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자아 정체성이란 개인이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내가 누구인가를 스스로 되돌아보는 것이다. 어려서부터 부모님과 선생님의 관심과 애정을 한 몸에 받으며, 항상 모범적인 모습만 보이며 살았던 K는 애초에 진정한 자아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했다. 자신이 믿고 있던 자신에 대한 확신은 자아 정체성이라기보다는 사회적 정체성에 더 가까웠다. 헌신하던 직장에서 인정을 받지 못하자 자신감이 한순간에 와르르 무너져버린 것은 그 때문이다. 쉽게 말해서 그녀가 이해한 ‘나’는 다른 사람이 평가한 자신의 모습이었다. 누군가가 자신을 칭찬해줘야만 K는 자신을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반대로 자신을 비난하는 말을 들으면 이내 자기를 의심하곤 했다.
K가 보여준 적극적이고 활발한 모습은 그녀의 수동적인 성격에서 나온 산물이었다. 그녀는 이미 사회적 정체성에 맞춰 자신의 존재 가치를 확인하는 데 너무나 익숙했기 때문에 타인의 부정과 비판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오히려 외부로부터 인정을 받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삶이 더 익숙했다. 자신을 버티게 해주는 것들이 사라질까 봐 두려움에 사로잡힌 채 살아온 것이다.
K가 이처럼 자포자기한 듯 노력을 그만둔 것은 열심히 살아봐야 더 이상 아무도 자신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 생각은 자신이 쓸모없고 가치 없는 존재라는 생각으로 확장되고 말았다.
이런 궁지에서 벗어날 수 있는 해결책은 결국 자아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이다. 내가 누구인지 다시금 인식해야 한다. 자신의 능력과 본성에 대해 두루 잘 알고 있다면, 외부적인 평가와 판단이 자신에게 미치는 영향력을 줄일 수 있다. 나를 잘 알아야 남의 평판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
자신을 새롭게 인식하려면 꼭 생각해봐야 할 4가지 질문이 있다.
“나는 누구인가, 나의 본성은 어떤가?”
“나는 어떤 사람이고, 나의 장점은 무엇인가?”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나의 소망과 이상은 무엇인가?”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 나의 도덕성과 가치관은 무엇인가?”
자기 확신은 힘든 일을 겪을 때 가장 흐려진다. 나를 관찰해서 자아 정체성을 확립하는 일은 힘든 시기에 당신을 이끌어주는 힘이 될 것이다.
2.
우리는 상대방이 내 말을 듣지 않는다고 화를 내고, 일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화를 낸다. 그렇다면 이렇게 생각해보자. 왜 상대방이 당신의 말을 꼭 들어야 하는가? 왜 모든 일이 원하고 기대하는 대로 착착 진행되어야 할까?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모든 일이 뜻대로 되길 바라며 기대감을 가지고 있다면, 그렇지 않을 가능성 또한 열어두어야 한다. 당신도 모든 일에 있어서 남의 말을 듣고 행동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도 이와 같은 자유가 있다. 사실 생각해보면 화낼 만한 일은 그리 많지 않다.
친구와 게임을 하다가 져서 화가 나기 시작했다고 치자. 하지만 원래 게임에는 승자와 패자가 존재하기 마련이다. 당신이 화가 난 이유를 좀 더 자세히 짚어보자면, 게임이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아서 화가 난 게 아니라 당신의 통제욕이 완전히 충족되지 않아서 화가 난 것이다. 상대방은 당신의 말을 듣기 위한 존재가 아니다. 인간은 독립된 개체로 존재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의지력을 자신의 생각대로 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통제욕을 버리면 모두가 편안해질 수 있다.
(1) 화가 나면 감정을 통제하기 어려워져서 남에게 상처 주는 말을 쉽게 내뱉는다. 이때 잠시 정신을 차리고 심호흡을 해보자. 숨을 3초간 들이쉬고 2초간 내쉬기를 3번 반복하는 아주 단순한 호흡이다. 심호흡은 몸에 산소를 고르게 공급해주어서 뇌의 온도를 내리고 근육의 긴장을 풀어준다. 단순히 숨을 크게 들이쉬고 내뱉는 것만으로도 몸은 크게 이완되고, 순간적인 감정도 안정을 되찾는다.
(2) 부정적인 감정이 몰려올 때 어떤 환경에 놓여 있는지는 매우 중요하다. 화가 났을 때 상대방을 보고 있으면 더 큰 화가 치밀어 오르고 마음이 복잡할 때 침대에 누워 가만히 있으면 생각이 더 많아져서 더욱 괴로워진다. 자신의 감정에 부정적인 변화가 생겼음을 인식했다면 당장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라. 1미터 거리의 밖이라도 지금의 환경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기분이 훨씬 나아지고 마음도 가벼워질 것이다.
(3) 화가 나기 직전에 마음속으로 일시정지 버튼을 눌러라. 그리고 방금 일어난 일을 되새기며 화를 낼 만한 일인지를 따져보자. ‘정말 그렇게까지 화를 낼 일인가?’ 스스로 몇 차례 물어보고 나면 대부분은 ‘그렇게까지’ 화낼 일이 아니다.
3.
거침없이 말하는 태도가 긍정적으로 해석되기 위해서는, 정말 애정에서 비롯된 마음으로 상대방의 잘못을 정확하게 알려주어야 한다. 굳이 막말을 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보통은 날카로운 독설을 쏟아내는 자신에게 심취해 있는 경우가 많아서 남에게 애정을 보여주지 않는다
당신의 안 좋은 태도를 좋게 포장하지 마라. 이런 생각은 스스로를 기만하는 자기암시에 불과하다.
4.
사람에게 덜 기대할 것. 내가 준만큼 똑같이 받으려고 욕심내지 않을 것. 이 두 가지가 인간관계에서 실망하지 않는 가장 단순하고 확실한 방법이다.
5.
오늘 나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 일이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켰는지 왜 스스로에게 물어보지 못할까. 나를 소중히 여기기 위해서는 제일 먼저 나에게 질문을 건네보자. 오늘 무엇이 나를 즐겁게 했는지 혹은 실망스럽게 했는지 물어보자. 누군가와의 대화를 통해 문제의 실마리가 풀리듯이 나와 대화하면 나의 감정을 명확하게 인지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우리 내면의 평가 시스템을 단단히 만들 수 있으며,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방식을 선택하면서 인생을 꾸려나갈 수 있다. 그것이 바로 자신을 챙기는 첫걸음이다.
다음으로는 자신의 가치관을 되도록 자주 상기해야 한다. 가치관을 되새겨야 하는 이유는 그래야 다른 사람의 주장이 반드시 옳지만은 않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에 대해 되새김하다 보면 자신의 기호와 입장이 뚜렷해진다.
마지막으로 친한 친구에게 하는 것처럼 나 자신을 위로해주고 기분을 풀어주자. 당신은 친구가 억울한 일을 당했다면 친구를 괴롭힌 사람을 찾아가 혼쭐을 내주거나 괴팍한 상사를 마구 욕하며 친구 곁을 지켜줄 것이다. 그런데 다른 사람은 잘 위로하면서 정작 자기 자신을 위로할 줄은 모른다. 마음이 힘이 들면 맛있는 음식을 먹거나 운동으로 땀을 빼면서 자신을 위로해보자. 나를 위로할 수 있는 방법은 결국 내가 가장 잘 찾아낼 수 있다.
6.
당신도 불안하거나 우울할 때마다 응급 처방이 될 수 있는 자기만의 특별한 자세를 만들어보면 어떨까. 별것 아닌 듯한 사소한 자세 변화가 당신의 시끄러운 마음을 차분하게 해주는 진정제가 되어줄 곳이다.
7.
비합리적 신념을 갖고 있으면 다음과 같은 특성이 나타난다.
첫째, “반드시 ~해야만 한다”라는 말을 즐겨 쓴다. 이를 ‘당위적 사고’라고 부르는데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항상 내가 모든 일을 주관해야 해.”
“원칙은 반드시 지켜져야 해.”
이런 절대적 요구는 자기 자신뿐 아니라 상대방에게도 적지 않은 스트레스를 준다.
둘째, 지나치게 과장한다. 한두 번 우연히 마주친 것을 ‘항상 마주친다’는 식으로 일반화하여 해석한다. 시험을 한번 망쳤다고 스스로를 무능한 사람으로 여긴다. 애인과 말다툼을 한 후 상대방이 자신을 이해해준 적이 단 한 번도 없다고 생각한다. 누구라도 얼마든지 실수를 저지를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셋째, 어떤 일이든지 최악의 결과를 상정한다. ‘대학에 떨어지다니, 이제 다 끝났어’, ‘이번 일을 제대로 못했으니 모두가 나를 비웃을 거야’ 라고 부정적인 면을 기초로 전체를 부정적인 것으로 생각해버린다.
넷째, 힘든 상황을 잘 견디지 못한다. 원하거나 요구하는 것이 주어지지 않으면 그 상황을 견디지 못하고 좌절한다.
이 같은 특성을 두루 갖고 있으면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지치고 힘들어진다. 만약 당신에게 이러한 특성이 있다면 자신이 어떤 비합리적 명제를 믿고 살아가고 있는지 한번쯤 되돌아보자. 그리고 그 비합리적 신념을 수정하자. 자기 안의 잘못된 신념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연습을 하다 보면 어느새 비합리적 신념도 자연스럽게 그 힘을 잃어갈 것이다.
모두에게 인정받고 사랑받아야 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힘들어하는 이들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딱 하나였다.
"우리가 모두에게 사랑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에요. 모두가 당신을 좋아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세요."
8.
어떻게 하면 확증 편향에 빠지지 않을 수 있을까? 딱 하나, 그것이 거짓임을 증명하면 된다. 거짓을 증명하는 가장 전형적인 방법은 시행착오다. 한 가지 가설을 세운 후 그에 부합하지 않는 예를 계속해서 찾아내 가설을 수정하는 방법인데, 결국 최초에 세운 가설이 완전히 뒤집혀버린다. 앞에서 얘기한 ‘재수 없는 날’을 예로 들자면, 그러한 날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스스로 세운 가설이다. 그다음 해야 할 일은 늘 하던 대로 재수 없는 에피소드를 찾아내 그날이 확실히 ‘재수 없는 날’이라는 것을 확신하는 것이 아니다. 적극적으로 행운의 요소를 찾아내 잘못된 가설을 뒤집어야 한다. 지각은 했지만 밤새워 작성한 보고서가 좋은 피드백을 받았다거나 갑자기 회사 컴퓨터가 다운됐는데 노트북을 가져온 덕에 무사히 일할 수 있었다는 등의 좋은 정보들을 모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확정 편향의 그림자를 줄이는 노력을 해야 상황을 정확히 읽는 분별력이 생기고 사람을 제대로 보는 안목을 가지게 될 것이다.
9.
잊히지 않는 것들을 굳이 지우려고 애쓸 필요는 없다. 이 모든 것들이 우리가 성장해온 흔적이기 때문이다. 과거의 상처를 마주보는 것만으로도 자신을 알아가고 성장시키는 데 중요한 동력이 된다. 정말 강한 사람은 상처를 한 번도 받지 않은 사람이 아니다. 상처가 있지만 그것을 직시하고 이겨내 더 나은 내가 된 사람이다. 그러니 마음을 열고 상처를 성장의 힘으로 바꿔보자. 비바람이 휘몰아치는 날들을 이겨내야 비로소 화창한 날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10.
사실 더 확실한 동기부여 방법은 다른 사람과의 비교가 아니라 자기 자신과의 비교에서 이루어진다. 만약 비교를 통해 동기부여를 하고 싶다면 다른 사람이 아닌 자기 자신을 비교하자. 오늘의 자신이 어제의 자신보다 발전했다면 그것 또한 큰 희열이 된다. 삶의 무게중심을 남에게서 자신으로 옮겨 오면 불필요한 질투에 에너지를 덜 쓰게 될 것이다.
11.
후회를 할 때, 현실에서 일어난 일과 다른 결과를 상상하는 것을 심리학에서는 ‘반사실적 사고’라고 한다. 이런 상상을 해보면서 이미 일어난 사실과 맞닥뜨리기를 회피하는데, 어쩌면 자신이 다른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위안을 삼는 건지도 모르겠다.
현실과 가상의 차이가 매우 크면 상대적으로 나쁜 쪽이 종종 더 부각된다. 가상은 대개 아름다운 방향으로 나아가기 때문에 현실의 비극을 훨씬 두드러지게 한다. 이로 인해 우리는 후회의 늪에 빠져 스스로 벗어날 수 없게 된다. 어떻게 하면 후회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첫째, 또 다른 결과를 생각하라
반사실적 사고는 나의 형편없는 현실과 가상이 불러온 탄탄대로 사이의 격차를 점점 더 벌어지게 만든다. 그러므로 우리는 애초에 공평하지 않은 이 두 가지를 서로 비교하지 않아야 한다. 그 대신 또 다른 가능성이 가져오는 결과, 즉 가상의 나쁜 점들을 고려해야 후회하는 마음이 조금씩 작아진다.
예를 들어, ‘다른 옷으로 갈아입지 않았더라면 지각하지 않았을 것이다’라는 가상이 오히려 더 안 좋은 결과를 불러왔다고 생각해보자. 처음에 입은 옷을 그대로 입고 나왔다가는 갑자기 시작된 폭염에 힘들었을 수도 있다. 혹은 입고 온 옷이 마음에 안 들어서 하루 종일 기분이 별로였을 수도 있다. 이렇게 몇 가지 나쁜 결과를 가정하고 나면 마음이 한결 편안해진 것을 느낄 수 있다. 심지어 자신의 결정을 다행으로 여길 만큼 여유가 생길지도 모른다.
둘째, 후회의 힘을 긍정적으로 활용하라
후회는 부정적인 감정이지만 긍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한다. 지금의 이 아쉬운 감정은 나를 성장시키고 내가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게 하는 계기가 된다. 변화와 행동에 동기를 부여하는 힘이 되어주는 것이다.
셋째, 후회라는 변수를 고려하라
이것은 후회를 하기 전에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다. 인간은 반드시 먼저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 이 일을 하고 난 후에 우리가 후회할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한번쯤 해보는 것이 좋다. 특히 중요한 일을 결정할 때에는 후회라는 요인을 항상 함께 고려해라. 어떤 일은 하면 잠깐 후회할 수 있지만, 하지 않으면 평생 동안 후회하게 된다. 후회의 가능성을 멀리까지 내다보고 결정하자.
12.
나는 마음을 주로 물에 비유한다. 흐르는 물은 때로는 맑고 투명하고, 때로는 탁하고 더럽다. 사람의 마음도 끊임없이 변화를 거듭한다. 자꾸 자신을 억누른다면 흐르는 물을 댐으로 막아 저수지를 만드는 것과 마찬가지다. 감정이 들어올 수는 있으나 나갈 수는 없다. 조금씩 수위가 높아진 우울한 감정이 넘치기 시작했다면 댐은 언젠가 무너지고 말 것이다.
혼자 끙끙대며 자신을 꾸짖고 벌주며 살지 않기를 바란다. 당신이 웃고 싶지 않을 때는 웃지 않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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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몬심리,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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