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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능하면 긍정적인 면만 볼 것. 머릿속에 떠오르는 부정적인 염려와 두려움을 지울 것. 그리고 친절하게 웃을 것.
삼십 분 전에 주문한 전통 샌드위치가 이제 나왔다. 삼십 분을 조리한 것 치곤, 대체 어디에 공을 들였나 싶을 만큼 식빵 안에 햄과 치즈 한 장이 있을 뿐이다. 시간이 생명인 서울역의 던킨도너츠에서는 1분 만에 나오는 것이지만, 나는 다시 이 현상의 긍정적인 면을 보기로 했다. 덕분에 기다리는 삼십 분 동안, 나는 이 글을 다 쓸 수 있었다. 멕시코는 나를 진정 작가로 거듭나게 하는 곳이고, 이곳에서 나는 긍정적인 인간으로 거듭나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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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가방 속에 있는 유산균 가루가 마약으로만 의심받지 않는다면, 그래서 멕시코시티 국제공항에서 억류된 채 ‘한국의 소설가, 카르텔의 마약 운반책으로 밝혀져’ 유의 기사로 신문 지면만 장식하지 않으면 된다. 프랑수아즈 사강이 공항에서 마약 소지로 체포돼, 법정에서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는 폼 나는 말도 이미 해버렸기에, 내가 오해받아 체포되더라도(멕시코는 우리와 달리, ‘유죄 추정의 법칙’으로 체포를 한다), 딱히 길이 남을 법한 말도 할 수 없다.
그저 “그거, 유산균이에요. 유산균! 봉투에 쓰인 lg 그거 1그램이 아니고, LG예요. LG 생활건강. 흐허흐어.” 이렇게 말할 뿐이다. 사실 이 ‘유산균’이라는 스페인어를 몰라, ‘약’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데, 공교롭게 스페인어로 약인 ‘드로가(droga)’는 마약과 동의어다.
이 말을 왜 길게 했느냐면, 이런 불안감이 내 안에 계속 있다. 여행은 언제나 호기심과 불안감이 엎치락뒤치락 공존하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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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석 여행 에세이, <40일 간의 세계일주> 중에서.
덕분에 남미에 가고 싶어지지...는 않았지만 작가의 고생담 덕분에 많이 웃을 수 있었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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