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ry 378

200929

먹고 싶은 디저트가 있었는데, 가고 싶은 곳이 있었는데, 저녁의 선선한 날씨를 좀 더 느끼고 싶었는데 하나 둘 하고 싶은 것들을 참고 억누르다가 결국 늦은 시간에 냉장고를 뒤지고 눈에 잡히는 것들을 꺼내 먹었다 결국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다른 사람의 잣대로 억누르지 말고 내 안의 욕구에 세심히 귀 기울이고 성실하게 해소하기 라는 교훈을 되새기고 내일도 내일 모레도 모두 충분하게 행복할 거라고 행복하기 위해, 온 노력을 다 할 거라고 스스로에게 약속하기

Diary 2020.09.29

200910

내가 좋은 사람이어야 내 마음이 편하다. 내가 좋은 사람으로 평가받기를 원하는 건 이 이기적인 이유이다. 회사에서 일 잘하는 후배를 잘하고 있다고 칭찬해주려는 욕심이 앞서서 반대로 다른 사람을 후려치는 꼴이 되버렸는데, 그 일이 나를 마음 불편하게 만든 건 바로 그런 이유에서였다. 어쨌든 칭찬도 시기 적절하게, 신중하게 해야함을 깨닫는 기회가 되었고 게다가 이미 내뱉은 말을, 지나간 시간을 돌이킬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렇게 하루 종일 마음이 불편해져버린 날. 퇴근 후에 나는 다시 이 불편함을 폭식에 가까운 과식으로 해소시키려 했다. 그건 몸을 더 힘들게 해서 마음의 부대낌을 느낄 수 없게 하는 것일 뿐이다. 해결되는 건 아무 것도 없는. 내일의 내가 다시 그 곳으로 출근하여 당면한 상황과 달라진 온도를..

Diary 2020.09.12

200826 / 걷는 사람

휴무일이라고 마음이 풀려서 아침에 천 칼로리 넘게 먹고 우울해지려던 찰나, 마침 하정우 에세이 '걷는 사람'에서 다음 구절을 읽고 몸을 일으켜 홈트를 하고 하루의 시작을 수습할 수 있었다. - 아침이면 침대에 누워서 하게 되는 생각들이 있다. ‘조금만 더 누워 있자. 오늘 딱 하루만이야…… 아, 그런데 나는 항상 왜 이 모양일까?’ 이런 생각들에는 언제나 지고 만다. 그럼 이 부정적인 생각들을 이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와는 정반대의 건강한 생각들을 해야 할까? 이를테면 아침 운동의 좋은 점에 대하여? ‘아침에 운동하면 건강해지고 하루를 성실하게 시작할 수 있으니 그만 일어나자! 넌 할 수 있어!’ 이건 좀 아닌 것 같다. 지친 내 몸을 소외시키고 다그치는 이런 얘기는 피로한 나에게 먹히지 않는다. ..

Diary 2020.08.26

200824

남에게 어떻게 보여지는가를 신경쓰는 것, 어떻게 보여졌던가를 곱씹는 것은 대개 아무 의미가 없다. 선하고 밝은 모습이든, 독하고 이기적인 모습이든 그 모든 것이 다 나의 일면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복합적이고 입체적인 존재다. 다만 그 순간 그 때의 정황에 따라 드러낸 모습이 상대방에게 하나의 인상을 새길 뿐이다. 고로 모든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고 싶다는 생각은 (그 모두에게 아주 오랜 시간 나의 입체성을 낱낱이 드러내지 않는 한) 불가능한 목표에 가깝다. 나쁜 습관을 고치고, 좋은 말과 행동을 더 자주 드러내려고 노력하는 것만이 의미 있는 일이다. 아울러 매 순간 진심으로, 솔직하게, 최선을 다한다면 적어도 후회를 남기는 일은 없을 것이다. 좋건 아니건 언제나 진정한 나를 표현하고 드러낸 것이기에.

Diary 2020.08.24

당고를 먹고 나서

집 근처 홈플러스 익스프레스에서 장을 보다가 요새 떡 같은 쫄깃한 식감의 음식이 계속 먹고 싶었던 것이 떠올라 당고를 사왔다. 당고를 다 먹고, 플레인 요거트에 볶은 오트밀을 조금 섞어서 좀 더 먹었다. 그리고서 핸드폰으로 이런저런 쓸모 없고 자극적인 연예 기사를 넘겨 보았다. 그러다가 문득 계속해서 당고를 더 먹고 싶다고 생각하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달고 쫀득함. 새롭고 즐거움. 당고를 먹는 느낌과 감정이 주는 만족감과 쾌락을 뇌에서 계속해서 원하고 있는 것이다. 쾌감을 더 요구하는 내 머릿 속을 바라보고, 바라보고, 바라본다. 내가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어떤 상태인지를 들끓는 마음이 아닌 이성적인 사고로 알아차리고 바라보는 것. 그 것이 욕구를 이해하고 다스리는 첫 번째 관문이라고 읽은 바 있음을..

Diary 2020.07.07

200629

며칠 전에 동생이 시킨 택배 박스에서 바퀴벌레가 나왔다. 처리를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지만 (아마 동생 성격상 꼼꼼하게 처리하지 않고 대충 눈에 보인 벌레만 죽이고 아무데나 버렸을 듯) 그 후로 매일 한 두마리씩 작은 바퀴벌레가 보이기 시작했다. 페스트세븐을 사서 뿌려놨더니 뒤집어 누운 채로 계속해서 발견되고 있다. 어제는 밤에 몸이 간지러워서 잠이 깼는데 (진드기도 창궐하는 모양) 방문 틈 근처에서 유유히 걸어가는 새끼 바퀴벌레를 또 발견했다. 결국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일어나서 대충 홈트를 하고 집 근처 약국에서 진드기 스프레이, 진드기 퇴치 시트, 맥스포스겔을 샀다. 맥스포스겔을 트랩 안에 짜서 5군데 정도 부엌과 거실, 택배 박스를 정리하는 바깥쪽에 놔두었는데 조금만 짰는데도 냄새가 진동을 한다. ..

Diary 2020.06.29

200627

십대 때부터 품고 살아왔던 이상적인 나의 모습은 40키로 중반의 가느다란 팔과 다리, 마른 얼굴선이었다. 취직 후 자연스레 이상에서 멀어지게 된 나의 모습을 닦달하고 실망하고 채찍질하고 내 가치를 평가 절하하는 짓으로 내 이십대의 시간은 점철되어 버렸다. 아직도 우아하고 가느다란 몸과 얼굴을 동경하고 이상적인 기준에서 멀어진 나의 모습에 자주 실망하지만, 그래도 예전만큼 내 온 하루와 정신을 거기에 집착하며 쏟아 붓지는 않는다. 좀 더 건강하고 지속가능한 아름다움을 나의 새로운 이상으로 삼고, 거기에 가까워지도록 노력하되, 현재의 모습으로도 충분히 아름답고 빛날 수 있는 사람임을 스스로에게 계속 상기시켜 주자. 내가 되고자 하는 모습과 얻고자 하는 아우라에 가까워 질 수 있는 습관, 행동, 취향을 실행하..

Diary 2020.06.27

슬프고 씁쓸하고 담담한 하루

오후에 아빠와 잠시 거실에서 이야기를 나눴다. 약간의 거리를 두고 서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빠 몸에서는 땀내와 뒤섞인 술과 담배에 쩔은 악취가 전해졌다. 아빠는 먼 시골에서 상경해서 돈을 벌면서 야간 학교를 다녔고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따고 사무소를 차리셨다. 한때는 여러 직원들을 두기도 하였다. 그러나 사업은 쉽지 않았다. 그리고 연이은 불운한 선택으로 인해 아빠가 모았던 자산은 손가락 틈 사이를 빠져나가는 모래알처럼 술술술 흩어져 버렸다. 나는 초등학교때부터 아빠를 미워해왔다. 아빠는 엄마를 때렸고 심한 욕을 했고 매일 밤 술에 취해 있었다. 화장실 욕조 바닥이 담배 꽁초로 가득 채워져 있던 장면을 생생히 기억한다. 아빠 때문에 엄마는 불행했고 나와 동생은 씻을 수 없는 트라우마를 갖게 되었다. 우리 집..

Diary 2020.06.25

인사 잘 하기

- 인사는 내가 상대방의 존재를 존중한다고 말하는 최소한의 예의다 - 즉 인사를 안하는 것은 상대방의 존재함을 존중하지 않는 건방진 태도이다 - 사회생활에 있어 인사는 받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오직 주는 데 의의가 있는 행동이다 상대방의 반응을 두려워하지 말고, 생각하지 말고, 기계적으로라도 꼭 인사 하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하기! (ง •̀_•́)ง

Diary 2020.05.15

궁금한 것

나는 가끔 먹는다는 행위를 통해 나를 증명하려고 한다. 특히 심심한 날. 귀중한 주말이 무료하게 흘러갈 때. 혹은 오염되고 때묻은 하루의 남은 시간에. 뭔가 화려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음으로써 내가 소중하고 귀한 존재임을 내 시간의 값짐을 증명하려고 혹은 보상받으려고 그러는 건가 만족은 찰나일 뿐이고 지속되는 것은 후회와 자기혐오 뿐인데 ㅠㅠ - 그래서 오늘 과식한 것 : 크림치즈를 듬뿍 바른 건포도깜빠뉴, 에그타르트, 생초콜릿, 그리고 냉장고에 있던 동생꺼 식량 몇가지

Diary 2020.05.09

200418

오늘 먹은 것들. 더 늦잠을 자고 싶었지만 동생이 부엌에서 달그락거리면서 아침을 준비하는 소리에 일찍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매일 하는 루틴으로 한시간 공복 운동을 한 뒤 액상홍차를 탄 두유와 작은 크로와상을 아침으로 먹었다. 마을 버스로 15분 남짓한 거리에 있는 구립 도서관에 갔는데 코로나 때문에 회원가입을 할 수 없다는 사실만 확인하고 돌아왔다. 집으로 오는 길에 퇴근한 아빠를 만났다. 손님이 없어서 일찍 퇴근해버렸다는 아빠와 두부 가게에 들렀다. 딸이 참 예쁘다는 아주머니의 말에 둘째딸은 더 이뻐, 라고 자랑스럽게 아빠는 대답했다. 나는 동생과 비교하면서 나를 깎아내리는 부모님에게 더 이상 나의 존재 가치를 폄하당하지 않겠다고 다짐해왔고 이제는 거기에 심각하게 흔들리지도 않지만 그래도 마음이 조금..

Diary 2020.04.18

191203

행복해지고 싶어 보다는 불행해지기 싫어 란 생각이 오늘 흔들리는 나를 더 단단히 붙잡아 주었다 근검 절약 자제를 올바른 삶의 태도로 여기며 살아가기로 다짐한지라 최근 사는(buying) 재미를 멀리하고 지냈다 그런데 요 며칠간 유난히 내 얼굴이 못생겨보였고 뒤룩뒤룩 살이 붙은 몸을 거울로 비춰볼 때마다 우울해졌고 그런데도 매일 저녁마다 계획보다 더 많이 먹어버리는 나 자신이 너무 너무 너무 싫고 우울했다 아스팔트에 내 몸과 얼굴을 패대기치고 뭉게버리고 싶을만큼 나 자신이 미웠다 그래서 이런 우울한 기분에 대처하기 위해 오늘 저녁도 빵과 과자라는 값싼 위로를 선택하려다가, 마음을 다잡고 기력을 겨우 끌어올려서 버스를 타고 ddp에 갔다 귀여운 엽서와 포스트잇과 신년 캘린더를 샀다 쇼핑하고 걸으며 돌아다니는..

Diary 2019.12.03

우울하다우울해

내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이 내 기분과 가장 멀리 있는 것처럼 느껴져서 나도 이해할 수 없는 내 마음을 다른 사람이 온전히 알아주지 않는다는게 이렇게까지 분통하고 우울해 해야 할 일인가 싶지만서도 내가 부족하고 경솔하여 저지른 실수들이 나의 오늘에 흩뿌려져 따끔거린다 모든 게 성에 차지 않고 불만족스럽고 배가 아프고 살이 찌고 위액이 부글부글 올라온다

Diary 2019.11.28

191123

빵집은 위험하다. 빵집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는 오감을 무자비하게 자극한다. 문을 열자마자 쏟아지는 설탕과 시나몬의 달콤한 냄새. 몽롱하게 이성을 흐트러뜨리는 어둡고 노란 불빛. 순식간에 바깥과 다른 시공간으로 빠져들어버린듯 마법적인 느낌을 연출한다. 먹지 않고 사지 않겠다던 굳은 결심은 빵집 안에서 스르르 녹아 흩어진다. 이성적이고 추하고 모든 의욕과 입맛을 떨어트리는 외부 현실과의 완벽한 차단을 위한 이러한 빵집의 연출적인 요소가, 다만 지나치면, 공간적 답답함을 느끼도록 만든다. 카페보다 빵집의 좌석에 오래 머물기 힘든 이유가 그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유있게 머물기 위해서는 창이 크고 햇빛이 밝게 쏟아지고 차가운 공기가 스며드는 카페를 골라 가도록 하자. 물론 이런 실내 조건을 만족하는 카페 겸 빵집..

Diary 2019.11.23

191015

나를 초라하고 보잘 것 없는 것처럼 느끼게 하고 모든 게 다 내 잘못인 것처럼 쏘아대던 말에 상처받았던 나를 위로한다. 그 말들은 가족들, 특히 나의 어머니에게서 던져진 것이었다. 엄마는 날 위한 조언이라며 필터링 없이 적나라하고 무자비한 말로 나를 상처입히는 최고의 악플러였다. 어른이 된지 한참이 더 지나서야 나는 엄마가 항상 옳고 현명한 사람이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다. 요즈음 엄마가 아름답고 매혹적인 중년 여성에서 할머니로 접어드는 순간을 쉴새 없이 목격하는 것이 마음 쓰리기는 하지만, 동시에 엄마가 다른 사람을 상처 주고 비하하는 말을 얼마나 적나라하게 또 무심하게 내뱉는가를 좀 더 비판적이고 냉소적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 덕분에 나 자신을 이렇게 다독이며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그때 너..

Diary 2019.10.15

실패한 날을 다루는 자세

인생은 끝없는 실패와 끊임없는 재시작의 반복이다. 이미 미끄러진 후라면? 다시 일어나는 것 외에 달리 방법이 없듯이. 실패로부터 얻은 교훈과 깨달음을 바탕으로 그 다음 장애물에는 걸리지 않도록 하는 것이 최선의 대처이다. - 어느 누구도 과거로 돌아가 새롭게 시작할 수는 없지만, 지금부터 시작해 새로운 결말을 맺을 수는 있다 (카를 바르트)

Diary 2019.09.27

190926

평일 저녁이어서 그런가 가로수길 베이커리 카페에는 손님 없이 텅 비어있었다. 덕분에 루프탑을 전세 내고 먹을 수 있었지만. 오픈 샌드위치는 맛있었고 커피도 나쁘지 않았는데 속이 쓰리다. 초라할 정도로 평범하고 무료한 하루를 보내고, 예쁜 공간에서 예쁜 저녁을 먹는 것으로 인생의 채도를 높여보려 했으나 아무래도 오늘은 치얼업 실패. 저녁 값으로 만사천원이라는 거금을 쓴 게 문제였던 듯하다. 내일 아침은 프렌치토스트를 구워가고 점심은 팀점으로 법카로 해결해야지. 저녁도 집밥으로 절약모드로 ❛ ֊❛

Diary 2019.09.26

190925

매주 세번 청구역과 신당역 사이에 있는 필라테스 센터에 가는데 센터 옆에 붉은 색 벽돌로 된 건물이 있다. 붉은 색 벽돌로 지어진 정갈한 모양의 건축은 기묘한 설레임과 경건함 그 중간쯤 되는 기분을 불러일으킨다. 내게 익숙한 붉은 벽돌 건물들에는 대학로 아르코미술관, 광희동 정동교회가 있는데 둘 다 무척 아름답다 (교회는 안에 들어가 보지는 못했지만). 검색해보니 필라테스 학원 근처에 있는 건물은 몰몬교 교회라고 함. 붉은 사각형 건물이 종교적 경건함과 영적 신비로움을 표현하는 것 같기도.

Diary 2019.09.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