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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부터 아팠다. 월요일은 어떻게 출근했는지 기억도 안 날 정도로 아팠고 당연히 한 끼도 못 먹었다. 집에 올 때까지는 도착할 생각만 하느라 몰랐다가 씻고 나니까 갑자기 배가 고팠다.
엄마에게 전화로 솜이랑 산책하고 돌아오는 길에 피자빵 좀 사 오면 안 되냐고 물었다. 엄마가 애 데리고 시장에 들러야 해서 빵집 갈 시간이 없다면서 끓여놓은 김치찌개나 먹고 자라고 했다. 평소 같으면 아무렇지 않았을 텐데 전화 끊고 침대에 눕자마자 서운하고 서러워서 자꾸 눈물이 났다. 내가 세상에서 제일 불행한 사람 같았다. 우리 엄마는 못됐다고, 피자빵도 안 사주는 못된 엄마라고 울면서 잤다.
다음 날 출근할 때 엄마가 잘 다녀오라고 인사하는데도 못 들은 척하고 그냥 나왔다. 퇴근하고 집에 와서 또 잠이 들었다. 새벽에 잠깐 일어났더니 솜이 엉덩이가 내 얼굴 옆에 있고 그 옆에 또 이상한 부스럭 소리가 들려서 손을 뻗어보니 피자빵 두 개가 나란히 머리맡에 놓여 있었다.
엄마가 가져다 둔 피자빵 두 개. 그냥 내가 사 먹으면 되는 거였는데. 하나는 동생 먹으라고 주고 하나는 회사에 가져와서 바로 안 먹고 일하는 내내 옆에 두고 봤다. 기록하지 않으면 기억하지 못할까 봐 이렇게 써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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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본다. 그 사람은 말을 천천히 느리게 한다. 좋다. 천천히 느리게 하니까 말하는 동안 그 사람 얼굴을 좀 더 오래 볼 수 있어서 좋다. 말하면서 다음 말을 생각하는 그 눈의 움직임도 좋다. 나는 이제 모든 것이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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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열네 살에 만나서 벌써 서른셋이 되었구나. 너와 인생의 절반을 함께 했어. 화려한 조명 사이로 네가 들어오는데 자꾸 울컥하더라. 행복해하는 너도, 어머니도 그리고 그 속에 형부도 찬란하게 빛난다.
너와 나는 아주 가끔 얼굴을 마주해서 시시콜콜한 서로의 일상은 잘 모르지만 그런 게 뭐가 중요한가 싶어. 우리는 늘 같은 자리에 있으니까.
24살 때, 사소한 싸움 하나로 나는 미국에 너는 한국에 있는 채로 연락이 끊겼었잖아. 그렇게 문득 네가 생각이 나다가 어느새 너를 잊고 살 때쯤, 1시간 거리의 어느 가게에서 문을 열고 나오는 너를 우연히 마주쳤어. 세상의 시간이 멈춘 듯했어. 그때 내 앞에 다시 나타나 줘서 정말 고마웠고, 지금도 이 자리에 서 있을 수 있게 해줘서 고마워.
내가 너를 마주쳤을 때의 그 마음은 형부가 느꼈던 마음과 같을 거라고 생각해. 평생을 함께할 너를 만나서 말이야.
오늘처럼 너와 형부의 앞날은 늘 찬란하길 바란다. 혹시라도 살다가 언젠가 마음이 시릴 때 꼭 나를 찾아와 줘. 그 어떤 일이 있더라도 모두 제치고 너에게 갈게.
다시 한번 너의 영롱한 결혼을 온 마음 다해 축하해.
- <다정한 건 오래 머무르고>, 소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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