란도는 그렇게 말하고 여자애와 제방 쪽으로 걸어가 철사 다리를 올라 건너편으로 사라졌다. 제방 위에 섰을 때 여자애의 스커트가 바람에 걷어 올려졌다. 내 눈을 의식하며 서둘러 양손으로 누르던 여자애의 동작이 언제까지고 마음에 남았다. 나는 전봇대에 기대어 두 사람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어느새 날이 기울고 집들의 그림자로 골목이 어두워지기 시작해도 여자애와 란도는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내 가방을 땅바닥에 놓고 그 위에 앉아 무릎을 껴안았다. 란도의 가방을 열었더니 안쪽에서, 가늘고 긴 철판을 그라인더로 깎고 며칠이나 숫돌에 갈아서 손수 만든 단도가 들어있었다. 손잡이 부분에는 하얀 테이프가 몇 겹으로 감겨있었다. 칼집은 없고 칼만 있었다. 직접 만든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 가라앉은 듯한 차가운 광택이 골목을 스쳐가는 뜨거운 바람의 밑바닥에서 번쩍였다. 말뚝을 박는 금속음이 바다 쪽에서 들려왔고, 누구 한 사람 보이지 않는 집들 여기저기에서는 저녁밥 냄새만이 떠돌았다. 나는 지루했고, 몇 번이나 일어나 제방 옆까지 갔지만 왠지 두 사람의 모습을 엿볼 마음이 들지는 않았다. 저녁놀이 녹슨 철 같은 색으로 집들의 벽이나 지붕을 칠했고, 그것이 급격하게 검은 빛을 띠어갈 때까지도 두 사람은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란도의 단도로 전봇대를 깎았다. 잘 들었다. 칼이 잘 드는 것에 마음이 빼앗겨 어느 새 아무 생각 없이 전봇대를 깎기 시작했을 때 란도가 앞에 서 있었다. 란도는 하얗게 언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고 얼굴에는 땀이 흐르고 있었다.
"미안. 조금만 더 기다려줄래. 괜찮지?"
"응."
내가 불만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다시 종종걸음으로 제방 쪽으로 갔고 힘차게 뛰어넘어 건너편으로 사라졌다. 죽은 사람 같은 표정이었지만 몸의 움직임에는 억누를 수 없는 기쁨이 감춰진 것처럼 내 눈에는 비쳤다.
나는 전봇대 깎는 일을 그만두고 제방 건너편의 휑뎅그렁하고 지저분하며 어두운 하늘을 바라보았다. 두 사람이 숨어 있을 그 주변 위의 하늘에는 엄청나게 많은 박쥐가 어지러이 날고 있었다. 나는 소름이 끼쳤고, 언제까지고 박쥐를 바라보았다. 그것은 둔하고 까만 눈을 가진, 새라고도 짐승이라고도 할 수 없는 생물의 추악한 춤이며, 땀과 허무로 처발라진 관능의 무수한 비말이며, 기괴한 표정에 조종되는 그 영혼들의 어쩔 수 없는 술렁거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