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의 블로그 일기.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다니던 필라테스센터가 망해서 4개월치 등록비를 갖고 날랐다거나, 같은 팀 대리님이 그만두셔서 일 폭탄이 터졌다거나, 태국으로 혼자 여행을 다녀왔다거나, 아직 만족스럽지 않지만 두 달 간 6키로가 빠졌다거나, 하는 자질구레한 일들을 차치하고 일단
한 사람을 만났다. 사귀었다기보다는 그냥 만난 사이, 서로 즐긴 걸로.
오래 사귄 남자친구의 빈 자리 따위 꼴보기 싫어서 헤어지자마자 부지런히 소개팅이나 썸을 탔고 총 네 명 정도를 만났다. 그 중 제일 오래, 그리고 깊이 있게 (육체적, 시간적인 부분에서 또한 그 덕에 어쩔 수 없이 감정적으로) 만난 이 사람은, 정말 이기적이지만 잘생기고 특이한 사람이었다. 소위 말하는 전형적인 나쁜 남자. 철 없고 자기 잘난 맛에 살고, 그걸 여러 여자에게서 증명받고 싶어하는 또라이. 그럼에도 내게 크게 어필한 부분은 외모적인 부분과 키스를 잘 한다는 것과 망설임 없이 관계를 쭉쭉 진전시킨다는 점이었다. 후자는 그냥 나라는 여자에 대한 조심성과 배려가 없었기 때문이고 또 그저 즐기기 위해 나를 만났다는 사실의 근거이겠지만. 어쨌든 그와의 육체적인 관계가 지난 남자친구의 흔적을 빨리 떨쳐내게끔 했다.
사람들이 말하기를 소위 내 입으로 나쁜 남자,라고 하는 사람은 나쁜 남자가 아니고 그냥 쓰레기란다. "나쁜 남자인 거 내 입으로 밝혔으니까 상처 입는 것은 네 선택일 뿐 내 잘못이 아니다", 라고 자기 변호를 하기 위한 밑밥을 까는 거라고. 그 사람도 그런 말을 내게 했었다. 나 같은 놈 왜 만나니, 난 날나리야. 그건 "너도 동의하고 만나는 거지? 오케이. 그럼 나답게 너를 만나고 너에게 상처를 줄게."라는 말이었다, 생각해보면.
사실 그 사람을 만나는 건 꽤 재미있었다. 매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쉴 새 없이 카톡을 나누고, 잠들기 전까지 매일 한 두시간 통화했다. 내 시간의 대부분을 그에게 투자하는 것에 금세 길들여졌다. 한 시간 정도 걸리는 그 사람의 퇴근길 동안 지하철 5호선의 엄청난 소음과 함께 통화해야 했는데, 그 소음의 끔찍함에도 불구하고 어느새 퇴근 후 연락이 없는 것이 오히려 섭섭해지는 것이었다. 그와 직접 만난 것은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두 달 동안 6번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워낙 진도를 빨리 뺀 탓에 또 시간적으로 유무선 상 많은 부분을 함께한 탓에 그 짧은 시간 동안 그는 나의 정신과 육체에 깊이 침투해 나를 휘저었다.
어쨌든 그 덕분에 7년 간 사귀고 헤어진 내 첫 남자친구를 금세 잊을 수 있었다. 사실 그와의 관계에 나도 모르게 매달린 이유는, 더 나은(외모적 측면이긴 하지만) 사람에게서 사랑받는 나, 더 나은 사람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나를 증명해보이기 위해서이기도 했던 거 같다.
문제는 지난 목요일부터였다. 오후까지 늘 그렇듯 카톡으로 대화를 나누었다(내게 던지는 막말이 농도가 점점 더 심해진다 싶기는 했지만). 그러다가 저녁부터 쭉 연락이 끊기는 것이었다. 카톡도 없고 전화도 받지 않고. 핸드폰을 잃어버렸나, 무슨 일이 생긴건가 싶었지만 그동안 PC 카톡으로 이야기를 했으니 핸드폰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고. 심지어 카톡을 읽고도 답장이 없는 것을 보고 비로소 깨달았다. 이게 소위 말하는 '잠수이별'이라는 거구나.
직접 당해보니 잠수이별이라는 게 진짜 사람을 미치게 하는 것이다. 도대체 왜? 라는 질문이 머리 속을 떠나지 않는다. 나 스스로에게는 아무리 던져봤자 답이 없는 질문인 것을. 차라리 무슨 사고가 난 거면 이해가 되겠어서 뉴스 기사에 그의 이름을 몇 번이나 검색하게 된다. 하지만 아무래도 가장 현실적으로 납득이 되는 이유를 고르자면 그는 양다리를 걸치고 있었고, 혹은 다른 여자 때문이 아닐지라도 어쨌든 나라는 사람을 쉽고 간단하고 편리하게 정리하기 위한 방법으로 잠수 이별을 선택한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의 계획.
앞으로 두달 동안 46키로대 진입이라는 목표를 완수하고 + 여름 지나면 주근깨 제거, 목 주름 제거, 피부 탄력 강화, 짝눈 교정으로 외모 업그레이드. 그리고 부지런한 소개팅으로 괜찮은 남자 많이 만나기. 계획적으로 돈 모으기. 정신적으로 더 깊이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다양한 경험과 공부를 부지런히 하기. 마지막으로 그 누구보다 나 자신을 더 아낌없이 사랑하기.
+)
내가 당한 상황에 대해서 가장 위로가 되었던 말은 이거였다. 대체 왜 쓰레기가 쓰레기인지 궁금해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