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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인칭 단수

- 열아홉 살 무렵의 나는 내 마음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거의 알지 못했고, 당연히 타인의 마음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도 제대로 알지 못했다. 그래도 기쁨이나 슬픔이 뭔지는 대충 알고 있다고 내 딴은 생각했었다. 다만 기쁨과 슬픔 사이에 있는 수많은 현상을, 그것들의 위치관계를 아직 잘 분간하지 못했을 뿐이다. 그리고 그 사실은 종종 나를 몹시 불안하고 무력하게 만들었다. - "우리 인생에는 가끔 그런 일이 일어나. 설명이 안 되고 이치에도 맞지 않는, 그렇지만 마음만은 지독히 흐트러지는 사건이. 그런 때는 아무 생각 말고, 고민도 하지 말고, 그저 눈을 감고 지나가게 두는 수밖에 없지 않을까. 커다란 파도 밑을 빠져나갈 때처럼." 아는 동생은 한동안 말없이 그 커다란 파도를 생각한다. 경력이 오랜 서퍼인지라..

Review 2021.02.16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

- 말로 나를 지키는 방법도 이와 같지 않을까? 사람들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상처를 받고 예민하게 반응한다는 것은 분명 내 말과 마음이 약해져 있다는 뜻이다. 그럴수록 좋은 말에, 때로는 상처가 되는 말에도 기꺼이 나를 노출시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화’를 해야 한다. - 사람들에게 인기 있고 존경받는 사람들은 상처가 없는 사람이 아니다. 자신의 상처를 잘 보살피고 그것을 품위 있게 드러내는 사람이다. 내게 상처를 준 사람들에게 일일이 가시를 드러내면 그들의 좋은 면을 알아보는 감각이 무뎌진다. 결국 그 가시를 다 드러내고 살면 초라한 인간관계만 남을 것이다. 누구나 ‘보이지 않는 어두운 면’을 갖고 있다. 그래서 상처를 받지 않고 사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자신이 무엇에 가장 힘들어..

Review 2021.02.14

2021 트렌드노트

- 혼자만의 시공간이 중요하다, 불편한 사회적 관계는 거부하고 은밀하고 느슨한 취향 기반의 연대를 모색한다, 가족과 집은 1인 가구 시대에도 여전히 중요하다, 디지털 월드의 방대한 정보와 플랫폼, 똑똑한 소비자는 탐색하고 조합하여 전문가가 된다, 이런 시대에 브랜드는 인간처럼 굴어야 한다, 자신의 캐릭터를 분명히 하고 솔직하고 투명하게 소통해야 한다. - 규칙적으로 하는 일의 순서와 방법을 의미하는 ‘루틴’(routine)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으며, 영역도 확장돼 스킨케어나 건강뿐 아니라 일상과 휴식의 순간에도 루틴을 만들고 있다. 루틴은 거창한 이벤트가 아니다. 본인에게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지 선언하고 스스로 지켜가는 것이다. 자기만의 시간을 확보했기에 가능하고, 스스로 시간을 통제할 능..

Review 2021.01.24

스토너

-스토너는 1891년에 미주리 주 중부 분빌 마을 근처의 작은 농가에서 태어났다. 미주리 대학이 있는 컬럼비아에서 약 40마일 떨어진 곳이었다. 그가 태어났을 떄 그의 부모는 젊은 나이였지만(아버지는 스물다섯살, 어머니는 겨우 스무 살), 어렸을 때부터 그에게 부모는 항상 늙은 사람이었다. 아버지는 서른 살 때 이미 쉰 살처럼 보였다. 노동으로 인해 몸이 구부정해진 아버지는 아무 희망 없는 눈으로 식구들을 근근이 먹여 살리는 척박한 땅을 지긋이 바라보곤 했다. 어머니는 삶을 인내했다. 마치 생애 전체가 반드시 참아내야 하는 긴 한 순간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윌리엄 스토너는 자신이 기억하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집안일을 거들어야 했다. 여섯 살 때는 앙상하게 마른 암소들의 젖을 짜고, 집에서 몇..

Review 2021.01.04

미운 사람에 대하여

최근 새로 팀에 들어온 아이가 눈엣가시처럼 성가셔지기 시작했다. 새로운 일에 대한 열정도 없고, 일의 퀄리티도 한참 떨어지고, 게다가 얼마 전 일을 시켜놨더니 온몸으로 싫어하는 티를 내는(타자를 탁탁 치는 것을보면 알 수 있다) 걸 보고 빈정이 팍 상했다. 그런데 최근 내 마음을 제일 어지럽힌 건, 그 애가 마음에 안든다는 사실보다도 내가 누군가를 싫어한다는 것, 그리고 그게 (내가 추구하는) '좋은 사람'의 마인드가 아니라는 어떤 도덕 의식이었다. 나는 초등학교 때 따돌림을 당한 적이 있다. 같은 조가 된 아이들 중 몇 명이 비밀일기를 쓰자고 했는데, 비밀 일기장을 쓰지 않는 다른 아이가 배척당하고 외로움을 느끼게 되면 안 된다는 생각에 "나는 비밀일기를 쓰지 않을게" 라고 했다가 도리어 그들로부터 배..

Diary 2020.12.29

풍경의 쓸모

- 아버지는 전보다 더 늙어 있었다. 아마 아버지의 눈에 비친 나도 그랬을 거다. 입을 열었다. 될 수 있는 한 빨리 대화를 맺고 자리를 뜨고 싶어서였다. —어디 아프세요? 아버지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구나. 그렇겠지. 차마 그냥 달라고는 못하겠으니까 빌려달라는 거구나. 아버지 생애에 그걸 갚을 수 있을까. 연민 대신 짜증이 솟구쳤다. —뭐, 암이라도 걸리셨어요? 아버지가 다시 고개를 주억거렸다. 나도 모르게 쓴웃음이 났다. ‘암이라니, 참 전형적으로 사신다……’ —어디가요? 아버지가 기름기 없이 부르튼 입술을 달싹이다 입을 열었다. —아니. 나 말고. 그 사람. - —정우야. —어? —무슨 일 있어? —아니. —그런데 표정이 왜 그래 어떤 수사도 채근도 표정도 감정도 담기지 않은 부고訃告였다...

Review 2020.12.26

자꾸 낯선 경험을 발굴해야 하는 이유

익숙하지 않은 낯선 일들을 하거나 낯선 세계에 발을 디딜 때, 우리의 생각은 환기가 된다. 빡빡하게 조여진 마음이 풀어진다. 내 시야를 덮고 있던 것들이 걷히면 내가 머물던 세계 너머를 보는 시야를 갖게 된다. 내 삶의 지경이 넓어지는 건 당연하다. - 신소영, 중에서 쉬는 날 귀찮더라도 가능한 부지런히, 낯선 공간과 경험에 나를 계속 노출시켜야 하는 이유.

Review 2020.12.19

2020 트렌드노트

기술 발전이 진화할수록 더 고도화된 타기팅과 큐레이팅으로 소비자가 ‘사려고 하는 것’이 정확한 타이밍에 제시될 것이다. 이처럼 고객의 니즈에 맞춰 정확한 상품을 제시하는 것은 실용의 영역에 가깝다. 아마존의 모토인 싸고 빠르게 원하는 물건을 가져다주는 미덕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 소비에는 개인적인 환상이나 상상력이 개입할 여지가 적다. 소비의 세상에서 환상과 상상력은 매력소비에서 작동한다. 갖고 싶지도 않았던 물건이 갑자기 ‘나를 위한 선물’로 변신하는 마법이 매력소비에서 일어난다. 나를 더 돋보이게 해줄 거라는 믿음을 주는 것, ‘조금 더 나은 삶’ 혹은 ‘조금 더 괜찮은 생활’, ‘조금 더 멋진 나’를 꿈꾸며 기꺼이 지갑을 열게 되는 소비다. 중에서 - 트렌드를 트렌디하고도 허황되지 않게 이야기하는 ..

Review 2020.12.19

머리를 자꾸 부딪히는 나날

요새 자꾸 어딘가에 머리를 부딪힌다. 이주일 전인가는 사무실 벽에 튀어나온 난간에 머리를 쾅 부딪혀서 며칠 동안 혹이 튀어나왔었는데 오늘은 서랍을 열다가 거치식 거울을 건드려서 거울이 쓰러지면서 머리에 세게 부딪혔다. 약간 어지러운 것 같긴 한데 그냥 기분이 나쁜 것 같기도 하고... 그러고보니 요새 며칠간 뒷목이 뻣뻣하고 결리는 느낌이 자주 들었는데 머리를 부딪힌 부작용인가 싶기도 하다. 인터넷에 찾아보니 뇌진탕 후 뇌출혈 증세로 두통, 구토, 의식 저하가 있으면 반드시 신경외과에 가보아야 하고, 어지러움이나 뒷목 뻐근함 등의 증상도 유의해야 한다는데 ㅠㅠ 너무 무서운 것

Diary 2020.12.19

대충 미움 받고 확실하게 사랑 받을 것

인터넷에서 마음에 드는 사진을 발견해서 저장하고 카톡 프로필까지 해버렸다. 이 귀여운 사진이 내 기분을 좋아지게 한 것처럼 다른 누군가도 이 사진을 보고 기분이 좋아졌으면 싶어서. 그랬다가 문득 한편으로 ,이 사진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으면 어쩌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애같은 사진을 프로필로 쓰다니" 하고 생각하지는 않을까? 혹은 내 사진을 프로필로 쓰지 않는 게 자신감 없는 모습으로 비춰지지 않을까? 그러다 김이나 작사가가 한 말을 떠올렸다. 모든 사람에게 사랑 받을 수는 없고, 나를 미워하는 사람도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니 "대충 미움 받고, 확실하게 사랑받자"고 생각하는 게 편하다고.

Diary 2020.12.15

안 망했어요, 우리 좋은 실패들을 해요.

살아가는 모두에게 인생은 아직 열린 결말이니까. 아나운서 준비를 오래 한 후배가 있다.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학교 방송국에 들어갔고, 아카데미를 다니고, 시사상식 스터디를 하고, 한국어능력시험을 보러 다녔다. 매일 리딩하는 모습을 영상으로 찍어서 올리는 스터디도 했다. 여러 번 고배를 마신 뒤 지금은 일반 회사 취업 준비로 전향한 후배는 오랜 준비를 끝내기로 마음먹었을 때, 한동안 정말 힘들었다고 한다. 왜 안 그랬을까. ‘그동안 허튼 데 시간을 너무 많이 쓴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덮쳐올 때마다 아무것도 결정된 것 없는 미래가 막막하게 여겨지곤 했다고. 나도 안다, 그 기분. 공들여 애써온 일을 그만둘 때, 가던 길을 되돌아 나오는 기분. 이 길로 오지 말았어야 하는데, 나에게만 막혀 있는 길인 걸 알..

Review 2020.12.11

손보미, 이방인

1. 그 길을 걸을 때, 그녀는 한 번도 눈을 감지 않았다. 눈앞에 펼쳐진 모든 것을 최대한 실감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앞으로 성인 키의 네 배는 될 법한 편백나무 수백 그루가 높이 솟아 있었다. 서로 얽힌 가지와 잎들이 하늘을 가리고 있었지만 군데군데 눈부신 빛이 떨어져 내렸다. 멈춰서서 고개를 들면 얽힌 나뭇잎 사이로 드문드문 파란 하늘과 구름의 움직임을 볼 수 있었다. 완벽한 색감. 순간, 씁쓸한 웃음이 앙다문 입술 사이로 새어나왔다. 그녀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계속 걷다보면 어떤 풍경이 나올지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숲이 끝나는 곳에, 시야에 닿는 건 그저 허공뿐인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 있었다. 아무런 악의도 없이, 누군가가 세계를 절단내놓은 것 같았다. 무심한 몸짓으로. 바람 한..

Review 2020.12.01

201130

넌 거짓말을 하기 싫었던걸까, 이슈화를 하고 싶었던걸까. 오해하더라도 어쩔 수 없지만 난 사실 정말 잘못된 방법으로 이슈화를 하고 싶지 않았던 것뿐이야. 불필요하게 이슈를 크게 만들거나 더 큰 변명을 하게 되기 전에, 내부적으로 사건을 더 조용하게 더 평화롭게 모두에게 덜 상처가 되도록 해결하고 싶었던 거거든. 때로는 더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착한 거짓말이 필요하다는 걸 네가 어려서 몰랐던 거라고 생각할게. 난 솔직히 내가 닳은 게 아니라 네가 아직 덜 여물은 거 같아. 종이에 손가락을 베인 것처럼 미세하지만 날카로운 마찰을 겪고 다소 혼란스러워진 내 마음을 다독이고

Diary 2020.11.30

201129 코로나 시대에 이직을 준비하는 어느 직장인의 일요일

아빠가 시장에서 떡을 사왔다. 다이어트 중이니 안 먹겠다고, 괜히 사온 거라고 투박을 놓았다. 그러고서는 채 십분도 되지 않아 아빠가 냉장고에 넣어둔 떡을 꺼내 먹었다. 인절미는 쫀득쫀득하고 맛있었다. 한 접시를 다 먹고 노트북을 꺼내 이직 면접 피피티를 만들면서 초콜릿을 한 두 봉지 더까 먹었다. 금세 천 칼로리를 뱃속에 집어넣은 셈이었다. 글씨체를 바꾸고, 글상자 색깔을 입혔다 지웠다 하고, 그런 식으로 깨작깨작 작업을 해나가다보니 어느덧 창문 바깥이 어두워졌다. 냉동실에서 남은 떡 한 접시를 더 꺼내 전자레인지에 2분 30초 데웠다. 몇 번 안 집어 먹은 것 같은데 접시가 순식간에 다 비워졌다. 더부룩해진 속을 가라앉히려 모자를 쓰고 패딩을 꺼내 입고 밖으로 나갔다. 올리브영에 가서 간식을 만 원어..

Diary 2020.11.29

구병모, 아가미

다만 당신이 알아야 할 것은 따로 있어요. 강하가 예전에 당신을 어떤 방식으로 싫어했든 간에, 그 싫음이 곧 증오를 가리키지는 않는다는 걸. 그건 차라리 혼돈에 가까운 막연함이라는 걸요. 사람을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은 매 순간 흔들리고 기울어지는 물 위의 뗏목 같아요. 그 불안정함과 막막함이야말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는 유일한 방법 아닐까요.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할 때 확신할 수 있는 단 한 가지는, 이 마음과 앞으로의 운명에 확신이라곤 없다는 사실뿐이지 않을까요. - 구병모, 중에서

Review 2020.11.28

X세대 엄마, 변화하는 엄마

엄마가 변했다. 잘 키운 아들딸 사진은 배경으로 밀려나고, 이름 모를 화초 하나가 프로필 사진을 떡 하니 차지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계모임 장소는 계절밥상이 아니라 자주(JAJU) 테이블이 되었고, 정식 개장한 지 반년도 안 된 서울식물원을 20대 딸보다 먼저 알고 가보자 한다. 주말 드라마가 재미없으면 가차 없이 유튜브를 켜고, TV로 홈쇼핑을 보지만 주문은 앱으로 하는 그녀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대한민국의 엄마들은 더 빠르게 변하고 있다. 현재 40~50대는 명실상부 대한민국 경제인구의 중심이자 소비의 큰손이다. ‘엄마 찬스’의 ‘엄마’를 맡고 있는 그녀들은 결혼한 자녀에게도 기꺼이 본인의 카드를 내어준다. 대한민국 역사상 부모보다 가난한 첫 세대가 밀레니얼이라면, 반대로 40~50대는 자식보다..

Review 2020.11.27

덧니가 보고 싶어

- “너는 네 마음이 어두운 곳에 쉽게 떨어진다고 걱정하는데, 아슬아슬하게 계속 괜찮을 거야.” 쿠션을 베고 바닥에 누운 채 재화가 선이를 올려다봤다. “그럴까? 괜찮을까?” “유머러스한 사람은 쉽게 꺾이지 않아. 내가 에세이랑 인터뷰 읽는 거 좋아하잖아. 역경을 이겨낸 인물들은 대개 정신 수련이나 종교의 힘 덕분이었다고 하지만 자세히 보면 다들 한 유머 하더라고.” “그럴듯하다.” - “그 말도 맞네. 언니는 행복할 거야.” “행복에 강박을 가지지 마. 그건 일시적인 상태일 뿐이랬어. 다들 그 일시적인 상태를 또 가져보려고 아등바등하는 걸 거야.” - 정세랑 소설, 중에서

Review 2020.11.12

201110

동대문 현대아울렛에 새로 가기 시작한 미용실이 있는데 오늘 홀린 듯이 커트 3회권을 8만원에 결제해 버렸다. 내가 정말 커트를 주기적으로 하는 사람이었던가? 오히려 파마를 하거나 염색을 하기 위해 드문드문 방문하는 사람이 아니었던가? 돌아서면서 아차 싶었지만, 다시 가서 결제를 취소해달라고 하기가 머쓱하기도 하고, 요즘은 어딘가에 용기를 내거나 합리적 사고를 할 에너지도 없어서 그냥 모르겠다 될대로 되라지 싶은 심정으로 밖으로 나와 버렸다. 마침 근처에 예전부터 가보고 싶었던 카페가 있어서 위로를 얻고 싶은 심정으로 (심지어 돈을 더 쓰는 방식이긴 하지만) 10분 남짓 방산시장 쪽으로 걸어갔다. 카페에 도착해서 리코타무화과바게트와 카푸치노를 샀다. 디저트는 실험적인 (즉 프로답지 못한) 맛이었고 카푸치노..

Diary 2020.11.10

201107

장소(공간)가 갖는 힘은 때로는 실로 압도적이다. 많은 시간이 흘렀어도 변함 없이 같은 위치에서 같은 분위기를 자아내는 것들. 덕수궁 돌담길과 르풀 카페, 광화문 빌딩과 경복궁 사잇길 사거리의 풍경이라던가. 삶의 풍경이 180도 달라진 이후에도 그 곳을 지날 때면 변함 없는 분위기와 기분을 만날 수 있다는 것. 어떤 영원성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기대치 않은 위로를 주었다.

Diary 2020.11.07

하루키 씨를 조심하세요

- 숙명적으로 파멸해가는 연약하고 매력적인 청년은 주인공의 '또 다른 자아'입니다. 그와 결별하지 않으면 주인공은 성숙을 향한 도정(道程)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그러나 또 다른 자아는 청소년기의 기억 속에 내버려두기에는 지나치게 매력적입니다. 그 때문에 주인공은 '죽은 청년'의 추억을 자기 몸속에 새겨놓은 채 이른바 '한 몸으로 두 세상을 사는 것'처럼 성숙의 여정을 걸어갑니다. 아니, 성숙이란 자신의 미성숙을 사랑하고 받아들이는 동시에 그것을 자기 안에 껴안은 채 나이가 들어가는 인격적 다면성이라는 것이 이러한 청춘소설의 근원적인 메시지일지도 모릅니다. - 무라카미 하루키는 '이리저리 긁어모은 식재료'로 '보통 음식'을 조리하는 장면을 실로 꼼꼼하게 묘사합니다. 대개 언제나 있는 것을 긁어모아 사용..

Review 2020.1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