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384

감정 정리의 힘

- 지금까지 많은 직장인에게 감정회복습관을 트레이닝 하고, 일류 기업에서 잠재력이 높다고 평가받는 인재들을 만나면서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심리적으로 안정된 사람은 스스로 감정을 회복하는 습관을 지녔다는 점입니다. 그 습관은 다음 세 가지입니다. ① 부정적인 연쇄 반응의 고리를 그날그날 끊어내는(비우는) 습관 ② 스트레스를 느낄 때마다 감정회복근육을 단련하는 습관 ③ 가끔 멈춰 서서 자신을 돌아보고 성찰하는 습관 -감정 정리를 도와주는 일곱 가지 테크닉 1. 부정적인 감정의 악순환에서 벗어난다 첫 번째 테크닉은 ‘부정적인 감정의 악순환에서 벗어나기’입니다. 효과적인 방법으로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감정에 이름 붙이기’이고, 또 하나는 ‘기분 전환’입니다. ‘감정에 이름 붙이기’란 보이지 않..

Review 2020.08.06

5월의 해안선

친구로부터 온 한 통의 편지, 결혼식 초대장이 나를 예전의 거리로 끌어당겼다. 나는 이틀의 휴가를 내고 호텔 방을 예약한다. 뭐랄까, 몸의 절반쯤이 투명해져버린 듯한 이상한 기분이다. 맑게 갠 5월의 아침, 나는 서류 가방에 소지품을 챙겨넣고 신칸센에 올라탄다. 창가의 좌석에 앉아 책을 펼쳤다가 다시 덮고 캔맥주를 비우고, 아주 잠깐 잠들었다가 포기하고 바깥의 풍경을 바라본다. 신칸센의 차창에 비치는 풍경은 언제나 똑같다. 그것은 억지로 절개되어 맥락도 없이 일직선으로 늘어선 메마른 풍경이다. 마치 날림으로 지은 집 벽에 장식된 액자 속의 그림처럼 그런 풍경은 나를 지겨운 기분이 들게 한다. - 무라카미 하루키, 중에서

Review 2020.08.03

도서관 기담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 같았다. 구두를 잃어버린 것에 대해서도 어머니는 아무 말씀도 하시지 않았다. 어머니의 옆모습은 여느 때보다 아주 조금 슬퍼 보였다. 하지만 그건 단지 느낌뿐이었는지도 모른다. 그 이후로 나는 한 번도 도서관에 가지 않는다. 다시 한 번 그곳에 가서 그 지하실 입구를 확인해보고 싶은 기분도 든다. 하지만 나는 이제 거기에는 가까이 가고 싶지 않다. 해질녘에 도서관 건물을 보기만 해도 발이 오그라들어 버리는 것이다. 가끔씩 지하실에 두고 온 새 가죽 구두를 생각한다. 그리고 양 사나이를 생각하고 아름다운 소녀를 생각한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도대체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실제로 있었던 일인지 나로선 알 수 없다. 알 수 없는 채로 나는 점점 그 지하실로부터 멀어져간다. 지금도 나..

Review 2020.08.03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 그녀의 책에는 내가 그때까지 읽어왔던 에세이들과는 다른 결이 있었다. 그녀의 글에서 그녀는 성공한 사람도, 자유로운 사람도, 세상 다른 사람들보다 어딘가 특별하고 특출한 사람도 아니었다. 다만 그녀는 자신을 타인처럼 여기고 있었다. 타인을 바라보는 시선에도 여러 종류가 있겠지만 자신을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은 무심했고, 더 나아가 무정하기까지 했다. 이겨내기 어려웠을 것이 분명한 비참한 순간에 대해 기록하고는 바로 다음 단락에서 슈퍼 앞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태연하게 스크류바를 먹는 장면을 적어넣는 식이었다. 본인이 의도했든 그렇지 않았든 그런 식의 구성이 여러 번 반복되었는데, 그것이 내 마음을 아프게 했다. 그녀에게는 그런 아프고 폭력적인 순간들이 스크류바를 먹는 순간만큼이나 평범하고 일상적인 일이..

Review 2020.08.02

이윽고 슬픈 외국어

그렇게 집중하던 일 년이 지나고 약간 한숨을 돌릴 때쯤, 이번에는 수필 같은 것을 써보고 싶다는 기분이 강해졌다. 그래서 고단샤의 《책》이라는 작은 잡지에 매달 연재를 하게 되었다. 한 회분의 원고량은 사백 자 원고지 스물 한장에서 스물 두 장 정도로, 그때까지 내가 쓴 연재 수필 중에서 가장 많은 매수였다. 그렇지만 연재를 계속하는 일 년 반 동안 길다고 느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작가라는 사람은, 많든 적든 모두 그럴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어느 쪽이냐 하면, 글을 써나가면서 사물을 생각하는 인간이다. 문자로 바꾸고 나서 시각적으로 사고하는 쪽이 편할 때가 많다. 그런 의미에서는 매달 그 정도 분량의 매수가 있는 쪽이 넓게 생각할 수 있어서 좋았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미국에 오고 나서 일 년 정도 사..

Review 2020.08.02

마음의 오류들

일부 강박장애(과식이나 도박이나 성행위에 몰두하는 것)는 약물 중독과 아주 비슷하다. 중독은 특정한 보상에 대한 과장된 반응이므로, 중독성 물질에 활성을 띠는 뇌 영역들은 음식, 돈, 섹스에도 활성을 띌 가능성이 높다. 약물중독자와 비만인 사람의 뇌 영상을 비교하면 뇌에 비슷한 변화가 일어났다는 것이 드러난다. 중독자가 약물 투여를 계속하면 보상 체계의 일부 영역들에서(쾌감의 조건 형성이 이루어짐으로써) 활성이 줄어드는 것처럼, 비만인 사람도 음식을 먹는 동안 쾌감이 줄어든다. 비만인 사람의 보상 체계는 도파민에 덜 반응하고 도파민 수용체의 밀도도 낮은 경향을 보인다.오리건연구소의 카일 버거와 에릭 스타이스는 청소년들의 섭식 습관을 조사한 흥미로운 연구를 했다. 그들은 먼저 체중이 서로 다른 청소년 15..

Review 2020.08.02

시선으로부터,

-질문자 성공적인 결혼의 필수 요소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심시선 폭력성이나 비틀린 구석이 없는 상대와 좋은 섹스.질문자 흥미로운 대화나 서로에 대한 이해 같은 건요?심시선 아이, 남편들이랑 무슨 대화를 해요? 그네들은 렌즈가 하나 빠졌어. 세상을 우리처럼 못봐요. 나를 해칠까 불안하지 않은 상대와 하는 안전한 섹스, 점점 좋아지는 섹스 정도가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폭력은 사람의 인격을 조각한다. 조각하다가 아예 부숴버리기도 하지만 폭력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폭력의 기미를 감지할 수 있게 되는데, 그렇게 얻은 감지력을 유용하게 쓰는 사람도 있고 절망해 방치해버리는 사람도 있어서 한 가지 결로 말할 수는 없다. 나는 치욕스러운 경험도 요긴한 자원으로 썼으니 아주 무른 편은 아니었던 듯하다. - 명은이..

Review 2020.08.02

습관의 말들

사치에 대한 욕구는 보들레르 식으로 말한다면 인간 정신의 불멸성에 대한 증거다. 이런 거창한 말이 아니더라도 생존 밖으로 넘치는 것이 하나라도 있어야 삶이 삶이다. 하다못해 연필이라도 좋은 것을 사서 써야 한다. - 황현산, 『내가 모르는 것이 참 많다』 (난다, 2019) 걷기와 마찬가지로 요리도 한번 해 보면 일종의 관성이 붙어서 계속하게 된다. 내가 먹는 밥에 나의 시간을 들이는 일은 짐작보다 훨씬 충만한 일이다. - 하정우, 『걷는 사람, 하정우』 (문학동네, 2018) 우리가 반복적으로 하는 행동이 바로 우리가 누구인지 말해준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행위가 아니라 습관이다. - 아리스토텔레스 인생이라는 영화는 슬프고 고통스러운 장면에서는 느린 재생 버튼을 누른 것처럼 흘러가고, 기쁘고 즐거운 ..

Review 2020.06.23

단단한 삶

[명제 1] 자신을 싫어하면 누구도 사랑할 수 없다.이 명제는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다시 한 번 말을 바꾸어 표현해 보겠습니다. [명제 2] 다른 사람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다음과 같은 잘못된 명제를 믿고 있습니다. [잘못된 명제] 자신을 사랑하면 타인을 희생으로 삼는다.이 명제는 다음과 같은 옳은 명제를 잘못 표현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자기애'를 '자신을 사랑하는 것'으로 오인해서 해석하면 위의 잘못된 명제가 나옵니다. [명제 3] '자기애'는 타인을 희생으로 삼는다.앞서 설명했듯이 '자기애'는 자신을 미워하는 것에서 발생합니다. 자신을 미워하는 사람은 그 고통에서 벗어나려고 자기상을 위조하는 데 필요한 자원을 타인에게서 빼앗습니다. [잘못된 명제] 타인을..

Review 2020.06.14

볼드 저널 / <주말의 발견> 호

이홍안, 안가청 부부에게 주말은 각자의 조각을 채집하는 시간이다. 공통분모를 나누거나 교집합을 찾으려 애쓰기보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궁리하고 실현하는 데 몰두한다. 남편이 게임과 만화, 영화 감상을 할 수 있는 고립된 방을 꾸리는 동안 아내는 아이와 함께 짧거나 긴 여행을 떠난다. 시시각각 자유롭게 각자의 흥밋거리를 찾아가는 과정의 조각들이 형형색색의 빛깔을 만들어낸다. 결국 이 생동감 넘치는 파편들은 가족이라는 하나의 그림으로 귀결된다. 부모로 살아가는 동안 내가 희석되는 것은 너무나 쉽다. 내가 없이 가족 구성원의 이름으로 살아갈 때 우리는 공허해진다. 이들 부부가 개인으로서의 나를 찾기 위해 지내온 숱한 주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곳에서는 아주 단순한 법칙이 있었다. 가족 구성원 중 그 누구도..

Review 2020.06.14

회복탄력성, 시련을 행운으로 바꾸는 마음 근력의 힘

강력한 회복탄력성의 기반이 되는 진정한 행복감은 나 자신과 다른 사람에 대한 긍정적 태도에서 오는 것이지 외부적 조건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의 결단을 통해 스스로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은 자기 자신과 관계가 건강한 사람이다. 소통능력의 핵심은 자기 자신과 긍정적인 내면 소통을 할 수 있는 능력이다. 대인관계는 내면관계의 반영이기 때문이다. 회복탄력성을 약화시키는 가장 근본적인 부정적 정서는 두려움이다. 두려움에서 좌절감이 나오고 좌절감에서 분노가 싹튼다.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크게 두가지다. 하나는 행복의 조건이라고 굳게 믿는 것(돈, 권력, 지위, 외모 등)을 얻지 못할까봐 두려워한다. 다른 하나는 이미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행복의 조건을 혹시 잃어버릴까봐 두려워한다. 이러한 두려움을 근본적으..

Review 2020.06.14

베어 매거진 / <우울함에 대하여> 호

- 아, 그 시기를 벗어나는 게 아니라 함께 지나가자는 거에요? 그렇죠. 우울함이 선천적이거나 오랜 시간 다져온 성격이라면 완전한 치유가 안 될 수도 있는 거에요. 전 순간순간의 계절을 느낀다고 생각해요. 우울이라는 추운 계절을 함께 보낼 사람들이 주변에 있는 게 위로인 것 같고, 꼬이 필 거라는 기대를 해보는 거죠. 예전엔 저도 힘들 때마다 그 감정을 피하기 바빴어요. 나에게 오지 말라고 발버둥 쳤고요. 지금은 그 우울을 받아들여요. 그래 왔니? 하면서요. 부정적이라고 여겨지는 감정이 밀려왔을 때 우린 보통 뛰쳐나가잖아요.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아무것도 없다는 걸 알게 돼요. 내게 우울한 감정이 온 거지 우울함 자체가 나인 건 아니잖아요. 그 사실을 아는 순간 그 감정이 두려움으로 작용하지 않게 되..

Review 2020.06.14

여기가 아니면 어디라도

-“불행이 때로는 행복의 가면을 쓰고서 유혹적으로 다가오듯이, 행복의 짓궂은 점은 이따금 감쪽같이 불행으로 변장하고 나타나는 것이다. (중략) 오스카 와일드는 이것을 아주 적절하게 아름다운 문장으로 표현했다. ‘신은 인간들을 벌하려는 경우에, 그들의 기도를 들어준다.’” 정말 그렇더라. 불가능해 보였던 간절한 소망이 이루어졌다가 결국은 파국으로 끝나는 일은 드물지 않다.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 계속 불행한 인생도, 계속 행복한 인생도 없다. - 여행이라는 것은, 우울치료제로 여행을 복용하는 사람에게는 세상에서 더없이 넓은 동굴이고 또한 가장 작은 동굴이다. 그런 여행에서는 아무와도 친구가 되지 않는다. 나 자신과도 더 친해지지 않는다. 그냥 나를 잘 모르겠고 내가 싫은 상태로 어딘가로 갔다가 그대로..

Review 2020.05.24

애쓰다 지친 나를 위해

- 오래도록 할 일 없이 쉬며 간신히 할 수 있게 된 말이 “그게 나인걸, 어쩌라고”였다. 그 한마디를 몸으로 느끼는 데까지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내가 싫어하던 나의 부분들과, 내가 회피하고 싶었던 나의 감정들을 바라보고 고치려 노력해보고 다독이며 그것들이 나의 부분이라는 걸 알아갔다. 예전의 나는 어딘가 망가졌다고 생각했으나, 나는 한 번도 망가진 적이 없었다. 나는 원래 그런 사람이었을 뿐이다. 내 스스로 절박하여 망친 인생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을 뿐이다. 나는 당신이 당신이었으면 좋겠다. 부장이니 어머니니 친구이니 연인이니 하는 호칭에 당신이 가려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더 나은 직급이나 더 나은 연봉을 위해, 더 나은 무엇이 되기 위해 무리하게 애쓰지 않았으면 좋겠다. 대신 당신이 좋아하는 소고기..

Review 2020.04.30

어른이 되는 법

목욕 후에 타월을 펼치고 있는 엄마 품에 뛰어들기만 하면 물기가 사라지고, 깨끗하게 잘 마른 파자마를 입을 수 있고, 바로 잠들기만 하면 되는 상태로 침대로 옮겨지는 것처럼. 나는 그런 식으로 나를 다듬어서 어른으로 만들어줄 사람을 찾고 있었던 것이다. 얼마나 바보 같은 생각이었나. - 야마우치 마리코, 중에서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로 많은 시간과 헛발질투성이의 너덜너덜한 경험'을 거듭하면서 내가 얻은 건 꿈꿔왔던 멋진 어른의 모습이 아닌, 불충분하고 못난 나를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너그러움이라는 걸, 20대의 나는 결코 알지 못했더랬지.

Review 2020.04.30

탐페레 공항

나는 알고 있었다. 인생에서 가장 후회하는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가 후회하는 몇가지 중 하나가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애써 다 털어버렸다고 생각했지만 내 안 어딘가에 끈질기게 들러붙어 있고, 떼어내도 끈적이며 남아 있는, 날 불편하게 만드는 그것. 내가 그것을 다시 꺼내는 데는 많은 용기가 필요하고 꺼내서 마주하게 되더라도 차마 똑바로 바라보기는 힘들 거라는 걸, 너무 잘 알고 있었다. - 장류진, 중에서

Review 2020.04.30

메켈 정비공의 부탁

너는 누비아 탑에서부터 해안가의 염전 지대를 따라 천천히 걸음을 옮겨. 해안 쪽으로 눈을 돌리면 둔덕처럼 쌓인 흰색의 소금 결정과 붉은 지붕의 풍차들이 보이지. 바람에 함유된 소금기가 네 몸 이곳저곳에 달라붙어. 너는 멈춰 서서 소금 결정이 쌓인 바다를 오래도록 바라봐. 이따금 코끝으로 스며드는 비린내로 인해 구역질이 난다는 것 이외에, 너는 아무런 감상도 느끼지 않아. 눈앞에 보이는 풍경이 감탄스럽지 않다기보다,네가 느끼는 감정은 네가 하는 일에서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야. 중요한 것은 네가 무엇을 보는지니까. 오래도록 바라보는 것, 귀를 기울이고 냄새를 맡는 것, 음식을 씹고 음미하는 것. 그렇게 감각을 통해 기억을 만들어내는 것. 그런 것들은 너의 10년을 구성하고 있는 중요한 요소야. 세부적인 사항..

Review 2020.04.29

계시, 꽃

그들 사이에서 자기가 해야 할 일을 하느라 요한은 울기도 웃기도 하고 싸우기도 했지만 원망하지는 않았다. 잘못은 사람이 아닌 시간에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날의 '그 순간'과 매 순간 이별함으로써 요한은 자기의 시간을 뉘우쳤고 뉘우침으로써 시간의 근본적인 슬픔을 깨닫고 있었다. 깨달으며 살고 있었다. 시간의 근본적인 슬픔 속에서, '사람'은 비로소 요한의 목적이 된다. 사람을 '그 순간'의 일부로 여기지 않는다면, 사람은 요한의 경험을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사람을 목적으로 여기는 것은 도덕이고 '그 순간'을 향하는 것은 예술이다. 시간의 근본적인 슬픔 속에서만, 즉 '그 순간'과의 관계 속에서만 도덕을 아름다움과 동일한 것으로서 획득할 수가 있음을, 사람들 사이에서, 요한은 절감하고 있었다. - ..

Review 2020.04.29

내가 원하는 것을 나도 모를 때

알랭 드 보통의 『불안』은 오늘날 많은 사람이 겪는 불안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우리가 현재의 모습이 아닌 다른 모습일 수도 있다는 느낌, 우리가 동등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우리보다 나은 모습을 보일 때 받는 그 느낌, 이것이야말로 불안의 원천이다. 과거에 비해 상당히 풍족한 삶을 살고 있는데도 불안이 점점 커지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지금 가진 것과 현재의 나에 만족하지 말라고, 미래를 생각하고 더 나은 사람이 되라고, 사회 곳곳에서 끊임없이 채찍질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마 여러분도 다른 사람의 SNS를 보며 부러움을 느끼거나 홀로 뒤처진 것 같은 우울한 기분을 느껴보셨을 거예요. 굳이 비교할 필요가 없고 걱정할 이유가 없는데도 계속 타인을 의식하고 비교하면서 끊임없이 불안을 키우는 거지요. 사실 불..

Review 2020.04.21

아치디에서

그녀는 말했다. 무거운 짐을 짊어질수록 박수 소리가 커진다는 것을 알아서, 무리를 해서, 열심히 해서, 착하게 굴어서, 그렇게 조그마한 칭찬이라도 받아서 사랑받는다는 느낌을 경험하고 싶었다고. 타인이 자신에게 무언가를 해줄 거라는 기대는 하나씩 버렸다고. 다른 사람에게 기대지 말자, 어린 시절부터 그렇게 다짐하며 살아왔다고. 그녀에게 삶이란 오로지 자기 스스로 감당해야 하는 것이었다. - 최은영, 중에서

Review 2020.04.21

모래로 지은 집

-내 말에 모래는 고개를 돌렸다. 그 말이 모래를 어떻게 아프게 할지 나는 알았다. 나는 고의로 그 말을 했다. 너처럼 부족함 없이 자란 애가 우리들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느냐고, 네가 아무리 사려 깊은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 있다고 말하고 싶었다. 네가 뭘 알아, 네가 뭘. 그건 마음이 구겨져 있는 사람 특유의 과시였다. -그날 공무와 나는 둘이 만났다. 명동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밖으로 나오니 좋은 날씨가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서 계속 걸었다. 종로3가에 줄을 지어 있던 가위바위보 게임기에서 돈을 잃기도 하고, 인사동을 지나면서 과일주스를 사 먹기도 했다. “이제 어디로 갈까?” 공무의 물음에 나는 경복궁을 지나 부암동 쪽으로 가보자고 말했다. 그렇게 걸으면서도 하나도 피곤..

Review 2020.04.18

삼체

“길고 긴 과학 발전사에서 물리학자들이 가속기로 양성자를 몇 개나 충돌시켰겠습니까? 그리고 중성자와 전자는 또 얼마나 충돌시켰겠습니까? 1억 번은 넘을 것입니다. 한 번 충돌할 때마다 그 미시 우주 속의 지능이나 문명은 멸망했을 것입니다. 사실 대자연 속에서도 미시 우주의 멸망은 시시각각 일어납니다. 예를 들어 양성자와 중성자의 붕괴 그리고 대기층에 들어오는 고에너지 우주선(宇宙線)은 1000만 개 이상의 미시 우주를 멸망시킬 것입니다……. 이것 때문에 감상적이 된 것은 아니시죠?” - 류츠신, 중에서

Review 2020.04.18

터널을 지날 때

영화평론가 이동진 블로그 글 中 그리스 신화에서 저승까지 찾아가 아내 에우뤼디케를 구해내는데 성공한 오르페우스에겐 반드시 지켜야 할 금기가 주어집니다. 그건 저승을 다 빠져나갈 때까지 절대로 뒤를 돌아봐서는 안된다는 조건이지요. 그러나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 속 설명에 따르면 "그녀를 보고 싶은 마음에, 그녀가 포기했을까 두려움에 사로잡혀" 그는 그만 뒤를 돌아보고 맙니다. 이로 인해 아내를 데려오는 인을 결국 마지막 순간에 수포로 돌아가고 말지요. 구약 성서에서 롯의 아내도 그랬습니다. 죄악의 도시 소돔과 고모라가 불로 심판 받을 때 이를 간신히 피해 떠나가다가 신의 명령을 어기고 뒤를 돌아보는 바람에 소금 기둥이 되었으니까요. 금기를 깨고 뒤돌아보았다가 돌이나 소금기둥이 되는 이야기는 전세계 도..

Review 2020.04.14

0 이하의 날들

또 한편, 내가 소설을 읽고 쓰기 시작한 근원에 하루키가 있다는 것은 내가 그 이전의 문학의 풍경이 어땠는지를 모른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건 내가 문학이 살아 있던 시기를 목격한 적이 없다는 뜻이 된다. 나에게 문학이란 언제 철거될지 모르는 낡은 동상 혹은 시체 안치소 한구석 아무도 찾아가지 않는 신원미상의 시체였다. 그런데 일본의 평론가 카라타니 코오진에 따르면 과거 문학은 세계 전체에 대한 문제의식을 떠밭음으로써 한갓 소설나부랭이에서 그 이상의 것으로 도약을 이루었다고 한다. 그때 사람들은 문학을 통해 현실에 직접적인 변화를 이루어낼 수 있다고 믿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시대는 지나갔다. 어쩌면 그래서 나를 포함한 사람들이 소설을 잘 읽지 않는 것이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요즘 쓰이는 소설들에서 느..

Review 2020.04.10

책을 읽는 습관을 가지고 싶다면 먼저 책상부터 마련하라

책을 읽는 습관을 가지고 싶다면 먼저 책상부터 마련하라 아침에 기상 후 잠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바로 세면대로 가는 사람 A가 있는가 하면, 침대를 차마 벗어나지 못하고 뭉그적대다 그러고도 일어서지 못하고 침대에 엉덩이를 걸친 채 멍을 때리다 겨우 세면대로 가는 사람 B도 있다. 옳고 그름의 문제는 아니고 다른 스타일이라는 시각에서 이야기하고 싶다. 이런 두 유형의 사람을 가정해 보면 이들의 행동 양식에 따라 (개인의 취향과 별개로) 두 사람의 방을 채우는 사물이 달라질 수 있다. A는 침대 옆 러그의 필요성은 생각할 필요조차 없다. B는 늘 그렇듯 침대에 걸터앉아 멍 때리던 어느 겨울 아침에 생각할 것이다. '아, 발 시려.' 그러고는 아마 출근길에 '침대 러그'를 검색할 수도 있을 테다. 아주 단순화한..

Review 2020.03.24

구병모, 파과

그녀는 이 손톱을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을 것이다. 딱히 보여줄 사람이 없기도 하고. 혹시 모를 일이다. 시니어패스를 단말기에 대다가, 편의점에서 껌 한 통을 사기 위해 지갑을 뒤지고 지폐를 내밀다가, 그런 일상의 사소한 순간들 속에서 누군가들은 스쳐 지나가듯이 이 손톱을 보게 될 것이다. 그들은 손톱을 보고 바로 이어서 손톱 주인의 얼굴을 올려다보자마자 눈을 휘둥그레 뜰지도 모르지. 도저히 당신과 같은 나이의 사람에게 어울리는 장식이 아니라는 편견을 차마 입 밖으로 내지 못하고 다만 침묵하거나 헛기침하며 흘끔거리겠지. 그러나 이 순간 그녀는 깨지고 상하고 뒤틀린 자신의 손톱 위에 얹어놓은 이 작품이 마음에 든다. 무엇보다 그것은 진짜가 아니며 짧은 시간 빛나다 사라질 것이기에 더욱 그렇다. 사라진다. ..

Review 2020.02.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