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이지만 일이 너무 많아서 출근을 했다. 쉬는 날 출근하는 게 나쁘지만은 않다. 야근보다는 차라리 휴일 근무가 더 좋다. 사무실에 아무도 없으니 마음껏 방구도 뀌고 일이 안풀릴 때 육성으로 욕할 수 있고 상무님 냉장고에서 물도 막 꺼내마시고 사무실 안을 쿵쾅거리면서 거침없이 돌아다닐 수가 있다.
그렇긴 한데 오늘 입사 이래로 가장 큰 사고를 쳐버렸다. 오롯이 나의 부주의함에서 비롯된 사고였다. 작은 불씨를 모른 체 했더니만 산불이 나버린 셈이다. 거래 업체를 비롯해서 여기저기 회사 내외 담당자들로부터 전화가 왔고 나도 여기저기 정신없이 전화하고 방법을 수습하느라 진땀을 뺐다. 최선을 다해봤지만 어쨌든 결과적으로 회사에 빼도박도 못할 금전적 손실이 났다. 팀장님과 팀원들에게 보고하면 쌍욕을 먹고 혼쭐이 나거나 최소한 등 뒤에서 빈정거림을 당할게 뻔하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다음주 내내 팀장님이 휴가라 바로 보고는 드리지 못하게 됐다. 이 와중에 나이스 타이밍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그래서 오늘 내내 기분이 안 좋았는데, 마침 사무실이 아무도 없이 텅 비어있어서 스트레스를 해소한답시고 풋젤리 두봉지 칙촉 한봉지 빈츠 두봉지를 순식간에 먹어 치울 수 있었다. 나는 꼭 이렇게 내 자신이 루저처럼 느껴지는 날이면 될대로 되라는 식으로 폭식을 해서 그날 하루를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흐뜨러트리고 만다. 그러면 막 살아버리자는 자포자기 마인드가 되서 오히려 좀 위로가 되기도 하고 마음이 가라앉는다. 잠시 뒤에 이성이 돌아오면 내가 왜그랬지하는 생각에 더 큰 좌절감이 밀려오고 또 다시 폭식으로 스트레스를 푸는 악순환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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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언컨대 요새 나에게 가장 절실한 일은 퇴사다. 남자친구랑 나누는 대화에서 삼분의 일 이상의 지분을 차지하는 주제는 지금의 회사를 때려치고나면 뭘 해서 먹고 사는게 좋을지에 관한 거다. 입사한 이후 계속 그랬던 것 같다. 이렇게 꾸역꾸역 회사를 다니는 게 현실 타협인지 아니면 현실 도피인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