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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 후쿠오카-히타-유후인-벳푸

유연하고단단하게 2024. 10. 22. 20:28

 
1일 차 (규카츠, 나카강 산책)

날씨가 갑자기 추워져 여행 가서 고생할까 봐 두꺼운 외투를 챙겨 왔는데 웬걸. 후쿠오카에는 아직도 반팔을 입은 사람들이 많았다.

지난 오사카 여행에서는 인파를 피해 아무 음식점에서나 밥을 먹었다가 결국 맛있는 음식을 하나도 먹지 못하고 돌아왔다. 그래서 이번 여행만큼은 '한국인 맛집'을 공략해서 실패 없는 식사를 하겠다고 마음먹었다. 

후쿠오카에 도착해서 첫 끼니로 규카츠를 먹었다. 텐진 역과 바로 연결되어 있는 쇼핑몰 지하에 입점해 있는 식당이었다. 약간의 웨이팅을 하고 (모두 외국인이었다) 양이 적다는 리뷰를 보고 190g를 주문해서 먹었는데 나로서는 양이 너무 많았다.

 




저녁을 먹고 산책을 했다. 오사카의 도톤보리 강만큼 화려하지는 않지만 나름대로 운치 있는 야경을 즐기며 걷고 소화를 시켰다. 포장마차에서는 대부분 현지인들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왠지 주문 난이도가 있을 것 같기도 하고 배도 부르고 해서 포장마차 체험을 해보지는 않았다. 오가며 한국인 아저씨들이 "여기 딱 보면 한국인이구만. 안녕하세요?" 하며 말을 걸었다. 아는 사이도 아니면서 왜 굳이 말을 거는 건지 불쾌했다. 여행의 맛은 낯선 문화를 체험하면서 타인의 시선과 일상적인 평가로부터 자유로워져 익명성을 자유롭게 즐기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2일 차 (오호리공원, 라멘, 효탄스시)

여행을 느긋하고 여유롭게 즐길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는 공원을 가는 것이다. 강이 흐르고 나무가 잘 가꾸어져 있고 잘 조성된 산책길을 걷는다는 건 여행을 통해 우리가 그토록 얻고자 했던 '여유'를 만끽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오호리 공원에는 잘 가꾸어진 일본식 정원도 있고, 쿠사마 야요이의 호박 조경물을 구경할 수 있는 후쿠오카시 미술관도 있고, 잉어와 버섯과 도롱뇽과 오리들이 있었다. 잔잔한 강과 호수가 있고 푸르른 녹음과 안정과 평화로움이 있었다.

 



공원 산책을 마치고, 남자친구가 저장해 두었던 새우 라면 맛집으로 향했다. 키오스크로 낑낑 대며 주문을 하고 자리를 앉고 나서 알고 보니 우리는 그 옆집으로 잘못 들어온 것이었다. 어쩔 수 없지. 여기도 사람들이 줄 서서 먹는 걸 보면 맛집일 거야 , 하면서 음식을 기다렸다. 심지어 일본어를 잘못 읽은 남자친구가 '소금 라면'을 시켜버려서 너무 짜서 맛없으면 어떡하지 살짝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받아 보니 시오라면은 간이 딱 맞았고 국물 맛이 깊었다. 어쨌든 줄 서서 먹는 곳은 실패하지 않는다.

 




유니클로와 GU를 구경하고, 캐널시티 하카타에서 아이쇼핑도 하고, 저녁을 먹으러 효탄스시에 갔다. 본점은 사람이 너무 많을까 봐 그 옆 쇼핑몰 지하에 위치해 있는 회전초밥 분점으로 갔다. 5시가 좀 넘어서 갔더니 웨이팅을 해야 했다. 하지만 기다려서 먹으면 실패하지 않는다 (= 기다리지 않고 먹는 곳을 실패할 확률이 높다)는 것을 지난 오사카 여행에서 뼈저리게 느꼈었기에 느긋한 마음으로 대기를 했다. 그렇게 자리가 났고 주문은 QR코드로 메뉴를 보고 바로바로 온라인 주문을 할 수 있어서 매우 편리했다. 제일 처음 주문한 붉은 도미는 살짝 비렸지만 그 외 모든 초밥은 다 맛있었다. 특히 양념이 들어가는 종류의 초밥들이 맛있었다.

 




3일 차 (히타, 유후인)

아침 일찍 일어나서 고속버스를 타고 히타로 넘어갔다. 이번 여행은 일정이나 이동 수단이나 모두 남자친구가 팔을 걷어붙이고 주도해서 알아봐 주었다. 오히려 파워 J인 내가 아아 그렇구나 하면서 따라다닌 느낌이다.

늦게 가면 히타역 자전거 대여소에 자전거가 없다고 해서 걱정했는데, 재고는 여유가 있었다. 예전에는 자전거를 대여하면 캐리어를 공짜로 맡길 수 있었는데 이제는 유료 서비스로 바뀌어 개당 8천원 정도 추가 지불하고 짐을 맡겼다. 

제일 먼저 그 유명한 히타마부시 센야에 갔다. 11시쯤 갔는데 서너 팀 정도 웨이팅이 있었다. 비쌌지만 맛있었다. 장어 덮밥을 먹고 마메다마치를 구경했다. 근처에 히타 전경을 내려다볼 수 있는 나가야마 성이라는 곳이 있어 성곽길을 올라가 보기도 했다. 






성터에서 내려와서는 자전거를 타고 미쿠마 강가까지 쭉 내려가서 강변을 구경했다. 강변에서 히타의 또 다른 정취를 맛볼 수 있어서 좋았지만, 한편으로는 자전거를 빌리지 않고 마메다마치를 충분히 걸으며 아름다운 골목골목을 구경하는 것도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사람들이 다 하는 대로,
계획에 맞추어 여행하는 데에 급급하지 않고 그때 그때 상황에 맞추어서 내가 원하는 대로 (그리고 여행 파트너가 원하는 대로) 여행을 하는 것이 역시 더 낫지 싶다.

 




유후인으로 가기 위해 JR 시간에 맞추어 히타역으로 돌아왔다. 열차는 쪼그맣고 빨갛고 귀여웠다. 유후인역에 도착하니 노란색 열차도 나란히 서있어서 너모 귀여웠다. 히타에서도 날씨가 흐리다 싶었는데

유후인으로 오니 구름이 점점 더 무거워졌다. 

우리는 가성비 좋기로 한국인들에게 유명한 료칸 산소 타나카를 숙소로 잡았다. 유후인역에서 걸어서 15분 거리에 있는 료칸이다. 우리는 캐리어를 끌고 유후인 정취를 구경하며 걸었다.

가는 길에 하천에서 왜가리를 여럿 만났다. 검은색 왜가리도 처음 봤는데 날개를 말리려는 듯 펼치고 있었다. 도심에선 새를 (비둘기나 까치, 참새 말고는) 잘 볼 일이 없으니 신기하고 반가웠다.
남자친구가 '쟤 그 최근 지브리 영화에 나오더라'라고 한 게 생각나서 포스팅을 하다가 넷플릭스로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를 찾아보았다. 내가 찍은 왜가리와 유후인의 풍경이 애니메이션 속의 이미지와 많이 겹쳐 있어서 반갑고 신기했다.





숙소에 체크인하고 온천욕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원랜 자전거도 무료로 대여해 준다고 알고 있었는데, 한국인 투숙객들이 자전거를 타고 다니면서 주민들과 교통 충돌이 빚어져 민원이 자주 접수되었고 경찰까지 출동하는 소란이 있어 이제는 자전거를 대여하지 않는다고 한다. 

유후인을 더 구경하고 저녁거리도 살 겸 짐만 대충 내려놓고 다시 나왔다. 6시 즈음이 되니 금세 깜깜해지고 가게들도 대부분 문을 닫아서 시골이구나 싶었다. 유후인 역 근처 마트에서 먹을 것을 사고 돌아왔다.

 




4일 차 (유후인, 벳푸)

아침에 일어나 긴린코 호수 산책을 하고 돌아왔다. 아침 8시쯤 갔더니 새벽안개가 쌓인 있는 풍광은 보지 못했고 오히려 간밤에 비가 온 후 날씨가 개어 어제보다 더 화창했다. 하지만 맑은 날씨의 긴린코 호수는 흐린 날씨에 보는 모습과 또 다른 맛이 있어 좋았다. 채도가 높은 초록이 우거진 풍경은 지브리 애니메이션 속 장면들처럼 아름다웠다.

돌아와서 산소타나카에서 제공하는 아침 도시락을 먹었다. 정갈하게 담아주신 소고기 계란 소보로 덮밥과 샐러드, 크로켓, 야채 볶음, 어묵, 떡까지 먹으니 배가 터질 것처럼 불렀다. 체크아웃을 한 후에는 유후인을 더 돌아다녔다. 상점들이 많은 유노츠보 거리보다는 논밭과 산과 하늘과 집이 함께 있는 풍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소박한 산책길이 더 좋았다. 잠시 쉬어가기 위해 스누피 카페에 들어가서 스누피 마시멜로 라테를 시켰다 (귀여운데 맛은 없었다).

 



유후인에서 버스를 타고 벳푸로 넘어갔다.
사실 이번 여행은 히타, 유후인(야외 온천)에 거는 기대가 컸고, 벳푸에는 별로 기대가 없었다. 그런데 막상 벳푸에 도착해서 숙소에 짐을 풀고 텐동집에서 점심을 먹고, 바로 앞에 있는 공원으로 나가서 넓게 펼쳐진 바다를 보니 벳푸에 대한 애정이 급상승했다. 산과 바다를 모두 아우를 수 있는 여행 코스라 좋았던 것 같다.

 



숙소에 돌아가서 체크인을 하고, 늦지 않게 지옥 온천 순례를 떠났다. 우리는 가장 유명한 우미지옥과 가마솥지옥만 골라서 갔는데 후회누 없었다. 색색깔의 온천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단 11월임에도 엄청 더워서 땀을 삐질삐질 흘렸다. 




 

온천 순례를 마치고, 숙소 근처에 있는 쇼핑몰 1층에 입점된 마트에서 이런저런 음식을 사와서 호텔방에서 저녁을 먹었다. 오므라이스가 올라간 오코노미야끼, 규동, 새우 튀김 샐러드, 그리고 각종 빵과 젤리와 과자를 먹었는데 모두 맛있었다.

우리가 묵은 숙소는 '아마넥 유라리 벳푸'였는데, 벳푸에서 크게 할 것도 없고 마지막 날이기도 하니 무리하지 말고 옥상 수영장이나 즐겨야겠다고 생각했다. 루프탑 수영장에서 바라보는 야경은 여행을 마무리하기에 충분히 멋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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