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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경선의 이기적인 상담실] 그래도 나의 꿈, 이뤄야…겠죠

유연하고단단하게 2010. 7. 1. 00:18


그래도 나의 꿈, 이뤄야…겠죠
[매거진 esc] 임경선의 이기적인 상담실
‘드림스 컴 트루’식 사탕발림 신화의 세상, 당신은 지금 희망의 마약을 먹고 있는 건 아닌지


Q case #1 좋아하는 일이 뭔지 모르겠지만 정말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해야 되겠죠? 대학 졸업은 성큼 다가오는데 조바심만 나서 휴학을 택하고, 남들 준비하는 시험 같이 준비해보지만 마음은 안 동하고. 그렇다고 꿈도 없고 내가 뭘 잘하는지, 뭘 원하는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case #2 꿈을 좇자니 불안하고 막막하고, 현실로 타협하자니 여태 준비한 게 아깝고 패배자인 것 같아요. 학교 졸업한 지는 3년, 졸업 후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다가 이 길이 아닌 것 같아 시나리오작가를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꿈이라는 미명하에 안정을 포기하니 처음엔 홀가분하고 좋았으나 점점 나이는 먹어가니 제 실력에 대한 확신도 없어집니다. 그렇다고 ‘현실’의 자리로 돌아오자니 그 역시 절망적이고.

case #3 이것도 저것도 시도해봤지만 딱히 ‘내가 있어야 할 자리’가 아닌 것 같아요. 음대를 나왔는데 이걸로 먹고살기는 힘들 것 같아 디자인 공부를 더 했어요. 하지만 이것도 제대로 하려면 경쟁이 너무 치열해 더 전문적인 공부를 해야 한다는 걸 알았고, 하지만 마냥 나이 들도록 공부만 할 수는 없고, 그렇다고 지금 오라는 회사, 입사할 거면 뭐하러 여태 이 고생 했나 싶고.

case #4 평범한 회사원이 되고 싶지 않습니다. 어쩔 수 없이 매일 가기 싫은 회사에 가서 매일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하는 인생은 원치 않습니다. 저는 저만의 길을 찾고 싶습니다.


A ‘나는 지금 내 꿈을 향해 노력하고 있습니다만 힘이 듭니다’ 식의 수많은 편지를 보면 늘 복잡한 생각이 듭니다.

일단 ‘꿈을 찾아 이루지 않으면 안 된다’라는 모종의 천박한 강박증이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현실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해서 성공하고 이름도 알리고 출세하는 운 좋은 이들은 극히 일부인데 그런 이들이 나와서 ‘정말 원하면 누구든 할 수 있어’의 견본이 되고 있으니 참 문제입니다. 다단계 판매왕의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너의 꿈은 뭐니” “찾아봐, 분명히 네가 잘하는 게 있을 거야” “유 캔 두 잇, 라이트 나우”를 연발하니까 ‘아, 나도 뭔가 나만의 꿈을 가져야 하는구나’ ‘나한테도 숨겨진 재능, 혹은 가능성이 있어’라고 자기암시를 하게 되지요. 내가 원하고 노력하면 꿈은 이루어지고 무조건 내가 하고 싶은 걸 해야 한다는 마약 같은 ‘드림스 컴 트루’식 사탕발림 신화. 하지만 이건 그저 어이없는 긍정과 희망의 마약이 먹히고 있는 것뿐이지요. 이렇게 꿈의 박리다매 세상에선 ‘꿈이 없는 애’들이 ‘꿈이 있는 애들’ 밑으로 카테고리화되어 아무 생각 없는 애들 취급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꿈이 있건 말건, 그게 뭔 상관인가요. 요는 재능이 없으면 다 똑같은데. 지금 내 실력에 확신이 안 서면 그건 재능이 없다는 겁니다. 원래부터 굉장한 재능이 있었다면 이미 그것은 진작에 빵빵 밖으로 터져나왔을 것입니다. 또한 재능이야말로 그 꿈을 향한 노력을 즐겁게 지속시킬 수 있는 핵심역량인데 지금 고통스러워하면서까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려고 한다는 거, 좀 말이 안 되잖아요? 뿐만 아니라 타인의 냉정한 평가로 자신의 재능이나 실력을 객관적으로 분석해야 하는 건 꿈에 대한 기본 매너입니다. ‘작품’이 관련된 거라면 남들한테 보여주었을 때의 평가나, ‘시험’이나 ‘콘테스트’가 관련된 아이템이라면 실제로 성적이나 수상력 같은 것이 기준이 되어주겠죠. 평가받기가 두려우니 좀더 실력이 나아질 때까지 미루고 있다고요? 어쨌든 지금 난 최선을 다하고 있고 지금 나한테 주어진 길은 이 길밖에 없다고요? 그러고서는 얼굴도 모르는 제삼자에게 헛헛한 격려나 위로를 받으려는 생각이라면 용서가 안 되지요. 재능이 별로 없을 뿐만 아니라 노력도 별로 안 하니까. 재능과 노력이 없을 때 남 탓, 상황 탓하기는 또 얼마나 쉽습니까.

하긴 평가를 받거나 말거나 어쩌면 이미 그 누구보다도 본인들이 자신에 대해 잘 알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실은 자신들이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말이죠. 하지만 아무것도 없다는 게 드러나면 좀 곤란하니, 도리어 ‘자아 찾기’ ‘자아실현’ 욕구만 더 강해지는 것이겠지요. ‘나는 과연 누구일까’라는 질문의 이면에는 지금의 내가 아닌 무언가 더 나은 다른 내가 있을 것이다라는, 그 못 말리는 근거 없는 긍정의 화신이 또 어김없이 도사리고 앉아 있습니다.

 
자, 그러니까 어서 말해봐요. 요지는 내 꿈을 위해 할 만큼 했지만 힘드니까 포기하고 싶다는 건가요? 그렇담 어서 제발 포기하세요. 포기하는 거 누가 쉽대요? 천만에. 오만년 걸려 꿈을 이뤄내기보다 제때에 포기할 줄 아는 게 훨씬 더 어렵고 용기가 필요한 일입니다. 포기해서 인생 끝나버리면 쉽기나 하죠, 포기한다는 것은 플랜비(B), 차선책을 선택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최선책을 지향했을 때의 자신의 한계점을 직시하고 그것을 토대로 차선책을 잘 선택하면, 그것은 타협이 아니라 전략이 되어주고 장차 결과적으로 최선책이 되어줄 가능성이 한결 높아집니다. 그런데 ‘생각’은 안 하고 ‘고민’만 하고 있으니 이거 아니면 난 안 돼, 도 아니면 모, 이것도 싫고 저것도 싫어 식으로 대안 없는, 출구 없는 인생을 스스로 만들어서 가두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보아하니 포기하긴 해야 할 것 같은데 당최 용기가 안 나니 포기할 구실조차 타인에게 의지할 땐 이미 무얼 하기에도 너무 늦어버린 것입니다. 제 두 살배기 딸도 이젠 지가 눈 똥, 지가 알아서 치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