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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경선의 이기적인 상담실] '자기만족'과 '현실도피' 헷갈리지 마

유연하고단단하게 2010. 7. 1. 00:02

 

‘자기만족’과 ‘현실도피’ 헷갈리지 마
[매거진 esc]임경선의 이기적인 상담실


Q  안녕하세요, 스무 살 여대생입니다. 제 고민은 꼭 철이 들어야 하나 잘 모르겠다는 거예요. 저는 좋고 싫은 게 분명한 편인데 싫은 일은 잘 하지 못합니다. 근데 사람이 백 년 이백 년 사는 것도 아니고, 몇 번 다시 사는 것도 아니잖아요. 좋은 거,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고 싶어요. 싫은 것 억지로 참으면서 살고 싶진 않아요. 근데 제가 이렇게 얘기하면 어른들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언제 철들래, 뜬구름 잡는 소리만 하고 있구나.” 저는 그럼 내가 그렇게 철이 없구나, 허무맹랑한 소리를 하는 거구나 하고 수긍했죠. 하지만 얼마 전부터는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꼭 모든 사람이 철들어야 하나 잘 모르겠다는 거예요. 그리고 성실하게 살아야 한다,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노력하는 사람이 아름답다, 이런 말들 있잖아요. 그게 꼭 절대진리인가요? 그것도 하나의 가치관 아닌가요? 물론 성실하거나 최선을 다하는 게 나쁘다는 게 아닙니다. 다만 그게 꼭 절대적인 가치이고 모든 사람이 그렇게 살아야 하고 또 살 수 있는지 의문이 듭니다. 사실 모든 사람이 철들고 성실하기만 하면 재미없지 않을까요? 제가 이런 말을 하면 사람들은 한심하다고 얘기하거나 웃으면서 ‘너 같은 소리 한다’ 그러고 말아요. 근데 전 진짜 모르겠어요. 

 

 

A 본래는 누구나 자신이 좋아하는 것,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살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이 자신이 좋아하는 게 뭔지도 모른 채 나이만 먹어 갔거나, 좋아하는 게 뭔지 알아도 겁이 나서 그것을 직업으로 못 삼았거나,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먹고살려고 이리저리 분발해 봤으나 실패해서 중도포기했기 때문에, 실제로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밥벌이에 성공한, 철없어 뵈는 쿨한 어른들은 밖에서 관찰했을 때 지극히 소수에 불과한 거지요.

그래도 인생은 단 한 번뿐인데 하고 싶은 걸 안 하고 살면 어떡해, 적어도 안전한 감옥보단 숨쉬고 사는 기분이 들 거야, 신중한 애들은 지루한 겁쟁이일 뿐이지, 하며 험악하고 불만에 가득 찬 표정의 기성세대의 룰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는 건, 어찌 보면 스무 살의 자연스런 반응이라 여겨집니다. 아무 의심도 없이 대학교 1학년 때부터 도서관 구석 자리 잡아 공무원시험 준비하는 것보다는 말이죠. 독창적인 삶의 방식을 추구하는 것은, 이 획일화된 사회에서, 할 수만 있다면, 참 좋잖아요.

헌데, 주변 선배들이 히죽대는 건, 당신의 이야기에서 ‘본론’이 빠져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나답게, 좋은 거,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면서, 하기 싫은 것을 안 하면서 사는 삶이 실제로 어떻게 구현될까에 대한 그 뒷이야기 말입니다. 이참에 묻죠. 하고 싶은 거는 확실히 있긴 한 건가요? 그것은 ‘일’과 ‘직업’이 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인가요? 돈은 최저 얼마 벌면 당신의 생활에 부족하지 않을까요? 그 ‘좋은 것’이 그 생활비를 조달해줄 수 있을까요?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 지금부터 어떤 준비를 하고 있나요? 시도했다 안 풀리면 후회 안 할 자신이 있나요? 플랜B는 있나요? 그때 가서 주변에서 ‘거 봐라, 내가 뭐라고 했냐’며 손가락질해도 평정을 유지할 수 있을까요?

다시 말해 지금 ‘꿈’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건지, ‘목표’에 대한 다짐을 선언하는 건지, 명확히 하자는 거죠. 꿈이라. 꿈에 대한 얘기는, 참 궁색함 없이 즐겁게 말할 수 있습니다. 꿈이니깐요. 하지만 목표는 다릅니다. 목표는 구체적으로 달성해야 되는 현실이기 때문에 떠들면서 마음이 즐겁긴커녕 무겁기만 합니다. 대신 목표를 가졌다면 그 사람에겐 일관된 계획과 그를 위한 우선순위 설정이 준비되어 있겠죠. 반면 돈벌이와 무관한 처지라면 종종 환상에 의지하기 쉬워집니다. 내가 제공할 수 있는 노동의 질이나 그 대가로 받는 돈을 냉정히 가늠하기보단 그 일의 미의식이나 그 일을 통한 자아실현 가능성을 더 거론하고 싶어 하죠. 사실 그편이 즐겁고 좋으니까. 

명확히 해야 할 것, 하나 더 있어요. ‘일’이냐 ‘취미’냐의 문제인데요, 미의식이나 자아실현 너무 좋아하다 보면 자칫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나 스스로 납득되면 돼’라는, 아니 이 젊은 나이에, 자기만족 중시형 가치관으로 ‘후퇴’하기 쉬워집니다. 생각대로 안 풀리면 ‘노력한 과정이 더 중요해’라며 첨언하기도 하고요. 그것은 나름대로 훈훈하다면 훈훈한 가치관입니다만, 글쎄요, 난 왜 그게 포기 빠른 루저의 현실도피처럼 들릴까. 좋아하는 일을 내 일로 삼은 이상은, 무조건 그 일을 앞만 보고 성공시키는 게 당면한 과제 아니던가요? 예, 개인주의적 위로 코드의 자가해석 성공 말고요, 본연의 의미의 성공이요 - 그 일을 잘해내고, 타인의 객관적인 인정도 받고, 합당한 금전적 보상을 쟁취하는 그 기분 째지는 것 말입니다. 좋아하는 일로 성공해야만 굳이 좋아하는 일을 했던 의미가 살고, 깊은 충만감과 성취감을 느끼며, 자기 자신을 근본부터 뒤흔들고 변화시킬 수 있는 것 아닐까요? 그런데 다 필요 없고 소박하게 나만 좋으면 되고 그냥 싫은 것만 안 할 수만 있다면 많은 것 안 바란다면, 에이… 그건 ‘일’이 아니라 ‘취미’죠. 쾌적하고 안전하며 남들과 경쟁하거나 성낼 필요도 없고 그 어떤 실망도 절망도 협박도 없는 취미의 세계. 최선을 다하거나 성실하게 노력하는 것도 심지어 지 꼴리는 대로. 그러니까 지금 당신의 그 ‘좋아하고 하고 싶은 것’의 정체가 대체 뭐냔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