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데미안을 꾸역꾸역 다 읽긴 했다만

유연하고단단하게 2010. 9. 21. 16:26

 

1.

 "우리는 너무 많이 얘기한단 말야."
 그는 유난히 정색을 하고 말했다.
 "약삭빠른 이야기는 아무 가치가 없는 거야. 아무 가치가 없어. 자기 자신에게서 떨어져 나갈 뿐이지. 자기 자신에게서 떨어져 나간다는 것은 죄악이야. 사람이란 마치 거북이처럼 자기 자신 안으로 완전히 기어들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거든."


 

데미안에서 가장, 그리고 유일하게 마음에 들었던 부분.




 


 

2.

 옛날에 나는 인간이 하나의 이상을 위해 사는 일이 왜 그토록 드문지에 대해 무척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그런데 지금 나는 많은 사람들이, 아니 모든 사람들이 이상을 위해 죽을 수 있음을 보았다. 그러나 그것은 개인적이거나 자유롭거나 선택된 이상은 아니었다. 그것은 떠맡겨진 공통의 이상임이 분명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나는 내가 인간을 과소평가했음을 알았다. 아무리 군무와 공통적인 위험이 그들을 획일화했다 하더라도, 살아 있는 사람들이나 죽어가는 사람들이 훌륭한 태도로 운명의 의지에 접근하는 것을 나는 보았던 것이다. 많은 사람들, 매우 많은 사람들은 공격시뿐만 아니라 어느 때건 목적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아는 것이라고는 없으면서도, 다른 어떤 거대한 것에 대한 완전한 헌신을 뜻하는 확고하고 아득하고 다소간 홀린 듯한 눈빛을 지니고 있었다. 설사 이들이 언제나 자기들이 원하는 바를 믿고, 그리고 말하고 있다 하더라도 그들은 준비를 갖추고 있었으며, 쓸모가 있었고, 그들에게서 미래가 형성될 것이었다. 그리고 이 세계가 전쟁과 영웅주의를, 명예와 그 밖의 다른 낡아빠진 이상을 완고히 지향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면 보일수록, 외관상으로 인간성의 모든 음향이 있는 듯 없는 듯하게 울리면 울릴수록, 이 모든 것은 마치 전쟁의 외적이고 정치적인 목적이 그렇듯이 단지 피상적인 것에 불과했다. 그 깊숙한 곳에서는 무엇인가가 형성되고 있는 것이었다. 새로운 인간성과 같은 무엇인가가.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을 나는 볼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 가운데 다수가 내 옆에서 죽어갔지만 그들에게서는 증오나 분노도, 살육과 파괴도 그 대상물에 결부되어 있지 않다는 인식이 느껴졌던 것이다. 그렇다. 그 대상물이란 그 목적과 마찬가지로 매우 우연한 것이었다. 본래의 감정은 가장 과격한 것조차도 적에게 행해진 것은 아니었다. 그 피비린내 나는 싸움의 소산은 내면의 발산이며, 새로이 태어날 수 있기 위해 미쳐 날뛰고 죽이고 파괴하고 죽어버리려고 하는 내부에서 분열된 영혼의 발산이었다. 한 마리의 거대한 새가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하는 것이었다. 그 알은 이 세계였고 따라서 이 세계는 산산조각이 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여기서도 '그러나' 이후의 문장들이 굉장히 불편하게 읽혔다. 특히 마지막 세 문장은 굉장히 불쾌했다.


아무래도 세계 일차대전 직후의 처참한 풍경 속에서 사람들은 문제를 미시적으로 생생하게 바라보기보다 그것을 하나의 '이념'이나 '사상'과 같은 불분명한 형체, 신비롭게 포장된 분석 속에서 인식하는 게 더 마음 편했을 것이다. 그래서 당시 데미안이 많은 이들에게 더 열렬히 읽힐 수 있었던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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