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에 아빠와 잠시 거실에서 이야기를 나눴다. 약간의 거리를 두고 서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빠 몸에서는 땀내와 뒤섞인 술과 담배에 쩔은 악취가 전해졌다.
아빠는 먼 시골에서 상경해서 돈을 벌면서 야간 학교를 다녔고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따고 사무소를 차리셨다. 한때는 여러 직원들을 두기도 하였다. 그러나 사업은 쉽지 않았다. 그리고 연이은 불운한 선택으로 인해 아빠가 모았던 자산은 손가락 틈 사이를 빠져나가는 모래알처럼 술술술 흩어져 버렸다.
나는 초등학교때부터 아빠를 미워해왔다. 아빠는 엄마를 때렸고 심한 욕을 했고 매일 밤 술에 취해 있었다. 화장실 욕조 바닥이 담배 꽁초로 가득 채워져 있던 장면을 생생히 기억한다. 아빠 때문에 엄마는 불행했고 나와 동생은 씻을 수 없는 트라우마를 갖게 되었다. 우리 집은 가난하고 불행했고 지금도 가난하며 그건 다 아빠 때문이다, 라고 생각했다.
물론 대기업에 다니는 첫 딸과 교사를 하는 막내딸을 둔 가족이 가난하다는 것은 주택공사의 청약 기준 상으로는 인정되지 않는다. 그러나 5천만원 안팎의 주택 보증금이 전 자산이고, 악착같이 아끼고 모아 저축해도 투자 수익률은 마이너스인데, 어디에도 오를 사다리가 없는 상황에서 우리 집더러 가난하지 않다는 정부의 기준을 나는 이해할 수 없다.
좋거나 나쁘거나. 사랑하거나 증오하거나. 누군가에 대한 감정을 이분법적으로 결정하는 건 인간의 본능적인 효율적 사고 방식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나는 아빠를 증오하고, 미워하는 쪽으로 꾸준히 마음을 다잡아왔다. 집에서는 아빠를 쳐다보지도 않았고 문을 닫고 귀를 막았고 마음을 잠궜다. 대학에 입학하고 얼마 되지 않아 학교 근처로 바로 자취방을 잡아 나와 살았다. 그가 나와 동생을 위해 많은 것을 희생하셨다는 점은 애써 무시하거나 또는 당연하다고 생각해 버렸다. 아빠는 정말로 자신의 인생 전부를 우리를 위해 바쳤는데도.
오늘 잠시 대화를 나누는 동안 아빠는 참 똑똑하고 부지런한 사람이었구나, 라는 점을 새삼 깨달았다. 단지 사는 동안 몇 차례 잘못된 선택을 반복했던 불운한 인생이었을뿐.
여전히 아빠는 매일 술을 두 병씩 마셔야 잠이 들고, 아빠 방에 들어가면 오래 밴 끔찍한 담배 냄새로 인해 숨 쉬기가 힘들다. 그래도 이제는 내가 집에서 보는 모습 외에 그동안 몰랐던, 아니 모른 척 해왔던 아빠의 모습들을 조금씩 더 발견하고, 그런 모습의 아빠와 조금 더 많이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