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학생의 아내

유연하고단단하게 2010. 10. 2. 18:04

 

 "난 맛있는 음식, 스테이크, 기름에 지진 감자, 그런 게 좋아.
 좋은 책과 잡지, 밤에 기차 타는 거, 비행기를 타는 걸 좋아해."
 그녀는 잠시 멈추었다.
 "물론 이건 좋아하는 순서로 말한 건 아니야. 좋아하는 순서대로 말하라고 하면 생각을 해봐야 해. 그렇지만 나는 그게 좋아, 비행기 타고 가는 거. 이륙할 때면 어떤 일이 일어나든 상관없다는 느낌이 드는 순간이 있어."
 그녀는 한쪽 다리를 그의 복사뼈 위에 걸쳤다.

 "나는 밤늦게까지 깨어 있다가 다음날 아침에 침대에 그냥 누워 있는 걸 좋아해. 우리가 늘 그럴 수 있으면 좋겠어, 어쩌다 한번씩이 아니라. 그리고 난 섹스가 좋아. 기대하지 않고 있을 때 이따금씩 날 쓰다듬어주는 것도 좋고.
 영화관 가는 것, 영화 보고 나서 친구들과 맥주 마시는 것도 좋아. 친구를 사귀는 것도 좋아해. 난 재니스 헨드릭스를 아주 좋아해. 그리고 적어도 일주일에 한번은 춤추러 가고 싶어. 늘 멋진 옷을 입고 싶고. 아이들에게 새 옷이 필요할 때마다 그때그때 멋진 옷을 사줄 수 있으면 좋겠어. 당신도 새 양복을 샀으면 좋겠어, 당신이야말로 새 양복이 필요하잖아. 그리고 난 우리가 우리 집을 가졌으면 좋겠어. 매년, 아니면 이 년에 한 번씩 이사하는 거 그만했으면 좋겠어.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녀가 말을 이었다.
 "우리 둘이 돈이며 청구서 따위 걱정할 필요 없이 착하고 정직하게 살았으면 좋겠어. 당신 자는구나."
 "안 자."
 그가 말했다.
 "다른 건 더 생각이 안 나. 이젠 당신이 해. 당신이 좋아하는 걸 말해봐."
 "몰라. 많아."
 그가 중얼거렸다.
 "그럼 말해봐. 우리 얘기하고 있는 거 맞지?"

 "내가 좋아하는 건, 당신이 날 가만 놔두는 거야, 낸."

 

 


레이먼드 카버 단편집 <제발 조용히 좀 해요> 중 '학생의 아내'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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