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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내릴 때까지

유연하고단단하게 2022. 12. 30. 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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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코는 오바의 가슴에 꼭 알맞게 파묻혀 늘 감탄한다.

'어쩜 이렇게 사람을 안을 수 있을까.'

포옹뿐만 아니라, 입술 위에 따스한 눈처럼 떨어지는 남자의 부드러운 입술도 어딘지 모르게 자신의 입술과 꼭 맞아떨어지는 것 같아서 감탄하고 만다. 몸이, 또는 인생의 틀이 잘 들어맞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오바의 몸은 딱딱하지만, 이와코에게는 하나도 딱딱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팔도 혀도 입술도 한없이 부드러웠다. 남자의 몸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생명의 매끄러움 그 자체라는 느낌이었다. 몸 자체가 만족의 한숨인 것 같았고 이와코는 그 한숨에 안겨 있는 것 같은 느낌에 사로잡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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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는 미래의 불안을 강조하지만, 이와코는 옛날에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유산을 아직도 잘 간직하고 있다. 경리부 남자는 주식으로 돈 버는 이야기를 좋아해서, 좋은 건이 있을 때마다 가르쳐준다. 그 덕분에 이와코는 자연스럽게 자금 운용법을 배웠다. 은행 융자를 내 아파트를 한 채 샀고 거기서 월세를 받고 있다. 하루의 반을 바깥에서 생활하는 이와코에게는 그 아파트를 쓸 이유가 없었다. 또 월세를 받으면 이자를 갚고 저축도 할 수 있다. 언니와 동생들에게는 말하지 않았다. 돈 쓰는데 인색한 이와코의 생활을 보고는, 벌써 유산을 다 날린 모양이라고 생각한다. 건축 자재점을 운영하는 남동생도 얼마 전부터는 돈 빌려달라는 소리를 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와코는 얼마 전의 주식 붐에 편승하여 돈을 좀 벌어서 재산을 두 배로 불려놓았다. 하지만 그렇게 모은 돈으로 자신의 가게를 낸다든지, 장사를 해서 돈을 더 벌어보겠다는 생각은 아예 하지도 않았다. '야마다케 포목점'이 망하지 않는 한 조용히 사무원으로 자신을 숨기며 살아갈 생각이다. 그런 데서 비롯하는 자신감이 이와코를 한층 매력적으로 보이게 하는지도 모른다.

이와코는 자기 재산에 대해 오바에게 말하지 않듯, 자신이 끊임없이 몸에 신경을 쓰고 가꾼다는 사실도 말하지 않아싸. 건강한 이에다 돈을 투자하고, 사우나와 마사지 숍에도 자주 들러 몸을 가꾼다. 나이에 걸맞게 늙는 건 어쩔 수 없다. 이와코는 남의 눈에 띄지 않으면서도 늘 산뜻하게 몸을 단장한다. 그러나 다른 그 무엇보다 여자의 피부에 윤기를 더해주는 것은 남자다. 이와코는 한 번도 결혼하지 않았지만, 결혼에 대한 꿈을 갖지 않는다. 결혼에 대한 꿈을 품지 않게 되자 머리에 구멍이 뚫린 듯이 자유로운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그런 즐거움을 다른 사람에게 고백하지 않는다.

 

-  다나베 세이코, <눈이 내릴 때까지> 중에서

 

 

다나베 씨의 소설 속 주인공들은 한결같이 재능을 갖추고 있다. 그 재능이란 인생을 사랑하는 재능이다. 나는 짜증이 나거나 우울할 때면 다나베 씨의 책을 펼쳐든다. 그리고 인생을 사랑하며 사는 법을 배운다. 

<눈이 내릴 때까지>의 혼자 사는 중년 여자는 애인을 만날 때마다 '처음'이라는 감정을 재생산해내는 특별한 기술을 가지고 있다. 가슴 두근거리는 긴장감, 숨 막힘, 발개지는 볼, 그러한 반응은 마치 그 남자를 처음 만난 것 같은, 또 그 만남을 이 세상 마지막 만남이라고 여기는 듯한 사랑의 자세에서 나온다. '연속 편을 싫어하는' 여자이기에 관계의 산뜻함을 유지할 수 있다. 여자는 남몰래 자신의 몸을 가꾸는 데 소중한 돈을 투자한다. 마사지를 받고 표티나지 않게 몸치장을 하고 재테크로 재산을 불린다. 남자에게 의지할 생각이 없기에 남자에게 베풀지도 않는다. 여자와 남자로 만나 서로 사랑을 나누면 그만이다. 시정의 잡다한 가치관에서 비껴나 오로지 자신의 미학에 따라 살아가는 여자다. 아마도 그녀는 자기 자신의 모든 것을 무조건적으로 긍정하는 을 가지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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