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프랑스 퐁피두 미술관에서 있었던 ‘초현실주의 혁명 La Revollution Surrealiste’전은 미술관 전관에 걸쳐 60여명 작가들의 작품 600여점을 망라한 초대형 회고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중 여성작가들의 작품은 10여점에 불과했다. 당대에 함께 활동했던 대략 21명의 여성작가들 중 레오노라 피니, 자클린 람바, 메레 오펜하임, 도라 마르, 레메디오스 바로 등 몇몇 작가의 작품 한두점씩이 전부였다.
위대한 여성 작가들은 다만 뮤즈로, 혹은 연인으로 비공식적인 스냅사진에나 존재할 뿐이었다.
Leonora Carrington, The inn of the dawn horse (self-portrait), 1937
역사 뒤에 가려진 수많은 '그녀'들 중에 레오노라 캐링턴Leonora Carrington을 기억하려 한다. 초현실주의 화가 캐링턴의 독특한 정신세계를 만든 것은 아이리시인 유모가 매일 밤 얘기해주던 켈트 신화와 신비로운 마법의 세계였다. 그녀가 직접 그린 자화상에는 이러한 세계가 녹아 있다.
마치 마술사 같은 의상을 입고 푸른색의 빅토리언 의자에 앉아 있으며 머리카락은 욕망처럼 밤바람에 흩날린다. 머리 위를 날고 있는 유년의 목마는 창밖으로 나가 달빛 속으로 달려간다. 말은 켈트 신화에서 성스러운 동물이며 바람보다 빨라 공기까지도 뚫고 날아갈 수 있는 빛의 동물이라 여겨진다.
그 앞엔 영물과도 같은 하이에나가 서 있다. 윤기 나는 검은 털을 지닌 하이에나는 그의 분신처럼 영롱하고 깊은 눈으로 정면을 쏘아보고 있으며, 입가에 보일락 말락 미소를 띠고 있다. 아르테미스처럼 젖가슴을 달고서.
말은 낮의 부활을, 하이에나는 밤의 심연을 상징한다. 여인은 긴 검지손가락으로 하이에나에게 주술을 걸고 있고, 그 뒤에는 그림자로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희미한 영체가 있다. 자연이나 동물들과 피부로 대화한다고 말하곤 한 그는 이 영적 동물들을 매개로 거대한 자연의 생명성과 연결된다.
- 2007년 3월 30일자 여성신문 <제미란 미술 칼럼> 중에서
자신에겐 누군가의 뮤즈가 될 시간이 없다고 말하던 그녀,
2011년 5월 27일 레오노라 캐링턴의 타계를 늦게나마 애도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