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숨결이 바람될 때

유연하고단단하게 2019. 11. 11. 22:30

229p

결국 이 시기에 내게 활기를 되찾아준 건 문학이었다. 너무나 불확실한 미래가 나를 무력하게 만들고 있었다. 돌아보는 곳마다 죽음의 그늘이 너무 짙어서 모든 행동이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나를 짓누르던 근심이 사라지고, 도저히 지나갈 수 없을 것 같던 불안감의 바다가 갈라지던 순간을 기억한다. 여느 때처럼 나는 통증을 느끼며 깨어났고, 아침을 먹은 다음엔 할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계속 나아갈 수 없어.’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에 대한 응답이 떠올랐다. 그건 내가 오래전 학부 시절 배웠던 사뮈엘 베케트의 구절이기도 했다. “그래도 계속 나아갈 거야.” 나는 침대에서 나와 한 걸음 앞으로 내딛고는 그 구절을 몇 번이고 반복했다. “나는 계속 나아갈 수 없어, 그래도 계속 나아갈 거야(I can’t go on. I’ll go on).”
그리고 지금과는 다른 방식으로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순회 방문객과도 같지만, 설사 내가 죽어가고 있더라도 실제로 죽기 전까지는 나는 여전히 살아있다.




273p

“이게 끝은 아니에요.” 에마가 말했다. 분명 그녀는 지금껏 환자에게 천 번도 넘게 이 말을 했을 것이다. 나 역시 환자에게 비슷한 말을 했었으니까. 불가능한 답을 구하는 환자에게 의사는 늘 이렇게 말한다. “끝의 시작도 아니에요. 그냥 시작의 끝인 거예요.”
이것이 끝은 아니라는 에마의 말에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323p

“폐암에 대한 중요한 사실은 그게 결코 특별한 일이 아니라는 거야.” 폴은 제일 친한 친구인 로빈에게 보내는 이메일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냥 충분히 비극적이고, 충분히 상상할 수 있는 일이지. 독자들은 잠깐 내 입장이 되어보고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거야. ‘그런 처지가 되면 이런 기분이구나……. 조만간 나도 저런 입장이 되겠지.’ 내 목표는 바로 그 정도라고 생각해. 죽음을 선정적으로 그리려는 것도 아니고, 할 수 있을 때 인생을 즐기라고 훈계하려는 것도 아니야. 그저 우리가 걸어가는 이 길 앞에 무엇이 있는지 보여주고 싶을 뿐이지.”



- 폴 칼라니티 <When Breath Becomes Air>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