 사회에서 왜곡된 감각이 또 있을까. 섹스에 대한 다양한 상상력이 필요하다. 온전한 감각의 회복이. 섹스에 묻은 때가 너무 많다. 포르노 섹스 서사를 즐길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만이 섹스가 아니라는 걸 아는 건 중요하다. 포르노 서사에 갇혀..

Review 2020.08.27

걷는 사람

- 만약 나쁜 기분에 사로잡혀서 지금 당장 아무런 일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상태라면 그저 나가서 슬슬 걸어보자. 골백번 생각하며 고민의 무게를 늘리고 나쁜 기분의 밀도를 높이는 대신에 그냥 나가서 삼십 분이라도 걷고 들어오는 거다. 그러면 거짓말처럼 기분 모드가 바뀌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나는 나의 기분에 지지 않는다. 나의 기분을 컨트롤할 수 있다는 믿음, 나의 기분으로 인해 누군가를 힘들지 않게 하겠다는 다짐. 걷기는 내가 나 자신과 타인에게 하는 약속이다. - 어쩌면 감사도 연습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크고 작은 연결고리들을 떠올리면서 나는 사람을 만나면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안녕하세요’라는 인사처럼 쓴다. - 나는 아직 긴 도정의 초입에 서 있다. 중간 지점에서 성공하거나 실패하거나 넘어지..

Review 2020.08.23

슈톨렌

"건강을 조심하라기에 몸에 좋다는 건 다 찾아 먹였는데 밖에 나가서 그렇게 죽어 올 줄 어떻게 알았겠니" 너는 빵을 먹으며 죽음을 이야기한다 입가에 잔뜩 설탕을 묻히고 맛있다는 말을 후렴구처럼 반복하며 사실은 압정 같은 기억, 찔리면 찔끔 피가 나는 그러나 아픈 기억이라고 해서 아프게만 말할 필요는 없다 퍼즐 한 조각만큼의 무게로 죽음을 이야기할 수 있다 그런 퍼즐 조각을 수천수만개 가졌더라도 얼마든지 겨울을 사랑할 수 있다 너는 장갑도 없이 뛰쳐나가 신이 나서 눈사람을 만든다 손이 벌겋게 얼고 사람의 형상이 완성된 뒤에야 깨닫는다 네 그리움이 무엇을 만들었는지 보고 싶었다고 말하려다가 있는 힘껏 돌을 던지고 돌아오는 마음이 있다 아니야 나는 기다림을 사랑해 이름 모를 꽃들이 무성하게 자라는 마당을 사랑..

Review 2020.08.20

여행의 이유

- 우리는 명확한, 외면적인 목표를 가지고 여행을 떠난다. 이런 목표는 주변 사람 누구에게나 쉽게 말할 수 있는 것들이다. 하와이에 가서 서핑을 배우겠다, 치앙마이에서 트레킹을 하겠다, 이번 여름휴가에는 인도에 가서 요가 클래스에 참가하겠다, 유럽 전역을 떠돌며 미술관을 둘러보겠다 같은 것들. 이런 목표를 이루기 위해 우리는 열심히 준비한다. 여행지에 관한 정보를 알아보고, 숙소를 예약하고, 이동수단을 검토한다. ‘추구의 플롯’에서는 주인공이 결말에 이르러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되고, 그것을 통해 깨달음을 얻는다고 하지만, 여행을 준비하는 단계에서 ‘뜻밖의 사실’이나 예상치 못한 실패, 좌절, 엉뚱한 결과를 의도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우리는 모두 정해진 일정이 무사히 진행되기를 바라며, 안전하..

Review 2020.08.17

다른 세계에서도

주지하듯, 도덕이란 한 사회에서 바람직하다고 여겨지는 행동의 기준이고, 이 규범은 그 사회에서 오랫동안 전해 내려오는 생활습관과 관습에서 비롯된다. 도덕은 그 자체로서 선이 보증되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사회·역사적 조건이나 다수의 권력에 의해 만들어진 규범이 ‘도덕’이라는 이름으로 의심 없이 존속될 수 있다. 따라서 도덕을 심문하지 않고 도덕적 우위를 확보하려 한다면 필연적으로 기존의 관습과 규범에 적극적으로 영합하게 된다. 임신중지는 어머니 되기의 거부가 아니라 잠재적인 어머니 되기를 전제함으로써 용인되고, 사람들에게 연민을 불러일으킬 만한 경우에 한해 정당화되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는 이성애 규범을 해체할 수 없음은 물론이고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생식으로부터 분리하지도 못한다. - 이현석 단편 에 대..

Review 2020.08.15

내 하루도 에세이가 될까요?

마음의 상처는 완벽하게 지워내기 어렵다. 지나간 시간과 기억을 전부 도려내면 모를까.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상처를 꾹꾹 눌러서 마음속 어두운 방에 가두는 것뿐이다. 고로 마음의 상처를 치유한다는 건, 아팠던 기억의 갑작스러운 방문에도 문을 기꺼이 열 수 있는 용기를 키우는 일이다. 마음을 안아줄 수 있는 건 마음뿐이다. 그리고 ‘상처받은 내 마음’을 가장 따뜻하게 안아줄 수 있는 건 ‘이겨내고자 하는 내 마음’이다. 취미로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 가장 많이 쓴 얘기가 직장생활이다. 하루 대부분을 회사에서 보냈다. 나를 힘들게 한 스트레스와 상처가 회사에서 비롯될 때가 많았다. 고백하면 처음에는 회사 욕을 하고 싶어서 글을 썼다. 표현하면 마음이 누그러질까 싶었다. 저 상사 재수 없다. 출근은 지옥이다..

Review 2020.08.07

감정 정리의 힘

- 지금까지 많은 직장인에게 감정회복습관을 트레이닝 하고, 일류 기업에서 잠재력이 높다고 평가받는 인재들을 만나면서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심리적으로 안정된 사람은 스스로 감정을 회복하는 습관을 지녔다는 점입니다. 그 습관은 다음 세 가지입니다. ① 부정적인 연쇄 반응의 고리를 그날그날 끊어내는(비우는) 습관 ② 스트레스를 느낄 때마다 감정회복근육을 단련하는 습관 ③ 가끔 멈춰 서서 자신을 돌아보고 성찰하는 습관 -감정 정리를 도와주는 일곱 가지 테크닉 1. 부정적인 감정의 악순환에서 벗어난다 첫 번째 테크닉은 ‘부정적인 감정의 악순환에서 벗어나기’입니다. 효과적인 방법으로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감정에 이름 붙이기’이고, 또 하나는 ‘기분 전환’입니다. ‘감정에 이름 붙이기’란 보이지 않..

Review 2020.08.06

5월의 해안선

친구로부터 온 한 통의 편지, 결혼식 초대장이 나를 예전의 거리로 끌어당겼다. 나는 이틀의 휴가를 내고 호텔 방을 예약한다. 뭐랄까, 몸의 절반쯤이 투명해져버린 듯한 이상한 기분이다. 맑게 갠 5월의 아침, 나는 서류 가방에 소지품을 챙겨넣고 신칸센에 올라탄다. 창가의 좌석에 앉아 책을 펼쳤다가 다시 덮고 캔맥주를 비우고, 아주 잠깐 잠들었다가 포기하고 바깥의 풍경을 바라본다. 신칸센의 차창에 비치는 풍경은 언제나 똑같다. 그것은 억지로 절개되어 맥락도 없이 일직선으로 늘어선 메마른 풍경이다. 마치 날림으로 지은 집 벽에 장식된 액자 속의 그림처럼 그런 풍경은 나를 지겨운 기분이 들게 한다. - 무라카미 하루키, 중에서

Review 2020.08.03

도서관 기담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 같았다. 구두를 잃어버린 것에 대해서도 어머니는 아무 말씀도 하시지 않았다. 어머니의 옆모습은 여느 때보다 아주 조금 슬퍼 보였다. 하지만 그건 단지 느낌뿐이었는지도 모른다. 그 이후로 나는 한 번도 도서관에 가지 않는다. 다시 한 번 그곳에 가서 그 지하실 입구를 확인해보고 싶은 기분도 든다. 하지만 나는 이제 거기에는 가까이 가고 싶지 않다. 해질녘에 도서관 건물을 보기만 해도 발이 오그라들어 버리는 것이다. 가끔씩 지하실에 두고 온 새 가죽 구두를 생각한다. 그리고 양 사나이를 생각하고 아름다운 소녀를 생각한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도대체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실제로 있었던 일인지 나로선 알 수 없다. 알 수 없는 채로 나는 점점 그 지하실로부터 멀어져간다. 지금도 나..

Review 2020.08.03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 그녀의 책에는 내가 그때까지 읽어왔던 에세이들과는 다른 결이 있었다. 그녀의 글에서 그녀는 성공한 사람도, 자유로운 사람도, 세상 다른 사람들보다 어딘가 특별하고 특출한 사람도 아니었다. 다만 그녀는 자신을 타인처럼 여기고 있었다. 타인을 바라보는 시선에도 여러 종류가 있겠지만 자신을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은 무심했고, 더 나아가 무정하기까지 했다. 이겨내기 어려웠을 것이 분명한 비참한 순간에 대해 기록하고는 바로 다음 단락에서 슈퍼 앞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태연하게 스크류바를 먹는 장면을 적어넣는 식이었다. 본인이 의도했든 그렇지 않았든 그런 식의 구성이 여러 번 반복되었는데, 그것이 내 마음을 아프게 했다. 그녀에게는 그런 아프고 폭력적인 순간들이 스크류바를 먹는 순간만큼이나 평범하고 일상적인 일이..

Review 2020.08.02

이윽고 슬픈 외국어

그렇게 집중하던 일 년이 지나고 약간 한숨을 돌릴 때쯤, 이번에는 수필 같은 것을 써보고 싶다는 기분이 강해졌다. 그래서 고단샤의 《책》이라는 작은 잡지에 매달 연재를 하게 되었다. 한 회분의 원고량은 사백 자 원고지 스물 한장에서 스물 두 장 정도로, 그때까지 내가 쓴 연재 수필 중에서 가장 많은 매수였다. 그렇지만 연재를 계속하는 일 년 반 동안 길다고 느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작가라는 사람은, 많든 적든 모두 그럴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어느 쪽이냐 하면, 글을 써나가면서 사물을 생각하는 인간이다. 문자로 바꾸고 나서 시각적으로 사고하는 쪽이 편할 때가 많다. 그런 의미에서는 매달 그 정도 분량의 매수가 있는 쪽이 넓게 생각할 수 있어서 좋았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미국에 오고 나서 일 년 정도 사..

Review 2020.08.02

마음의 오류들

일부 강박장애(과식이나 도박이나 성행위에 몰두하는 것)는 약물 중독과 아주 비슷하다. 중독은 특정한 보상에 대한 과장된 반응이므로, 중독성 물질에 활성을 띠는 뇌 영역들은 음식, 돈, 섹스에도 활성을 띌 가능성이 높다. 약물중독자와 비만인 사람의 뇌 영상을 비교하면 뇌에 비슷한 변화가 일어났다는 것이 드러난다. 중독자가 약물 투여를 계속하면 보상 체계의 일부 영역들에서(쾌감의 조건 형성이 이루어짐으로써) 활성이 줄어드는 것처럼, 비만인 사람도 음식을 먹는 동안 쾌감이 줄어든다. 비만인 사람의 보상 체계는 도파민에 덜 반응하고 도파민 수용체의 밀도도 낮은 경향을 보인다.오리건연구소의 카일 버거와 에릭 스타이스는 청소년들의 섭식 습관을 조사한 흥미로운 연구를 했다. 그들은 먼저 체중이 서로 다른 청소년 15..

Review 2020.08.02

시선으로부터,

-질문자 성공적인 결혼의 필수 요소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심시선 폭력성이나 비틀린 구석이 없는 상대와 좋은 섹스.질문자 흥미로운 대화나 서로에 대한 이해 같은 건요?심시선 아이, 남편들이랑 무슨 대화를 해요? 그네들은 렌즈가 하나 빠졌어. 세상을 우리처럼 못봐요. 나를 해칠까 불안하지 않은 상대와 하는 안전한 섹스, 점점 좋아지는 섹스 정도가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폭력은 사람의 인격을 조각한다. 조각하다가 아예 부숴버리기도 하지만 폭력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폭력의 기미를 감지할 수 있게 되는데, 그렇게 얻은 감지력을 유용하게 쓰는 사람도 있고 절망해 방치해버리는 사람도 있어서 한 가지 결로 말할 수는 없다. 나는 치욕스러운 경험도 요긴한 자원으로 썼으니 아주 무른 편은 아니었던 듯하다. - 명은이..

Review 2020.08.02

습관의 말들

사치에 대한 욕구는 보들레르 식으로 말한다면 인간 정신의 불멸성에 대한 증거다. 이런 거창한 말이 아니더라도 생존 밖으로 넘치는 것이 하나라도 있어야 삶이 삶이다. 하다못해 연필이라도 좋은 것을 사서 써야 한다. - 황현산, 『내가 모르는 것이 참 많다』 (난다, 2019) 걷기와 마찬가지로 요리도 한번 해 보면 일종의 관성이 붙어서 계속하게 된다. 내가 먹는 밥에 나의 시간을 들이는 일은 짐작보다 훨씬 충만한 일이다. - 하정우, 『걷는 사람, 하정우』 (문학동네, 2018) 우리가 반복적으로 하는 행동이 바로 우리가 누구인지 말해준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행위가 아니라 습관이다. - 아리스토텔레스 인생이라는 영화는 슬프고 고통스러운 장면에서는 느린 재생 버튼을 누른 것처럼 흘러가고, 기쁘고 즐거운 ..

Review 2020.06.23

단단한 삶

[명제 1] 자신을 싫어하면 누구도 사랑할 수 없다.이 명제는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다시 한 번 말을 바꾸어 표현해 보겠습니다. [명제 2] 다른 사람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다음과 같은 잘못된 명제를 믿고 있습니다. [잘못된 명제] 자신을 사랑하면 타인을 희생으로 삼는다.이 명제는 다음과 같은 옳은 명제를 잘못 표현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자기애'를 '자신을 사랑하는 것'으로 오인해서 해석하면 위의 잘못된 명제가 나옵니다. [명제 3] '자기애'는 타인을 희생으로 삼는다.앞서 설명했듯이 '자기애'는 자신을 미워하는 것에서 발생합니다. 자신을 미워하는 사람은 그 고통에서 벗어나려고 자기상을 위조하는 데 필요한 자원을 타인에게서 빼앗습니다. [잘못된 명제] 타인을..

Review 2020.06.14

볼드 저널 / <주말의 발견> 호

이홍안, 안가청 부부에게 주말은 각자의 조각을 채집하는 시간이다. 공통분모를 나누거나 교집합을 찾으려 애쓰기보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궁리하고 실현하는 데 몰두한다. 남편이 게임과 만화, 영화 감상을 할 수 있는 고립된 방을 꾸리는 동안 아내는 아이와 함께 짧거나 긴 여행을 떠난다. 시시각각 자유롭게 각자의 흥밋거리를 찾아가는 과정의 조각들이 형형색색의 빛깔을 만들어낸다. 결국 이 생동감 넘치는 파편들은 가족이라는 하나의 그림으로 귀결된다. 부모로 살아가는 동안 내가 희석되는 것은 너무나 쉽다. 내가 없이 가족 구성원의 이름으로 살아갈 때 우리는 공허해진다. 이들 부부가 개인으로서의 나를 찾기 위해 지내온 숱한 주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곳에서는 아주 단순한 법칙이 있었다. 가족 구성원 중 그 누구도..

Review 2020.06.14

회복탄력성, 시련을 행운으로 바꾸는 마음 근력의 힘

강력한 회복탄력성의 기반이 되는 진정한 행복감은 나 자신과 다른 사람에 대한 긍정적 태도에서 오는 것이지 외부적 조건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의 결단을 통해 스스로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은 자기 자신과 관계가 건강한 사람이다. 소통능력의 핵심은 자기 자신과 긍정적인 내면 소통을 할 수 있는 능력이다. 대인관계는 내면관계의 반영이기 때문이다. 회복탄력성을 약화시키는 가장 근본적인 부정적 정서는 두려움이다. 두려움에서 좌절감이 나오고 좌절감에서 분노가 싹튼다.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크게 두가지다. 하나는 행복의 조건이라고 굳게 믿는 것(돈, 권력, 지위, 외모 등)을 얻지 못할까봐 두려워한다. 다른 하나는 이미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행복의 조건을 혹시 잃어버릴까봐 두려워한다. 이러한 두려움을 근본적으..

Review 2020.06.14

베어 매거진 / <우울함에 대하여> 호

- 아, 그 시기를 벗어나는 게 아니라 함께 지나가자는 거에요? 그렇죠. 우울함이 선천적이거나 오랜 시간 다져온 성격이라면 완전한 치유가 안 될 수도 있는 거에요. 전 순간순간의 계절을 느낀다고 생각해요. 우울이라는 추운 계절을 함께 보낼 사람들이 주변에 있는 게 위로인 것 같고, 꼬이 필 거라는 기대를 해보는 거죠. 예전엔 저도 힘들 때마다 그 감정을 피하기 바빴어요. 나에게 오지 말라고 발버둥 쳤고요. 지금은 그 우울을 받아들여요. 그래 왔니? 하면서요. 부정적이라고 여겨지는 감정이 밀려왔을 때 우린 보통 뛰쳐나가잖아요.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아무것도 없다는 걸 알게 돼요. 내게 우울한 감정이 온 거지 우울함 자체가 나인 건 아니잖아요. 그 사실을 아는 순간 그 감정이 두려움으로 작용하지 않게 되..

Review 2020.06.14

여기가 아니면 어디라도

-“불행이 때로는 행복의 가면을 쓰고서 유혹적으로 다가오듯이, 행복의 짓궂은 점은 이따금 감쪽같이 불행으로 변장하고 나타나는 것이다. (중략) 오스카 와일드는 이것을 아주 적절하게 아름다운 문장으로 표현했다. ‘신은 인간들을 벌하려는 경우에, 그들의 기도를 들어준다.’” 정말 그렇더라. 불가능해 보였던 간절한 소망이 이루어졌다가 결국은 파국으로 끝나는 일은 드물지 않다.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 계속 불행한 인생도, 계속 행복한 인생도 없다. - 여행이라는 것은, 우울치료제로 여행을 복용하는 사람에게는 세상에서 더없이 넓은 동굴이고 또한 가장 작은 동굴이다. 그런 여행에서는 아무와도 친구가 되지 않는다. 나 자신과도 더 친해지지 않는다. 그냥 나를 잘 모르겠고 내가 싫은 상태로 어딘가로 갔다가 그대로..

Review 2020.05.24

애쓰다 지친 나를 위해

- 오래도록 할 일 없이 쉬며 간신히 할 수 있게 된 말이 “그게 나인걸, 어쩌라고”였다. 그 한마디를 몸으로 느끼는 데까지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내가 싫어하던 나의 부분들과, 내가 회피하고 싶었던 나의 감정들을 바라보고 고치려 노력해보고 다독이며 그것들이 나의 부분이라는 걸 알아갔다. 예전의 나는 어딘가 망가졌다고 생각했으나, 나는 한 번도 망가진 적이 없었다. 나는 원래 그런 사람이었을 뿐이다. 내 스스로 절박하여 망친 인생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을 뿐이다. 나는 당신이 당신이었으면 좋겠다. 부장이니 어머니니 친구이니 연인이니 하는 호칭에 당신이 가려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더 나은 직급이나 더 나은 연봉을 위해, 더 나은 무엇이 되기 위해 무리하게 애쓰지 않았으면 좋겠다. 대신 당신이 좋아하는 소고기..

Review 2020.04.30

어른이 되는 법

목욕 후에 타월을 펼치고 있는 엄마 품에 뛰어들기만 하면 물기가 사라지고, 깨끗하게 잘 마른 파자마를 입을 수 있고, 바로 잠들기만 하면 되는 상태로 침대로 옮겨지는 것처럼. 나는 그런 식으로 나를 다듬어서 어른으로 만들어줄 사람을 찾고 있었던 것이다. 얼마나 바보 같은 생각이었나. - 야마우치 마리코, 중에서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로 많은 시간과 헛발질투성이의 너덜너덜한 경험'을 거듭하면서 내가 얻은 건 꿈꿔왔던 멋진 어른의 모습이 아닌, 불충분하고 못난 나를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너그러움이라는 걸, 20대의 나는 결코 알지 못했더랬지.

Review 2020.04.30

탐페레 공항

나는 알고 있었다. 인생에서 가장 후회하는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가 후회하는 몇가지 중 하나가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애써 다 털어버렸다고 생각했지만 내 안 어딘가에 끈질기게 들러붙어 있고, 떼어내도 끈적이며 남아 있는, 날 불편하게 만드는 그것. 내가 그것을 다시 꺼내는 데는 많은 용기가 필요하고 꺼내서 마주하게 되더라도 차마 똑바로 바라보기는 힘들 거라는 걸, 너무 잘 알고 있었다. - 장류진, 중에서

Review 2020.04.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