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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지파트너

한정희 단편소설집 브리지파트너 소설을 '수다떠는 기분으로' 읽는 걸 좋아한다. 정말 그래, 라고 생각하면서. 내가 막연하게 느끼고 있던 것들이 완벽한 표현으로 서술되어 있는 것에 감탄하면서. 고등학교 때 하루키의 단편 소설을 처음 읽었던 뒤로 소통의 즐거움을 가져다주는 그런 소소한 이야기들을 좋아하는 취향이 되어 버렸는데 솔직히 말해서 하루키만큼 '묵직하고 완벽한 즐거움'을 경험하게 해준 작가는 지금까지 없었다. 며칠전 학교 도서관에서 별 기대없이 '브리지파트너'라는 소설을 집어들어 읽었다. 오랜만에 만난, 거의 완벽하게 마음에 드는 스타일의 이야기들이었다. 말투, 단어의 어감, 표현 하나하나가 마음속에 스며드는 기분이 들었던. 웃으면서 죽는 법 중에서 그녀에게는 남다른 직관이 있었다. 그녀가 말을 하면..

Review 2010.08.13

백색의 봄

모든 존재는 무한한 은유를 내포하고 있으며, 다의적이다 그건 보통은 잊고 살기 마련인 사실. 마주치는 것들에 대해서 우리는 그 존재를 지극히 보편적으로(무심하게) 규정지음으로써 그를 종종 훼손시키는 것이다. '백색의 봄' 전시에서는 선과 면, 빛과 음영 다양한 작품들마다 모두 다른 방법으로, 제각각의 의미로 백색의 이미지를 구현하고 있었다. 순수함, 자유로움, 가벼움, 모호함, 깊이의 결여 (또는 무한한 깊이) 가녀림 (또는 모호함) 때문에 오히려 밟아서 때를 묻히거나 손에 쥐고 힘주어 뭉그러 뜨리고 싶어지는 것 '때묻은' 백색, 그 불완전함에서 오는 불쾌함 순간적인 경험으로 얻어지는 빛의 이미지 (우리의 경험이 '시간'에 의지하는 한) 경험되는 '실체'라는 것은 유약할 수밖에 없음 백색의 일상적인 물체..

Review 2010.07.29

꿈에서니까, 일련의 사건과 장소들 속에서 내가 왜 위치하게되었는가 그 시작을 전혀 모르는 채로 나는 그냥 거기 있는 것이 된다 인과성이 흐물흐물한 이야기들의 슬라이드쑈 아무튼 나는 지금은 사라진, 예전에 단골이었던 노원역 어느 옷가게에 있었고 마음에 드는 옷들이 다 너무 비싸서 그냥 구경만 하고 있는 중이었는데 몇몇 커플들이 싼티나는 옷을 입고 싼티나는 옷을 고르고 싼티가 나는 질문을 주인에게 하는걸 보고 그 가게 아들내미가 쟤네들 참 싼티난다는 말과 함께 멸시 섞인 비웃음을 짓는 것을 보면서 나도 저렇게 싼티나는 모습으로 보이지는 않을까 문득 생각했다 그러다 장면이 바뀌어서 세련되고 키크고 이쁘고 옷도 잘입는 대학 동기가 등장했고 벤치에서 책을 읽는(체하던) 나는 책을 덮고 동기에게 다가갔다 동기는 같..

Diary 2010.07.28

신림2동 네시 십팔분

핸드폰으로 시각을 확인했다. 새벽 네시 십팔분. 숫자조차 을씨년스럽다 한밤중에 잠에서 깼다. 열대야에 가뜩이나 깊이 잠들지 못하고 있었는데 밖에서 왠 여자 울음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다. 그것도 아주 절절하게, 마음 속 깊은 데에서 우러나오는 깊고 처절한 울음소리 멍한 상태에서 부시시 몸을 일으켜 앉으니까 곧 그 울음소리에 반응해 내 몸 세포 구석구석의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흑, 흑하는 여자의 호흡에 내 숨까지 턱턱 막히고, 온 몸의 털이 바짝 곤두섰다 처음에는 맞은편 고시원에서 사는 사람이 방 안에서 울고 있는줄 알았다. 가장 먼저 떠오른 끔찍한 생각은 어떤 '죽음', 자살. 어느 고시원에서 누가 자살한지 며칠만에 발견되었더라, 하는 뉴스에서만 보던 이야기. 새삼 내가 지금 살고 있는 동네가 얼마나 끔찍..

Diary 2010.07.27

안개

"사랑에 빠지지 마세요." 덜컥 이런 말을 꺼내놓았다고 그녀는 걱정한다. 창밖엔 안개가 짙다. 내 어린 낙타는 벌써 잠이 들었다, 세상의 모든 집들이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한 저녁. 살아 있는 집과 죽은 집, 불 켜진 집과 꺼진 집. 모든 집들이 모여 긴 오징어 다리를 달고 흐느적흐느적 헤엄치는 흰 물결 속에 잠이 들었다. 저만치 앞에서, 꿈틀대는 오징어 다리에 걸린 얼굴들이 움직인다. 낯익은 젖은 얼굴들. 비에 젖은 낙엽처럼 오징어 다리에 붙어 길바닥을 훑는다. 서늘하고 축축한 기운이 몰려온다. 황혼에 약한 내 어린 낙타는 잠들어버렸다. 더 가까이, 익숙한 집들이 몰려와 앞을 막는다. 내가 살던 집과 태어나던 집과…… 혼자 웃던 집과 불태운 집, 몰래 숨긴 집과…… 함께 떠들던 집과 함께 떠난 집…… 함..

Review 2010.07.24

나는 네가

나는 네가 시냇물을 보면서 화내지 않았으면 좋겠다 시냇물이 흐르다가 여기까지 넘쳐 와도 화내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네가 목련나무 앞에서 웃지 않았으면 좋겠다 흰 목련 꽃잎들이 우르르 떨어져도 웃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네가 밤 고양이를 만나도 겁먹지 않았으면 좋겠다 밤 고양이가 네 발목을 물어도 그냥 그대로 서 있으면 좋겠다 나는 네가 꿈꾸지 않았으면 좋겠다. 창밖의 봄볕 때문에 잠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꿈속에서 영롱한 바닷속을 헤엄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네가 인공 딸기향이 가득 든 고무지우개면 좋겠다. 인공 딸기향을 넣은 딱딱한 고무로 만든 그런 치마만 삼백육십육일 입었으면 좋겠다 나는 네가 오래도록 우울하면 좋겠다 아무도 치료할 수 없었으면 좋겠다. 그래도 나는 네가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

Review 2010.07.24

Kirinji

올해 겨울 새벽 심야식당을 듣던 중에 좋은 노래가 흘러나왔다 도저히 다음 날 선곡표에 노래 리스트가 뜰 때까지 기다릴 수가 없어서 그 새벽에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서, 새벽 네시가 넘을 때까지 가수 이름과 노래 제목을 찾아내고서야 잠이 들었다. 덕분에 다음날 아르바이트엔 완전 지각했지만 아무튼, 그렇게 만나게 된 가수가 키린지이다. 일본말은 하나도 모르지만 쓸쓸한 멜로디와 읖조리는 어투만으로 공감하면서 들었던 노래. Haruka sora ni Boeing, oto mo naku 아득히 먼 하늘에 보잉기, 소리도 없이 Aah, koudan no yane no ue, doko he yuku? 공단의 지붕 위, 어디로 가나? Dareka no gokigen mo, neshizumaru yoru sa. 누군가의 ..

Playlist 2010.07.23

루시드폴

오늘 키린지랑 루시드폴의 노래에 완전히 꽂혀버려서 하루종일 'Aliens'이랑 '평범한 사람'을 반복해서 들었다 특히 '평범한 사람'의 멜로디 중에서 '나는 너무나 평범한, 평범하게 죽-어-간- 사람-' 이부분이 너무 좋아. 왠지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노래중에 스무살의너에게였나, 에서 '너는 이세상의 주인공이 아니야-' 라는 가사도 생각이 나고 이런 가사의 노래를 들으면 오히려 더 기운이 나고, 살아갈 맛이 난다 '으랏차차-'라든지 '괜찮아, 잘될거야-' 이런 노래들을 들으면 시덥잖은 위로를 건네 받는 느낌이라 괜히 더 짜증나고 우울해져 남은 저녁동안 무한 리플레이할 작정인 노래들 폴님의 '평범한 사람', '여기서 그대를 부르네', '그대는 나지막히'

Playlist 2010.07.23

이끼

정재영 유해진 등 내노라하는 배우들 (특히 이름만 들어도 두근거리는 박해일님)의 출연 소식에 이끼를 보러 영화관에 갔다. 높은 평점을 보거나 아는 사람으로부터 추천받아서 제멋대로의 '기대'를 안고 영화를 보면 제대로 감상도 못할 뿐더러 늘 기대 이하의 재미와 감동을 얻게 된다. 그래서 최대한 마음을 덤덤하게 가라앉히고 영화를 보러 가는 버릇이 생겼다. 그런 덕분인지 아무튼 이끼는 기대 이상으로 재미있었다. 그런데 웹 상에서는 이 영화가 원작의 내용을 제대로 살려내지 못했다는 비판들도 많다. 웹툰을 본 것은 아니지만, 내 생각에는 오히려 '강우석 코드'로 스토리가 탈바꿈된 덕분에 더 괜찮은 영화가 뽑아진 듯하다. 원작에 충실하다가 오히려 장르적인 차이가 두드러지게 드러나 버려서 이도저도 아닌 어색한 스타일..

Review 2010.07.19

멋진 하루, 다이라 아스코

즐겁다라는 말은 굉장히 여러 가지의 뉘앙스로 쓰이는 것 같다. 놀이공원에서 롤러코스터를 탈 때의 '즐거운' 기분과, 비오는날 우산에 타닥타닥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를 들을 때의 '즐거운' 기분은 분명히 아주 다르니까. 그런 여러가지 복잡한 의미를 감안해서, 다이라 아스코의 소설을 읽으니 정말 즐거운 기분이 되었다. 사실 도서관에서 이 책을 빌렸던 것은 단지 전도연이 나왔던 영화의 원작 소설이라는 점만으로 끌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멋진 하루'보다 '누군가가 누군가를 사랑한다'랑 '해바라기 마트의 가구야 공주'라는 단편이 더 마음에 들었다. 이 단편들이 좀 더 마음이 설레는 결말이었기 때문인것 같다. 비현실적이고 다소 유치한 판타지 속으로 빠져듦으로써 얻게 되는 즐거움도 있지만 비교적 충실하게 ..

Review 2010.07.16

다요리에 주절주절

시간이 지나면서 잃어버리게 되는 것만큼 새롭게 느끼고 생각하게 되는것들도 확실히 많지만, 그래도 여러가지로 변해가는 것들 뭐 마음과 마음사이의 거리라던가, 말랑말랑한 감정 같은것들을 어딘가에 담아서 밀봉해 놓을수있다면 좋겠다 고 싸이 다이어리에 써놓은것은 결국 철딱서니없는 응석부리기였던거 같다 제자리에 서있는 채, 꿈쩍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저 문장에 공감해주기를 바랐다 변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나약한 사람들이 아직 많다는걸 확인하고 안심하고 싶었다

Diary 2010.07.14

오랜만에 몰래 블로그에 들어갔다가

가난한 할머니가 파는 떡을 샀다. 할머니는 어이구 고맙습니다 하면서 떡을 건넸다. 선생님께서는 울컥 화가 치밀었고 또 슬퍼지셨다. 왜 저 할머니는 나에게 굽신대고 나는 저 할머니를 굽신대게 만들었는가. 왜 인간의 제일 비굴하고 초라한 모습을 드러내게 만들었는가. 선행은 많은 경우 상대방의 자존심을 빼앗고, 나의 (이미 가진) 힘을 정당화하고, 나를 만족시키는 데서 끝난다. 예전에 수업시간에 '거지에게 돈을 주는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언제부턴가 지하철에서 구걸하는 장애인들, 선글라스를 끼거나 눈을 감고 찬송가를 틀어놓은 채 몇개 안 되는 동전이 든 바구니를 들고 칸칸이 이동하는 사람들에게, 지갑을 열어 돈을 주지 않게 되었다. 어쩌면 그런 기부라는 것은 내가 그 사람보다 더 사회적 우위에 ..

Diary 2010.07.14

캣우먼님 칼럼을 퍼나르면서 든 생각

칼럼을 쭉 읽어나가면서, 그리고 화요일마다 라천에서 목소리를 들으면서 이 언니 정말 쿨하고 멋진 사람이라는 생각을 수없이 했다. 말을 정말 속 시원하게 잘한다, 뻥뻥 뚫려서 속이 시릴 정도로. 아무튼 덕분에 몇 번이나 진심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스스로를 반성할수 있었다. 이제 정말 꿈을 꾼답시고 현실 도피하면서 속 편하게 살려는 철없는 생각을 버려야겠다... 고 생각하면서도 뭔가 욱하는마음이 든다 나같이 천성적으로 외유내유한 인간은 판타지속으로 도망쳐서도 안되고 그렇다고 현실감각을 제대로 갖추지도 못하는 어정쩡한 상태로 어떻게 해야 하는걸까 사람이란 쉽게 변할수가 없는 것인듸 아무튼 확실한건 나는 지금 정체되어 있는 상태라는거. 아니, 문워크하는마냥 뒷걸음질 치고 있는거같다 내일부터 일단은, 몸을 움직이고..

Diary 2010.07.01

[임경선의 이기적인 상담실] 그래도 나의 꿈, 이뤄야…겠죠

그래도 나의 꿈, 이뤄야…겠죠 [매거진 esc] 임경선의 이기적인 상담실 ‘드림스 컴 트루’식 사탕발림 신화의 세상, 당신은 지금 희망의 마약을 먹고 있는 건 아닌지 Q case #1 좋아하는 일이 뭔지 모르겠지만 정말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해야 되겠죠? 대학 졸업은 성큼 다가오는데 조바심만 나서 휴학을 택하고, 남들 준비하는 시험 같이 준비해보지만 마음은 안 동하고. 그렇다고 꿈도 없고 내가 뭘 잘하는지, 뭘 원하는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case #2 꿈을 좇자니 불안하고 막막하고, 현실로 타협하자니 여태 준비한 게 아깝고 패배자인 것 같아요. 학교 졸업한 지는 3년, 졸업 후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다가 이 길이 아닌 것 같아 시나리오작가를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꿈이라는 미명하에 안정을 포기하니 처음엔..

Diary 2010.07.01

[임경선의 이기적인 상담실] '똥폼' 커리어 플랜 집어치워

‘똥폼’ 커리어 플랜 집어치워 [매거진 esc] 임경선의 이기적인 상담실 Q 저는 작년 여름에 모 대학을 졸업하여 현재 26살 백수입니다. 지난해 한 신문사에서 인턴을 한 경험이 있어 지금까지 언론사 시험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저는 고딩 때부터 시민단체 활동에 관심이 많았지만 진로로 삼긴 좀 그렇고, 그렇다고 기업이나 회사에 취직해 봉급생활자로 살기는 싫습니다. 일반 회사에 들어가기에는 생겨먹은 성품부터 달라먹었으니 말입니다. 그래서 타협한 것이, 방송사 라디오 피디나 기자이지요. 그런데 막상 준비해보니 만만치 않네요. 진작에 공부해온 학벌 좋고 스펙 좋은 애들 많고, 그걸 따라갈 수 있을까 싶고. 한편, 저는 아주 오래전부터 음악을 하고 싶어했어요. 지금이라도 홍대 바닥을 뒤져 뭔가를 해보고 싶은데 이..

Diary 2010.07.01

[임경선의 이기적인 상담실] '자기만족'과 '현실도피' 헷갈리지 마

‘자기만족’과 ‘현실도피’ 헷갈리지 마 [매거진 esc]임경선의 이기적인 상담실 Q 안녕하세요, 스무 살 여대생입니다. 제 고민은 꼭 철이 들어야 하나 잘 모르겠다는 거예요. 저는 좋고 싫은 게 분명한 편인데 싫은 일은 잘 하지 못합니다. 근데 사람이 백 년 이백 년 사는 것도 아니고, 몇 번 다시 사는 것도 아니잖아요. 좋은 거,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고 싶어요. 싫은 것 억지로 참으면서 살고 싶진 않아요. 근데 제가 이렇게 얘기하면 어른들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언제 철들래, 뜬구름 잡는 소리만 하고 있구나.” 저는 그럼 내가 그렇게 철이 없구나, 허무맹랑한 소리를 하는 거구나 하고 수긍했죠. 하지만 얼마 전부터는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꼭 모든 사람이 철들어야 하나 잘 모르겠다는 거예요. 그리고..

Diary 2010.07.01

[임경선의 이기적인 상담실] 돈 벌면서 자아실현 허상인가요

돈 벌면서 자아실현 허상인가요 [매거진 esc]임경선의 이기적인 상담실 Q 저의 고민은 왜 인간은 고통 받으면서 일해야 하느냐예요. 올해 27살, 직장 경력 2년차인 전 행정학 전공대로 공무원 시험을 보는 대신 평소 수업을 듣고 매력을 느꼈던 ‘리서치’ 직종을 선택했어요. 적은 보수에 업무 과다 업계지만 좋아하는 일인데 그게 뭐 대수야 싶어 노력해서 조사회사에 입사했죠. 그런데 취업의 기쁨도 잠시,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이건 아닌 거 같아요. 업무 자체도 그렇고, 직장내 분위기도 그렇고요. 직장인이라는 게 말도 제대로 할 수 없고, 옷도 마음대로 못 입고, 팀장 눈치에, 클라이언트 눈치에, 동료들 눈치에, 인간관계도 서로 견제만 하는 분위기예요. 매일 기계적으로 타자와 클릭을 무한 반복하는 저를 보면 한..

Diary 2010.06.30

매듭

매듭, 하고 나는 생각했다. 정리할 필요가 있다, 하고 나는 생각했다. 매듭, 하고 나는 그런 카오스의 중심에서 스스로를 향해 물었다. 그리곤 조용히 입밖에 내어 말해 보았다. 어째서 이것 저것이 이다지도 막연해진 것일까? 이음매가 혼란해졌기 때문이다, 틀림없이. 나는 자신이 무엇을 구하고 있는 것인지 명확히 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리고 사물을 하나 하나 연결해 가는 것이다. 상황이 제아무리 막연해 보이더라도, 하나 하나 견디고 참을성 있게 풀어 나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풀어놓고, 그리고 연결한다. 나는 상황을 회복해 나가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나 도대체 어디서부터 시작하면 좋을까? 어디에도 붙잡을 데가 없다. 나는 높다란 벽에 달라붙어 있다. 주위의 벽은 거울처럼 미끌미끌하기만 하다. 나는 어디에도 ..

Diary 2010.06.20

고도 자본주의

모든 것은 면밀한 계획하에 진행되었다. 그것이 고도 자본주의라는 것이다. 가장 거액의 자본을 투자하는 자가 가장 유효한 정보를 입수하며, 가장 유효한 이익을 얻게끔 된다. 누가 나쁘다는 건 아니다. 자본 투자라는 것은 그러한 것을 내포한 행위인 것이다. 자본 투자를 하는 자는 그 투자액에 상응한 유효성을 요구하게 된다. 중고차를 사는 사람이 타이어를 발로 걷어차고 엔진을 살펴보고 하듯이, 1천억의 자본을 투자하는 자는 그 투하의 유효성을 세세히 검토하는 것이며, 어떤 경우에는 조작도 하는 것이다. 그 세계에선 공정성 따위는 아무런 의미도 갖지 못한다. 그런 것을 일일이 따지기에는 투자 자본의 액수가 너무 큰 것이다. 강압적인 일도 한다. 가령, 토지 매수에 응하지 않는 자가 있다고 하자. 예전부터 장사를..

Review 2010.06.20

아빠에 대해서

'나는 아빠를 좋아하지 않는다' 언젠가부터 정말 그렇다고 덤덤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부모님의 이혼 이후로 나는 아빠랑 동생이랑 셋이서 살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아빠는 예전처럼 매일은 아니었지만, 여전히 자주 술을 마셨고 담배를 상당히 많이 피웠고 취하면 나쁜 말을 했다. 세월이 지나면서 더이상 아빠는 사건을 일으키지 않았다. 대신에 조용하고 무기력하고 표정 없는 사람이 되어갔다. 나는 아빠가 불쌍하고 안타까웠지만 아빠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있는가를 스스로에게 물었을 때 대답은 이미 오래전에 정해져 있었다. 점점 나는 아빠를, 내가 '아빠'라고 불러야 하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존재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가난을 실감해야 하는 상황에 놓일 때 나는 아빠가 '보험'에 가입되어있는지 생각해보기도 했다. ..

Diary 2010.05.12

4월 19일

판단력비판에 대해서 발표를 했다. 발표를 신청했던 것은 후회하지 않는다. 어줍잖게 알고 있으면서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는 양 자기만족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이렇게 자기 자신을 밑바닥까지 꺼내보인 후에 신랄하게 공격을 받을 필요가 있다. 많이 아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의미가 없다. 자기가 얼마만큼 채워져 있는지를 냉정하게 점검하는게 더 중요한거라고 '진심'으로 생각하게 된 걸 보면 나의 허세병이 많이 나은 것 같다. 수업을 듣다보면 자기 지식을 자랑하려고 안달인, 그러면서 괜한 질문으로 수업 흐름을 뚝뚝 끊어먹는 애들이 많다. 그런 애들 보면 싫기보다도 참 안쓰럽다. 평생 저렇게 자기 껍데기에만 집착하면서 살려나, 텅텅 속빈 소리를 내면서.

Diary 2010.04.19

화장품 유통기한 보는 법

Daum 지식에서 퍼온 유용한 정보 화장품 유통기한 보는 법 1. 개봉되지 않은 제품은 제조년부터 2-3년이 유통기한. 단 개봉 후 1년 안에 사용해야 좋음. 2. 화장품별 기한 파우더 : 2년 색조 화장품 : 1년 ~ 1년 반 기초 제품 : 1년 기능성 : 6개월 3. 유통기한 표기법 A. 외국 화장품 - 화장품 박스 겉면에 제조일 보다는 유통기한을 표시함 *MFD (Manufactured Date), MFG, M - 제조일을 나타냄 예) M 20.05.09 = 2009년 5월 20일 *EXP (Expired Date) - 유통기한을 나타냄 예) Exp. 01/14 (2014년) - 개봉전 사용 가능한 기간 12M (12개월), 6M (6개월) - 개봉 후 사용 가능한 기간 *J02H26 J : "월"..

Diary 2010.04.05

one room

살면서 온전히 내것으로 소유하고 싶은 것이 (현재로서는) 딱 한가지가 있다. 바로 '내 생활의 공간'이다. 나는 딱히 '야심가' 타입은 아닌데, 많은 돈이나 높은 명예 같은 것을 쥐게 되었다가는 그것들이 내게 가져다 주는 만큼의 무언가가 또 내게서 앗아져 갈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나는 소소한 행복을 느끼면서 나 좋은대로 살다가기를 원하는 타입에 더 가까운 것 같다. 어쨌든, 깔끔한 외관을 갖춘 오피스텔의 아담한 투룸(15평정도). 적어도 30살 전에 이런 내 집을 마련하는 것이 목표다. 그래서 가끔 심심할 때마다 집 구조를 머릿속으로 그려보고 있다. 일단 티비는 없는 편이 좋을 것 같다. 커다란 - 꽤 강렬한 원색이 괜찮을 것 같다 - 소파가 원룸의 포인트가 될 것이다. 소파는 나른해질만큼 ..

Photos 2010.01.28

제목을 입력해 주세요.

모든 존재가 그렇듯이 나라는 사람도, 참 비참하게도 나약하다 그동안 어쩐지 잘 버텨온다 싶었는데 (어쩌면 수많은 예고들을 알아차리지 못했던 걸지도) 어제는 저녁부터 밤까지, 그동안 붙들고 있던 '끈'을 놓아버리고 거의 공황 상태에 이를 때까지 (아니 이미 공황 상태에 놓인 채로) 내 자신을 망쳐버렸다 그나마 그동안에 나이를 헛먹지 않았다고 느낀 건 나락으로 떨어지는 내 자신을 덤덤하게 바라볼 수 있었다는 것 더 이상 이런 일에 자기 혐오를 갖는 것이 아니라 스스럼없이 진심으로, 내가 저지른 결과를 받아들이게 되었다는 것이다 - '체념'과는 또 다른, 좀 더 긍정성(맙소사)이 있는 태도로 물론 그것은 결과라기보다는 또다른 하나의 과정이었다고 말해야겠지만 어쨌든 지금은 아주 잠시 동안만이라도 완전한 수동의 ..

Diary 2009.12.19

우리몸의이해 기말리포트 중에

몸에 대한 미학적 이해 - 포스트 모던적인 미학 담론1)의 관점에서 #1 우리는 왜 그토록 몸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가? 일반적으로 말해지는 이유를 들어보자면, 경제적 발전으로 인해, 삶의 양적 수준이 어느 정도 보장받을 수 있게 되면서, 삶의 질적 풍요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기 때문이라고 설명될 수 있을 듯 하다. 보다 건강하고 질 높은 삶에 대한 요구는 인간의 삶의 환경이 발전해가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난 현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설명을 그대로 받아들인 채 넘어가도 괜찮은 걸까? ‘오늘날 몸에 대한 관심이 대단하다’라는 문장은 조금 바꾸어서 말해질 필요가 있다. 이는 크게 두 가지의 문장으로 다르게 표현되어야 할 것 같다. ‘오늘날 건강에 대한 관심이 대단하다.’ ‘오늘날 아름다운 몸에 대한..

Diary 2009.12.09

내가 안되는 이유

내가 안되는 이유는 일목요연하게 세 가지로 정리될 수 있을 것 같다 첫째 자기애가 너무 강하다 누구에게도 상처받거나 버림받고 싶지 않고 내가 사랑받는 것보다 더 많이 사랑하게 되는 것이 두렵다 둘째 구속받기가 싫다 좋게 말하면 자유를 추구한다는 거지만 나쁘게 말하면 책임감이 부족해서 상대에게 책임과 의무를 지게 되는 게 싫은 것이다. 그래서 누군가와 깊이 있는 관계를 만들고 싶지 않다. 사소한 데에서도 구속받거나 간섭받는 것을 굉장히 예민하게 느낀다 누군가에게 소속된다는 생각만으로도 답답하다 그런데 실질적으로 연애라는 것은 '소유와 지배' 개념이 팽배하는 권력관계아닌가. 셋째 판타지가 강하다. 그리고 굳이 나를 둘러싼 판타지라는 울타리를 뚫고 나와서 현실과 마주하려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요새 내게 호감..

Diary 2009.1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