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는 나를 비건 지향인으로 만든 결정적인 동물이다. 구제역과 아프리카돼지열병으로 어마어마하게 살처분된 종이기도 하다. 용기를 내어 살처분 현장 영상을 찾아보았을 때 한 명의 돼지와 눈이 마주쳤다. 그 얼굴에 서린 불안과 공포와 고통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같은 자리에 있었다면 나 역시 똑같은 표정을 지었을 것이다. 얼굴을 마주한 순간 돼지와 나 사이의 무수한 공통점을 즉시 알아차렸다. 그러자 더 이상 돼지를 먹을 수 없었다. 돼지를 고기라고 부를 때마다 목에 뭔가가 턱턱 걸리는 것 같았다.
내가 돼지에 대해 쓸 수 있는 말들은 거의 동사뿐이었다. 그의 마음의 풍경에 관해서는 도저히 쓸 수 없었다. 무슨 말을 가져다 붙여도 모자랄 것 같았다. 공장식 축산 현장에서 돼지가 통과하는 이동 동선에 대해서만 겨우 쓸 수 있었다. 어마어마한 수난의 반복 과정이 거칠게 요약되었다. 2020년 8월 20일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나는 다음의 선언문을 낭독했다.
“나 이슬아는 오늘 이 순간 돼지로서 말한다. […] 나는 태어난다. 꼬리가 잘린다. 이빨이 뽑힌다. 나는 갇힌다. 먹는다. 자란다. 빨리빨리 자란다. 다 자라고 나면 뒤돌아볼 수조차 없다. 이곳은 딱 나만 한 크기의 감옥이다. 그곳에 오물이 쌓인다. 나는 더러워진다. 수없이 주사를 맞는다. 그리하여 나는 항생제로 이루어진다. 부작용투성이가 된다. 쇠로 된 창살을 물어뜯는다. 나는 멍해진다. 나는 옮겨진다. 나는 실려 간다. 나는 놀란다. 나는 운다. 나는 죽임당한다. 내 몸은 분리된다. 썰린다. 비닐에 담긴다. 냉동된다. 먹힌다. 온갖 방식으로 먹혀서 당신들의 신체로 간다. 또 다른 나는 산 채로 묻힌다. 나는 수만 명의 나와 함께 땅속에 있다. 나는 썩는다. 나는 아주 천천히 병든 땅이 된다. 내가 묻힌 땅. 내 피로 물든 강. 나를 스친 사람들. 나를 먹는 당신들. 모두 아프게 될 것이다. 내가 이렇게나 아프기 때문이다. 나는 고통의 조각이기 때문이다. 고통이 돌고 돈다. 당신에게서 나에게로. 나에게서 당신에게로.”
작가들은 실패할 것을 알면서 주어를 바꿔 말하고 있었다. 세상 대부분의 일이 ‘어차피’와 ‘최소한’의 싸움이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어차피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이들과 그래도 최소한 이것만은 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이들 사이의 간극을 메우는 말들이 흘러나왔다. 그것은 절멸하지 않고 싶다는 의지였다. 너도 살고 나도 살자는 소망이었다.
이야기와 동물과 시는 세 단어이면서도 하나의 의미라고 이동시는 말한다. 동물은 살아 움직이는 시다. 나는 더 이상 죽인 힘으로 살고 싶지 않다. 살린 힘으로 살고 싶다.
- 이슬아, <날씨와 얼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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