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ry

평일 오후 을지로 증권사에 가보았다

유연하고단단하게 2019. 5. 14. 19:39

 

1. 자본주의 경제에서 부가 팽창하는 원리는 '돈이 돈을 낳는 것'이다. 경제가 성장하는 곳은 삶의 현장이 아니라 '금융 시장'이다. 경제 성장의 자원은 노동이 아니라 돈, 즉 투자 시장을 구르는 눈덩이 그 자체이다. 그리고 개인에게 있어, 경제적 의미로 성장하는 방법은 직업적 성취가 아닌 현명한 투자이다. 

자본주의의 꽃이 탐스럽게 피어나는 곳은 바로 투자 시장이다. 그러므로 자본주의 시대에 살면서 금융상품에 대해 전혀 관심을 갖지 않는 것은 시대인으로서의 권리를 포기하는 것이자 정보의 불균형에 따른 불이익을 껴안는 것, 즉 기꺼이 (금융 시장을 이해하고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사람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난해지기로 결정하는 것이다. 

 

2. 오후 시간 을지로 빌딩 사이에서 많은 양복쟁이들이 담배를 피거나 커피를 마시면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증권사와 은행사 빌딩 숲 그들 사이에서 '자본주의의 열등생'인 내 처지가 더욱 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아니, 여태껏 그렇게 열등감을 육체적으로 느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오히려 비현실적인 느낌이었다. 미래에셋 영업점에서 10분만에 펀드 상담을 마치고 식은땀을 흘리며 나온 이후였기 때문에 그 비참함이 더욱 생생했다.

호감형 외모와 부드러운 목소리의 영업부 직원은 청바지와 흰 티, 검은색 백팩을 맨 화장기 없는 부스스한 내 모습을 본 1초 안에 이 사람에게는 제공할 정보도 시간도 없다는 잠정적 결론을 내렸을 것이다.

 

3. 경제와 재테크 분야에 대해서는 최근에야 급격히 관심을 갖게 되었기 때문에 아직 모르는 게 많다. 적성과 취미에 도저히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돈에 대한 탐구'에 점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30대의 문턱에 들어섰기 때문일 것이다. 인생이 영원히 찬란할 것만 같았던 20대에는 외모와 몸매를 가꾸는 것, 번듯한 직장 타이틀을 얻는 것이 인생 승리 전략이라고 생각했었다. 그게 크게 잘못된 생각이었다는 것을 20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어렴풋이 느끼게 되었고, 오늘 비로소 뒷통수를 맞은 듯 아찔하고 확실하게 느낀 것이다.

(상대적 부를 거머쥐지 못했던 중하위층 부모님의 가치관과 교육의 영향으로) 세상 사람들이 나를 평가하는 기준이 내 외모와 직업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다이어트에 집착했고, 메이크업과 헤어스타일에 무비판적으로 돈을 쓰며 내 외모가 어떻게 비춰질지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열심히 공부해서 이름 있는 적당한 회사에 들어간 후에는 경제사회적 지식 측면에서의 자기 개발을 그만두었다. 남들에게 비춰지는 내 겉모습에 전전긍긍해 하면서 살이 찌거나, 나이가 들면서 외모가 빛을 잃어가는 것에 대해서 극도로 우울해했다.

오늘 나를 바라본 증권사 영업부 직원들, 그리고 내가 바라본 을지로 카페 직원, 지하철 안의 거지 할아버지. 그 시선의 상하관계를 읽고 새삼 느낀 것은 삶을 빛나게 하는 것, 성공과 행복의 원천은 겉모습이 아니라는 것이다. 외모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외모적 성취는 원인이 아닌 결과에 가깝다는 점이다. 또한 겉모습이 빛을 발할 수 있고 나에게 자신감과 행복을 줄 수 있으려면 근본적으로 내 안이 단단해야 한다. 스스로가 가치있는 사람이고, 삶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외모와 직장은 성공의 일부 조건일 뿐 핵심 요인이 아니라는 것을 몸과 마음으로 깨달았다.

 

4. 아직 늦지 않았다는 믿음을 갖고, 자본주의 시대인으로서의 조건과 시대 흐름에 맞추어 부의 팽창에 소외되지 않고 동참할 수 있도록 공부하고 내 눈덩이를 얼른 굴려 넣어야겠다. 시대의 발전에 발맞추고 있고 세상과 함께 성장하고 있다는 느낌, 뒤쳐지지 않고 나아가고 있다는 확신으로부터 내 자존감은 더욱 단단해질 것이다. 외모와 직업에 일희일비하고 집착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고 좁은 시야의 삶이었는지, 지금의 나를 언젠가는 웃으며 돌이켜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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