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에 쉬는 날을 쉬는 날답게 보내자고 마음 먹고 삼청동으로 나왔다. 갤러리 몇 개를 둘러보고 경복궁 돌담길을 빙 돌아 서촌 북카페까지 걸어서 들어왔다. 이제 오후의 햇빛은 여름이라고 할 법한 강도로 뜨거워졌다. 꼼짝없이 반팔을 입어야 하는 날씨가 되었다.
작년 하반기부터 계속 이직을 준비하고 있다. 쉬는 날에도 이력서를 쓰고 면접 준비를 하고 또 몇 군데 면접을 치르고, 그렇게 완전히 충전되지 못한 채 배터리가 간당간당한 몸과 마음으로 버티어 오고 있다. 그래서 서촌의 카페에서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시간을 보내는 지금 이 순간이 낯설고 불편하다. 미래에 잘 살기 위해 지금 내가 해야 할 일들과 생각해야 하는 것들, 결정해야 하는 것들이 너무 많다. 다음 주에 봐야 하는 면접들, 아직 확인하지 못한 링크드인의 추천 포지션들, 매매를 고민 중인 망원동 아파트와 관련된 정보들, 더 늦기 전에 비트코인 투자에 뛰어들어야 하는지 하는 고민.
해야 하는 일에 대한 책임감과 고민이 늘어나는 만큼 (늘어난 마음의 무게를 담기 위해서인지) 몸의 부피도 늘어나고 있다. 특히 이력서를 제출하는 날이나 면접 전 날 억지로 머리를 굴리려고 빵이며 초콜릿이며 과자 같은 것을 배가 한계치에 다다를때까지 꾸역꾸역 먹는데, 그런 루틴이 매주 반복되어 온 탓에 몸도 정신도 작년 이맘때보다 훨씬 무거워졌다.
짊어지고 있는 고민거리들이 조금씩 해결되어 소멸되면, 그래서 마음이 좀 더 가벼워지면 몸도 좀 가벼워지지 않을까. 아니면 몸이 먼저 가벼워지면 마음도 좀 더 가벼워질 수 있을까. 그런 의미에서 오늘 저녁은 조금 가볍게 먹고 한강가를 오래 걸어봐야겠다. 몸의 부피를 조금씩 줄이면서 마음도 조금씩 가벼워지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