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예술의 중요한 사조 중 하나는 바로 ‘내러티브의 해체’이다.
뚜렷한 내러티브나 주제의식을 일방적으로 전달하고, 억지로 이해시키는 것은
어쩌면 일종의 폭력이 아닐까?
이성적인 사유를 강요받는 데 지친 현대인들에게 이제 예술은
그 어떤 논리적 이해나 정답도 요구하지 않고 단지 ‘공감’할 수 있다면 충분하다고 말한다.
<빠에야 믹스타> 또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잠시 일상을 잊고서 짜릿한 일탈을 만끽할 수 있도록
하는 공연이다.
<빠에야 믹스타>에서 선보이는 동작들은 낯설고 새로우면서도 동시에 왠지 익숙한 느낌을 전해준다.
그것은 이 공연의 안무가 스페인 전통 무용을 기반으로 만들어졌으며,
스페인 전통 무용이 우리의 전통적 춤사위와 어떤 유사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된다.
그러나 그러한 전문적인 해설을 차치하더라도 <빠에야 믹스타>에서 나타나는 주제의식은
바로 인간 보편적인, 어떤 궁극적인 질문과 관련된 것이기에 우리는 그들의 춤에 공감할 수밖에 없다.
팸플릿에서는 ‘열정과 매혹의, 죽음을 향한 격렬한 여정’이라고 공연의 주제를 소개하고 있지만
직접 관람한 뒤 느낀 점은 ‘죽음에 대한 메시지’보다는
어떤 ‘존재론적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는 것이었다.
원시적인 느낌의 남자 무용수들의 춤과, 세련되고 절제된 느낌의 플라멩고는
마치 빠에야 속 생선과 고기처럼 묘한 대조를 이룬다.
그 속에서 솔 피코는 두 가지 춤 모두와 조화를 이루면서 빠에야를 잘 완성시킨다.
그러나 그녀의 춤은 결코 아름답고 유유하게 보이지는 않으며,
오히려 고통스럽고 격정적인 사투의 과정을 표현하고 있는 것 같다.
또한 관객은 단지 완성된 빠에야를 맛보는데 그치지 않고, 빠에야가 만들어지는 이러한
격렬하고 혼돈스러운 과정에 감정을 이입시키며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그녀의 몸부림에 공감할 수밖에 없는 것은
이것이 우리 모두가 마음속에 품고 있는 어떤 존재론적 고민, 근원적인 것에의 갈망을 표현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바쁜 일상을 살아가면서 삶이 덧없고 무의미하다는 생각을 애써 떨쳐내려고 한다.
종교를 통해서 존재론적 허무감에서 벗어나려고도 하지만
몸과 마음은 여전히 현실에 단단히 얽매인 채로이다.
<빠에야 믹스타>에서는, 우리가 그토록 갈망하는 초월적, 근원적인 것에 다가서기 위해서는
현실을 단호하게 벗어나 원시적인 ‘무의식의 세계’로 들어서야 한다고 말한다.
이 세상을 이성적으로, 논리적으로 파악하려는 데에서 벗어나야
비로소 자신의 존재를 진실되게 자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신을 둘러싼 그 모든 논리의 세계, 현실적인 세계에 단절을 고하는 솔 피코의 모습은
‘죽음’으로써 관에 실린 채 무대로 들어가는 모습을 통해 구현되고 있다.
실내 무대에 들어와서는 솔 피코와 네 명의 무용수들 간의 '싸움‘과도 같은 격렬한 동작으로
공연이 재개된다.
현실을 떠나와 원시적이고 무의식적인 세계에 맞닥뜨리면서
거기서 방황하고 갈등하는 모습이 그려지는 것이다.
그녀는 처음에는 그 모든 낯선 것을 격렬하게 거부하지만 점차 그들과 융화되어가는 모습을 보인다.
그녀의 무용은 또한 플라멩고와 어우러지면서 이러한 존재론적인 고민을 다양한 몸짓으로 풀어나가며
그 고민에 깊이와 무게를 더한다.
마지막으로 쓰러진 솔 피코의 몸 위로 쌀이 한가득 쏟아지면서,
그녀는 마침내 빠에야의 일부로 완전히 녹아든다.
이렇게 공연은 하나의 빠에야를 완성시켜 가는 과정이며, 그것은 또한 하나의 제의적인 과정이다.
논리적으로 설명되고 감각적으로 파악되는 이 세상 너머의 어떤 초월적인 것과 접촉하고자 하는 몸부림.
근원적이고 절대적인 것을 추구하는 이 ‘투쟁’의 과정은, 마치 빠에야의 재료들이 격렬히 끓으면서,
양념이 완전히 배어서 마침내 하나의 요리로 완성되는 과정과도 같다.
완성된 빠에야가 그 격렬했던 존재론적 물음에 대해 어떤 답변과 깨달음을 내놓은 것인가는
관객들이 저마다 다르게 해석해야 할 문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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