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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일하는 마음

유연하고단단하게 2024. 7. 30.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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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성장할 수 있을까요?”라는 질문은 어쩌면 ‘애쓰기’로 인도하는, 잘못 끼운 첫 단추인지도 모르겠다. “무엇을 어떻게 배워야 할까요?”와는 분명히 다른 질문이다. 핵심은 ‘나’의 ‘성장’이 아니라 내 눈앞의 과업(무엇)과 그것을 해내는 방법(어떻게)에 집중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한 발 한 발을 제대로 올바르게 내디딜 수 있어야만 부상 없이 잘 달리는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다. 나의 지성이 집중해야 할 지점은 한 발을 잘 내딛는 것이다. 성장은 한 발들을 경유하지 않고 직접 가닿을 수 없는 결과물이다.

성장은 과정을 경유하지 않고서는 얻을 수 없는 결과이고, 잘 수행된 과정은 세상이 성공이라고 정의하는 결과를 담보하지는 못해도 성장만은 가져다준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수행의 과정에 지적으로 집중하며 자신이 무엇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의식하는 데 노력을 기울인 사람은, 자신이 무엇에서 나아졌는지 발견하게 된다. 그걸 발견한 사람은 거기에 ‘성장’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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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 보면 내가 성장을 가장 뚜렷이 자각했던 때는 첫 직장에서의 3년 남짓이었다. 컨설팅 회사였던 그 직장에는 촘촘하기로 소문난 성과 평가 프로세스가 있었다. 성과 평가는 매 프로젝트가 끝날 때마다, 또 프로젝트별 평가를 종합해 반기마다 이루어졌다. 촘촘한 것은 빈도만이 아니었다. 성과 평가는 평가자의 주관적 기준에 따라 두루뭉술하게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매우 구체적으로 정의된 50개 항목에 따른다. 문제 해결의 영역에서 이슈를 파악하고 구조화하는 능력에서부터 자신의 과제를 스스로 계획하고 시간을 관리하는 능력, 분석의 결과를 종합해서 문서와 구두로 소통하는 능력, 팀의 일원으로서 일하는 능력, 갈등 상황을 다루는 능력 등등. 더구나 성과 평가의 중요한 원칙은 성과 평가의 결과가 평가 대상자를 놀라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성과 평가에 반영될 사항들은 미리 피드백을 주어 스스로 개선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런 기준에 따라 거의 매주, 적어도 2주에 한 번은 프로젝트 팀장으로부터 피드백을 받는 시간을 가졌다. 숨 막힐 것같이 들리지만, 내게는 이 과정이 오히려 불안감을 덜어주었다. 막연히 ‘잘해야지’, ‘성장해야지’ 하고 생각하는 대신, 구체적으로 지금 해야 할 일에 의식을 집중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피드백을 받으면 ‘나는 잘하고 있을까’ 하는 막연한 불안의 자리에 ‘다음엔 이렇게 해보자’는 목록이 들어서게 된다. 구체적인 ‘어떻게’의 목록은 나에게 ‘일을 잘한다는 것’의 명확한 정의를 내려주었다. 그 덕에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사안들을 걱정하는 대신, 오늘 당장 부딪히는 내 일의 현장에서 어떻게 일해야 할지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50개 항목은 이후에도 나 자신의 성과를 객관화하는 준거가 되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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