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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우리 사랑을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하지 않으리

유연하고단단하게 2024. 7. 12. 08:31


장덕준 씨는 쿠팡 칠곡 물류센터에서 물류 작업을 하는 이십대 노동자였다. 그는 퇴근길에 편의점에 들러 여동생에게 줄 간식을 사곤 했다. 마지막 퇴근길에는 웨하스를 샀다. 웨하스를 들고 엘리베이터에 탄 그의 모습이 담긴 CCTV 영상을 훗날 그의 가족들은 몇 번이고 돌려보게 된다.        

그는 쿠팡에서 일한 지 1년 4개월 만에 과로사했다. 과로사의 대표적인 유형인 급성심근경색으로 인한 죽음이었다. 그의 근무시간은 주당 평균 62시간 10분이었다. 그는 하루 평균 5킬로그램씩 100개, 30킬로그램씩 40개의 택배 상자를 날랐다. 일터에서의 걸음 수는 하루 평균 5만 보였다. 1년 사이 체중이 15킬로그램가량 빠졌다. 그는 2020년 10월 12일 새벽 6시, 야간 근무를 마치고 귀가한 직후에 죽었다. 욕조에서 웅크린 채로 가족에게 발견되었다. 부검 결과 근육이 급성으로 파괴되어 있었다. 근육 과다 사용이 주된 원인이라고 질병 판정서는 증언한다.

가족들 사이에서 장덕준 씨는 다정한 아들이자 오빠였다. 그런데 가끔은 아버지와 부딪히기도 했다. 아버지는 뉴스에 세월호 이야기가 나오면 욕을 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저 사람들은 아직까지도 저러느냐, 이제 그만할 때도 되지 않았느냐. 그런 아버지에게 장덕준 씨가 물었다. 아버지, 제가 죽어도 그렇게 말씀하실 거예요?        

장덕준 씨가 죽고 그의 부모는 단 한 번의 호흡도 편하게 할 수 없게 된다. 숨 쉬는 것이 어려워져버렸다. 그들은 아들의 질문을 잊지 못한다. 이제 그 물음에 진짜로 대답해야 한다. 장덕준 씨의 아버지 장광 씨는 국회로 간다. 아들의 이름이 적힌 피켓을 들고 간다. 함께 세월호 유족들을 욕했던 아버지의 친구들도 그를 따라간다. 세월호 유족들이 섰던 자리에 그들이 선다. 아들의 일터였던 쿠팡 물류센터에도 함께 간다. 물류센터의 모든 노동자가 그들 눈에는 또 다른 자식처럼 보인다. 국회에서, 그리고 물류센터 앞에서 그들은 누구도 다시는 이렇게 죽으면 안 된다고 말하며 현수막을 펼친다. 그들의 현수막에는 적혀 있다. 덕준이의 친구들이 일하고 있다고.        

장덕준 씨의 어머니 박미숙 씨는 방송국으로 간다. CBS 라디오 〈뉴스 업〉 녹음실에 앉아 떨리는 목소리로 아들의 말을 전한다. 죽기 얼마 전 장덕준 씨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도구예요. 우리는 쿠팡을 상대로 절대 이길 수 없어요.” 박미숙 씨에게 이 말은 아들이 주고 간 숙제다. 박미숙 씨는 온 힘을 다해 중대재해법을 이야기한다. 아들에게 대답할 수 있으려면 이렇게 슬픈 일이 또 일어나지 않도록 모든 것을 총동원해야 하니까. 부부는 쿠팡 측 관계자에게 수없이 대면 요청을 한다. 아무리 말해도 만나주지 않아서 무릎을 꿇어가며 요청한다. 쿠팡은 과로사를 인정하지 않는 태도를 보인다. 유족들에게 필요한 자료도 내어주지 않는다. 실효성 없는 대책만을 내놓는다.


- 이슬아, <날씨와 얼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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