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책 / 연희동의 밤

유연하고단단하게 2023. 11. 19.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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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도 같은 생각을 한 적이 있다고 대꾸했다. 아마도 내 마음 속에선 그보단 아름다운 노래이기 때문이겠지. 뭐든 그렇잖아. 마음속에서 꺼내어 사람들 앞에 내보이는 순간 갑자기 초라해 보이잖아. 분명히 그보단 아름다웠는데. 그래서 나는 사람들 앞에 소중한 걸 꺼내놓지 않아. 언니는 그게 좋은 건 아니라고 하더니, 내게 마음을 좀 열고 살라고 했다. 나는 언니가 그렇게 말할 자격이 있나 싶었지만 잠자코 있었다. 우리는 종종 서로가 자기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마음이 서로를 무시하는 결과로 이어지는 게 아니라 서로를 보살피는 상황으로 이어지는 게 신기했다. 언니는 알코올램프를 살짝 살짝 흔들며 심지에 붙은 불꽃을 바라보았다.    

가끔 드라마 속 인물이 부러워. 모두가 기억해주는 삶을 살잖아. 가짜인데, 그런 삶을 살아. 나는 진짜인데도 그런 삶을 살지 못하는데.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언니가 원하는 건 기념비처럼 우뚝 일어선 삶이었을까. 모두가 돌아보며 감탄하고 기리는 삶이었을까. 언니도 알겠지만, 그런 삶은 누군가의 희생이 가려지는 삶이잖아. 전쟁이 무서운 게 그런 거잖아. 누군가의 희생을 당연한 것처럼 생각하는 몰지각. 누군가의 피해를 부수적인 것처럼 생각하는 반지성. 그렇게 지킨 영토와 신념은 후대에 전해져 이젠 아무도 찾아가지 않는 곳의 기념비로 남잖아. 그러니까 언니도 다시 생각해 봐. 언니의 삶에 기념비를 우뚝 세우고 싶은지. 언니의 청춘과 슬픔과 기쁨을 그 아래에 묻어두고, 단 하나의 비를 세우고 싶은지. 그러는 동안 언니가 잃어버릴 것들을 생각해 봐. 언니는 내 말을 묵묵히 듣더니, 사람마다 세우고 싶은 단 하나의 비가 있어, 라고 단정 짓듯 말했다. 나는 그런 게 없는 사람도 많다고 답했다. 이젠 그런 시대야. 기념비를 세우는 게 촌스러워진 시대. 단 하나의 기념비가 아니라, 요리조리 상황을 살피면서 끼니를 이어가는, 자기 몸 하나 누일 곳을 확장해가는 그런 삶이라고.


- 이서수, <연희동의 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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