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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나스는 아침부터 산타클로스 옷을 곱게 다려 가짜 수염과 함께 문 앞에 걸어놨다. 유치원에 산타클로스 아르바이트를 하러 가는 날이었다. 겨울이면 요나스는 유치원과 지역 행사를 돌며 산타클로스를 연기하곤 했다. 요나스는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일이라며 자주 애정을 드러냈다. 이번엔 나도 요나스를 따라가기로 했다. 마침 쉬는 날이기도 했고, 요나스의 간절한 초대 때문이기도 했다.
유치원은 집에서 한 블록 거리였다. 오며 가며 보던 장소라 낯설지 않았다. 산타 복장을 한 요나스와 구경꾼 신분의 내가 도착했을 때 아이들은 수업을 듣고 있었다. 요나스는 아이들의 눈에 띄지 않게 몰래 유치원 뒤편으로 가 기타를 준비했다. 창문 너머로 몇몇 아이들이 나를 쳐다봐 나는 괜히 딴청을 피우며 어슬렁거렸다.
요나스의 오케이 사인과 함께 아이들이 쏟아져 나왔다. 산타클로스를 발견한 아이들은 탄성을 터트렸다. 내 눈에 요나스는 가짜인 걸 숨길 생각도 없이 어설픈 빨간 천을 둘러쓰고 조악한 수염을 걸친 아저씨처럼 보였다. 하지만 아이들 눈에는 요나스가 영락없는 산타클로스로 보이는 듯했다. 아이들은 요나스를 둘러싸고 그의 말을 경청했다.
요나스는 아이들과 한 명 한 명 빠짐없이 인사했다. 아이들은 요나스에게 귓속말로 소원을 빌었는데 어떤 아이는 자기가 부모님의 말을 안 들었다며 울음을 터트리기도 했다. 나는 아이가 너무 귀여워서 견디기가 힘들었다. 다음 순서는 요나스의 기타 연주였다. 요나스는 세 곡의 크리스마스 캐럴을 불렀다. 그는 노래를 잘하지 못했지만 기타는 곧잘 쳤다. 나는 아이들과 함께 요나스의 기타 연주에 맞춰 캐럴을 따라 불렀다.
행사는 한 시간도 되지 않아 끝났다. 아이들은 끝까지 요나스를 쫓아오면서 인사했다. 요나스는 모두와 악수하고 내년 겨울에 다시 만나자고 했다. 나는 요나스를 따라 오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행사가 끝나고 집에서 가까운 슈퍼마켓 레베에 갔다. 다음 주에 있을 크리스마스 파티 준비를 해야 했다. 요나스는 평상복으로 갈아입으니 어색한 기분이라고 했다. 나는 그에게 “알고 보면 네가 진짜 산타클로스일 수도 있어”라고 장난을 쳤다. 요나스는 껄껄 웃었다. 그때 한 꼬마가 우리에게 다가왔다. 금발의 남자아이였다. 아이는 요나스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저기요.”
“응?”
“산타클로스 아니에요?”
유치원에서 봤던 아이란 걸 깨닫고 나는 엄청나게 당황했다. 들켰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반면에 요나스는 침착하게 무릎을 굽히고 꼬마와 시선을 맞췄다.
“왜 그렇게 생각했어?”
“산타클로스랑 같은 신발을 신었어요.”
“그래?”
요나스는 아이에게 빙긋 웃고는 조용히 속삭였다.
“나는 이따가 산타 마을에 선물을 준비하러 가야 하거든? 그래서 장을 보고 있어. 혹시 이 일을 비밀로 해줄 수 있을까?”
아이도 요나스를 따라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요나스는 아이에게 ‘쉿’이라고 하면서 윙크했다. 아이는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이고 가족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아이의 뒷모습을 지켜보던 요나스는 나를 쳐다보고는 뿌듯하게 웃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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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약속 시간보다 먼저 카페에 도착해 입구에서 요나스를 기다렸다. 잠시 후 멀리서 뒤뚱거리며 걸어오는 그가 보였다. 늘상 입던 검은색 아웃도어 티셔츠와 회색 7부 반바지였다. 내가 생일 선물로 준 빵모자를 쓰고 있었다. 나는 반가워서 자리에서 방방 뛰면서 손을 흔들었다. 천천히 요나스가 뒤뚱거리며 가까워질수록 들뜬 마음이 가라앉았다. 그의 몸이 변해 있었다.
빠른 걸음으로 걸어오는 요나스의 오른발에는 붕대가 크게 감겼고, 나를 보며 웃는 왼쪽 눈동자에는 갈색 반점이 있었다. 포옹을 하자고 뻗은 팔에는 곳곳에 곪은 딱지가 있었다. 반가움에 홍조를 띄어야 할 피부는 혈색 없이 회색빛만 돌 뿐이었다.
“숭진! 숭진! 숭진!”
요나스는 내 이름을 반복해서 부르더니 어깨를 붙잡고 가만히 나를 마주 봤다. 요나스의 눈을 보고 있으니, 뭔가 놓쳤다는 생각에 마음이 초조하면서 눈물이 나려고 했다. 나는 태연한 척 방긋 웃으면서 요나스를 반겼다.
“요나스, 우리가 드디어 만났어!”
“그러니까. 세상에, 정말 오랜만이다.”
“더 빨리 만났어야 하는데 미안해. 정신이 없었어.”
“아무 문제 없어. 네가 얼마나 바쁜지 알고 있으니까.”
“짜잔, 우리 동네에서 가장 인기 있는 카페야. 들어가자.”
베를린에는 육개장이 없어서 | 전성진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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