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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전보다 더 늙어 있었다. 아마 아버지의 눈에 비친 나도 그랬을 거다. 입을 열었다. 될 수 있는 한 빨리 대화를 맺고 자리를 뜨고 싶어서였다.
—어디 아프세요?
아버지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구나. 그렇겠지. 차마 그냥 달라고는 못하겠으니까 빌려달라는 거구나. 아버지 생애에 그걸 갚을 수 있을까. 연민 대신 짜증이 솟구쳤다.
—뭐, 암이라도 걸리셨어요?
아버지가 다시 고개를 주억거렸다. 나도 모르게 쓴웃음이 났다.
‘암이라니, 참 전형적으로 사신다……’
—어디가요?
아버지가 기름기 없이 부르튼 입술을 달싹이다 입을 열었다.
—아니. 나 말고. 그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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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야.
—어?
—무슨 일 있어?
—아니.
—그런데 표정이 왜 그래
어떤 수사도 채근도 표정도 감정도 담기지 않은 부고訃告였다. 휴대전화 위로 고인의 이름과 발인 날짜, 장례식장 위치가 간명하게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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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애란, <풍경의 쓸모> 중에서
마음이 아플 때는 조금 더 아픈 이야기를 읽는 것이 어쩐지 복잡한 위안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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