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ry

12월 9일 오전의 사고(思考)

유연하고단단하게 2010. 12. 9. 13:39




왜 나는 스스로를 소모시키려 했을까
내 내부를 그렇게 파괴시키려 했을까


행복과 불행은 대부분 동전의 양면처럼 존재한다.
그래서인지 인간에게는 행복을 추구하는 욕구만큼이나 강렬하게 불행에 대한 욕구가 자리하는 것 같다.
삶을 '의지적으로' 살아가는 것은 보통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힘이 드는 일이라서, 차라리 어떤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에 빠져들어 부웅부웅 회전하는 바람 속에 몸을 내맡기고 싶다는 욕구가 조심스럽게 커져 가는 것이다. 거친 바람에 갈기갈기 찢겨지고 파편화되어 버리고 싶다는 욕구. 이성을 거부하고 짐승이 되고 싶은 욕구. 완전한 공허에 대한 욕구. '긍정적이고 생산적인' 의지 작용을 잠시 멈추고 싶다는 욕구. 얼룩들을 지우는데 지쳐서 차라리 무엇도 볼 수 없는 캄캄한 어둠 속에 침잠해 버렸으면 하는 욕구. 차라리 완전히 헤집어지고 엉망진창이 되어버렸으면 하는 욕망.

 
스무살 정도를 경계로 두고 생각해 보았을 때, 그 이전까지 나를 슬프고 우울하게 만들었던 대부분의 일들은 나의 외부로부터 내게 가해진 폭력, 외부적 사건들이었다. 하지만 이제 바깥으로부터 상처를 받는 일은 드물어졌다. 그만큼 나라는 존재의 껍데기가 더 딱딱하고 두꺼워졌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동시에 그만큼 나는 내 내부로부터 가해지는 스스로에 대한 무참한 공격에, 스스로를 헝클어뜨리는 것에 익숙해지게 되었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나를 가장 크게 손상시켰다. 외부적 위협이라는 건 이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익숙해져 버리고 난 뒤에 언제부턴가 이를 손쓸 수 없는 당연한 일로 받아들이거나 심지어 이런 경험을 '기대'하게 되어버린 것 같다. 생각해보니 그건 굉장히 무서운 일이다. 휘청거리는 정도를 넘어서 궤도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된다면, 그야말로 걷잡을 수 없게 될 것이고 완전히 파멸해버리고 말 것이라는 사실만큼은 언제나 염두에 두어야 할텐데.



좀 전의 수업 시간에도 나는 자학과 나 자신의 대단한 나약함과 무력감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던 중이었다. 그러다 중간에 들어온 한 여학생이 내 옆자리에서 쉼없이 핸드폰 키패드를 눌러대기 시작했다. 또닥또닥또닥또닥또닥또닥. 나의 분노는 그녀에게 전염되었고 미칠 듯한 짜증이 일어났다. 그녀의 머리를 힘껏 밀어서 의자에서 넘어뜨리고 발로 차면서 침을 뱉어주는 상상을 했다. 마음이 좀 후련해지는 한편 이런 상상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게 된 스스로에 대해서 기가 찼다. 나에 대해서든 남에 대해서든 상처를 입히고 싶다는 욕구는 자연스럽고 본능적인 것일까.

막시밀리안 헤커의 'dying'이라는 노래를 들으면 구역질이 난다. 그 노래는 파멸과 무력함과 나약함을 오히려 자랑스럽게 내보이면서 판타지화시킨다-라고 완전히 내 멋대로 해석해 놓았기 때문에. 이렇게 생각하면 정말 허세의 끝이라 할 만하다. '달의 궁전'에서 주인공이 보편적인 삶의 패턴을 거부하고 거지같이 살면서 굶어 죽기 직전에 이르는 모습에 음악적 배경으로 쓰이면 딱일 것이다. 나는 '달의 궁전'의 주인공이 역겨울 만큼 한심한 놈으로 여겨져서 책을 끝까지 읽는 게 힘겨울 정도였다.
 
인간인 이상 항상 같은 속도로 나아갈 수는 없다. 빈틈없이 완벽하게 매일매일을 채우는 일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잠시 멈추어서는 기간을 맞게 되더라도, 반드시 '이것만큼은' 놓쳐서는 안된다는 것을 정해두어야 한다. 잠시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쉬게 되더라도 이것만큼은 지켜야 한다, 이것만큼은 쉬지 않고 해야 한다는 어떤 원칙을 확실히 정해놓아야 한다.
이번 학기 경영학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었다. 이번 학기 내내 그 수업 시간에 들었던 이야기 중에서 가장 가치가 있는 말이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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