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와 얘기를 나누다보면, 이 사람에게 옴진리교가 이상적인 '그릇'이었다는 것을 납득하게 된다. 분명 '현세'에서 살아가는 것보다는 교단에 들어가서 수행하는 편이 이 사람으로서는 훨씬 행복했을 것이다. 현세의 그 무엇에서도 전혀 가치를 발견할 수 없었고, 자기 안의 정신세계를 추구하는 것 외에는 거의 흥미가 없었다. 따라서 현실에서 벗어나 외곬으로 정신수행에만 매진할 수 있는 옴진리교 교단은 하나의 낙원 같은 것이었다.
물로 열여섯 살에 교단에 들어가 순수 배양되었다고, '유괴'나 '세뇌' 같은 형태로 볼 수도 있겠지만, 내 마음은 그보다는 오히려 '세상에 이런 사람 하나쯤 있어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 쪽으로 기울어버렸다. 너나 할 것 없이 모든 사람이 굳이 '현세'에서 부대끼며 절박하게 살아갈 필요는 없을 것이다. 세상에 직접 도움이 되지 않는 것에도 뼈를 깎는 진지함으로 임하는 사람들이 조금은 있어도 좋을 것이다. 문제는 이런 사람들을 받아들일 적절한 네트워크가, 아사하라 쇼코가 이끄는 옴진리교 교단 외에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는 데 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그 네트워크가 우연하게도 거대한 악의 요소를 내포하고 있었던 셈이다. 단순하게 표현하자면, 결국 낙원 같은 것은 어디에도 없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 우리가 하야시 의사에게 해줘야 할 말은 원래는 굉장히 간단할 것이다. 그것은 '현실이란 본래 혼란과 모순을 내포하고 성립되는 것이며, 혼란이나 모순을 배제해버리면 그것은 이미 현실이 아니다'라는 것이다. "그리고 일견 정합적으로 들리는 말과 논리에 따라 교묘하게 현실의 일부를 배제했다고 믿어도, 그 배제된 현실은 반드시 어딘가에 잠복해 있다가 당신에게 복수할 것이다"라고.
그렇지만 하야시 의사는 그런 말에는 아마 설득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전문적인 말과 매뉴얼화된 논리를 늘어놓으며 날카롭게 반론하고, 자기가 나아가려는 길이 얼마나 바르고 아름다운가를 유창하게 풀어놓았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어쩌면 그런 논리를 넘어설 만한 효과적이고 설득력 있는 말을 가지고 있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 결과 어느 시점에는 입을 다물어버릴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현실성을 결여한 말과 논리는 현실성을 내포한 (그 때문에 불순물 하나하나를 무거운 돌처럼 질질 끌 수밖에 없는) 말과 논리보다 종종 강한 힘을 지니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우리는 서로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채, 각각의 방향으로 갈라져 버릴 것이다.
하야시 이쿠오의 수기는 여기저기에서 우리를 멈춰 서게 하고, 깊은 생각에 잠기게 만든다. '이 사람은 왜 이 지경까지 갈 수밖에 없었을까'라는 소박한 의문과, '그러나 우리에게는 아마도 손쓸 여지가 없었을 것'이라는 무력감이 동시에 솟구쳐오른다. 그것은 우리를 묘하게 서글픈 기분에 젖어들게 만든다. 가장 허무한 것은 '공리적인 사회'에 대해 가장 비판적이어야 마땅할 사람이, 말하자면 '논리의 공리성'을 무기로 많은 사람들을 파멸시켰다는 점일지도 모른다. 세간에 떠도는 일종의 뉴에이지적 언설이 우리에게 이따금 섬뜩한 느낌을 주는 이유는, 그것이 '초현실'이기 때문이 아니라 결국은 그저 현실의 얄팍한 희화화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 1995년 일본에서 지하철 사린 사건을 일으킨 옴진리교 신자들의 인터뷰
무라카미하루키 <언더그라운드2 - 약속된 장소에서> 중에서
무라카미하루키 <언더그라운드2 - 약속된 장소에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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