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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 나를 지키는 방법도 이와 같지 않을까? 사람들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상처를 받고 예민하게 반응한다는 것은 분명 내 말과 마음이 약해져 있다는 뜻이다. 그럴수록 좋은 말에, 때로는 상처가 되는 말에도 기꺼이 나를 노출시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화’를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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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에게 인기 있고 존경받는 사람들은 상처가 없는 사람이 아니다. 자신의 상처를 잘 보살피고 그것을 품위 있게 드러내는 사람이다. 내게 상처를 준 사람들에게 일일이 가시를 드러내면 그들의 좋은 면을 알아보는 감각이 무뎌진다. 결국 그 가시를 다 드러내고 살면 초라한 인간관계만 남을 것이다.
누구나 ‘보이지 않는 어두운 면’을 갖고 있다. 그래서 상처를 받지 않고 사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자신이 무엇에 가장 힘들어하는지, 또는 어떤 말이나 행동에 유난히 예민한지를 ‘스스로 아는 것’만으로도 상처를 덜어낼 수 있다. 그것이 나의 상처로 인해 다른 사람이나 자신을 괴롭히는 것보다 ‘조금 나은’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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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와 멀어진 우리는 ‘운명의 말’에 쉽게 의존하고 만다. 언제든 대화할 수 있는 가까운 사람보다는 대화가 불가능한 스타나 유명인의 말을 더 믿고 따른다. 대화를 해보지 못해서 좋은 말과 나쁜 말을 구분하지 못하게 되었고, 대화의 양이 확보되지 않아 덩달아 질도 낮아졌다. 이 모든 이유 때문에 우리는 대화하며 상처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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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늘 성격이 급하다. 마음을 채 정하기도 전에 불쑥 입을 열어 ‘좋은 인상’을 주려고 한다. 마음에 결정을 내리기도 전에 상대의 기분이 좋을 만한 말을 먼저 해버린다. 상대의 말에 화려한 리액션으로 공감하고, 맞장구를 치거나 마음에도 없는 친절을 베푼다. 왜 우리는 원하지도 않는 친절과 공감을 베풀고 있을까? 인정받고 싶기 때문이다. 내 마음이 나의 말을 따라가지 못할 때 멈춰 서서 그 속도를 맞춰보는 것은 어떨까. 말이 너무 앞서가면 ‘만들어진 나’로 살기 십상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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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을 질투하고 시기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하지만 그 감정을 적절하게 조절하지 않으면 습관처럼 다른 사람의 인생을 깎아내리며 자신을 부정하는 괴로움 속을 헤맬 것이다. 거기서 해방되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다른 사람도 나처럼 작은 것 하나를 이루기 위해 많은 노력과 시간을 들인다는 점을 인지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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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를 내기에는 애매한데 상처받는 말을 들었다면 ‘순간 침묵’으로 그 사람의 입을 다물게 하는 게 상책이다. 보통 사람들은 상대의 ‘순간 침묵하는 시그널’을 어느 정도 알아차린다(우리가 상대하는 사람들에게 그 정도 센스는 있다고 일단 믿어보자). 누구처럼 눈치 못 채고 계속 말한다면 ‘두 번째 침묵’에 돌입하라. 대답만 안 하면 된다.
그 시그널을 알아차린 상대가 사과하거나 멈칫할 때, 그때 웃어도 늦지 않는다. 단호하게, 우아하게, 유머러스하게 말할 순발력이 없다면 ‘웃지 말고 침묵하기’. 상대의 말에 내가 대신 마침표를 찍어주고 잠시 기다려보는 것이다. 그 사람에게 돌아볼 시간을 준다고 생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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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간 문학 치료를 공부하며 알게 된 것이 있다.
잘 쉴 줄 몰랐던 것.
일이나 특정 결과물을 ‘나’라고 착각했던 것.
내가 열정적으로 매달리는 대상은 나 자신이 될 수 없으며, 그것을 열심히 하되 지배되지 말고 자유롭게 놓여나 쉴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내 안에 있는 좋은 말들이 밖으로 나올 숨구멍도 생긴다. 잊지 말자. 쉬지 않으면 나 자신에게는 물론이고 타인에게도 상처를 입히는 말이 계속해서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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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진, <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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