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하면 계시와 은총을 잃어버렸을 때 내 인생 또한 잃어버렸으니까. 예전에 내 속에 있었던 생명이나, 무엇이든 가치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 이젠 하나도 남김없이 없어져 버렸소. 저 강렬한 빛 속에서 그것들은 불타 올라 재로 별해 버렸던 것이오. 그 계시와 은총이 발하는 열이 나라는 인간이 지닌 생명의 핵을 모두 태워버렸던 것이오. 그 열에 견딜 수 있는 정도의 힘을 내가 가지지 못했던 것이라오. 그러므로 나는 죽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소. 육체의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나에게는 오히려 구제라고도 할 수 있소. 그것은 나라는 것에 대한 고통으로부터, 그 암울한 지옥으로부터 나를 영원히 해방시켜 주는 것이오.
또 이야기가 길어져 버렸구려. 용서하시오. 내가 정말로 오카다씨에게 전하고 싶은 것은 이것이오. 나는 내 자신의 인생을 어느 순간엔가 잃어버리고 그 잃어버린 인생과 더불어 40년 이상 살아온 인간이오. 그리고 그와 같은 입장에 있는 인간으로서 생각할 때, 인생이라는 것은 그 와중에 있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한정되어 있소. 인생이라는 행위 속으로 빛이 들어오는 것은 한정된 아주 짧은 기간이오. 어쩌면 수십 초 일지도 모르오. 그것이 지나가 버리면, 또 거기에 나타난 계시를 잡는데 실패해버리면, 두 번째 기회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소. 그 후에 사람은 암울한 깊은 고독과 후회속에서 인생을 보내야만 할지도 모르오. 그러한 황혼의 세계에서 사람은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소. 그가 손에 쥐고 있는 것은 마땅히 존재해야만 하는 것에 대한 덧없는 잔해에 지나지 않는 것이오.
- 무라카미하루키, 태엽감는새2:욕망의 뿌리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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