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에서니까, 일련의 사건과 장소들 속에서 내가 왜 위치하게되었는가
그 시작을 전혀 모르는 채로 나는 그냥 거기 있는 것이 된다
인과성이 흐물흐물한 이야기들의 슬라이드쑈
아무튼 나는 지금은 사라진, 예전에 단골이었던 노원역 어느 옷가게에 있었고
마음에 드는 옷들이 다 너무 비싸서 그냥 구경만 하고 있는 중이었는데
몇몇 커플들이 싼티나는 옷을 입고 싼티나는 옷을 고르고
싼티가 나는 질문을 주인에게 하는걸 보고
그 가게 아들내미가 쟤네들 참 싼티난다는 말과 함께 멸시 섞인 비웃음을 짓는 것을 보면서
나도 저렇게 싼티나는 모습으로 보이지는 않을까 문득 생각했다
그러다 장면이 바뀌어서
세련되고 키크고 이쁘고 옷도 잘입는 대학 동기가 등장했고
벤치에서 책을 읽는(체하던) 나는 책을 덮고 동기에게 다가갔다
동기는 같이 해야할 일이 있다며 월OO라는 이름이 있는 아이를 찾자고 나를 어떤 중학교로 데려갔다
학교로 가기 전에 컴퓨터로 그 아이의 신상을 싸이월드 미니홈피를 통해 찾아보는데
월OO라는 아이는 남자친구가 있었고 임신한 이후에 남자친구와 헤어진 거 같다고 했다
그 아이의 이름을 싸이월드에서 검색해보니 연관검색어로 '점점싫어짐' '점점질린다' 같은 말이 떴다
아무튼 그 월OO라는 아이를 만나기 위해 중학교에 갔는데 그 아이는 없었고
마침 점심시간이라서 급식이 나왔다
나랑 동기가 그 월OO의 급식을 대신 먹으면서
그 아이의 짝꿍인 남자애한테 이것저것 물어보았고
그러다 문득 잠이 들었는데
몽롱한 상태에서 잠이 깨니 어떤 할머니가 그 아이를 찾냐고 물어보았다
센과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나오는 할머니와 비슷하게 생긴듯한 느낌이었는데
아무튼
그렇다고 했더니
그럼 내가 아는 것을 가르쳐주마 하면서 무언가 짤막한 이야기를 했고
대신에 내게 뭘 주겠다고 하면서
뭔가 둔중하고 부드러운 충격 - 신체적인 충격인지 정신적인 충격인지 불분명한 - 이 옆구리에 느껴졌다
잠에서 깨려는데 눈이 잘 안떠졌고
간신히 눈꺼풀을 살짝 드니까
아직도 그 할머니가 옆에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몸이 안움직이고 눈이 안떠져서
이건 틀림없이 가위에 눌린거다 싶어서
어떻게든 목소리를 내려고 눈을 뜨려고 얼굴에 힘을 주다가
헉하고 일어나보니까 꿈이었다
자취방에 걸려있던 하얀 원피스는 할머니의 얼굴
원피스의 빨간 동그라미 무늬가 할머니의 눈
원피스 위에 걸쳐놓았던 검정 자켓이 할머니의 머리가 되었던 거였다
흐리멍텅한 상태에서 문득 이것은 어떤 사건을 하나의 관점에서 뚜렷하게, 전체적으로 '해석'하려 드는 건 어리석은 짓이라는 코엔 형제의 메시지를 꿈으로 체험한것 같다는 잡스런 생각이 들었고
하지만 아무래도 다시 생각해보니 그보다는 인셉션을 본 영향인거 같다
아무튼 오랜만에 체험한 컬러풀한 꿈과 가위눌림 덕분에
늦잠을 잤고 대신 해주기로 약속한 친구의 수강신청을 말아먹었고
그런 죄책감까지 꿈속의 감정처럼 몽롱하게 느껴지는 오전이다
학원도 늦었는데 갈까말까 고민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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