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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803

큰 일이였던 원룸 구하기를 포기하고 (일단 집에서 회사를 다녀보고 자취할지 결정하기로 함) 그 이후에 자질구레한 일들은 더 신경쓰기 싫어서였을까, 크고 작은 바보짓들을 저지르고 있다. 대개 급한 성격 때문에 서둘러 일을 결정하거나 동시에 여러 일을 해치우려다가 일어난 사고다. 벽등을 샀는데 전구를 같이 주문하지 않아 다이소를 뒤지다가 결국 인터넷으로 주문한 것, 알고 보니 벽에 나사를 박아야 하는 제품이었던 것, 꼭꼬핀을 주문해 걸어봤지만 도저히 답이 안 나와서 배송비만 만원 넘게 날리고 반품하게 생긴 것, 남자친구에게 선물한 베개가 맞지 않는다고 당근마켓에 너무 헐값에 올린 것(이건 사실 관점에 따라 다르겠지만 아무튼 남자친구한테 엄청 혼남). 그 외 여러가지 기억이 다 나지 않는 수없이 많은 바보짓을..

Diary 2021.08.03

210617

- 일기예보상으로 비 내리기 두 시간 전. 낮은 채도의 한강 공원을 걷고 있다. 하늘과 강물이 모두 탁한 소라색인 부드러운 풍경. 내 마음이 비슷한 채도여서 그런지, 맑은 날씨보다 오히려 편안하게 느껴진다. 젖은 풀잎 냄새가 좋다. - 사회생활을 하면서 괴로워지는 원인 중의 하나는 내가 생각하는 나와 남이 평가하는 나 간에 간극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내 진심은 그게 아니었는데, 나의 선한 마음이 왜곡된 채 전달되어 상대방에게 오해를 샀다고 느껴지는 날. 혹은 나의 악하고 부족한 모습이 지나치게 부풀려진 것처럼 보일 때. '난 그런 사람이 아니야, 난 너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나은 사람이야' 하는 마음에 괴롭고, 심지어 내 본 모습과 진심을 알아주지 못하는 상대방이 미워지기도 한다. 그러나 나와 남..

Diary 2021.06.17

210607

내가 요즘 잘 하고 있는건지, 잘할 수 있는 사람인건지, 의심이 들고, 나 자신이 마냥 못난 사람인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오늘이 그런 날이었다. 온라인 승급 교육에서는 엉겹결에 팀장을 맡았는데 리딩을 잘하지 못해 팀 분위기를 다운시킨 것 같고, 회사에서는 기획한 행사에 예상치 못한 변수가 생겼고, 이직을 준비 중인 곳에서는 기본 연봉을 후려치기 당했지만 커리어 핏이 충분히 맞지 않는 포지션이라 을의 입장이라는 생각이 들어 두 번 리젝하지 못하고 프로포절에 사인해 버렸다. 요새 일찍 일어나기가 너무 힘들어서 며칠째 아침 운동을 하지 못했는데 이 때문에 (매일 아침 운동에서 얻었던 사소한 성취감 및 에너지를 얻지 못한 탓에) 더욱 자존감이 떨어진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오늘 저녁에는 작은 성취감을 느..

Diary 2021.06.07

작은 여행, 다녀오겠습니다

1. 집으로 돌아오면 이미 몸은 녹초가 된 상태였죠. 그렇게들 빛난다고 하는 젊음인데 저의 하루는 ‘일’과 ‘잠’ 두 가지로 채워져 있었습니다. ‘나’라는 존재가 점점 사라지는 기분이었어요. 한 사람이 하루에 쓸 수 있는 에너지가 100이라면, 퇴근할 때쯤 제 몸에 남은 에너지는 10퍼센트 이하였습니다. 어느 날 지칠 대로 지친 몸을 끌고 침대로 들어가려는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이대로 잠들기엔 너무 아쉽다.’ 이렇게 삭막한 하루들만 쌓인다면 10년 뒤 내 삶이 어떤 모습일지 가늠이 되지 않았습니다. 내 몸에 남은 약간의 에너지를 써서라도 뭔가 다른 일을 해보고 싶었습니다. 피로함에 눈이 반쯤 감긴 나 자신에게 간절한 마음으로 주문을 걸었습니다. ‘그래, 작은 여행을 떠나자. 집 근처 카페로, ..

Review 2021.06.06

210531

1. 시간에 닳아지는 것을 슬퍼하지 말자.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보존되는 상태는 사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시간의 흐름에 맞서는 만큼 또 많은 가치를(다양한 경험의 기회를) 잃고 있는 것이다. 닳아지는 만큼 얻는 것이 있다. 내가 잃어버리고 있는 것과 그 댓가로 얻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응시하고 분명하게 파악해야 한다. 2. 세상에 닳는다는 것은 곧, 나를 둘러싼 세계에 무뎌진다는 것이기도 하다. *무뎌지지 않기 위해서 할 것 : 좋은 책을 읽고 영화를 보기. 잘 알려지지 않은 멋진 음악을 발견하기. 새로운 공간을 탐험하기.

Diary 2021.05.31

IT 좀 아는 사람

- 스포티파이의 맞춤 추천 알고리즘 먼저 두 가지 기본 정보를 확인한다. 첫째, 각 사용자가 듣고 마음에 들어서 라이브러리나 플레이리스트에 추가한 노래가 무엇인지 본다. 반대로 30초도 안 듣고 건너뛴 노래는 좋아하지 않는 것으로 간주한다. 둘째, 다른 사용자들이 만든 플레이리스트를 본다. '조깅용 노래'나 '비틀즈 베스트' 같은 플레이리스트에서 주제의 연관성을 파악하는 것이다. 스포티파이는 이렇게 확보한 데이터로 두 가지 방식을 이용해서 추천곡을 선정한다. 첫 번째는 두 개의 데이터세트dataset를 비교해서 사용자가 좋아하는 노래와 연관성이 있는 새로운 노래를 찾는 것이다. 만약에 A가 만든 플레이리스트에 8곡이 담겨 있는데 그 중 7곡이 B의 보관함에 있다고 해보자. 그러면 B는 A 스타일의 노래를..

Review 2021.05.22

210519

간만에 쉬는 날을 쉬는 날답게 보내자고 마음 먹고 삼청동으로 나왔다. 갤러리 몇 개를 둘러보고 경복궁 돌담길을 빙 돌아 서촌 북카페까지 걸어서 들어왔다. 이제 오후의 햇빛은 여름이라고 할 법한 강도로 뜨거워졌다. 꼼짝없이 반팔을 입어야 하는 날씨가 되었다. 작년 하반기부터 계속 이직을 준비하고 있다. 쉬는 날에도 이력서를 쓰고 면접 준비를 하고 또 몇 군데 면접을 치르고, 그렇게 완전히 충전되지 못한 채 배터리가 간당간당한 몸과 마음으로 버티어 오고 있다. 그래서 서촌의 카페에서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시간을 보내는 지금 이 순간이 낯설고 불편하다. 미래에 잘 살기 위해 지금 내가 해야 할 일들과 생각해야 하는 것들, 결정해야 하는 것들이 너무 많다. 다음 주에 봐야 하는 면접들, 아직 확인하지 못한 링크..

Diary 2021.05.19

나에게 맞는 속도로 걷기

이직을 위해서 쉬는 날에도 자기소개서 쓰고, 면접을 준비하고, 면접을 보러 다니는 나날이 반 년째 지속되고 있다. 회사도 너무 바빠서 밤 늦게 때로는 새벽까지 일하고 퇴근하고, 스트레스성 과식과 야식을 먹고, 다음 날 피곤에 찌든 채로 이직 준비를 하고, 그런 나날이 쳇바퀴 돌듯 이어지다보니 몸과 마음이 많이 낡은 기분이다. 최근에 하트시그널 프렌즈를 보기 시작했는데, 내 또래 나이 삼십대 초반의 사람들이 맛있는 것을 먹으면서 대화하고 예쁜 동네를 다니고 여행하고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걸 보면서 간접적으로 힐링과 휴식을 하는 느낌이 들었다. 지금 아둥바둥 살고 있는 내 모습이 대조적으로 짠하게 느껴지기보다, 그냥 나도 종종 짊어지고 있는 짐들을 내려놓고, 쉬기도 하고 맑은 날씨도 누리면서 나에게 맞는 속..

Diary 2021.05.15

감정의 물성

- 나는 이모셔널 솔리드의 물건들이 효과가 있다는 말을 믿지 않았다. 마음 치유 효과를 가진다는 아로마 오일이나 향초처럼 어디까지나 쓰는 사람의 기분에 달린 물건이라고 생각했다. 그보다는 ‘왜 그런 물건들을 굳이 사려는 사람들이 존재하는가’ 쪽이 나의 주된 의문이었다. 어쨌거나 ‘행복’, ‘침착함’ 같은 감정이 주로 팔리고 있다면 대중들이 플라시보 효과에 의존하여 위안을 얻으려는 것이라고 이해해볼 수 있을 텐데, 부정적인 감정들조차도 잘 팔려나가고 있다는 것이 정말 이상했다. 대체 돈을 주고 우울해지려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돈이 너무 많아서 행복감마저 주체할 수가 없는 것일까? 그렇게 삐딱한 생각을 하며 나는 감정의 물성이 유행하는 현상을 지켜보았다. - "왜 ‘증오’와 ‘분노’ 같은 감정들이 팔려나가죠..

Review 2021.03.03

일인칭 단수

- 열아홉 살 무렵의 나는 내 마음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거의 알지 못했고, 당연히 타인의 마음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도 제대로 알지 못했다. 그래도 기쁨이나 슬픔이 뭔지는 대충 알고 있다고 내 딴은 생각했었다. 다만 기쁨과 슬픔 사이에 있는 수많은 현상을, 그것들의 위치관계를 아직 잘 분간하지 못했을 뿐이다. 그리고 그 사실은 종종 나를 몹시 불안하고 무력하게 만들었다. - "우리 인생에는 가끔 그런 일이 일어나. 설명이 안 되고 이치에도 맞지 않는, 그렇지만 마음만은 지독히 흐트러지는 사건이. 그런 때는 아무 생각 말고, 고민도 하지 말고, 그저 눈을 감고 지나가게 두는 수밖에 없지 않을까. 커다란 파도 밑을 빠져나갈 때처럼." 아는 동생은 한동안 말없이 그 커다란 파도를 생각한다. 경력이 오랜 서퍼인지라..

Review 2021.02.16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

- 말로 나를 지키는 방법도 이와 같지 않을까? 사람들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상처를 받고 예민하게 반응한다는 것은 분명 내 말과 마음이 약해져 있다는 뜻이다. 그럴수록 좋은 말에, 때로는 상처가 되는 말에도 기꺼이 나를 노출시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화’를 해야 한다. - 사람들에게 인기 있고 존경받는 사람들은 상처가 없는 사람이 아니다. 자신의 상처를 잘 보살피고 그것을 품위 있게 드러내는 사람이다. 내게 상처를 준 사람들에게 일일이 가시를 드러내면 그들의 좋은 면을 알아보는 감각이 무뎌진다. 결국 그 가시를 다 드러내고 살면 초라한 인간관계만 남을 것이다. 누구나 ‘보이지 않는 어두운 면’을 갖고 있다. 그래서 상처를 받지 않고 사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자신이 무엇에 가장 힘들어..

Review 2021.02.14

2021 트렌드노트

- 혼자만의 시공간이 중요하다, 불편한 사회적 관계는 거부하고 은밀하고 느슨한 취향 기반의 연대를 모색한다, 가족과 집은 1인 가구 시대에도 여전히 중요하다, 디지털 월드의 방대한 정보와 플랫폼, 똑똑한 소비자는 탐색하고 조합하여 전문가가 된다, 이런 시대에 브랜드는 인간처럼 굴어야 한다, 자신의 캐릭터를 분명히 하고 솔직하고 투명하게 소통해야 한다. - 규칙적으로 하는 일의 순서와 방법을 의미하는 ‘루틴’(routine)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으며, 영역도 확장돼 스킨케어나 건강뿐 아니라 일상과 휴식의 순간에도 루틴을 만들고 있다. 루틴은 거창한 이벤트가 아니다. 본인에게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지 선언하고 스스로 지켜가는 것이다. 자기만의 시간을 확보했기에 가능하고, 스스로 시간을 통제할 능..

Review 2021.01.24

스토너

-스토너는 1891년에 미주리 주 중부 분빌 마을 근처의 작은 농가에서 태어났다. 미주리 대학이 있는 컬럼비아에서 약 40마일 떨어진 곳이었다. 그가 태어났을 떄 그의 부모는 젊은 나이였지만(아버지는 스물다섯살, 어머니는 겨우 스무 살), 어렸을 때부터 그에게 부모는 항상 늙은 사람이었다. 아버지는 서른 살 때 이미 쉰 살처럼 보였다. 노동으로 인해 몸이 구부정해진 아버지는 아무 희망 없는 눈으로 식구들을 근근이 먹여 살리는 척박한 땅을 지긋이 바라보곤 했다. 어머니는 삶을 인내했다. 마치 생애 전체가 반드시 참아내야 하는 긴 한 순간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윌리엄 스토너는 자신이 기억하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집안일을 거들어야 했다. 여섯 살 때는 앙상하게 마른 암소들의 젖을 짜고, 집에서 몇..

Review 2021.0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